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무슨 일이 있었냐면 음,
요새 이직이다 뭐다 머릿속이 좀 복잡해서
새벽 세시가 다되어 늦은 산책을 갔어요

겨울이라 우리 강아지도 오랫만에 산책해서 그런지
되게 좋아하고 한 시간이 넘어 집에 가자니까
여태껏 그런적이 없었는데 안 가려고 버티는거에요
그런 게 또 귀여워서 다시 공원으로 들어가서
여기가 북서울꿈의숲인데 또 뛰긴 힘들고 
한 구석탱이에서 놀고 있으려니

왠 다른 강아지 한 마리가 사뿐사뿐 오는거에요
처음에는 산책하는 다른 친구 강아지인가보다하고
둘이 놀게 뒀더니 어찌나 좋아하던지 
그런데 주인이 누굴까 기다려도 오질 않네요
어 얘 뭐지 싶어서 삼사십분을 같이 있다가

비로소 찬찬히 살펴보니 너덜너덜한 듯한 목줄에
관리 안되고 자라난 털
건강해보이긴하는데 사람을 되게 경계하고
특히 남자가 지나가면 맹렬하게 짖더라구요

아 이거 진짜 
졸리고 피곤한데 새벽네신가 다섯시쯤인데
우리 강아지 감기 걸릴까 겁나서 슬슬 가야한다고
잡아끄는데도 둘이 꼭 기대고 

진짜 오만가지 생각과 계산이 머릿속을 휘젓더군요
아 오늘따라 산책이 별스럽더니 인연인가
아니 평생 그딴 뜨뜻미지근한거 안 믿었는데 왠 강아지따위한테
아 그래도 이 추운날 저거 놔둬도 되나
아 진짜 어쩌지 어째야하지 젠장 아 젠장 진짜

일전에 북서울꿈의숲 앞 차도에서 
교통사고난 고양이도 주운 적 있는데
음 17만원인가 뿐이었지만 저로썬 큰 돈 내고
치료하고 집에서 돌봤는데 곧 죽어버려서 음 
그 생각도 나고 해서... 
상관없는 얘기지만 되게 심란해지더군요
생명을 함부로 돌보는 것도 죄가 되는 것 같아서요

아 그러던 와중 공원 입구까지 낯선강아지는 우릴,
아니 사람은 경계하니까 저 말고 저의 강아지를 따라오고
공원 앞 큰 길 횡단보도를 건너야하는 상황
혹시나 애들이 차에 치일까 걱정되어 
에라 모르겠다 그냥 데려가서 씻기고 먹이고 주인 찾던 
입양을 보내던 해야지 하는데

아까 말했듯이 사람을 경계해서
저한테 짖진 않아도 손만 들면 겁나서 도망치더라구요
거기서도 이십분은 씨름을 하다가 
엊그저께 미용해서 털도 짧고 작은 우리 애가 떨면서 지켜보는게
아 우리 강아지 감기 걸리면 안된다고 너 여기 있을거면
우리 그냥간다고 알아 들을리도 없는데 말해놓곤
그냥 뛰어서 횡단보도 큰 도로 건너왔어요

그 개는 우릴 한참 보더니, 다 건너는 거 보더니
올때처럼 총총총총 사뿐사뿐 공원 쪽으로 돌아갔어요

급하게 집으로 와서 우리 강아지 얼른 씻기고 말려주는데
아씨 왜 갑자기 공원으로 돌아가는 모습이 울컥하는지
요새 일이 힘들어서 내가 어떻게 된건가 
사람 일도 힘들어죽겠는데 왜 괜히 알지도 못하는 개한테
아 졸라 이 새벽에 비합리적이고 병신같은데
다시 또 냉장고 뒤져서 간식봉다리 들고 혼자 공원으로 다시
뛰어나갔네요
이게 뭐 착한마음 그런 게 아니라
뭔가 감정이입이라도 한건지; 혼자 울컥해서

공원에서 처음 낯선강아지 본 데를 기웃거리면서 있는데
북서울 꿈의 숲은 산이 둘러싸고 있거든요
그 오패산 자락에서 바람 결에
강아지 짖는 소리가 들리는거에요
무서운줄도 모르고 정신없이 올라가서
야 너 아까 그 강아지지? 라면서 막 부르는데
누가보면 영락없는 미친 여자였네요

와 그런데 소리 따라가니까 진짜 저 끝 능선에
강아지가 쪼르르 지나가지 뭐에요? 작은 산이라 그런듯

근데 다 찾아 놓고서는
길도 없는 숲 헤치고 도저히 가까이 못가겠고
어떻게 여기까지 올라온건지 갑자기 무섭고
또 십여분은 붙박혀 서 있다가 어느 순간 강아지도 없어져서 그냥 내려왔어요
한심한 마무리네요 


그러고 집에 오니 심란해서
쓸데없이 긴 글을 써놨는데...

그 강아지는 길냥이같은 길강아지인가요? 
길강아지도 캣맘님들 사료 주듯이
도그맘? 같은 분들이 계신가요?
털이 꽤 길었는데 많이 춥긴하지만 그 녀석 무사하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