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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상인이 쓴 안현수 파벌 싸움 이야기 [펌]
게시물ID : sports_6765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하반신폭겨
추천 : 6
조회수 : 1844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4/02/16 15:24:22
2002년 올림픽 직전, 안현수의 대표팀 발탁: 당시 대표팀 감독 전명규의 전횡. 안현수는 선발전을 제대로 거치지 않은 선수였고, 당시 대부분 관계자들은 반발하나 당시까지의 거의 모든 동계올림픽 메달을 쇼트트랙에서 따냈고, 또한 전명규 감독 지도 하에 따낸 메달이라 연맹의 고위층은 승인. 이때부터 파벌은 시작.

더욱 충격적인 것은 전 시즌 세계선수권자 민룡은 전명규가 올림픽이 끝나고 교수로 가기로 되어있던 한체대를 가기로 했으나, 원래 대구출신이고, 대구 소재 대학인 계명대에서 좋은 조건을 내걸어 계명대로 진학. 이에 전명규는 분노하고 개인전 출전 자격이 있던 민룡을 계주 멤버로 강등, 안현수를 개인전 출전 멤버로 내세움.

당시 현직 선수/지도자들은 안현수에 대해서는 악감정이 있을수밖에 없었음. 그러나 솔트레이크에서 남자팀이 아무런 성과도 얻지 못하고 돌아왔고, 또한 안현수 본인도 흠 잡힐만한 행동이나 인성은 아님. 결국 다른 선수/지도자들의 악감정은 거의 사라짐. 사실 안현수는 잘 타는 선수이기도 했고, 중요한 건 안현수가 아니라 전명규.
대부분 사람들이 전명규의 횡포에 이가 갈리던 시절이었으니...당시 한체대 선수들은 전명규가 올림픽 끝나고 한체대 교수로 재직할 상황이 되자 반대시위를 벌이나 깔끔하게 묻히고 전명규는 한체대 교수로 임명. 이 과정에서 대선배 이영하 교수를 누명을 씌워 물러나게 만듬. 한체대를 완전히 장악하고 연맹의 전무가 되어(대부분의 경기단체에서 회장이니 부회장이니 하는 것은 거의 실권은 없고, 행정에 관여하지도 않음. 가장 실세는 전무이사.)

올림픽이 끝나고 다음 대표 선발전에서 안현수는 좋은 성적으로 국가대표에 선발. 이후 전성기를 맞으나 2004년~2005년 이 시기에 전명규와 무슨 트러블이 있었는지는 몰라도 전명규가 안현수에 대한 공작을 시작. 자신의 한체대파와 비 한체대파를 나누는 공작을 시작. 그러나 원래 없던 파벌이 쉽사리 생기기는 어려운 일. 

하지만 점점 불합리한 처우와 편파판정 등의 결과로 지도자들 간에 알력이 발생하게 됨. 이전에는 지도자/학교 팀 간의 라이벌 의식이 있더라도 경기를 떠나서는 친한 형, 동생, 동료사이였으나 결국 철저한 경쟁구도로 바뀌게 됨. 
그러나 그 시기 현직 지도자들은 안현수에 대한 부당한 처우에 반발하나 연맹 고위직도 무시하는 전명규의 파워에 깨갱. 전명규는 안현수의 실력을 버리기는 아까워 대표선수 활동은 막지 않으나 자기 라인이던 코치들에게 온갖 부당행위를 지시.
이 시기 전명규는 대표팀 코치 선임 등 행정으로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권력을 쥠. 대표팀에 선임되는 지도자들은 전명규 앞에서는 지시를 따르는 듯 하지만 선수촌에 돌아와서는 안현수에 대한 부당한 처우를 거의 하지 않음. 결국 계속 코치들이 교체되게 됨. 다만 다행인 것은 이 시기에 대표선발전이 더욱 공정해지게 되고 편파판정이 거의 없어지며 외국 심판들을 초빙하여 대표선발전을 하기도 하는 등 전명규의 횡포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소기의 성과를 거둠.

그러나 계속된 전명규의 안현수 견제에, 당시 남자대표팀 코치이던 전재수 코치는 더 이상의 안현수 견제는 부당하다고 판단, 국내에서의 코치직을 걸고 항명하였으나 계란으로 바위치기. 결국 전재수는 처가가 있는 미국으로 이민, 그곳에서 미국대표팀 감독을 맡아 승승장구.

당시 가장 유명하던 코치는 전재수와 모지수. 모지수는 전명규의 지도 하에 올림픽에 출전했었던 선수출신. 그런데 최고의 코치이자 라이벌이던 전재수가 그렇게 허무하게 밀려나는 것을 보고 몸조심을 하며 지금은 고양시청 감독으로 재직. 최고의 코치 중 한명을 처낸 전명규는 거침없이 안현수에 대한 견제를 강화. 남자팀과 같이 훈련하는 것을 막아서 스스로 기량저하를 유발하여 대표팀에서 내려오게 하려고 하였으나 당시 여자대표팀 코치가 자신의 직을 걸고 대표팀에서 계속 운동을 시킴.

토리노 올림픽이 끝나고 파벌에 대한 이야기가 터져나오자 전명규는 몸조심에 들어가고 파벌문제는 서서히 약해지기 시작함. 안 그래도 좁은 바닥에서 매일 얼굴을 맞대야 하는데 불편한 사이였던 선수/지도자 간 갈등이 약해지기 시작함. 
그러나 올림픽의 영향도 잠시, 다시 전명규는 마수를 드러내고 계속해서 안현수에 대한 견제. 당시 대표팀을 구성하던 선수들은 안현수와 어릴 때부터 같이 운동하던 선수들로, 굉장히 친한 사이였지만 윗선의 갈등 조장으로 어색한 사이가 됨. 이호석이 욕을 많이 먹는데, 사실 이호석과 안현수는 가장 친한 동료 중 한 명이었으나 전명규가 서로 말도 나누지 못할 정도로 편을 갈라 놓은 시기라서 이 때는 많이 어색했다고 함.
이 시기 전명규 라인이었던 한 코치는 안현수의 레이스를 본격적으로 방해하기 시작.
그런 시기가 지나고 안현수의 부상. 이후 부분에서는 대한체육회가 욕먹어도 싼데, 대한체육회는 대표선수 훈련 중 부상에는 거의 신경을 안 씀. 빙상연맹의 빈약한 행정력과 자금줄로는 그런 큰 부상을 지원할 여력도 되지 않았고 여력이 있다 하더라도 전명규가 허용하지 않았으리라 짐작. 선수들 전지훈련비나 시합출전비가 기업인이 맡는 연맹 회장의 사비에서 나오기도 하는 상황이니...연맹회장은 안현수가 다쳤는지 몰랐을 가능성도 존재.

이후 안현수는 성남시청에 입단하고 천천히 자신의 폼을 찾는 듯 보였으나, 갑자기 성남시 모라토리엄 선언, 선수들은 실업자 신세가 됨. 그런데 이 시기에 다른 팀들은 선수들과 계약을 마친 시기였고 추가로 선수들을 뽑을 상황이 아니었음. 이 때 지금의 대표선수인 이한빈도 같이 실업자가 됨. 이 부분에서 연맹이 욕 먹을 이유는 없음. 연맹에서 불철주야 노력해서 자치단체 실업팀을 여러 개 만들어 선수들의 선수생명을 비약적으로 늘릴 수 있도록 한 것인데, 성남시의 삽질로 선수들이 실업자가 되었으니...

아무튼 이 시기 당시 어색했던 선수들과는 오해를 풀고, 몇몇을 제외한 대부분의 지도자들도 안현수에 대하여 호의적으로 바뀜. 

그렇게 이한빈과 함께 자비를 들여서 열심히 훈련을 진행하고 있었는데...

그런데 안현수에게 러시아의 제의가 오고, 안현수는 2011년 대표선발전에 나서 대표로 선발되면 러시아로 가지 않기로 함. 그러나 1000과 1500에서 결승에 오르지 못하면서 500에서 우승했음에도 당시 몸상태로는 장거리인 3000슈퍼파이널에서 포인트를 얻기 어렵다고 판단, 레이스를 포기. 

러시아는 정말 거절할 수 없는 금액과, 너무나 환상적인 환경으로 안현수를 유혹. 세계최고의 축구클럽들에서도 볼 수 없는 수준의 코칭 지원으로 안현수는 폼을 회복. 안현수의 스케이팅을 제외한 다른 스탭만 10명 가량. 현재 우리 대표팀에는 남자팀/여자팀 코치 한 명씩, 물리치료사 총 한 명, 트레이너 한 명, 장비관리지도자 한 명.



진짜 지금까지 선수들과 지도자들의 눈물나는 노력으로 여기까지 성과를 낸 것임. 이 글을 본 분들은 현재벌어지는 일들의 원인이 누군지 알게 되셨으리라 믿음.

우리 선수들을 욕하는 생각없는 행동은 안했으면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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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전명규가 모든 빙산 실권을 장악

그런 전명규와 안현수 사이에 무슨일이 벌어짐

전명규는 안현수를 빙산계에서 매장시킬려고 코치 선수들 조정 모략 이간질 시전 

이과정에서 한체대 비한체대 파벌 형성

심해져 가는 파벌 싸움에서 지친 안현수는 러시아의 러브콜 받고 귀확ㄱㄱㄱ

결론은 코치 선수과 안현수는 별 악감정 없고 

전명규가 상 ㄱ ㄲ 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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