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의역 지하철 스크린 도어를 수리 작업을 하던 청년이 사망하는 사고가 벌어졌다.
그러니까 비슷한 시점에 동시에 을지로 4가역과 구의역에 스크린도어 고장신고가 접수되었고,
스크린도어 계약업체는 1시간 이내에 사고 현장에 도착해야 한다는 서울메트로와의 계약조건을 맞추려다보니
2인 1조 안전작업 메뉴얼을 지킬수가 없게 되어서, 구의역 청년은 혼자 스크린 도어 수리 작업을 하던중
열차와 스크린도어사이에 끼여 사망한 것이다.
그리고 서울메트로도 스크린도어 업체는 이런 터무니 없는 사건에 대해서 청년의 부주의로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
중요한 것은, 스크린도어 작업자는 비슷한 시점에 스크린 도어 고장신고가 접수되기만 하면
2인 1조 작업 메뉴얼은 무시되어, 작업중에 언제든지 죽을수도 있는 상황에 처해지는 작업조건에서 일하고 있다는 것이고,
더 중요한 것은, 이런 상황을 뻔히 알면서도 스크린도어 업체는 언제든 일어날수 있는 이런 위협적인 상황을 피하기 위한
보충인력을 뽑는등의 필요한 대책을 마련하지 않고 방관하고 있었다는 것이고,
더 더 중요한 것은, 이런 스크린 도어 업체의 무책임한 방관이 행정적 실수나 오류로 인한 것이 아닌
서울메트로와의 최저낙찰에 따른 비용절감을 위한 고의적이고 필수적인 것이라는 것이다.
분명 이런 류의 사고는 큰 비용을 지불해서라도 최소화 되어야 하고,
스크린도어건의 경우 일정수준의 비용지불만으로로 그렇게 될수 있을것 같음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시스템은 그런 최소한의 비용지불조차도 거부하게끔 돌아가고 있는 듯 하다.
사회적 시스템은 최소낙찰가에 하청에 하철을 거치면서
하청업체는 현장 근로자의 최소한의 안전을 위한 설비투자를 위한 비용조차도 지불하기 벅찬 상황이 된 것이다.
사회적 시스템은 비용을 조금이라도 아낄수 있으면, 현장근로자의 안전은 개나 줘버릴수 있는 상황인 것이다.
이나라는 현장근로자를 그런 환경에 내몰고 일을 시키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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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비슷한 시기에 미국에 한 동물원에서 고릴라가 사살되었다.
그러니까 고릴라 우리에 어쩌다가 4살난 남자 아이가 떨어졌고,
남자 아이는 놀라고 아파서 큰 소리로 울었으며,
당황한 고릴라는 이윽고 남자아이에게 어떤 반응을 하기 시작했고,
동물원 관계자는 그 행동을 아이의 목숨에 위협적인 것으로 간주하고 고릴라를 사살한 것이다.
정리하면, 사람목숨을 구하기 위해서 어쩔수 없이 고릴라를 죽인 것이다.
구의역 청년과는 반대로 이 사건은 사람 목숨을 중요하게 여긴 행동이었는데도
시민들은 동물원 관계자들을 과응대응이라 비판하고 나선 모양이다.
사실 그 고릴라가 얼마나 비싸고 희귀한 것인지는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닌지 모르겠다.
중요한 것은 우리는 언제든지 사람이 떨어질수있게 설계되어 있었고,고릴라는 우리에 누군가가 떨어지기만 하면 그냥 죽게 될 운명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주의를 두지 않으면 사람이 떨어질수 있는 상황이었고,
사람이 우리에 떨어지면 아프고 놀라서 소란을 피울것이고, 그것에 고릴라가 어떤식으로든 반응하게 되어 있으며,
동물원 관계자들은 그것을 위협으로 간주하고 사살을 하는 것이다.
잘못은 개념없고 주의력도 떨어지는 부모와, 우리를 허술하게 만들고 관리한 동물원 관계자가 했는데
피해는 아무 잘못도 없는 불쌍한 고릴라가 본 것이다.
정황으로 보건데 이런 사고는 언제든지 발생할수 있었던 것이고, 고릴라는 지금까지 재수가 좋아서 우연히 살고 있었던 것이다.
사람이 고릴라를 그런 환경에 내몰고 사육하고 있었던 것이다.
비판받아 마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