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거리를 다니는 건 미친 듯이 싫어했는데, 안에서 비 오는 밖을 보는 건 참 좋아하는 놈이었다. 믹스커피에 녹차 티백을 넣어 먹는 신기하기만 했던 녀석은, 조수석 대시보드에 발을 모아 올리곤 비 오는 창 밖을 마냥 쳐다보기만 했다. 빗길, 가다 서기를 반복하는 도로 상황에 짜증이 날 대로 난 내 표정과는 많이 다른 녀석. 녀석의 그 표정을 보는 게 좋았다. 이를 드러내지 않고 웃는 미소, 초승달의 입을 만들며 웃는 그 미소를 보는 게 좋았다. 한 번도 내 편이 되어주지 않았던 못된 놈이었지만, 머릿속에 박힌 그 미소를 지우는 건 쉽지 않을 듯하다. 미련은 아니지. 오래전에 읽은, 맘에 와 닿던 책의 한 구절이 생각나는 것과 같은 것일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