먼저 하나를 가정하자. 조금은 억지스럽지만, 철학이라는 어떤 역할이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가정을...말이다.
그렇게 철학은 자신의 고유한 역사도 그 실체조차 모호한 학문에 지나지 않으며,
언제나 어떤 철학은 시대의 - 철학자의 고유한 철학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가정을 하자는 것이다.
이렇게 가정하면 철학은 아무것도 아니며, 동시에 그것에 대해 쉽사리 말할 수도 없는 것이다.
오직 하나의 역할 만이 그것에 부여되어 있다는 생각을 떨처버릴 수 없게 된다.
그것은 다음과 같다.
철학은 이데올로기와 과학을 구분되고, 이론은 지식의 산물에 지나지 않는다.
철학은 이런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는 혼재된 지형 속에서 - 그 사이 - 경계에서 이론을 통해
과학과 과학이 아닌 것을 구분하는 역할로서 존재하는 한낱 매개에 지나지 않는다.
이건 실제 과학과 이데올로기와의 관계 뿐만아니라 한 사회의 도덕과 윤리의 문제
감성과 이성적인 것에 대한 문제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범주의 대상을 가지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철학이라는 학문은, 철학자의 고유한 형태의 학문도 형태도 실상 지닐 수 없는 것이다.
강신주에 대한 주된 비판은 그의 철학, 세계관의 문제가 아니다.
그가 철학을 통해 개입하는 (개별 학문적 성과에 대하여) 왜곡된 해석을 가하고,
어떤 월권을 범하는 - 실제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 무의미하게 말하는 무절제가 큰 이유인 것이다.
그는 철학자이면서 진정 철학하지 않으며 철학적 대상을 욕보일 뿐이고, 그 때문에 비판받는 것에 불과하다.
그가 철학을 도덕으로 치환한다는 점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