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별' 시청소감을 보면 드라마같은 시트콤이라는 말들을 자주 한다. 분명 내가 보기에도 그렇고.
이것은 인물의존도보다 극중 설정에 대한 진행이 매끄럽게 이루어지는 점 덕분이고 작품으로 보기에 잘 만들어졌다는 증거지만,
반면으로 시트콤으로써 흥행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한 답이 되기도 한다.
서사가 강해질수록 필연적으로 인물은 그 도구가 될 수밖에 없다. 이야기는 재밌지만 기존 시트콤, '순풍산부인과'의 박영규나 오지명처럼
말 한마디만 내뱉어도 빵빵 터지는 캐릭터성은 많이 억압되어 있다. 즉각적인 반응(웃음)이 필요한 시트콤에서 템포가 느린 것은 독이다.
그리고 시트콤의 특성상 분석까지 하며 이야기를 곱씹을 시청자는 많지 않다.
하지만 그들이 당연하고 옳다. 라면 먹으려고 동네 분식집 온 사람에게 면도 뽑고 육수도 내야 하니, 1시간만 기다려달라 하는 분식집은 없지 않은가.
하루하루 퇴근하고 현실을 잊을 웃음을 찾는 시청자를, 작품도 모르는 무지렁이 바보라고 해야 하는가?
시청률 대박을 넘어서서 수 년간 우리 삶의 일부분을 지배했던 순풍이나 하이킥에 결코 뒤지지 않는 출연진과 제작지원을 등에 업고도
1%라는 시청률과 미미한 관심을 받는 것은 분명 성공은 아니다.
그리고 그것은, 시청자의 요구와 제작자의 장인정신이 충돌하는 바로 그 지점에, 감자별이 서있기 때문이다.
1. 감자별은 분명히 이 극의 가장 큰 소재이며, 결말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 하늘에 아무렇지도 않게 두번째 달처럼 떠있는 감자별은, '오늘의 행성' 으로 작은 헛웃음을 주는 것 외엔 너무도 조용히 묻혀지고 있다.
타이틀을 장식할 정도의 소재가, 초반 극의 흐름을 주도한 것을 빼고는 너무도 조용히 지구궤도를 선회할 뿐.
전세계적으로 중대한 일이기 때문에 중간중간 이게 움직임을 보인다는 것은 너무 영향이 크기 때문에 납득은 간다.
애초에 결말이 정해져 있다는 PD의 말을 생각해보면, 이 시트콤의 시작과 끝을 감자별이 장식하기 위해 조용히 잠을 자고 있을 뿐이다.
중간 수영의 상상에 외계인이 등장하는 점 등을 보면, 생뚱맞게 '지구를 지켜라' 같은 결말이(그렇게까지 비극적이진 않겠지만) 나올 수도 있다.
물론 가능성은 낮음
2. 결말은 해피엔딩만은 아닐 것이다
- 김병욱PD는 수많은 유행어와 사회적 신드롬을 일으킨 대작 시트콤들의 제작자였지만, 본인은 시청자의 요구에 일회성 웃음을 그릴 수밖에 없는
기존의 시트콤을 원하지 않았던 듯하다. 흥행에 더욱 민감한 공중파를 떠나 케이블에서 작품을 완성하고 싶다는 본인의 인터뷰를 보면,
대번에 극중인물에 팬덤을 형성한 시청자들의 요구에 반하여 얼핏 이전 진행과 동떨어지게 보이는 '지붕킥'의 엔딩이 떠올라 버린다.
그 엔딩은 작품외적으로 김병욱PD의, 현실보다도 비참하게 계층갈등을 표현하려는 의지가 다른 어떤 것보다도 와닿았었고,
그가 케이블로 옮기면서까지 완성하려는 '어떤 것'. 그 불완전했던 카타르시스는 감자별에서 완성될 가능성이 높다.
3. 모호한 선과 악(노씨일가는 선이 아니며, 오이사도 악뿐은 아니다)
- 1회때부터 노씨일가는 인간적으로는 나쁘지 않으나, 뒤가 구린 상류층의 모습으로 보여졌는데, 얼핏 악역으로 보이는 오이사가
노씨일가에 품는 뜻 모를 적대감은 과거 공들인 기획안이 화장실 쓰레기통에서 발견된 것으로도 다 설명이 되지 않을 정도이다.
너무도 현실적인 계층구분을 떠나, 인물들의 관계가 수평적에 가까운 감자별 특성상 노씨일가와 진아아빠(강남길), 오이사가 얽힌
과거 이야기가 후반부 급격하게 드러날 것이며 이는 오이사의 악행에 동기부여, 노씨일가의 위기 혹은 몰락, 나진아와 노씨일가의 감정선과
그로 인한 노민혁,노준혁과의 관계 변화 등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지금의 오이사는 동기가 너무 꼭꼭 숨겨진 악역으로 보일 뿐이지만, 항상 그는 대사에서 많은 것을 넌지시 흘리고 다닌다.
4. '절대선'인 극강의 여주인공 나진아
- 이어서 말하자면 나진아라는 캐릭터가 이 작품 속에서 얼마나 애정을 듬뿍 받고 있는가가 보이는데, 모든 이들이 각자 입장에서 못난 면을 보일 때
그녀는 소위 '망가짐'으로써 웃음을 줄 때 외에는 작품내에서 유일한 절대선이다. 가난하면서 자존감을 잃지 않고, 약자임에도 더 약자를 보살피며
어린이를 이해할 정도의 동심과 어미새같은 자애로움이 공존하는 동시에 누구보다도 현실적이며 능력 면에서도 떨어지지 않는다.
기존 시트콤에서 여러 여 조연들이 맡았던 지분들을, 이 작품에서는 대부분 여주인공인 나진아가 수거해 갔기 때문에
그녀는 굉장히 입체적이고 다양한 매력을 가지고 있으며, 그러기 위해서 필연적으로 성숙하고 선한 인물이 되었다.
(여진구가 맡은 노준혁 캐릭터 또한 선하지만, 인간적인 매력이 상당 부분 결여된 캐릭터라 제외한다)
5. 노민혁은 나진아와 이루어질 수 없다.
- 노준혁이나 나진아가 외계인이라거나 하는 정말 생뚱맞은 결과가 아닌 이상, 노민혁은 노준혁을 이길 수가 없도록 장치해 놓았다.
태생부터 살아온 것, 현재의 위치까지 모두다 극단적이며 본인의 노력만으로는 뒤집을 수 없을 정도의 격차가 있는 나진아와 노민혁.
그 벽은 노민혁이 7살 동심으로 돌아가 나진아가 보모역할을 하는 때에조차도 깨지지 못할 정도로 이 극은 지극히 현실적이다.
김병욱PD의 심리 기저에 정말로 계층갈등의 고발에 대한 사명감 같은게 깔려져 있지 않을까 할 정도로...
이건 신데렐라 이야기는 아니다. 나진아가 누구와도 이어지지 못할 가능성은 있지만, 노민혁과 이어질 가능성은 정상적으로는 없다.
6. 쪼잔할 정도로 인물을 파고들어 표현하는 블랙코미디
- 감자별에 대해서 얘기하면서도 느낀 것이지만, 소행성 충돌이나 길거리에 나앉는게 심각한 문제라는 것은 일곱 살이 보아도 안다.
'아, 그건 너무 큰일이야' 라며, 누가 봐도 심각한 문제를 항상 심각하게만 이야기하는 것은 신파가 될 뿐이다. 그것도 감동적이지도 않은.
이야기의 기법에 있어서도 분명 그것이 맞는 것이고 굉장히 세련된 연출이다(물론 맥을 짚을 땐 진지하게 다루어야 한다).
분명히 헛웃음을 픽픽 흘리다가도, 60만원에 마음졸이다 소리내 엉엉 울던 진아엄마 길선자(오영실)나, 고백을 하면서도 너무도 담담하게
"차고에 얹혀살면서 하는 말은 '화장실 좀...' 뿐인 주제에" 라는 진아의 모습 등에서 칼날은 현실보다 예리하게 벼려져 가슴을 후벼판다.
7. 비현실적인 인물을 떠나 현실적이 된 시트콤
- 기존 시트콤이 어땠는가를 생각해보면, 인물이 엉망으로 망가지며 큰 웃음을 이끌어내는 것의 반복순환이었다.
마치 MSG를 더 많이 넣기 경쟁을 하는 중국집이나 맵고 짜게 기획해 소비자의 손길을 얻는 마트의 인스턴트 라면처럼.
작가와 연출의 머리가 비상하게 번뜩인 몇 편은 그렇지 않지만, 항상 그런 에피소드를 그릴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극중 인물이 현실보다 우스꽝스러운 특징이나 성격들을 지니고 있어야 하는데, 이는 현실에서 우리가 매일같이 맛보지 못하는 자극이다.
하지만 감자별의 인물들은 장르를 감안해본다면 서사에 꽉 잡혀있다. 드라마같다는 이유는 바로 이것 때문이다.
요즘 인기때매 압박이 들어오는지 곁다리 에피소드가 점점 많아지는데, 가던 대로 정체성을 지키며 갔으면 좋겠다.
2/3가 지난 시점에서 감자별은 이미 흥행성보다는 작품성을 위해 하는 것에 가깝고, 코믹 멜로드라마지 유행어를 낳는 거위는 아니다.
처음 감자별을 봤을 때 '대체 작가가 누구길래 이렇게 실감나지?' 라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지금은 PD의 연출이 빛을 발한 거라고 많이 생각하지만...
감자별에 애착을 가지고 있고, 개인적으로는 이대로만 끝난다면 시트콤 중에 최고였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좋은 말만 너무 썼을지도 모르지만, 이토록 좋은 작품이 묻혀있는 채 끝나기엔 아쉽기에 적어보는 글입니다.
만약 공중파에서 이런 작품이 나왔고 홍보도 더 잘됐었으면 하는 아쉬움을 지울 수가 없네요.
분명 흥행을 위해 필요한 요소들, 특히 웃음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지만 저처럼 헤비하게 몰아서 시청하시는 분은 기존 시트콤보다
더 즐거움을 느끼실 거라고 강력히 추천합니다.
무엇보다도 하연수가 매력터지기에 마지막은 하연수 사진들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