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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스압]하치만 선생 어록 2편
게시물ID : animation_7377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레이니아
추천 : 2
조회수 : 1335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3/06/09 04:45:15

날 너무 깔보지 마. 난 말이지, 대부분은 물론이고 그 어떤 다수 속에서도 혼자가 될 수 있는 인재라고.



외톨이는 자기이름을 불리는 데에 민감하다.워낙 불릴 기회가 적다보니 드물게 이름을 부르면 번개처럼 빠른 반응을 보이고 만다.출처는 나.놀란 나머지 네헥!같은 소리를 내기도 한다.심지어 다음 역은 이치가야,이치가야입니다.라는 방송에도 대답해 버릴 수준



'모두 사이좋게'라는건 교사가 교실에 부여하는 악법으로 그걸 지키느라 생겨나는 갈등을 '무시'해서 그 상태를 성립시킨다.죽어도 마음이 안 맞는 녀석도 있고 끔찍히 싫은 녀석도 있을텐데. 털어놓을 수 있다면 개선도 협상도 가능한 감정을 억누르게 만든다.



주변에 불빛이 적을 수록 별은 더 찬란하게 빛난다. 그 사실을 감안하면 주변에 사람이 적은 외톨이는 분명 반짝반짝 빛나 보일 게 분명하다. 이거 큰일인데, 내 미래가 너무 밝잖아.



치바에 사는 남매는 시스콘이 나타날 확률이 높다.

내 여동생이 이렇게 귀여운 걸 어쩌라고.

'나 여동생 있는데 하나도 안 귀엽거든'이라고 지껄여대는 놈들이 종종 보이는데, 그건 네놈의 여동생이라서 안 귀여운 것뿐이거든?



 누진세 제도는 악이다. 많이 버는 사람은 많은 세금을 내야 하지만 그 대가는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 벌면 벌수록, 일하면 일할수록 더 많은 세금을 뜯기는데도 그 보상은 전무한 셈이다. 그러므로 일하는 자는 패배자다.

 누진세를 도입한 목적이 행복의 평준화라면 참으로 어리석은 생각이 아닐 수 없다. 애당초 이 세상에 평등한 행복 따위 존재할 리 없지 않은가. 무엇보다도 재력을 기준으로 인간의 행복을 평가하려는 사고방식 자체가 천박하기 그지없다. 따라서 앞으로는 친구와 애인 수에 따라 세금을 매기는 ‘리얼충 누진 과세 제도’의 도입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많이 버는 사람은 많은 세금을 낸다. 하지만, 그 대가는 없는 것과 다름없다. 벌면 벌수록, 일하면 일할수록 더 많은 세금을 뜯기는데도 그 보상은 전무한 셈이다. 그러므로 일하는 자는 패배자다.



굳이 발품을 팔기로 한 이유는 결코 말을 거는 데 용기가 필요해서가 아니다. 그런 사소한 문제로 남을 번거롭게 할 수 없다는 내 친절함 때문이다.



외톨이이게 말을 걸 때는 반드시 비밀스럽게, 은밀하게 접근해야 한다. 조롱거리가 되지 않도록 최대한 주의할 필요가 있다.



근본부터 악한 사람은 없다. 모두들 그렇게 믿는다, 자신을 포함해서. 자신은 성량하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러나 자신의 이익이 침해당할 위기에 몰리면, 인간은 너무도 쉽게 공격성을 드러낸다.

선량하다 여겼던 자신이 악에 물들 때, 인간은 자기 합리화를 시도한다. 반전되는 자신과의 정합성을 유지하고자 세계를 반전시킨다. 그동안 ‘쿨’하다고 떠받들던 것을 ‘거만하다’고 해석한다. ‘머리 좋고 똑똑하다’며 존경하던 것을 ‘공부 못하는 사람을 무시한다’고 폄하한다. ‘명랑하고 활발한’성격을 ‘시끄럽게 설친다’고 깎아내린다.



그렇다, 나는 불교 신자다. 그러니까 이 정도의 유혹에는 넘어가지 않는다. 수행승을 얕보지 마라. 근데 석가모니한테는 자식이 있잖아. 어떻게 된 거냐고.



외톨이는 이른바 ‘망가진다’라는 행위를 좀처럼 이해하지 못한다. 분위기 파악 못 한다는 소리를 듣는 이유이기도 하다. 창피해서 그러는 게 아니다. 그냥 이것저것 생각이 많아서 쉽게 행동에 옮기지 못하는 것뿐이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는 않을까 위험하지는 않을까 내가 끼어들었다가 이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깨지면 어떡하지 등등.



자신을 바꾸면 세상이 바뀐다고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한번 굳어진 자신에 대한 평가도 기존의 인간관계도 쉽게 긍정적으로 돌아서지는 않는다. 사람이 사람을 평가하는 방식은 플러스마이너스 식이 아니다. 오직 고정관념과 인상으로밖에 세상을 보지 못한다. 사람은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보는 게 아니다. 자신이 보고 싶어 하는 현실을 볼 뿐이다.



세계는 바뀌지 않지만 자신은 바꿀 수 있다고들 한다. 하지만 그것은 결국 쓰레기처럼 냉담하고 잔인한 세계에 순응하고 적응하여 패배를 인정하고 예속되는 행위다. 번드르르한 말로 포장하여 자기 자신마저도 속여 넘기는 기만에 불과하다.




썩은 동태눈이라니. 그렇게 DHA가 풍부해 보이나요?



언어소통에서 말이 차지하는 부분은 30%정도라고 한다.나머지는 눈의 움직임 같은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하는데,'눈은 마음의 창'이란 말도 거기에서 나온 것이겠지.그 이야기는 나 같은 외톨이도 70%의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있다는 거 아닌가?아니겠지.



집단 심리 따위 내게는 통용되지 않아……. 왜냐하면 한 번도 집단에 받아들여져 본 적이 없으니까!



날 너무 깔보지 마. 난 말이지, 대부분은 물론이고 그 어떤 다수 속에서도 혼자가 될 수 있는 인재라고.



대체 불가능한 존재라니 무섭지 않은가. 그것을 잃어버리면 돌이킬 수 없고, 실패조차 용납되지 않고, 두 번 다시 손에 넣을 수 없다니.

그래서 나는 내가 만들어낸 이 관계성을 좋아한다. 아주 사소한 일로도 끊어져서 누구에게도 상처를 주지 않으니까.



고독은 사람을 강하게 만든다.누구와도 친분을 맺지 않는다는 말은 곧 지켜야할 존재도 없다는 뜻이다.지켜야 할 존재,그것은 달리말하면 약점에 지나지 않는다.많은 영웅이 약점 때문에 실패한걸 생각해보면,외톨이가 최강이라는 말이 가슴 깊이 와닿을 수밖에.



친구가 있기에 배울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친구가 없기에 배울 수 있는 것도 있다. 그 두 가지는 표리일체로 동등한 가치를 지닌다고 보아야 한다.



...리셋 해버려 리셋. 인간관계가 모두 없어지고 전원이 외톨이가 되면 분쟁도 다툼도 없어질 테니까.



도망치면 안 된다는 건 강자의 논리에 불과하다.그에 따르기를 강요하는 세상이야 말로 잘못됐다.

'난 잘못한게 없어.이 세상이 잘못된거야'라는 말은 핑계처럼 들리지만 아주 틀린 말도 아니다.사회가, 세상이, 특정인물이 잘못 된 경우도 얼마든지 있으니까



고립된 것, 혼자 있는 것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문제가 있는 건 악의에 의해 고립됬을 때다. 자의와 타의의 차이, 라는 이야기다.



서로에게 기대하지도, 기대받지도 않는 관계. 그것은 어쩌면 무척 마음 편한 관계일지도 모른다. 그리스 신화에서 판도라가 가져온 상자 속에는 온갖 재앙과 함께 희망이 들어있었다고 하잖아? 바로 그거야. 희망도 재앙이란 소리라고.



'나는 친구가 적다'라고? 망할 리얼충놈들... 나는 없단 말이다.



와타리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영어를 잘 하게 되면 외국인 친구가 생길 줄 알았으나 일본어를 할 줄 알아도 일본인 친구가 없다-는 것이 세상의 진실이다.'



......하지만 걔는 남자란 말이지요. 에잇, 하늘도 무심하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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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을 울리는 하치만 어록 2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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