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과 친일파의 관계입니다.
이승만은 1945년 10월 귀국하면서부터 친일파 재산가들로부터 정치자금을 받았고, 친일경찰을 옹호하는 등 친일파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2829273&cid=55653&categoryId=55653 이승만은 환국 후에 친일파들이 제공하는 정치자금을 거절하지 못하고 그들에게 둘러싸여 지냈다.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729758&cid=42140&categoryId=42140 반민특위는 1949년 1월 8일부터 활동을 개시해 박흥식·이종형·최린·최남선·이광수·김연수 등을 구속했다. 이승만의 분노는 악질 친일파의 대명사 격인 노덕술 수도경찰청 수사과장과 최연 등이 체포되자 폭발했다.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2829273&cid=55653&categoryId=55653 친일파는 이승만의 정권장악과 유지에 핵심적 역할을 했기에 이승만은 반민특위의 활동을 방해하고 무력화시켰다.
http://www.doopedia.co.kr/doopedia/master/master.do?_method=view&MAS_IDX=101013000843123 이승만은 친일파 맹종자들로 국무위원과 자유당 간부를 삼았다.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2829269&cid=55653&categoryId=55653 친일파 등용은 이승만 정권 말기로 갈수록 심해졌다. 그들이 사리사욕을 위해 권력자에게 맹종한다는 것을 이승만은 잘 알고 있었다. 1954년 5·20선거에서 친일파들이 대거 자유당 간부가 되는 것은 개헌 및 독재와 연관이 있었다.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2829310&cid=55653&categoryId=55653 이승만 후기체제는 친일파가 적극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특징이다. 5·20총선을 계기로 친일파들이 다수 등장해 이승만-이기붕체제를 떠받히는 자유당의 핵심 간부가 되었다. 이들은 대개가 이승만 정권 전반기에 관료였다. 이 점에서 이승만 정권 후기는 친일파 관료의 집권시기라고 말할 수 있다. 이들은 자신의 영역 내에서 ‘소이승만·소이기붕’ 왕국을 건설했다. 친일파들은 이 시기에 행정부에서도 강력한 지위를 차지했다.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2829288&cid=55653&categoryId=556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