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사랑한다 말할까
김희성 1 “다 울었어?” 그는 우는 나를 일으켜 어디론가 이끌었다. 우는데 정신이 팔려 몰랐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자주가던 커피숍 안이다. 코를 훌쩍이며 마음을 가다듬는데, 테이블 위에 있던 냅킨을 한 장 뽑아 건네며 묻는다. “응…….” 하도 울어서 인지 기운이 없어 축 늘어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가 건넨 냅킨으로 얼굴을 꼼꼼히 닦았다. 한 장 더 뽑아 코도 휑, 하고 시원하게 풀었다. “뭣 좀 마실래? 목마르지?” “괜찮은데…….” “너, 너무 울어서 수분 보충 해야돼. 아이스티 시킬게.” “응…….” 싫다고 우기려다, 여전히 내가 즐겨 마시는 음료를 기억하고 있는 그에게 조금 감동해, 얌전히 응. 하고 대답했다. 그는 종업원을 불러 아이스티 한잔과, 헤이즐넛 한잔을 주문했다. 메뉴판을 건네주고 종업원이 멀어지자, 그는 두 손을 가지런히 모아 테이블 위에 올리고서 나를 본다. 그런 그의 시선이 어색해, 시선을 피했다. “잘 지냈어?” 아까, 눈물을 참느라고 대답하지 못했던 질문을 다시 한다. 나는 어떤 대답을 해도 개운할 것 같지 않다는 생각에, 시선을 피한채로 침묵했다. “나랑, 얘기하기 싫어?” 그의 물음에 대답은 하지 않고, 고개만 설레설레 내저었다. 힐끔 곁눈질로 그를 보니, 부드러운 표정으로 여전히 나를 보고 있다. “근데 왜 얘기 안해.” “그냥…….” “그냥?” 내 대답이 만족스럽지 않은듯, 한쪽 눈썹을 조금 치켜 올리며 묻는다.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정말 그랬다. 항상 생각으로는, 한번쯤 마주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따금 꿈에서 비추는 그의 얼굴에, 잠에서 깨고 나면 그 생각은 더욱 절실했다. 그와 만나면 어떤 말을 해야 할지도 꼽아 두었었다. 그러나 정작, 이렇게 그를 앞에 두고 있으니 그것들은 모두 무용지물이 되었다. 한 마디도 쉽게 뱉을 수가 없다. 가벼운 인사말 조차, 목에서 꽉 메어 나오지를 않는다. 지금 이 상황이 꿈인지, 생시인지 조차 분간이 가지 않을 만큼, 나는 어안이 벙벙했다. 좀 전에 막 마주쳤을 때는 우느라고 넋이 나갔었고, 마음을 가다듬고 나니 얼이 빠졌다. 약 일년 만이다. 일년 만에 마주친 그는, 살이 조금 빠져 있었고 머리카락은 조금 짧게 잘려있었다. 종업원이 주문한 음료를 트레이에 받쳐 가지고 왔다. 그의 손짓에 따라 아이스티는 내 앞에, 헤이즐럿은 그의 앞에 놓은 종업원은, 즐거운 시간이 되라는 인사말을 남기고 다시 멀어졌다. 밖이 더워서 그런지, 커피숍 안은 조금 붐볐고 소란스러웠다. 그 소란함 때문에 입을 꾹 닫고 침묵을 지키는 사람은 우리 둘 뿐인것처럼 느껴졌다. 그렇지만 도무지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는, 여전히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결국 다시 입을 연 것은 그였다. “만나던 사람은…….” 뜻밖의 첫 머리에, 나는 스트로우를 입에 물고 장난질을 하던 것을 뚝 멈췄다. “잘 만나고 있어?” 나는 역시 침묵했다. 어떤 것도 예상 밖의 물음뿐이다. 사실대로 대답하면 응. 이겠지만, 역겹게도 그렇게 대답하고 싶지는 않았다. 우스운 이기심이지만 응. 이라고 대답하고 나면, 그는 무척이나 실망한 얼굴로, 금새 자리를 떠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두려웠다. “또 대답 안해줄거야?” “…….” 나는 여전히 침묵했고, 그 침묵에 “그럼, 이건 대답해 주려나…….” 하고 다른 주제의 서두를 뗀 그는, 망설여지는 듯 그 의미 불명의 말을 끝으로, 입을 꾹 다물었다. 나는 궁금했지만 재촉하지는 않았다. 궁금증 보다는, 또 어떤 난감한 물음이 그의 입을 통해 튀어 나올까 하는 두려움이, 조금 더 크게 와닿아서 였다. 덕분에 우리는 다시 한동안 침묵했다. 그러는 사이, 그의 앞에 놓인 헤이즐럿은 차갑게 식었고, 내 앞의 아이스티는 이미 바닥을 보였다. 그는 골몰히 생각을 하기 시작하면, 미동도 하지 않는 버릇이 있다. 한참을, 마주쥔 손가락에 조차 움직임이 없이 무언가를 깊이 생각하던 그는, 결심이 선 듯 다시 입을 열었다. “다시, 사랑해도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