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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파 잡아 족치기, 그 다섯번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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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이미봤다
추천 : 22
조회수 : 2776회
댓글수 : 10개
등록시간 : 2014/02/10 08:53:04
친일파 잡아 족치기, 그 다섯번째 이야기 - 윤치영편

윤.jpg



1898년 서울에서 개호로쉑히가 태어남
          이 쉑히는 노덕술이랑 1살 차이나고
          이봉창의사랑은 2살 차이, 유관순열사랑은4살 차이라 이 분들과 갑장 먹으며 자라왔다고 보면 됨
          이봉창의사와 유관순열사가 독립운동 할 동안 이 색히는 머나먼 남의 땅에서 책을 후벼파고 있던 지식인이었음

          큰형 윤치오 조선총독부 중추원 찬의
          둘째형 윤치소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
          셋째형 윤치성 일본육사 졸업
          큰아버지 윤웅렬 남작 수작, 날아팔아 먹은 돈 2억 챙김
          사촌형 윤치호. 한때 독립운동을 했으나 친일파로 전향(윤치호의 손녀는 조선일보 방상훈의 부인)
          집안 전체가 쪽바리 똥꼬 핥던 집안임

1911년 14살 교동공립보통학교 졸업
1917년 20살 섬나라로 건너가 도쿄 세이소쿠 영어학교 수료
1919년 3.1운동 발발
1920년 똑같이 엘리트의 길을 걷던 유관순열사는 독립운동하다 서대문 형무소에서 사망
1922년 25살 와세다대학 졸업
1925년 28살 미국 프린스턴대학, 헤이스팅스대학, 컬럼비아대학에서 공부
1929년 32살 대한민국임시정부 주미위원부 위원에 임명(윤치영을 빠는 종자들은 이 부분만 강조)

1932년 독립운동하던 이봉창, 윤봉길, 이회영 사망
          이색히는 조지워싱턴대학에서 학사학위 받음
1934년 37살 아메리칸대학 대학원에서 석사학위 받음
1935년 38살 무슨 생각에서였는지 돌연 귀국

1940년 43살 <청년>지에 〈일본군의 무운장구를 비나이다〉이라는 제목으로 이색히가 쓴 글
          - 중일전쟁 3년째 되는 날을 맞이하여 - 
            중국대륙에서 대동아건설을 위해 신성한 사명을 다하고 있는 일본의 무운장구를 비나이다.
            일본의 국민이 된 우리들은(개색히가..) 몸과 마음을 바쳐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동시에 
            대동아건설의 성전을 위해 중국대륙에서 활약하는 일본군의 안녕을 기원합니다. 춉춉춉”

1942년 45살 <동양지광>에 〈싱가폴 정복을 축하합니다〉라는 제목으로 이색히가 쓴 글
          - 세계적으로 유명한 도시 싱가폴도 대동아건설의 위대한 사명을 갖는 일본군 앞에 무조건 항복했습니다.
            이 장대한 결과에 대해, 일본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개색히가..) 경의의 심경으로 축하의 말을 대신합니다.

위의 두 글을 쓸 당시만 해도 일본의 전승이 이어지던 시기였고, 미국도 참전하지 않은 상태였으므로
치영이는 일본이 천년만년 갈줄 알았을거임.

하지만 1945년 그토록 빨아주던 똥꼬국에 핵폭탄 두 발이 떨어짐

치영이는 조땜

그럼에도 불.구.하.고.

1945년 9월   한국민주당 창당발기인과 총무부 역원으로 참여하여 외무부장 역임
1945년 10월  이승만이 눈치보며 귀국하자 이승만 비서실장을 역임 
1948년 5월 서울 중구 국회의원으로 당선(ㅆㅂ)
1948년 6월 외무위원회와 국방위원회 위원장을 맡았고, 8월부터 12월까지 초대 내무부장관을 지냄 
1949년 7월부터 1950년 6.25전쟁 전까지 이승만 정부하에서 승승장구 출세가도를 달림

한국전쟁 당시 이승만을 따라 피난 갔다가 다시 서울로 올라옴

1963년 안중근의사 숭모회 이사장 취임 (응?)

1996년 99살 천수를 누리고 드디어 뒈짐

여기서 잠깐.
어떻게 친일파 색히가 안중근의사를 추모하는 단체의 이사장이 될 수 있는거지?

윤2.jpg


윤22.jpg



서울 남산에 있는 안중근의사기념관은 바로 안중근의사 숭모회의 작품


윤3.jpg







결국 치영이는 자신의 친일 이력을 감추기 위해 안중근의사숭모회를 만들어 마치 자신이 안중근의사를 존경하는 양

포장을 한거임.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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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의사는 죽기전 두 아우에게 아래와 은 유언을 남깁니다.

“내가 죽은 뒤에 나의 뼈를 하얼빈 공원 곁에 묻어 두었다가 우리 국권이 회복되거든 고국으로 옮겨다오.
나는 천국에 가서도 또한 우리나라의 국권 회복을 위해 힘쓸 것이다.
너희들은 돌아가서 동포들에게 모두 나라의 책임을 지고 국민된 의무를 다하여 공로를 세우고 업을 이루라 일러다오. 
대한독립의 소리가 천국에 들려오면 나는 마땅히 춤추며 만세를 부를 것이다.”
  
하지만 

친일파 윤치영은 조국의 독립을 위해서가 아니라 위의 두 글과 같이 쪽바리의 침략전쟁을 위해 춤추며 만세를 부른 인물입니다.

안중근 가문과 윤치영 가문은 
“항일을 하면 3대가 망하고, 친일을 하면 3대가 흥한다”는 치욕적인 금언을 현실에서 보여준 전형적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추가1. - 윤치영이 친일파라는데에는 논란의 소지가 있다라는 말씀에 추가합니다.

아래의 글은 치영이가 95살의 노구를 끌고 출판한 그의 자서전입니다.

  <윤치영의 20세기.삼성출판사.1991>

"정치는 혁명이나 독립 운동과는 엄연히 구별되어야 하는 것이다.
과거 일제하에서 왜놈에게 협력했다고 해서 신생국가가 이들을 모조리 추방하고 처벌대상으로 삼는다는 것은
볼셰비키 혁명이나 프랑스 혁명에서 우리가 본 역사이다.

그러나 기독교의 정신도 회개하는 사람은 일단 그 죄를 사해 주듯이
해방된 조국이 새 정부를 출범시킨 마당에

우리가 또 다른 우리 적인 공산당을 북에 두고 있는 현실에서
우리 국민은 서로 관용과 용서로써 이해하고 화합하고 대동단결하여

우리의 영도자인 이대통령의 노선에 따라 신생국가 건설에 일로 매진해야 할 것이다."





제가 볼땐 친일 개호로쉑히 맞네요....





친일파 잡아 족치기, 그 첫번째 이야기 - 노덕술편 http://todayhumor.com/?humorbest_832985
친일파 잡아 족치기, 그 두번째 이야기 - 김창용편 http://todayhumor.com/?humorbest_833374
친일파 잡아 족치기, 그 세번째 이야기 - 민영휘편 http://todayhumor.com/?humorbest_833924
친일파 잡아 족치기, 그 네번째 이야기 - 이해승편 http://todayhumor.com/?humorbest_8344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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