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Creative Korea’라는 국가 브랜드(National Brand)를 런칭했다. 로고의 완성도나 표절 문제는 둘째 치더라도 문구부터 공감이 가지 않는다.
현 정권의 '창조'라는 단어에 대한 집착에서 'Creative Korea'라는 문구가 탄생한 게 아닐까 추측한다. 이번 정권은 사람들에게 ‘창조경제’라는 단어를 제대로 각인시키고 싶어 하는 것 같다. 브랜드 메이커 국가대표인 손혜원 의원이 국가 브랜드와 관련한 ‘표절’에 대해 잘 짚어주셨으니 나는 ‘국가 브랜드가 왜 문제인가’ 하는 이야기를 해보겠다.
"프랑스 관광장관은 프랑스의 관광객을 증대시키고 더 많은 사업가들을 유치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이 새로운 로고를 공개했다. 이 로고는 프랑스가 민주국가로서 가지는 기본 정신인 자유(독립성, 창조성, 상상력, 단호함, 자발적인, 잠재성)는 물론, 정통성(역사, 혈통, 문화와 자연)과 감각적인 특성을 전 세계에 각인시킨다."
이 로고엔 두 개의 특이한 점이 있다. 하나는 문구인 ‘프랑스에서 만나요(Rendez-vous en france)’이고(도대체 무엇을 약속?), 한 가지는 상단의 여인 심볼이다. 다소 생소해 보이는 이 여성은 프랑스의 자유와 이성을 상징하는 ‘마리안느(Marianne)’이다.
▲ 위 그림에 나온, 프랑스의 자유와 혁명, 민주주의를 상징하는 여신이다.
프랑스인에게 프랑스 혁명은 대단한 자부심과 삶의 철학을 주었다. 실제로 필자의 프랑스 친구는 프랑스인의 콧대가 높은 이유로 프랑스 혁명을 꼽기도 한다. 얼마나 자부심이 높은지 미국의 독립 100주년을 축하하며 자유의 상징이자 전국적 아이돌 스타인 마리안느의 초특급 대형 버전을 선물하기도 한다.
▲ 이거 말이다.
프랑스는 국가 브랜드를 통해 전 국민이 애정하는 상징인 마리안느가 자연스럽게 전국 관광지, 레스토랑, 산업분야 곳곳에 쓰이도록 했다. 세계인에게 프랑스인의 정신을 담은 마리안느를 알리기 위함이다. 이 국가 브랜드는 프랑스인의 온라인 투표 속에 선정되었다(본 안이 87,000표를 얻었다). 그러니 어떻겠는가? 프랑스인들에게 전폭적인 사랑을 받으며 널리 퍼졌다. 프랑스인의 자부심이자 자존심인 마리안느이니까.
국가의 슬로건에는 국가가 가진 아이덴티티를 담아(없는 것을 급조하거나 바람, 염원을 담는 게 아니고!) 사람들이 자연스럽고 자발적으로 사용하게 해야 한다. 해외관광객을 유치하든 사업 투자를 유치하든 경제적 효과 또는 외교적 효과를 불러 일으켜 나라에 도움이 되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막대한 비용이 들어가는 거고(참고로 이번 브랜드 개발에 35억이 투입되었다).
2. 잘 만들어진 국가 브랜드, 'Incredible !ndia'와 'Malaysia Truly Asia'
본격적으로 국가 브랜드 얘기를 하기 전에 잘 만들어진 국가 브랜드 두 개를 먼저 소개하고자 한다.
1) Incredible !ndia
첫 번째는 인도의 ‘Incredible !ndia’다. 영상만 보면 인도에서 이국적이고 환상적인 경험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아직도 많은 이들에게 인도는 ‘아라비안나이트’의 나라 아니던가.
▲ 오우, 대선이고 뭐고 당장 나르샤 하고프다
India의 ‘I’를 느낌표로 표현하여 incredible을 기억하게 만든다.
느낌표를 배로 대체하는 등 응용도 가능하다.
우리가 생각하는 인도, 자국의 포인트를 매력적으로 잘 담아내지 않았는가? 인도는 한 때 주력으로 ‘소프트웨어 인재육성’을 내걸었다. 만약 인도 정부가 이 열망을 강렬하게 담아낸 ‘Software India’를 국가 브랜드로 만들었다면, 세계인들의 반응이 어땠을지 한번 상상해 보자.
2) Malaysia Truly Asia
다음은 말레이시아다. 말레이시아는 ‘Malaysia Truly Asia’를 국가 브랜드로 내세우고 있다.
뭐가 좋은 건지 반문할 수 있겠다. 로고 디자인만 놓고 보자면 감동적이지는 않지만 ‘어플리케이션(로고를 적용·응용한 콘텐츠)’이 훌륭하다. 여기서 주목할 만한 것은 로고송 끝부분에 등장하는 아름다운 멜로디다.
천혜의 자연에 이국적인 문화까지, 말레이시아를 매력적이고 다양하게 담아내는 모든 영상의 끝부분에는 음악과 함께 “Malaysia Truly Asia”라는 말이 들어간다. 발음나는 대로 쓰자면 ‘말레이지아 트룰리에이지아’정도 되는데, 시의 대구처럼 라임을 이루어서 한 번만 들어도 머리에 남는다(앞서 나온 ‘인크레더블 인디아’도 광고 끝에 로고 멜로디가 있지만, 말레이시아 쪽이 더 기억에 남는다).
3. 국가 브랜드로 자부심을 느끼고 싶다
▲ 1939년, 제2차 세계대전 기간에 영국 국민들이 동요하지 않도록 만든 대국민 캠페인 포스터. 잘 만든 포스터는 만들어진지 70년이 넘어도 밀리지 않는다.
국가 브랜드(National Brand)에 있어선 두 가지 측면을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
첫째, 온 국민이 공감하는, 또는 스스로 자부심을 느끼는 국가의 정체성. 그래야 자발적·능동적으로 브랜드를 마구마구 퍼나른다.
둘째, 세계인들에게 있어 국가가 어떠한 매력이 있는지와 그것을 로고에 어떻게 담아낼지.
국가 브랜드란 위의 두 가지 고민을 종합적으로 담아낼 수 있는, 기억하기 쉽고, 명료하며, 독특하고, 오랫동안 두고 보아도 질리지 않고 오래 쓸 수 있는 로고, 슬로건과 심벌마크, 어플리케이션(광고, 음악, 이벤트 등)을 디자인하는 거다. 현 정부의 ‘Creative Korea’를 두고 다음과 같은 해석을 할 수 있다.
1) 국민과 공감대를 형성하는데 실패했다. (‘작대기는 건곤감리’라는 말에 ‘정말?’이라고 달린 댓글, 태극기의 적색/청색이라고 하는데 ‘마젠타가 시안의 색과 비슷해 보이는데?’ 라는 반응 등)
2) 세계인이 매력을 느낄만한 그 어떤 정서도 불러일으키기 힘들어 보인다. ‘Creative’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국가가 어디일까.
3) 독특하고 기억에 남는 디자인 또는 어플리케이션이 잘 나올 수 있을까에 대한 의문
4) 표절 의혹. 창의성, 독창성까지 박탈당할 처지에 놓였다.
‘이 로고를 디자인한 디자이너에게 책임이 있다’고 말하는 분들도 있겠다. 그런데 클라이언트가 원하는 수준을 넘은 디자인 결과물을 내고, 그것을 설득하기가 어디 쉬운가. 정부를 상대로 했으니 더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 JOH 컴퍼니의 조수용 대표가 ‘디자인 결과물은 딱 클라이언트의 의사결정자의 수준만큼 나오게 된다’라고 말한 적도 있다(그래서 애플이 훌륭한 디자인을 내는 것이다).
국가 브랜드 문제로 시끄러운 것은 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왜? 우리는 우리나라의 브랜드가 제대로 만들어지길 원하는 대한민국의 국민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죄책감이나 괜히 내가 트집 잡는 것 아닌가 죄의식을 느끼지는 않아도 되겠다. 비판과 야유만 할 것이 아니라 좋은 브랜드에 대해서, 또는 우리가 자부심을 느낄만한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브랜드에 대해서 깊이 고민해 보는 기회로 삼으면 좋겠다.
현 정부에게 말하고 싶다. 국가 브랜드라는 것을 정부의 임기 내 성과의 하나로 삼아선 안 된다. 로고를 만들 때 희망과 염원을 담아 국민에게 그것을 강요한다고 해서 브랜드로 자리 잡는 것도 아니다. 단지 트집 잡기 위해 표절 운운하는 것이 아니다. 역사 속 대한민국 정체성을 다시 연구하고, 무엇이 대한민국을 만들었는지 분석하고, 공감대를 불러일으켜 내국인에게도, 외국인에게도 사랑 받을 만한 멋진 국가 브랜드를 만들어주기 바란다. 세계 속에서 대한민국이 자랑스러운 국가 브랜드로 자부심 느끼기를 원하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진심으로 부탁드린다.
< 이 컬럼의 원출처는 딴지일보이고 위에 인용된 것은 제 2출처인 고발뉴스에 실려있는 것입니다. 무례하게도, 제가 딴지일보나 고발뉴스 그리고 김빈 빈컴퍼니 대표로부터 직접 허락을 얻어 이곳으로 옮겨온 것은 아니지만, 아주 반갑게도, 상당히 오랜만에 보게 되는 김빈 빈컴퍼니 대표의 컬럼이자 소식이므로 결례를 무릎쓰고 무작정 이곳으로 옮겨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