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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마마 반역 팬픽] 제10장. 더 이상 불행해지면 안 돼
게시물ID : animation_19725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마Maマ
추천 : 5
조회수 : 626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4/02/18 22:51:16



BGM : Vladimir Ashkenazy, Rachmaninoff Prelude in c#, Op. 3 No. 2
Vladimir Ashkenazy 연주, 라흐마니노프 프렐류드 in 올림다단조, Op. 3 No.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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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법소녀 마도카 마기카 반역의 이야기’ 후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스포일러에 주의!

 - 12장+에필로그로 구성되어 있으며, “1쿨짜리 애니메이션을 기획하면 어떤 내용이 될까?” 라 생각하면서 썼습니다.

 - 일본식 표현은 가능한 한 순화하였습니다.
 (예 : 마미상 -> 마미 언니, 사야카짱 -> 사야카)

 - 성을 부르는 경우, 이름을 부르는 경우, 자신을 3인칭으로 부르는 것 등은 원칙적으로 원작의 규칙을 따랐습니다.
 (예 : “미키 사야카, 너는~”, “마도카, 아케미하고는 만나 봤어?”, “나기사는 치즈가~”)

 - 원칙적으로 주 2회, 화요일과 금요일, 21시~24시 사이에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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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0 장. 더 이상 불행해지면 안 돼

 “휴. 결국 나의 승리네. 카나메 마도카”

 이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상상하는 것조차 두렵다. 악마의 힘을 흡수한 인큐베이터가 눈앞에 있다. 아주 잠깐 활기를 되찾았던 세상이 다시 정지한다. 이번에는 마도카와 사야카, 큐베만이 움직일 수 있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아직 희망은 있어. 기억을 되찾은 마도카가 곧 본래 모습으로 돌아갈 거야. 그렇게 되면 지금의 인큐베이터라도 저항할 수 없을 걸.’

 하지만 이 실낱같은 희망은 마도카의 표정을 확인함과 동시에 먼지가 되어 내려앉는다. 여전히 기대에 차 큐베를 바라보는 마도카의 순진무구한 표정은, 마도카가 지금의 상황을 전혀 이해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아슬아슬했어. 미키 사야카. 네 대응이 조금만 빨랐더라도 우리는 엄청난 이익을 볼 기회를 놓쳤을 거야.”

 감정이 없는 차가운 목소리가 바늘처럼 뇌에 들어와 꽂힌다. 

 “그랬더라도 우리는 그럭저럭 만족했겠지만 말이야. 아무튼, 미키 사야카, 그리고 카나메 마도카. 너희가 우리의 해방에 아주 큰 기여를 해 줬어. 정말 고마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그게!”

 사야카는 모욕감을 불러일으키기까지 하는 큐베의 발언에 격렬하게 반응한다.

 “너무 흥분하지 마. 차근차근 설명해 줄 테니까.”

 큐베는 잠시 뜸을 들이고는 긴 설명을 시작한다.

 “우리의 모든 기억은 아케미 호무라의 비상식적인 힘으로 인해, 무의식에서만 떠돌게 되어 버렸어. 그런 형태로 변한 기억이 의식으로 되돌아오기 위해서는 매개물이나 매개사건이 필요해.”

 아주 느린 걸음으로 근처에 있는 나무를 향해 이동하면서, 큐베가 말을 잇는다.

 “하지만 아케미 호무라의 간섭 때문에, 우리는 어떤 존재와도 접촉이 허용되지 않았어. 그리프 큐브의 회수와 마법소녀 계약의 체결만이 예외였지. 그런 상태에서 기억을 되살릴 촉매를 찾을 확률은 극히 희박해. 그런데, 그 확률을 실현시켜 준 사람이 있었어. 기억하고 있지? 카나메 마도카가 마법소녀의 정체를 간파한 이후, 너희는 설명을 위해 그리프 큐브를 가져갔어. 그 덕에, 나는 너희들과의 만남을 길게 유지할 수 있었지.”
 “설마 그 때…”
 “그래 맞아. 그 때 네가 원환의 섭리와 악마의 존재에 대한 의문을 제기해 주었지. 하지만 그 사건은 기억을 되살리기에 충분하지는 못했어. 삭제된 기억을 사건 하나로 모두 떠올린다는 건, 우리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거든.”

 나무에 접근한 큐베는 가장 낮은 나뭇가지 위로 뛰어 올라가 꼬리를 몇 번 흔든다.

 “우리는 너의 발언에만 의존해서 전략을 수립했어. 알다시피 우리의 최종 목적은 해방이야. 그 첫걸음은 악마를 약화시키는 것이 되겠고. 그것을 위해, 우리는 너의 의심을 증폭시켜서 악마를 공격하도록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지. 네가 성공하든 실패하든, 우리를 지배하는 악마의 힘이 약화될 것만은 분명했으니까.”
 “네가… 나를 조종했다고?”

 큐베는 사야카의 반응에 신경을 쓰지 않고 자기 할 말만을 계속한다.

 “우리의 행운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어. 급히 아케미 호무라에게 돌아갔더니, 호무라가 혼잣말을 하더군. ‘이 세계에서 마도카가 나 호무라를 상냥하게 대해줄까’라는 말이었어. 이 말을 바탕으로, 우리는 악마의 약점이 카나메 마도카의 안위 그 자체라는 가설을 세울 수 있었지.”
 ‘잠깐… 뭐라고?’

 사야카는 이상함을 느낀다. 악마가 저런 말을 했을 이유가 없다. 그러나 큐베가 휴식도 없이 쏟아내는 막대한 양의 정보 때문에, 이런 지엽적인 문제를 깊이 생각해 볼 여유가 없다.

 “두 조각을 끼워 맞추자, 우리는 미키 사야카 네가 카나메 마도카를 공격하도록 만드는 것이 좋겠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었지. 이것을 위한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너에게 ‘카나메 마도카가 원환의 섭리와 관계가 있다’는 생각을 주입하는 게 될 것이었고.”

 사야카는 아직도 주머니에 보관되어 있는 큐베의 브로치를 꺼낸다. 큐베가 위에서 아래로 내리까는 시선으로 사야카의 손을 슬쩍 보고는 말을 잇는다.

 “맞아. 바로 그 물건이야 미키 사야카. 그걸 만드는 일도 쉽지 않았어. 아케미 호무라의 심리가 불안정해져서 감시가 조금 약화되지 않았다면 그것조차 불가능했을 거야.”

 사야카는 힘없이 손에 쥔 브로치를 떨어뜨린다. 아무리 의심할 기회가 없었다고 해도, 그런 간단한 생각마저 하지 않았다니.

 “효과는 상상 이상이었어. 위험을 감수한 보람이 있었지. 너는 우리의 의도대로 카나메 마도카를 공격했고, 아케미 호무라가 반응했지. 이로써 우리는 마도카가 악마의 약점이라는 가설이 맞았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어. 그 뿐 아니라, 악마가 마도카의 보호에 정신이 팔린 사이, 우리는 잠깐 동안 개별적인 활동을 할 수 있었고, 그 시간동안 더 많은 매개물과 정보들을 찾아낼 수 있었지. 덕분에 우리는, 카나메 마도카가 세계의 법칙을 뒤바꾼 존재라는 것, 그리고, 아케미 호무라는 그 법칙을 다시 뒤틀어버린 존재라는 것, 그리고 각각의 세계개편에 개재되어 있던 인과관계들을 기억해내는 데 성공했어.”

 큐베는 한 단계 높은 나뭇가지로 폴짝 뛰어 올라가면서 계속 말한다.

 “우리는 새로운 정보들을 바탕으로 다음 작전을 검토했어. 평가기준은 네 가지. 첫째는 아케미 호무라에게 들킬 가능성이 얼마나 낮은가? 둘째는 너희가 우리에 대한 기억을 되찾을 가능성이 얼마나 낮으냐? 셋째는 우리가 해방될 가능성이 얼마나 큰가? 마지막으로는 유연성, 즉 일이 잘못되었을 때 다른 전략으로 바꾸기가 얼마나 용이한가?”

 풀숲을 지나가고 나무를 올라가는 동안 몸에 묻은 풀 조각을 털어내면서, 큐베가 설명을 계속한다.

 “적극적으로 너희와 접촉하는 방침은, 첫째와 둘째, 그리고 넷째 기준에서 과락을 면치 못해. 너에게 브로치를 준 것처럼, 간접적으로 너희를 도우는 방안은 첫째와 넷째 기준과 관련된 비용이 큰 반면, 셋째 기준에서 얻을 효과가 너무 작지. 기타 복잡한 작전들도, 대개 비슷한 이유로 탈락했어. 너무 복잡해서 실현가능성이 없었던 작전도 있고.”

 큐베는 꼬리로 나뭇가지를 붙들어 떨어지는 일이 없도록 한 다음, 나뭇가지에 등을 비벼 긁는다.

 “철저한 비용편익분석 끝에, 우리는 너희들의 행동을 원칙적으로 방관하기로 결정했어. (이걸 작전이라고 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지만 말이야.) 이 방법은 첫째와 둘째, 넷째 측면에서 아주 우수해. 세 번째 측면에서 약간 아쉽긴 하지만 감수할 만 했어. 우리 개입이 없어도, 너에겐 악마를 공격할 충분한 유인이 있었으니까. 다음부터는 너희들이 아는 그대로야. 특히 카나메 마도카의 결정 덕분에, 우리는 해방뿐만 아니라, 유례가 없던 힘, 우리가 오래 전부터 바라던 힘을 손에 넣기까지 했지. 인간이 가지는 희망이라는 감정을, 이제는 조금 이해할 것 같기도 해. 아주 낮은 가능성이 최상의 결과로 도출될 때 얻는 효용은, 정말 크구나.”
 “큐베,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조금 쉽게 설명해 줘, 이해할 수가 없어!”

 마도카가 거의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한다. 큐베의 말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하지만, 그것이 결코 좋은 의미가 아니라는 것은 느낌으로 알고 있는 것 같다.

 “마도카! 저 녀석 말 귀담아듣지 마! 너는 신이었어, 기억해 내야 해!”

 분명 호무라의 영향은 없어졌을 텐데, 나 사야카는 기억을 되찾았는데, 왜 마도카는 기억을 되찾지 못하는 것일까? 사야카는 애타게 마도카를 재촉한다.

 “그렇구나, 그 부분에 대해서도 설명을 해 줘야 하겠군. 너희도 알다시피, 소울 젬의 강함은 '희망이라는 감정 에너지'와, '희망을 품은 개체에 얽힌 인과'라는 두 요소로 결정돼. 다크 오브도 비슷해. 희망 대신, 사랑이라는 감정 에너지, 사랑을 품은 개체의 인과, 그리고 사랑의 목적이 되는 개체의 인과라는 세 요소로 그 힘이 결정되는 거야. 이 중 마지막 요소는 당연히 사랑과 접점이 있는 부분에 한정되겠지.”
 '사랑?'

 사야카가 가진 지식으로는 예측도, 설명도 할 수 없는 사건과 개념이 큐베의 설명에 자꾸만 등장한다. 마도카의 상냥함을 원하는 악마, 사랑이 본질인 다크 오브.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큐베가 말하는 악마와 내가 아는 악마가 다른 존재인 것 같기까지 하다.
 
 “그런 원리 때문에, 이 다크 오브에는 호무라를 만난 시점에서 신이 된 시점까지 형성된 마도카의 인과만이 담겨 있어. 뭐, 인간으로서의 인과 전체가 이것과 불가분이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끌려들어가긴 했지만 말이야. 즉, 마도카를 지금의 상태로 고정시키는 요인은 다크 오브의 힘 그 자체. 따라서 다크 오브의 힘이 남아있는 한 마도카는 기억을 되찾을 수 없지. 완벽히 융화되지 않은 인과들 때문에 카나메 마도카가 자연적으로 각성을 하려 한다거나, 계약을 거치지 않고도 마법소녀로 변신할 수 있는 기현상이 나타나기는 하지만……. 반면 미키 사야카 너의 인과는 다크 오브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어. 네가 기억을 잃은 건 아케미 호무라의 작위적인 통제에 의해 나타난 결과일 뿐이야. 한편, 지금의 나는 아케미 호무라의 세계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행위만을 하고 있어. 흡수한 힘으로 할 수 있는 게 지금으로서는 이것밖에 없기도 하고. 뭐, 이정도 설명해 줬으면, 너희 둘의 기억회복에 차이가 있는 이유를 찾아낼 수 있겠지?”
 “……”

 사야카는 대답하지 않는다. 큐베의 설명이 사실이라면, 마도카의 기억을 되돌리기 위해서는 다크 오브를 파괴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으로서는 방법이 없다.

 “이 이론에 오류는 없지만, 어떻게 네가 아직까지도 실체를 유지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완벽히 설명하기 어려워. 네가 카나메 마도카와 친한 친구였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 인간의 감정이 만들어내는 예측 불가능한 변수라고 추측할 수밖에 없지.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별로 중요한 문제는 아니야.”
 "마도카!"

 사야카는 큐베가 방금 한 설명에 관심을 쏟을 만큼 한가하지 않다. 사야카는 마도카의 이름을 애타게 부를 뿐이다. 이젠 마도카 자신이, ‘다크 오브에 융화되지 않은’ 신으로서의 인과를 스스로 깨닫기를 바랄 수밖에 없다. 하지만, 마도카는 여전히 혼란에 빠진 표정으로 눈물을 글썽이고만 있다. 심리적으로 너무 불안정해 자신의 참된 모습을 찾을 여유가 없는 것 같다. 사야카는 큐베에게 시선을 돌리면서 소리친다.

 “인큐베이터! 도대체 무슨 짓을 할 셈이야?”
 “안심해. 너희들에게 복수하려는 생각은 없어. 감정이 없는 우리에게는 복수심도 존재하지 않거든. 앙갚음을 위해서 너희 인간을 몰살시킨다거나, 노예처럼 부리는 선택은 하지 않아. 우리 인큐베이터가 하려는 일은, 사실 미키 사야카, 너의 의도와도 부합해.”
 “너, 무슨 꿍꿍이를…”

 저 말이 옳을 리 없다는 걸 잘 알고 있는 사야카가 항의하지만, 큐베는 항의를 묵살하고는 자기 할 말을 계속한다.
 
 “미키 사야카. 너는 너와 주변 인물들의 행복을 포기하면서도, 진실로 돌아가야 한다고 믿었지? 누군가에 의해 조작된, 거짓된 세계에서의 행복은 착각에 불과하다고 하면서 말이야. 비록 너와 우리의 목적은 다르지만, 두 목적이 추구하는 세계는 결과적으로 똑같아. 진실한 세계, 원래의 세계, 어떤 한 개체의 독단적 결정에 의해 오염되지 않은 순수한 세계로 돌아가게 되는 것이지.”

 사야카가 큐베의 말에 숨겨진 의미가 무엇인지 파악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네 녀석 설마!”
 “그런 세계는 당연히, 아케미 호무라는 물론, 카나메 마도카의 손길도 닿지 않은 최초의 세계가 되겠지. 어떤 거짓도 존재하지 않고, 모든 일이 순리대로 흐르는 세계 말이야.”
 “그 입 닥쳐! 말도 안 되는 소리야!”

 큐베는 자신의 말에 격렬하게 저항하는 사야카를 쓱 쳐다보고는, 고개를 두어 번 좌우로 흔들면서 대답한다.

 “너의 반응은 논리적이지 않아. 카나메 마도카도, 아케미 호무라도 모두 자신이 원하는 결과를 위해서 세계의 인과를 뒤틀고, 세계의 법칙을 뒤바꾼 존재야. 객관적으로 보면, 누군가의 행복을 위해 진실을 숨기고, 나아가 우주의 수명을 단축시킨 악마에 불과해. 네가 처음 생각했던 것처럼 말이야.”
 “그렇지 않아……. 마도카는 우리 마법소녀들에게 지워진 가혹한 운명을 바꾸기 위해 희생했어. 그런 희생으로 만들어진 세계가 어떻게 거짓이라는 거야?”

 큐베는 지면과 가장 가까운 나뭇가지로 다시 내려와 잠깐의 간격을 두고 나서 말을 계속한다.

 “희생은 네가 말하는 진실과 아무 상관이 없어. 설마 ‘희생으로 만들어진 거짓은 거짓이 아니다’라는 어이없는 주장을 하고 싶은 건 아니겠지? 또, 네가 마법소녀들의 운명을 운운한 것은 가상의 행복이 아무 의미 없다는 너의 주장과 완벽하게 모순돼.”

 사야카는 머리를 좌우로 강하게 흔들면서 반박한다. 
 
 “아니야, 마도카는 사람들의 기억을 제멋대로 바꿔놓지 않았어. 마도카의 세계에서 사람들은 거짓 행복을 얻은 게 아니라고!”
 “글쎄, 너는 카나메 마도카가 실존했던 인물이라는 것이 ‘진실’이라고 생각해?”
 “당연하잖아!”
 “그렇게 생각한다면, 마도카의 세계에서, 그 가족이 마도카의 존재를 기억하지 못하는 점은 어떻게 설명할 거야? 카나메 마도카의 가족은 카나메 마도카의 존재를 잊었기 때문에 그 세계에서 행복할 수 있었어. 아케미 호무라의 세계에서 너희들이 행복할 수 있었던 이유와 정확하게 똑같지. 어디 그뿐일까? 너는 마도카의 희생을 알았다면 행복하지 못했을 마법소녀가 없었다고 장담할 수 있어? 우리들이 이해한 인간의 감정에 비추어 보더라도, 자신들을 위해 누가 희생했다는 사실만으로 슬픔과 불편함을 느낄 마법소녀들이 적지 않았을 것 같은데? 이런 게 거짓 행복이 아니면 뭘까?”

 사야카가 반론을 제기하려는 순간, 마도카 가족의 서로 다른 세 가지 모습이 스쳐지나간다. 최초의 세계에서의 모습, 마도카가 재편한 세계에서 지냈던 모습, 악마가 뒤바꾼 세계에서의 모습. 마도카가 재편한 세계에서도 마도카의 가족은 분명히 행복했다. 하지만 그들이 마도카에 얽힌 ‘진실’을 알았다면?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말문이 막힌다. 

 “이렇게 보면 오히려 아케미 호무라의 세계에 거짓이 적다는 결론까지 내릴 수 있어. 호무라는 마도카와 그 가족, 친구들의 기억만 조작했지만, 마도카는 과거와 미래의 모든 마법소녀의 기억까지 조작했으니까. 흠, 마도카는 기억조작을 의도하지 않았다는 변명을 할지도 모르겠네. 하지만 그것도 타당하지 못해. 너희 인간들은 ‘미필적 고의’라는 개념을 사용한다지? 자신의 행위로 어떤 결과가 발생할 것을 예견한 자가 그 결과발생을 용인했다면, 그 행위는 그 자의 고의에 의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말이지. 인간들의 논리치고는 나쁘지 않아. 마도카는 자신의 행위로 사람들의 기억이 조작될 것을 예견했고, 또 그것을 용인했어. 때문에 의도가 없었다는 변명으로 넘어가기는 어렵지.”
 “여전히 납득할 수 없어! 아케미 호무라의 세계는 불안정하고, 언제든 뒤바뀔 수 있었어. 마도카의 우주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이대로 큐베의 말에 휩쓸려가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에, 사야카는 다른 근거로 반격을 가해 본다. 사야카의 말을 들은 큐베는 또다시 고개를 천천히 좌우로 젓는다. 그 다음, 사야카를 정면으로 이삼 초 정도 응시하다가 방어를 시작한다.

 “너는 완벽한 거짓은 곧 진실이라고 주장하려는 거야? 그게 아니라면, 네 반론은 ‘마도카의 세계는 거짓이 아니다’라는 문장의 증명이 선행되지 않는 한 아무 의미가 없어.”
 “궤변 늘어놓지 마… 아케미 호무라의 세계는… 분명 거짓이야…….”

 큐베는 인간이 답답함을 느낄 때 하는 행동을 따라한다. 어깨를 한 번 으쓱하고는, 시선을 아래로 내리깔면서 한숨을 쉬는 듯한 소리를 낸다. 그러고는 천천히 고개를 들며 말을 시작한다.

 “아직도 이해하지 못한 모양이구나. 너의 기준에 따르면, 아케미 호무라의 세계는 확실히 거짓된 세계야. 난 그걸 반박하고 있는 게 아니야. 내가 말하고 싶은 건, 너의 기준을 똑같이 적용할 경우, 마도카의 세계도 거짓된 세계라고 봐야 한다는 거야. 미키 사야카, 네가 정말로 진실을 원했다면, 너는 지금부터 우리가 할 일을 싫어할 이유가 없어. 행복을 포기하더라도, 누군가를 희생을 감수하게 되더라도, 진실을 추구해야 한다고 했었잖아. 너의 그 결심은, 진실이 네가 원하는 형태가 아니라는 이유 하나 때문에 깨질 정도로 약하고 무가치한 것이었어? 뭐, 너희들이 항상 그런 식이기는 했어. 진실을 말해주면, 그걸 받아들이지 못하고는, 진실을 알려 준 사람을 비난하지. 영문을 모르겠어. 그렇게 행동할 거였으면, 왜 진실을 추구한다, 정의를 추구한다는 식으로 자신을 포장하는 거야?”

 사야카는 아찔한 현기증을 느낀다. 오래 전, 다른 시간축에서 마녀가 되어가는 과정에서 겪었던 느낌이 되살아나는 것 같다. 무엇이 가장 중요했는지, 무엇을 지키려 했었는지 알 수가 없다. 사야카는 ‘지금의 나는 그때보다 강하다’고, ‘나는 그때보다 더 성장했다’고, ‘저 말은 큐베의 궤변일 뿐이다’라고 자기최면을 걸면서 냉정을 유지하려 애쓴다. 하지만 큐베는 그런 사야카를 전혀 배려하지 않으면서 더 많은 말을 쏟아낸다.

 “우리 인큐베이터들의 목적은 너희 인간과는 달라. 우리는 그저, 우주의 수명을 가장 효율적으로 늘릴 방법을 찾을 뿐이야. 우리에게는 진실이라는 개념도 별 의미가 없어. 탄생하는 순간부터 여러 시간축이 존재하고, 한 개체에 의해 역사가 바뀌는 이런 우주에, 애초에 진실이라는 개념을 정의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거든. 솔직히 말하면, 네가 말하는 ‘진실’이 정확히 어떻게 정의되는지는 아직까지도 모르겠어. 재밌는 사실을 알려줄까? 너희는 조금 전까지 악마가 세계를 멸망시키고 있다고 생각했지. 하지만, 사실 호무라는 너희의 시간과 인식에만 간섭했어. 그때의 호무라에게는 세계를 멸망시키는 데 힘을 낭비할 여유가 없었으니까. 굳이 따지자면, 세계는 멸망하고 있지 않았다는 것이 ‘진실’이었다는 거야. 너희는 그 정도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진실’의 개념을 정의하는 거지? 뭐, 어찌 됐든, 지금은 너희 인간이 막연하게 얘기하는 ‘진실한 세계’와, 우리가 추구하는 효율적인 세계가 일치해. 너의 감정이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해서 그 결론이 바뀌지는 않아.”

 “조…좋아. 네 말대로 진실이 아무 의미 없는 것이라고 해 보자고. 그래도 호무라 녀석의 세계는 바람직하지 않아. 정의롭지가 않잖아. 그 세계는 오로지 악마 자신만의 이익을 위한 것이었어. 그게 우연히 다른 사람들에게 이익이 되었다고 해서, 그 행동이 정당화될 수는 없어.”

 사야카는 이를 악물고 한 걸음 후퇴하여 방어진을 구축한다. 내키지 않지만, 지금으로서는 다른 방법이 없다. 

 “흠, 그런 반박은 의미가 없다고 말해 줬는데……. 어쨌든 아케미 호무라의 의도 얘기가 나왔으니, 너희가 좋아하는 ‘진실’의 가장 흥미로운 점을 알려줘야 할 것 같구나. 특히, 카나메 마도카, 네가 잘 들어 줬으면 좋겠어. 네가 처치한 악마의 진짜 모습을 말이야.”
 “악마의… 진짜 모습이라고?”

 큐베와 대화하던 중 잠깐잠깐 이상함을 느꼈던 대목들이 떠오른다. 설마 내 기억이, 아직까지 완전하지 않다는 말인가? 큐베가 올라가 있던 나무에서 내려오더니, 사야카를 똑바로 쳐다보면서 말을 잇는다.

 “아케미 호무라가 이 세계를 만든 이유는, 처음부터 끝까지 변한 적이 없어. 카나메 마도카의 안위와 행복이었지. 호무라가 세계를 자기 맘대로 수정할 능력이 있었음에도 그리 하지 않은 것은 이런 목표가 있었기 때문이야. 호무라의 개별 행동의 저변에 있는 의도가 무엇이었는지는 너희들이 직접 보는 게 좋을 것 같네. 중요한 장면만 보여 주도록 할게. 나머지는 너희들의 지능으로도 충분히 유추할 수 있을 테니 말이야.”

 마도카와 사야카의 뇌에 알 수 없는 신호가 주입된다. 마치 꿈을 꾸는 듯이, 지금까지 있었던 일이 호무라의 시점에서 재생된다. 그 시작은 사야카가 마도카를 공격하는 장면이다.

 …

 미키 사야카가 마도카를 공격하려 한다. 솔직히, 미키 사야카가 저 정도로 극단적인 방법을 동원할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마도카를 해치는 것도 감수할 만큼 나를 증오하고 있다는 것일까. 잠시 시간을 멈추고 마도카를 안전한 거리까지 이동시킨 다음, 사야카에게 감정이 실린 말을 건넸다. 이런 수단까지 동원하는 네가, 나와 다를 것이 무엇이 있냐고.

 “잠깐, 아케미. 너, 악마를 알고 있어?”

 미키 사야카의 반응은 전혀 예상 밖이다. 설마, 악마가 존재한다는 사실만 기억하고, 그게 나라는 사실은 아직 떠올리지 못했다는 건가? 진심으로 마도카가 악마일지 모른다고 생각했다는 건가? 감히 원환의 섭리를 의심하더니, 결국 이상한 결론에 다다랐나 보다. 하지만… 그렇다고 안심할 수는 없다. 여기서 내가 미키 사야카의 의심을 풀지 못하면, 사야카와 마도카는 반목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마도카의 행복이 위협받게 된다. 반대로 마도카가 악마가 아니라고 말해 버리면, 미키 사야카가 날 의심하게 되는 건 시간문제다. 둘의 기억을 모두 조작할 수도 있겠지만… 그러면 마도카의 상태를 더 불안정하게 만들 뿐이다. 내키지는 않지만, 지금으로서는 마도카가 악마가 아니라고 확언을 해 주는 것이 최선이다.

 …

 모든 감각이 순간적으로 차단된 후 다시 되돌아온다. 상당한 시간을 도약했다. 사야카가 처음으로 악마와 일대 일로 대면했던 장면이다. 

 …

 미키 사야카가 나를, 예상했던 시기보다 조금 빨리 찾아온다. 이번에는 사야카가 어디까지 기억해 냈는지 확인해 두어야 한다. 그에 따라서 대응을 달리 해야 하니까.

 “무슨 일로 여기까지 온 거지? 미키 사야카.”
 “글쎄, 기억났거든. 네가 악마라는 게.”

 미키 사야카가 바보가 아닌 이상, 자기 내심을 나에게 들키지 않으려 할 것이다. 사야카에게는 미안하지만, 나는 정보력에서 절대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다. 나에게는 사야카가 깨닫지도 못하는 사이에, 어디까지 기억해냈는지를 알아낼 방법이 있다.

 “악마가 누군지 알아냈으니, 너는 어쩔 생각이야? 미키 사야카. 처치할 생각이야? 단지, 악마라는 이유만으로? 생각해 봐, 미키 사야카. 지금 우리가 사는 이곳이, 그렇게 나쁜 세상이야?”   
 “…”

 내 결계 안에서 미키 사야카가 나에게 했던 말을 그대로 옮긴다. 사야카에게서 아주 작은 동요도 느낄 수 없다. 아무래도 내가 악마라는 사실만 기억해낸 모양이다. 그렇다면 사야카를 설득해 볼 여지가 있다. 부탁해, 미키 사야카. 내가 마지막 수단을 사용하는 일이 없게 해 줘…

 “…”
 “아케미 호무라, 너도 알고 있지? 네가 저지른 일이 옳지 않다는 걸 말이야.”  

 설득이 잘 진행되는 듯 했지만, 사야카가 마도카의 세계를 언급하는 바람에 모두 수포로 돌아갔다. 아무리 설득을 위한 거짓말이라도, 마도카의 희생을 감히 두 번씩이나 부정할 수는 없다. 결국 설득은 실패했다. 미키 사야카, 너도 정말 바뀌지 않는구나. 이렇게 된 이상, 나는 마도카의 각성을 막을 방법이 없다. 남은 방법은, 하나뿐이다. 

 - 무슨 일이 있어도, 호무라는 호무라인걸. 난 절대 못 본 척 하지 않아. -

 마도카가 원래 모습을 되찾으면 어떻게 될까? 마도카가 이런 나마저 구원해 주려 한다고 해도, 나는 더 이상 마법소녀가 아니기 때문에, 마도카에게 온전한 구원을 받을 수 없다. 그렇게 되면, 마도카는 자신이 ‘최고의 친구’를 완전히 이해해 주지 못했고, 그 때문에 ‘최고의 친구’가 악마가 되도록 하여 함께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는 죄책감을 얻는다. 물론 내가 악마가 된 것이 마도카의 탓은 아니다. 하지만, 마도카는 자책하고도 남을 아이이다.

 만약 마도카가 힘을 남용하면서까지 나를 완전히 구원하려 한다면, 다른 마법소녀들, 특히 미키 사야카와 충돌을 빚게 될 것이다. 그건 그것대로 마도카가 슬퍼할 일이다. 가능성은 낮지만, 마도카가 나를 버리는 선택을 한다면, 그건 마도카가 나에게 큰 배신감을 느꼈다는 것을, 그 자체로 마도카가 불행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떤 경우라도, 마도카는 이전보다 불행해진다.

 - 너와 한 번 더 만나고 싶다는 마음을 배신할 바에는… 난 어떤 죄라도 짊어질 수 있어 -

 마도카와 함께 하고 싶었다. 마도카를 보호하고 싶었다. 마도카를 행복하게 하고 싶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이런 생각을 이해해 줄 리 없었다. 그래서 악마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악마가 되고 아주 잠깐은, 모든 게 이루어졌다고 착각했다. 하지만, 악마인 나는 신인 마도카와 함께할 수 없었다.

 - …언젠간 너도 내 적이 되겠구나. 하지만 상관없어. 그래도… 나는 네가 행복할 수 있는 세계를 바라니까. -

 함께 하고 싶다는 마음은 포기할 수 있었다. 아프지만 참아낼 수 있었다. 멀리서 행복한 삶을 사는 마도카를 바라보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이대로 마도카가 행복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 그조차도 불가능하게 됐다. 내가 철저하지 못해서, 내가 바보 같아서, 마도카가 행복할 수 있는 세상을 유지하지 못했다. 그 뿐 아니라, 나로 인해 마도카를 더 큰 불행에 빠지게 만들게 됐다.

 그것만은, 내 어리석음 때문에 마도카가 더 불행해지는 것만은 절대로 용납할 수 없다. 나 때문에 마도카가 이전보다 많은 짐을 지는 일은 절대 있어서는 안 된다. 마도카의 불행을 막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인간으로서의 나와 마도카의 기억이 마도카의 머릿속에서 완전히 사라져야 한다. ‘최고의 친구’로서의 나는 마도카의 기억에서 완전히 사라져야 한다. 나는 절대 구원받을 가치가 없는 사악한 악마로만 기억되어야 한다. 나는 마도카의 ‘적’일 뿐이다. 마도카는 신으로서 자기가 해야 할 일을, 모두를 돕는 일을 했을 뿐이다. 그렇게 되어야 한다.

 인간으로서의 마도카가 가진 나와의 모든 기억을 없애야 한다. 신으로서의 기억이 아니니까, 지금의 마도카가 무의식에 가지고 있는 기억만 제거하면 충분할 것이다. 혹시 모르니, 미키 사야카와 모모에 나기사의 기억도 없애 놓는 것이 좋겠다. 나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니, 확실하게 해 둬야 한다. 미안해 마도카. 결국 나는 너에게 민폐만 끼치는구나.

 미키 사야카 앞에서 악마 연기를 하는 것은 수십 번도 더 연습해 봤다. 이젠 익숙하기까지 한, 모든 것을 포기한 표정 없는 얼굴을 하며 입을 연다.

 “뭐, 결국 네가 이렇게 나올 거라는 건 예상하고 있었어. 미키 사야카. 넌 항상 그랬으니까.”

 …

 암전 이후, 악마와의 마지막 전투 장면이 눈앞에 펼쳐진다.

 …

 모모에 나기사 기억봉인 착수에 성공했다. 마력이 상당히 소모된다. 효과를 영원히, 내가 소멸한 이후에도 지속시켜야 하니,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에너지가 들어간다. 예상한 범위를 넘지는 않았지만, 토모에 마미가 허무하게 기절해 주지 않았더라면 마도카와 사야카의 기억을 봉인하는 데 어려움이 많을 뻔 했다. ‘사랑이란 게 저래. 사람을 멍청하게 만들지’라며, 토모에 마미를 비난하는 척, 나 자신에게 냉소를 보낸다.

 “그리고… 여기 신께서 친히 악마를 상대하러 와 주셨네.”

 마도카 앞에서 평정심을 유지하는 것은 언제나 힘들다. 수없이 경험해 봤지만 도저히 익숙해지지가 않는다. 마도카를 쳐다보는 순간 모든 마음이 무너져 내릴 것만 같다. 그러지 않기 위해, 마도카에게 한 순간도 시선을 주지 않고, 일부러 독한 말을 전하면서, 계획보다 일찍 공격을 시작한다.

 몇 번의 유도 끝에 마도카의 기억봉인을 개시하는 데 성공한다. 마도카에게 내재된 힘이 강할 뿐 아니라, 조준하는 순간까지도 마도카를 똑바로 쳐다보지 못했기에 이번엔 예상보다 많은 힘이 들어갔다. 마법사용의 후유증과, 이제 마도카와의 인연이 모두 사라질 것이라는 생각에 잠깐 멍하게 서 있는 순간, 미키 사야카가 공격을 해 온다. 다행히 별 의미 없는 날개만 잘려나갔을 뿐이다. 오히려 잘 됐다. 이렇게 되면, 내가 공격을 받아서 힘이 약해졌다고 착각할 테니까.

 곧이어 사야카의 작전을 역이용함으로써, 사야카의 기억도 봉인하기 시작하는 데 성공한다. 깔끔한 공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알 수 없는 이유로 예상한 범위를 초과하는 마력이 소모된다. 마력이 거의 다 떨어졌다. 공격의 위력과 명중률이 형편없이 떨어진다. 기억 봉인이 완전히 이루어지려면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하다. 예전에 쓰던 무기들까지 모두 꺼내어 반격하지만, 점차로 수세에 몰린다. 남은 마력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너무 제한되어 있다. 위험하다. 

 위협사격이 유효사격이 되고, 유효사격이 위협사격이 된다. 반응속도도 심각하게 저하되어 있다. 아주 위태롭게 몇 번의 공격을 방어해 내지만, 결국엔 둘의 협공에 제압당하고 만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마도카와 사야카가 마지막 일격을 날리기를 주저하고 있다. 아마, 기억이 완전히 봉인되지 않아서일 것이다. 이제 일 분도 되지 않아 봉인이 완성될 것이다. 그러면 저 망설임도 사라지겠지.

 이제 정말 마지막이다. ‘마도카, 날 잊어야 해’ 속으로 끊임없이 되뇐다. 그만큼 제발 날 잊지 말아달라는 마음이 솟아오른다. 잊어야 해, 잊지 말아 줘, 양립할 수 없는 두 생각이 쉴 새 없이 뒤엉킨다. 마지막으로 한 번, 마도카를 마주보고 싶다. 마도카의 이름을 불러 보고 싶다. 하지만 그래서는 안 된다. 악마에게는 그것조차도 사치다. 하지만… 정말 한 번만이라도… 목소리가 나오려 한다. 마도카의 이름을 부르며, 날 잊지 말아 달라고 말하고 싶다. 그러나 참아야 한다. 눈물조차 보여서는 안 된다.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새어나오는 일이 없도록, 입술을 세게 깨문다. 피가 치아 사이로 새어나오면서 바닥으로 방울방울 떨어져 내린다. 산바람이 싸늘하게 불어온다. 마음을 마지막으로 다잡는다.

 ‘안녕, 마도카. 날 기억하지 마. 나와 있었던 모든 일, 잊어버려야 해. 더 이상 불행해지면 안 돼. 꼭, 행복해야 돼…’

 …

 뇌로 직접적으로 주입되는 신호는 여기서 끝난다. 호무라의 우호적인 행동, 호무라가 흘렸던 눈물에 대한 기억이 되살아나고, 호무라의 이상한 행동과 말들이 모두 이해가 간다. 머리가 아프다. 생각을 정리해 봐야 한다. 하지만 큐베는 그럴 틈을 주지 않고 사야카에게 질문을 던진다.

 “미키 사야카, 이제 어떻게 생각해? 여전히 아케미 호무라의 세계가 옳지 않다고 생각해? 카나메 마도카는 마법소녀들의 행복을 위해 세계를 바꿨고, 아케미 호무라는 카나메 마도카의 행복을 위해 세계를 바꿨어. 만약 네가 여전히 아케미 호무라의 세계가 옳지 않다고 주장하고 싶다면, 카나메 마도카 한 사람의 행복의 가치는 마법소녀 전체의 행복의 가치보다 낮다고 말해야 되겠지?”
 “…”

 사야카는 입을 열지 않는다. 이 질문에 그렇다고 답하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깨달았기 때문이다.

 “침묵해 봐야 소용없어. 알다시피, 그게 바로 우리 인큐베이터들이 처음부터 너희들에게 설명해 주었던 이론이야. 네가 아케미 호무라의 의도를 부정한다면, 정확히 같은 논리로 카나메 마도카의 의도 역시 부정해야만 해. 우주 전체의 수명연장이 가지는 가치는, 너희 인간 전체가 가지는 가치보다 월등히 높으니까. 우주의 수명이 가지는 의미를 이해하기 어려우면, 범위를 너희 인류로 한정해도 좋아. 우주의 수명은 너희 인류 전체의 운명과 직결된 반면, 카나메 마도카의 ‘구원’은 인류 중 극히 일부인 마법소녀의 운명과만 관련이 있지. 당연히 전자가 훨씬 우월하지 않겠어?”
 “우리들의 생명을 그런 식으로 가치매길 수는 없어…….”

 사야카는 힘없이 반론한다. 큐베가 어떤 논리로 이 반론을 무효화시킬지가 머릿속에 그려지고 있는 까닭이다.

 “모든 인간의 삶은 그 자체로 무한한 가치를 지닌다는 논리구나. 인간의 비합리적인 가치기준이지. 그런데 어쩌지? 그렇게 따지더라도, 아케미 호무라는 모든 사람의 기억에서 사라지고, 모든 인생의 기록이 말소된 카나메 마도카에게 삶을, 무한한 가치를 가진 것을 되돌려준 존재가 되어 버리는데?”
 “……”

 예상한 반격이다. 기운이 빠진 사야카가 대답을 하지 않자, 큐베는 근처 바위 위로 올라가 꼬리를 핥아 털을 다듬으며 말한다.

 “인간들이 가진 다른 어떤 기준을 적용해도 결과는 같아. 자유? 우주에 개념으로 고정되어, 마법소녀를 구원하는 일 말고는 어떤 간섭도 할 수 없는 마도카와, 한 인간으로서의 삶을 되찾아 자신만의 목표를 설정하고 나아가는 마도카 중 어느 쪽이 더 자유로운지를 논증해 달라고 하진 않겠지? 절차, 권리, 자유의지, 모두 마찬가지야. 각각에 대한 어떤 근거를 가져오더라도, 너는 ‘아케미 호무라의 세계도 옳다’는 결론과 ‘최초의 세계도 옳다’는 결론 중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어. 카나메 마도카의 세계로 돌아가야 할 당위성을, 너의 비이성적인 주관과 비논리적인 선호체계 외에서 찾을 수는 없다는 말이야.”
 
 사야카를 정면으로 쳐다보며, 큐베가 마지막 쐐기를 박는다.

 “진실을 되찾고, 정의를 수호하겠다고? 정말 영문을 모르겠어. 무엇인지도 모르는 걸 어떻게 찾아내고, 무슨 방법으로 수호하겠다는 거야?”
 “…우리를 괴롭히는 이유가 뭐야?”
 
 사야카가 고개를 푹 숙인 채 무기력한 목소리로 말한다. 큐베는 같은 말을 반복하지는 않겠다는 듯, 사야카를 외면한 채 주제를 다른 쪽으로 돌린다.

 “만약 지금 우리가 가진 힘을 그대로 보관하며 필요할 때마다 꺼내 사용할 수 있다면, 굳이 이 힘을 소모해서 이전의 세계로 돌아갈 필요가 없어. 예전 세계의 에너지회수 효율이 높기는 하지만, 손익분기를 넘기기 위해서는 말도 안 되는 시간이 필요하거든. 하지만, 우리는 인간이 가진 인과, 그리고 감정 에너지를 마음대로 사용할 수 없어. 너도 잘 알고 있듯이, 우리가 그걸 사용하려면 희망과 절망의 상전이를 통해야만 하지. 쉽게 설명하면, 지금 우리가 가진 에너지는 석유와 같아. 정제하고 불을 붙이지 않는 한 무가치한 액체에 불과한 거야.”

 말이 길어질수록, 큐베가 설명을 하는 의도는 갈수록 미궁으로 빠져든다. 듣는 이를 더욱 혼란에 빠뜨리기라도 하려는 듯, 큐베는 바위 위를 불규칙적인 주기로 빙글빙글 돌면서 말을 잇는다.
 
 “이 다크 오브의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사용하려면, 사랑에 반대되는 감정을 찾고, 아케미 호무라를 부활시킨 다음 그런 감정을 가지도록 유도해야 할 텐데, 이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지. 지금의 우리는 다크 오브의 에너지를 폭발시켜서, 그걸 한 번 비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것에 만족할 수밖에 없어. 인류가 원자력 발전소보다 원자폭탄을 먼저 만든 것처럼 말이야. 그 폭발을 최대한으로 활용하는 방법은 아까 우리가 설명한 것처럼, ‘진실’한 세상으로 돌아가는 것이지. 안타깝게도, 우리가 회수할 수 있는 에너지는 아예 새로운 법칙을 창조하기에 충분하지 않거든.”

 큐베는 바위 위에서 우뚝 멈춰서더니, 다시 섬뜩한 시선으로 사야카를 응시한다.

 “마지막으로 문제가 되는 건, 이 에너지를 어떻게 폭발시키느냐는 거야. 일단 절망 에너지를 활용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하겠지. 자, 절망 에너지 중에, 다크 오브를 폭발시키기 가장 적합한 것이 무엇일까? 사랑과 희망이 겹칠 수는 없으니, 인과라는 측면에서 유사점이 많을수록 좋겠지. 연결된 인과선이 폭탄의 도화선처럼 작용해 줄 것이니까. 자, 카나메 마도카가 이제 여행에서 돌아오겠군. 미키 사야카 너보다 알려 줘야 할 내용이 많아서 조금 늦었네.”
 “…아”

 사야카는 짧은 탄식을 내뱉는다. 큐베의 말에 놀아나는 동안, 마도카의 상태를 확인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호무라의 예측은 정확하다. 마도카는 절대 호무라의 진의를 알아서는 안 됐다. 신 마도카라면 그로 인한 충격도 충분히 감내할 수 있겠지만 (그래서 약간의 마음의 상처를 입는 데 그치겠지만), 지금의 인간 마도카는… 분명 절망할 것이다. 최고의 친구를 이해하지 못해 이런 운명에 처하게 한 자신을 용서하지 못할 것이다. 사야카는 고개를 천천히 돌려 마도카를 쳐다본다. 지금 마도카의 좌절하는 모습, 마도카의 슬픈 표정을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위로하고 진정시켜 줄 엄두조차 나지 않는다. 그러기에는 마도카의 절망이 너무 깊고, 사야카의 심리도 너무 불안정하다.

 “그래. 카나메 마도카. 너는 신으로서 모든 마법소녀를 마녀가 되는 운명에서 구원했지만, 정작 네 최고의 친구인 아케미 호무라에게는 마녀가 되는 것보다 가혹한 운명을 선사했지. 심지어 호무라의 마지막 희망마저도, 다크 오브를 나한테 넘겨주는 것으로 산산이 깨부숴 버렸어. 이렇게 만든 건 누구의 탓도 아니야. 모든 마법소녀의 구원이라는 이치에 맞지 않은 소원을 빌고, 끝까지 자비와 구원이라는 비합리적인 개념에 집착한 카나메 마도카, 너의 탓이지. 멀리 돌아 왔지만, 결국 모든 일은 순리대로야. 기적을 바란 대가는, 절망으로 주어지는 법이지.”

 마도카의 소울 젬이 급속도로 탁해지고 있다. 큐베를 막아야 한다. 하지만, 어떤 방법도 생각이 나지 않는다. 무기력하다. 하지만, 사야카는 극한에 몰린 상황에서도 마지막 힘을 짜내 희망의 끈을 잡아 본다. 

 ‘아니야. 아직 희망이 있어. 호무라는 원환의 섭리에 손을 대지 않았어. 큐베의 지금 행동은 마도카의 각성을 도울 뿐, 자승자박이야. 여기 있는 마도카가 완전히 절망에 빠지면, 원환의 섭리가, 진짜 마도카가 찾아올 거야.’

 사야카의 생각이 끝나기가 무섭게, 큐베가 그것쯤은 다 읽고 있었다는 듯 말을 건넨다.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겠어. 미키 사야카. 불행하지만, 이미 그 점도 우리 계산 안에 있어.”
 “뭐라고?”
 “원환의 섭리는 틀림없이 이 우주에도 존재해. 카나메 마도카의 소울 젬이 절망으로 완벽히 오염되더라도, 원환의 섭리에 의해 인도되는 것이 먼저겠지. 하지만 말이야. 미키 사야카. 우리 인큐베이터는 이미 원환의 섭리로부터 소울 젬을 격리시켜 본 적이 있어.”

 순간, 토모에 마미의 조언이 떠오른다.

 - 아군이 적군보다 분명히 약한데도 지연작전이 잘 먹힌다면, 느긋하게 싸우는 것이 오히려 적에게 유리한 게 아닌지 의심을 해 봐야만 해 -

 “물론, 아무리 시간을 번다고 해도 예전과 같은 장치를 재창조하기는 불가능하지. 하지만, 이 세계에서는 원환의 섭리가 다크 오브의 힘을 뚫고 작용해야만 해. 거기다가, 우리는 영구적 격리가 아닌, 한 순간의 불꽃을 필요로 할 뿐이야. 즉, 원환의 섭리가 작용하는 걸 찰나의 순간만이라도 늦출 수 있으면 충분하다는 거지. 이렇게 유리한 조건 아래라면, 계획을 실현하는 데 아무런 무리가 없어.”

 다음 순간, 형언할 수 없는 슬픔이 담긴 비명소리와 함께, 인간 카나메 마도카의 소울 젬이 절망에 완전히 오염되어 깨진다. 거의 동시에 또 다른 마도카, 신으로서의 마도카가 강림하는 모습이 사야카의 눈동자에 살짝 비친다. 그러나 큐베가 만들어낸 미시적인 지연은, 큐베가 희망과 절망의 상전이에서 나오는 에너지를 가로채 도화선에 불을 붙이기 충분한 시간을 제공했다.

 세계가 회귀한다. 누구의 손도 닿지 않은, 최초의 세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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