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민족의 역사가 어떤것이냐 바로 얘기하게 전에 '왜 우리나라 역사가 왜곡 되었느냐?' 이 부분을 얘기하지 않으면 지금부터 얘기하는 우리 민족의 9천년 역사를 얘기해도, '저거 뭐 다 허공에 뜬 구름 같은 얘기 아니냐?'하고 믿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기 때문에 역사의 왜곡 과정을 꼭 설명 드려야 됩니다. 그러면 우리나라 학생들이 학교에서 배우는 삼국사기에 대해서 먼저 시작해 보겠습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은 삼국사기가 우리민족의 주체적인 입장에서 쓰여졌다고 보지 않을거예요. 그런 얘기는 하도 많이 하니까요. 삼국사기는 철저하게 김부식이 중국 사람의 입장에서 역사를 쓴 역사책이에요. 놀라운 얘깁니다. 우리 민족 최고의 사서인 삼국 사기가 우리나라 사람이 썼지만 그 정신은 중국 사람의 입장에서 썼다 이거예요. 그런데 그 김부식의 혈통을 보면 김부식의 이름 속에 이미 사대주의가 들어가 있음을 알 수 있어요. 김부식이 셋째 아들인데 김부식의 아버지가 김근이라는 사람입니다. 김부식의 아버지 김근이 중국 송나라에 사신으로 갔다 오다가 중국에는 소식, 소동파, 동생인 소철, 이들이 유명하니까 자기 셋째 아들의 이름을 소식에서 '식'자를 따서 김부식이라고 지었어요. 소식의 식자를 따서 지은겁니다. 그리고 넷째 아들은 소철의 철자를 따서 김부철이라고 지어요. 사대주의 정신이 자기 아버지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김부식은 잘 알다시피 우리 나라의 국풍파를 없애버리는 데 앞장 선 사람입니다. '묘청의 난'을 진압하는 데 나가잖아요? 그리고 나서는 삼국사기를 쓰게 됩니다. 그런데 김부식은 태어나면서 부터 역사를 아는 사람이 아니니까 역대의 모든 역사서를 전부 참고해 가지고 책을 쓰게 됩니다. 그렇게 해서 책을 쓰게 되는데 '수서'에 이런 구절이 있어요. 수서는 당나라의 '위징'등이 썼어요. "고구려가 교오불공해서 제장토지라" 수나라와 고구려는 많은 전쟁을 했잖아요? 612년의 그 전쟁은 대단히 유명하구요. '고구려가 교만하고, 오만하고, 공손하지 않아서 수양제가 장차 토벌을 하려고 했다.' 이렇게 썼어요. 중국 사람의 입장에서는 그렇게 써야지요. 고구려는 자기의 적대국이니까. 그런데 삼국사기에 어떻게 적혀 있냐면 고구려를 '아(我)'자로 바꿔놔요. '아(我)가 교오불공해서, 제장, 이걸 상장토지라. 임금께서 장차 토벌 하려고 했다.' 중국좀들은 고구려를 이렇게 써도 되지만 김부식은 우리나라 사람인데 그런 식으로 썼다는 거예요. 이게 중국 사람 입장에서 쓴거지, 우리나라의 입장에서 쓴 글이 아니에요. 예를 들어 자기 할아버지하고 남의 할아버지가 싸웠다고 그럽시다. 그런데 우리 할아버지가 교만하고 오만하고 공손치 않아서 남의 할아버지가 우리 할아버지를 치려고 했다. 자기가 역사를 쓰면서, 우리 할아버지가 교만하고 오만해서... 그렇게 쓰는 것과 똑같은 거예요. 국가간, 민족간에 있어서는 서로 대등한 관계입니다. 그런데 삼국사기가 전부 이런 식으로 되어 있어요. 삼국사기라는 것이 이런 정도로 그 주체성을 비아(非我)적인 입장에서 역사를 기술하고 있습니다. 그 다음에 진덕여왕 4년에 중국의 연호를 가져다가 썼거든요. 거기다가 자기가 주석을 달아 놨어요. "옛날에 법흥왕이 연호를 스스로 썼는데, 아, 편방의 소국으로서 왜 연호를 쓰냐? 당태종이 꾸지람을 했는데도 연호를 고치지 않다가, 650년에야 고종의 연호를 갖다 쓰니까 '과이능개라'. 허물을 능히 잘 고쳤다고 할 수 있도다." 이런 식으로 써놨어요. 그건 정신병자예요, 정신병자. 역사라는 것은 있는 그대로 기술하면 되는 거지. 그건 중국의 속국이 안 돼서 안달하는 사람 아닙니까? "왜 진작 연호를 버리지 않았느냐? 꾸지람을 듣고서도 못 버리다가, 이제 연호를 쓰니까 참 잘 됐다."라는 거예요. 이런 정도의 정신배기라면 이건 나라를 가지고 중국에 걸어 들어가서 나라를 갖다 받칠 사람이에요. 민족의 개념이 없어요, 민족의 개념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