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인은 그걸 귀신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그게 무엇인지 이름붙이는거 자체도 꺼림칙하고 무엇보다 아직까지도 그게 뭔지 잘 모르니까. 하지만 단 한가지 만은 소름끼치도록 잘 알고있다 바로 절대 그것에 관심을 가지면 안된다는거다
사실 어릴적부터 그게 보이긴했지다 하지만 그냥 있는지만 아는 희미한 정도였는데 고삼때 가위에 심하게 시달리고난뒤에 더욱 명확해졌다
그리고 군대때,
심심하고 시간많은 군생활 특히 위병소 근무는 더더욱 지루했는데 재밌는 이야기를 원하는 선임들의 심심함을 풀어주려면 왠만한 이야기로는 충분하지 못했다
그나마 인기있는게 연애이야기 야한이야기인데 그런가 없는 오징어에겐 인터넷에서 주워들은 게임스토리나 무서운얘기들이 전부였고 그것들은 금세 동이나버릴수밖에 없는것들이었다 결국 이야깃거리를 찾다가 급기야 지금까지는 쉬쉬하며 모른척하던 그것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게됬다
처음엔 그저 단순한 목격담 위주로 이야기했었다
본인의 부대는 산으로 둘러싸여있고 유일한 출구는 하천을 건너는 시멘트 다리와 거길 지키는 위병소 뿐이었다
그런데 재밌는게 밤이든 낮이든 근무를 서다보면 그것들이 나가는게 자주 보인다 검은 안개같은게 옅고 길게 늘어져서 은근슬쩍 사라지거나 고양이 발 같은게 발목만 달랑 둘이서 후다닥 뛰어나가기도 했다 또는 대놓고 사람모양처럼 나가기도 했는데 하반신은 평퍼짐한 옷을 입은 사람같지만 상체는 납작한 호떡같거나 희미한 그림자같은 경우도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공통점은 나가는 애들은 있어도 들어오는 애들은 없다는 것이었는데 군대는 그것들에게도 별로 지내기 좋은곳이 이니였나보다
이런 이야기들은 인기가 많았다 특히 위병소 위 탐조등에 쭈그려앉아있는 애는 말은 안했지만 태풍으로 탐조등 바꾸기 전까지 항상 있었었고 그외에도 위병소에서 바람처럼 내달리다 두둥실 떠올라 사라지는 하얀 양 같은 애들이나 잠자리처럼 빠르게 날라다니는 하얀막대기들고 있었으나
솔직히 그것들은 무섭다기 보다 그냥 신기한 자연현상정도 밖에 안됬고 이야기를 들은 선후임들도 무서운얘기라기보다 그냥 지어낸 신기한 이야기정도로 취급했다
나또한 걔들은 사회에서도 가끔 보였고 (물론 군대에선 더 자주 많이 보였지만) 딱히 내게 해코지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별로 신경쓰지않고있었다
그냥 보이면 얘기해주고 안보이면 말고 하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그 이야기에 대한 소문은 빠르게 커졌고 심지어 찾아달라는 사람까지 생겨나서 주변의 성원과 질문 그리고 스스로의 궁금증까지 합쳐져서 결국 나는 그것들에게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그것도 내게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시작은 위병소였다
"정지정지정지! 손들어 움직이면...!!"
간혹 새벽 위병소근무를 점검하러 오는 사관이 있는데다가 얼마전 근무태만으로 휴가가 잘린 사람이있어서 나와 내 사수는 그날따라 잡담도 덜하고 창밖만 바라보고있었다
뒤쪽에서 간부가 오는 길목을 주시하고있던 나 는 잠깐 방심한 사이 창문에 누군가 얼굴을 숙 내밀길레 'X됬다' 라는 생각이 번쩍들어 때려잡을 기세로 문을 박차고 튀어나갔다
같이 근무서던 사수도 놀라서 뛰어나오고 위병조장실에서 자고있던(우린 병사가 위병조장을 섰다) 말년병장도 방탄도 안쓰고 바로 튀어나왔다 그만큼 진지한 상황이고(휴가가 걸렸으니) 장난칠 분위기가 아니였던것이다
그렇지만 밖엔 아무도 없었고
사수와 위병조장은 졸다가 헛걸 본거라고 한 소리 하고는 자리로 돌아갔고 나도 그런가보다 하면서 그냥 넘겼었는데
근무가 끝나고 침대에 누웠을때 나는 섬뜩할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분명, 평소처럼 지나가거나 그냥 거기 있거 한게 아니라 무언가 목적을 가지고 창문을 들여다본것이었다
그리고 몇일뒤
그것은 내게 조금더 다가왔다
해는 이미 넘어갔고 퇴근차량도 모두 보내서 잡담할 힘도 없이 짬차이 별로 안나는 사수랑 벽에 팔짱끼고 기대서서 날씨가 어떠니 휴가는 언제니 하는 시덥잖은 이야기만 주고받고있었는데
사수 너머로 누군가가 있는게아닌가? 고개를 쭉 내밀어서 사수 너머를 보니까,
머리가 비정상적으로 큰 대머리 꼬마애가 벽에 기댄체 팔을 축 늘어뜨리고있었다
시선은 아래를 보고있었는데 눈을 게슴츠레 뜨고있어서 자세히 보이진 않았다
티비에서 보던 창백한 귀신이라기보다 흑백티비처럼 하얀 꼬마였다
침을 꼴깍삼키고 고개를 돌려 밖을 봤다
지금처럼 그래왔듯 무시하자 무시하면 사라지겠지 모른척하면 사라지겠지 생각했고 다행이 자연스레 밖으로 나와 안쪽을 봤을땐 아무것도 없었다
그제서야 난 무언가 잘못됬다는걸 느꼈고 점점 사람다워지기전에 점점 다가오기전에 그것에 관한 이야기를 절대 꺼내지 않기로 다짐했다
하지만 다짐이란게 다 그렇듯 시간이 지나 그 일이 희미해질 무렵 나는 상병이 꺾였고(상병의 절반을 넘김) 같이 들어가는 부사수들이 하나같이 재미없는 이야기만 하길레 안되겠다 싶어 지금껏 묻어뒀던 이야기들을 열심히 풀었다
그리고 다시 그것을 마주친곳은, 부대 막사였다
밤늦게, 피곤한, 새벽에, 나홀로. 뭐 이런상황도 아니었다 늘 그렇듯 일과 끝나고 밥먹고 동기들이랑 운동좀 하다가 씻자! 하고 우르르 샤워장으로 향했다 생활관 맞은편 바로있는곳이고 샤워할 시간이라 사람도 북적북적했었다 나는 아무 생각없이 나무로된 캐비넷을 열었다
우리 케비넷은 좀 작은편인데, 사회에서 사우나같은데 가면 있는 신발장 정도쯤되는 정사각형 나무장이다
그걸 딱 열었는데 그 안에 머리만 있는 어린 꼬마가 두손으로 턱을 받치고 싱글벙글 웃고있었다
분명 웃고있었다
살면서 한번도 눈코입이 구분될정도로 또렷하게 보이거나 이렇게 코앞에서 본적은 한번도 없었는데 그건 분명 웃고있었고 나를 똑바로 쳐다보고있었다
열자마자 바로 닫았는데도 그 소름끼치는 웃음은 아직잊혀지지않는다
그뒤론 그 사물함은 절대 열지도 쳐다보지도 않으며 지냈고 아직 아무에게도 이야기한적없다
하지만 그것은 내게 더욱 가까워졌다
이번에는 화장실이었다
내 생활관과 가장 가까운 화장실에 소변기 하나가 막혀있는곳이 있었다 문에서 가장 가까운 소변기라 소변을 보려면 안쪽으로 더 들어가서 다음번째 소변기를 써야됬다
그날 새벽 야간연등하다가 아무 생각없이 그 화장실로 갔다 자살예방 차원에서 불도 환하고 불침번도 왓다갓다하는 곳이고 늘 가던곳이라 전혀 이상한점을 느끼지 못했는데
남자들은 알꺼다 소변기에 바짝 붙어 일을보고있으면 시선처리가 마땅치않다 그냥 벽에 붙은 명언따위를 읽거나 아래를 내려다보거나 하는정도가 전부인데 그날도 시선을 휘휘 돌리다가 우연히 옆을, 그것도 망가진 소변기를 봤다
그리고 거기엔 한 소녀가 서있었다 연한 주홍색 넓은 치마를 입고 침울한 표정으로 고개를 푹 숙이고 소변기 위에 올라서있었고
팔은 없었다
얼굴은 새하얗고 각질이 있었는데 중세 유화그림같았다
문뚝 그 소녀가 고개를 들어 이쪽을 보려고 하길레 바로 고개를 돌려 반대편을 봤다 그날따라 왜이리 소변이 길게 나오는지...
다행이 다시 돌아봤을때 소녀는 온데간데 앖어졌고 그 뒤로도 보진못했지만 그쪽 화장실은 다시는 간적이 없다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그정도면 충분히 내게 경고가 됬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것은 더 가까이 다가왔다
내 생활관안엔 장담컨데 아무것도 없다 그러니까 가끔 가위눌린적은 있긴하지만 혈기왕성한 군인들이 지내는곳이라 그런지 가위는 눌려도 뭔가가 나타나는적은 없었다
그러나 그날 새벽 근무가 끝나고 생활관에 돌아와 탄띠나 방탄헬맷등을 정리하고 환복을하고있었는데
아시다시피 군복 벨트는 구멍이 뚫린게 아니라 아빠벨트처럼 쇠막대기가 잘그락 거리는 벨트이다 때문에 옷을갈아입을때 벨트가 절그덕 거리는게 마치 방울처럼 신경거슬리는 소리가 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