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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기
게시물ID : gomin_100014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익명Y2NiY
추천 : 0
조회수 : 121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4/02/13 01:33:04
"오빠 나 독감에 걸렸어요

한끼도못 먹고 침대에 파묻혀.. 살아있는지 죽어있는지도 모르는채 닷새가 지나갑니다.

고통때문에 그런것일까.
외로움을 털어낼 상대가 필요한지 고통을 잊기 위함인지 자꾸 오빠가 떠오릅니다.

오빤 자기 몸처럼 날 돌봐줬겠죠. 걱정해주고 밤새 곁에서 잠을 설쳐가며
땀에 젖은 몸을 닦아주고 죽을 끓여다 주고...

집에 놀러오면 해준다던 떡볶이 결국 먹어보지 못했네요.
오빠의 집을 상상해봐요. 큰 몸이 들어가기 어려운 작은 침대, 당신에게 어울리는 유아틱한 장식,
혹은 아무것도 없는 텅빈방일지. 그 작은 방에서 날마다 책을 펴고 공부를 할지, 좋아하는 떡볶이를 해 먹고 기타를 칠지.

우리가 처음 나눈 이야기도 기타 이야기였었죠. 난 알았어요. 그 순간부터 오빠는 날 좋아했단걸.
가끔 당황스러워요. 왜 그냥 하는 이야기에 어떤 남자들은 설레는걸까. 왜 어떤 남자들은 여자를 친구로 받아들이지 못할까.
오빠를 경계했고 밉기도 했지요 그 때 나는 이미 호기심으로 다가온 사람에게 상처입어있었기 때문에.
그래도 이젠 아무래도 좋아요. 오빠가 순진하건 바보스럽던간에 내가 필요로하는 사람임을 아니까.

오빠의 유학 이후 그들을 만나지 않게된지 않은지 꼭 1년이 되었어요. 사람들 얼굴도 가물가물해.
가끔 몇몇에게 연락이 오거든요. 잘지내니? 보고싶다 뭐하니?
대답 안해요. 상처를 치료하고 여물어지면 다시 돌아가리라 굳게 다짐했기에.


아버지가. 저번에 집을 뒤집어 엎고 아수라장이 되었어요.
그 때 당신 생각을 했어요. 오빠라면 나를 지켜줬겠지 하는 안일한 생각따윈 아니었어요. 그저
품에 안기고 오빠를 놀리고 장난을 치고 그런 순간순간을 생각했어요. 오빠가 사줬던 생전 처음 먹어본 음식들과
함께 공부했던 외국어따위를 생각했어요. 혼자견디는데 익숙했는데 그런 상황에 남을 떠올리니 기분이 이상합니다.

위염에 걸렸거든요 나.
내시경 받는데 오빠가 생각나더군요. 항상 약을 털어넣으며 인상찌푸리고 트름해서 우리를 자지러지게 만들던 모습...


난 사랑받는데 익숙하지 않았어요. 마음을 좀 열어도 될 것 같다고 말한, 그 때 속으로 코웃음 쳤어요.
나같은 집에서 자란 사람은, 나같은 부모를 둔 사람은, 나같은 환경에서 큰 여자는. 차가워지지않으면 안돼요.
경계하고 걸어잠그지 않으면 안에 여리고 약한 부분들이 있어서 금방 상처입어버려요.
그래서 문을 억지로 열려고 하는 당신같은 사람을 증오하지요.
네. 오빠가 싫었어요. 오빠도 알다시피.
위선자, 착한 척, 믿을 수 없는 사람, 저러다가 뒤통수치겠지. 그것도 아니라면 머저리던가. 내가 만난 사람들은 다 그랬으니까.


당신이 떠나고 1년 남짓의 시간이 흐른 후 저도 변했어요.
새삼 놀라운것은 오빠가 준 선물들이 짧은시간이나마 나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는 사실입니다.
조건없이 주는 사랑을 알았고 그것들을 추구하게 되었어요.
세상을 보는 시각이 바뀌고 팍팍한 삶이지만 때론 경의로움과 감동으로 눈물짓는 날들이 생겼지요. 예전에 흘린 눈물은
온통 후회와 울분이었는데.


그 때요. 그 여름 어느 한자락에 쭈쭈바를 빨며 김군이 그러더군요. 저렇게 좋은 남자가 없으니 잡으라고.
좋은 남자라니 무엇이...?

지금은 그 말을 듣고 끄덕끄덕 합니다.


하지만 이제 내곁에는 없고. 후회는 소용없는 일입니다.
오빠는 6년 뒤에나 돌아올것이고 그럼 우린 아주 다른 삶을 살고 있겠네요.

가끔 오빠에 대한 글을 쓰며 외로움인지 아픔일지 모르는 것을 달랩니다. 지금처럼요. 두통과 삶의 쓰라림을 잊게하는 건 추억이네요.

겨울이 가고 다시 봄은 오고.
당신과 밥을 먹고 별 거 아닌 걸 떠들고 연습실에 누워 빈둥거리던 나의 20대 초반. 수많은 친구 선후배들이 눈이 맞고 싸우고
만나고 헤어지고 하늘같은 선배들 등쌀에 밤새도록 술퍼마시다 엄마하고 악지르면서 싸웠던...

내게 당신은 그 추억의 가운데에 있는 큰 나무인데 나 또한 그렇게 될 수 있을까?
아닐거에요. 그때의 나는 지금보다도 추하게 뒤틀려있어서. 젖은 생쥐같이 작고 불쾌한 무엇이었는지도 모르죠 많은 동기들이
날 그렇게 생각했듯...



어느 날 길가에서 우연히 만나게 된다면 달려가 껴안을지도 몰라요. 아니 반드시 안고 뽀뽀라도 퍼부을 생각입니다.

눈치없는 박양이 옆에서 쫓아다니느라 데이트도 제대로 못했었죠. ㅋㅋㅋ
다시 데이트를 하게 되면 근사하게 해요
만약에 우리가 혼자이고. 서로를 아직 사랑하는 마음으로 생각하고 있고. 살아생전 만날 수 있게 된다면...

바라던 변호사가 되세요. 멋진 국제 변호사.
나 또한 무엇이 되던 오빠의 사랑에 보답할 좋은 인간이 될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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