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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해소에서 만난 남자의 놀라운 고백
게시물ID : panic_7432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이야기보따리
추천 : 38
조회수 : 7074회
댓글수 : 66개
등록시간 : 2014/11/10 14:24:45

 

' 하아- '

숨을 크게 품었다 내쉬며 의자에 등을 기대고 앉았다.
좁은 방안에만 있으니 피로가 몰려와 두 손가락으로 눈을 지그시 누르며 눈의 이완됨을 느꼈다.

' 어디 마실게 없나..? '
한꺼번에 갈증이 몰려옴을 느끼고 천천히 내가 있는 방안을 둘러보았다.
책상위에 즐비하게 놓여있는 성경책, 벽에는 여러 상패들이 진열되어있고 그 옆으로는 나의 키를 훌쩍 넘어버리는 십자가, 그리고 그곳에..

" 신부님 ? "
 
 
정신이 없었나보다. 고해소에 누가 온 줄도 모르고 생각에 잠겨있었다. 이제야 한숨 돌리나싶었지만 휴식은 잠시 접어두고 우선 형제님을 맞이해야했다.

" 예 말씀하세요 형제님 "

" 제가..사실 첫 고해성사인데 마음에 쌓인 근심을 고백하기전에 무엇을 해야하나요? "

그의 목소리는 굉장히 차분하고.. 그리고 평안해보였다

" 회개 하는데에 무슨 절차가 필요있겠습니까. 그저 하느님의 자비와 은총을 굳게 믿으며 그 동안 지은 죄를 뉘우치고 사실대로 고백하십시오. "

" 예..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그럼 말씀드릴게요 신부님.. 신부님께서 평소 훌륭한 덕망과 지혜를 가지셨다고 익히 들은바, 가까운 지인이
이곳에서 고해성사를 한번 해보라고 추천해주더군요.. 그래서 몇 일전에 세례도 받았습니다..
"
 
살짝 웃음이 나올 뻔 하다가 나는 이 상황에 진지해질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 그러시군요.. 어떠한 죄를 지으셨습니까 "

" 실은.. "
그리고 몇 초의 침묵이 흘렀다..

 
 
 
 


" 제가 조만간 살인을 할 계획이라서요 "

그의 음성이 미약하게나마 떨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나도 이런 상황은 처음이기에 순간 심장이 미친듯이 뛰었지만 ,
나 마저 평정을 잃어서는 안된다..그렇기에 마음을 다잡아야했다.

나는 조그맣게 헛기침을하며 목을 가다듬고 다시 물었다

" 그렇다면 앞으로 있을 중죄에 대해서 미리 회개를 하러 온것입니까? "

" 뭐.. 그런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그 말씀을 듣고나니 궁금해지네요. 살인을 저지르고도 회개하면 용서받을 수 있을까요?
어느 미치광이 범죄자가 출소한 이후, 목사가 되어 오히려 다른 범죄자들에게 회개하라며 떵떵거리는 사례처럼.. "


" 어떤 회개를 함이 중요한것이겠지요. 이런 말이 있습니다. 회개란 용서 받기위한것이 아니라고합니다. 내가 죽을 죄인 임을 알기에 '살려달라'가 아닌 '죽여달라' 매달리는 것을 말하는 것이지요.. 이 모든 악을 완전히 끊어내며 온전히 돌이킴을 회개라 믿습니다. "

이렇게 말하고 딱히 그에게 대답이 없자 다시 정신을 가다듬고 말을 이어갔다.

" 그런데 왜 살인을 하려고 하십니까? "
이 말이 끝나자마자 고해소 칸막이 너머 그에게서 긴 한숨소리가 들렸다.
 
 


" 얼마전에 제 딸이.. 성폭행을 당했다고 합디다.. 그 여린 눈망울에서 눈물을 하염없이 떨구며 말하더군요.. 그리고 한번 당한게 아니랍니다, 그것도 같은 새끼에게 수 차례... 그런데 이 말고도 더욱 기가 막힌것은 무엇인줄 아십니까? "

그의 음성이 고조되기 시작했다

" 더욱 기가 막힌건... 제가 들을 때는 이미 제 딸이 그놈에게 그런 수모를 당한지 반 년이나 지난 뒤 였어요...
한 아이의 아버지랍시고 해준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근심어린 딸아이의 표정을 그저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다음에 물어봐야지.. 다음에.. 하며 외면하다가 ..이미 제 딸의 몸과 마음은 다시 회생못할 정도로 짖밟혀 버린겁니다..!!! "



나는 거기서 무언가 말할려다가 그가 바로 말을 이어가서 다시 고개를 숙여 형제의 음성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아니 그의 이야기에 빠져들 수 밖에 없었다. 신이 시여...

"그런데도 전 오히려 딸에게 그 이야기를 왜 이제서야 하냐고 화를 냈습니다, 그러니까 '나에게 관심도 없었으면서..'하며 울더군요..
그때 얼마나 가슴이 찢어지던지.. 그리고 말을 이어가는데 더더욱 제가 충격을 먹은 것은, 그 잡아죽일놈이 원래 아는 사람인데다가 평소 속한 집단내에서 정신적 지주로 불리고.. 제 딸도 많이 의지하던 사람이라 더욱 혼란스러웠다고 말합디다. 딸의 얘기를 들어보니 둘 만있을때 밀폐된 장소에서 당한것이라 증인도 없을 뿐더러, 몇 개월이나 지난일이니 딱히 물증도 없다고 판단해서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할까 고민하던중에,

...우리 딸이 결국 못 견디고 자살을 했어요. "

 
 

나는 아까부터 갈증을 느껴 눈을 굴리다가 책상 위의 물병을 발견하고, 물 한모금을 마시며 다시 말을 붙였다.
왜 이제서야 이것을 발견했을까..

" 그래서 신고보다는 복수를 위한 살인을 계획한 것 입니까? "

" 맞습니다! 맞아요, 지난 수 개월간 누구에게 말도 못하고 혼자 끙끙앓았을 내 딸을 생각하면 잠도 안와 시발..
얼마나 많이 울면서 기도 했을지..그래서 그 새끼를 우리 딸을 대신해서 제가 직접 복수해줄겁니다. 저도 물 좀 주십시오."


나는 곧바로 커튼 사이로 물병을 건내주는데,
그의 격앙된 말투에 나도 덩달아 손이 떨렸다. 아마 저 사람도 나의 떨림을 보았으리라.
 
 
 
물병을 받은 그는 잠시동안 기척이 없더니 이내 곧 물을 벌컥벌컥 마시는 소리가 났다.
괜히 신경쓰였다. 어떻게든 그를 진정시키고 마음을 바꾸어 내보내야겠다는 생각을했다.
 
 
 

" 물론 딸이 당한 아픔과 형제님의 마음은 제가 어느정도 헤아려집니다만, 잘생각해보십시오 형제님. 그것이 과연 딸이 바라는 것일까요?
근본적으로 누구를 위한 복수인지 한번 자문해보시기를 권합니다. 이유가 어찌됐든 살인을 저지르게 된다면 형제님께서도 중한 형벌을 면치 못할것입니다. 그것을 과연 딸이 바라는 복수일까요?
그저 형제님, 자신의 복수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살인을 계획한 것으로 보아 용의자를 알고계신것 같은데, 좀더 치밀히 준비를 해서 신고를 한 후에 법적 절차로서 그를 복수하는게 어떻겠습니까? 굳이 손에 피를 묻히지 않고 말입니다. "

이 말을 끝내고 과연 이 '형제'에게 이것이 과연 최선의 조언인가? 라고 나 자신에게 되물었다
솔직히 내가 할 말은 아니었다.
 
 
그리고 고해소의 얇디얇은 칸막이와 빨간물이든 커튼을 사이에 두고, 잠재적인 살인마와 나 사이에 아까보다 훨씬 더 길고 무거운 침묵이 감돌았다. 난 그의 마음속의 악마가 그저 잠재적인 것에서만 머물렀으면 좋겠다는 생각 뿐이었다.
 
 


" 당신은.. 딸이 없으시죠? "
잠시 뒤 아까보다는 조금 차분한 말투로 나에게 질문을 했다


" .. 그렇습니다.. "
반면에 내 목소리는 떨리기 시작했다
 

" 그러니까.. 그러니까 내 마음을 이해못하는 거요. 당신은 내 심정을 헤아린다고 하지만 절대 헤아리지 못하는거라구요 예?
그런데 당신은 왜.. "

아뿔싸.. 아무래도 내가 잘못말한것같았다. 괜히 심기를 건드린꼴이 된것이다. 나는 머리를 빨리 굴려야했다.


" 아닙니다. 누구보다도 잘 헤아리고있습니다. 지금은 딸이 없기때문에 더더욱이요. 어리석은 행동은 하지말아야합니다 "


... 그리고 금방이라도 터져버릴것같은 불안한 침묵,
제길.. 나도 모르게 이상한말을 해버렸다..


' 탁 !!! '


순간 정적을 깨트리고
건너편 의자가 넘어지는 소리가 들리며, 고해소 사이의 커튼으로 식칼을 잡은 굵은 팔뚝이 쑤욱- 들어왔다

나는 드디어 올것이 왔다고 생각했다.

 

 
 


" 이봐 당신, 내 딸이 다말했어 내 딸이, 이 성당에서만 7년째 다니고 있었다고. 하하 참웃기지? 그 성폭행범이 그 성령인가 뭐시기인가 떠들고다니는 이 성당의 신부라니... 주위에선 평판도 참- 좋은 양반이라지 아마? 더러운 위선자 같으니 "

나는 뭐부터 말해야 할까 생각할틈도 없이,
그는 소리를 질러댔다. 이미 이성은 놓아버린지 오랜것 같았다.
 
 
 
 
 
" 그런데 당신이 내 계획을 다말아먹었어!!! 도대체 왜... "

" ... "

난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그는 식칼을 쥔 손으로 내 앞의 책상을 쾅쾅 찍어대며 언성을 높였다.

" 왜 그랬지?? 왜 그랬냐고 !! ... ..."
라고 말하고선 격하게 울부짖기 시작했다
 
 
 
나는 몇 번 하려다가 하지못한말을 이제서야 하게되었다
" 이봐요.. 같은 처지끼리.. 제가 조금 더 달리기가 빨랐다고 칩시다. "
 
" 같은 처지라... 하하하... "
그는 지금 반쯤 실성했다고 보아도 무방했다.
 
 
" 이왕 이렇게 된거 한 사람만 희생하는 걸로 하고, 까짓거 제가 지옥가죠 뭐."

그저 이 상황 자체가 이상하게도 나는 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문득 궁금했다

" 언제.. 부터 알았습니까 ? "

" ...피냄새 "
" 그리고 당신이 '지금은' 딸이 없다고 했었지 "
꽉 쥐고있던 그의 손에 힘이 풀리면서 식칼이 내 발 아래로 떨어졌다.
피 비린내가 고해소 전체에 진동하고 있을 줄이야.. 거봐 난 당신 마음 다 이해한다니까..
 
어리석은 인물은 어디에서나 한명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비록 나 자신 일지라도...
 

 


나는 잊고있던 피로감을 다시금 느끼며 두 손으로 눈을 지그시 눌렀다. 벽에 걸린 거울에 피범벅이된 내 손 때문에 두 눈도 빨갛게 물들어서 꼭 삐에로 처럼 변해버린 내 얼굴이 비춰졌다.

' ...  내가 물병을 건네줄때에도 확신했겠군 ... '


하하..정말.. 신이 있다면 이런 기구한 운명을 또 만들어낼수있을까?

난 허리에 힘을 빼 의자에 거의 눕다시피한 상태로 다시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책상위에는 즐비하게 놓여져있는 성경책, 벽에는 내 키를 훌쩍 넘겨버리는 십자가. 그리고 그곳엔 못박혀 죽음으로써 죄를 사하는 중인

" 신부님 "

 
 

' 뭐.. 반강제적이긴 했지만.. '

 
 
 

 
 

 




고해소 칸막이 한 켠에서는 여전히 우리 '형제'님께서
아버지라는 이름아래,

자신의 딸에게 아무것도 해주지 못한 죄로 통곡하고 있었다.





만약 하나님이 있다면,
지금 그의 고해는 아마 그분께 충분히 닿고도 남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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