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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부터 시작되는 대참사
게시물ID : history_1401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보영빠
추천 : 1
조회수 : 1750회
댓글수 : 5개
등록시간 : 2014/02/11 13:42:20
선조(하성군)-> 명종의 총애를 받음, 후계문제에 벼락치기로 심통원의 견제를 벗어나고 즉위..
 
 
 
but 적자가 아닌 방계,서자의 왕위승계이니 그 당시 사회상으로는 아무리 왕족이라도 불안했을 거라고 예측
 
그 자기의 정통성이 불안하니 열등감(서자콤플렉스)같은 것이 생김
 
결국 임진왜란에 대참사
 
이순신 -> 백의종군
김덕령 -> 사망 -> 그 후 곽재우 은신
등등..
 
당시 몽진등 백성들에게 이미지가 깎인 선조로써 연전연승을 거둔 이순신이 명망을 얻자 가장 꼴보기가 싫었을 것임. (대표로는 면사첩..)
 
근데, 그 선조의 열등감, 불안감이 선조로 끝이면 다행이나 그것이 광해군으로 번짐.
 
광해군이 전란에 일처리를 잘하고 외교책이라던가 뛰어난 기량을 보이며 엘리트왕이 될 것이라는 기대가 높았으나..
 
그 선조의 결정타가 있었으니 바로 후계자문제다.
 
영창대군과 광해군 사이를 밀당하다가 결국은 광해군이 되었으나... 선조의입이 방정이라 유영경에게 내린 유언이 빌미가 되어
 
광해군은 결국 희대의 살인마 폭군이라는 오명이 씌어지는 길을 걷게 된다.
 
그러나 이것만이 끝은 아니다.
 
평소 광해군은 청나라와의 외교관계를 잘 쌓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인조반정으로 인해 정권이 갈아치워지자, 청나라는 인조를 압박하게되고 이것은 정묘-병자 호란으로 이어지게 된다.
 
그리되니 인조는 청나라에 대한 악감정이 악에 받히지만 알다시피 무능하기에 굴욕만 잔뜩 먹게된다.
 
그런데 그 증오가 또 소현세자에게 옮겨가게 된다
 
청나라의 문물을 받아들이고 진보적인 소현세자가 결국 조선 땅에 발을 딛자마자 벼루에 맞고, 또한 죽게되니
 
이는 선조로부터 내려오는 저주와도 같은 셈이다....
 
그런데, 또 따지고 보면 문정왕후가 명종에게 스트레스를 퍼주다시피 하여 자식을 못가진 탓도 있지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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