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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적의 고려군 12인 결사대 몽고군 격퇴
게시물ID : humordata_74660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대한독립만세
추천 : 10
조회수 : 1262회
댓글수 : 7개
등록시간 : 2011/03/07 08:58:44
진짜 대단하다. 이것이 진정한 민족정신이요. 애국정신이다.
멋지잖아요? 전 이런 것이 좋더라구요. 

참고로 김경손 장군
본관 경주. 초명 운래(雲來). 1231년(고종18)에 정주분도장군(靜州分道將軍)이 되었다. 이때 몽골군이 침입하자 결사대 12명을 거느리고 분전 격퇴하였다. 그러나 뒤이어 적의 대군이 쳐들어오자 귀주(龜州)에 가서 병마사 박서(朴犀)의 휘하에 들어갔으며, 우세한 병력으로 성을 포위하고 밤낮으로 공격하는 몽골군과 20일간의 분투 끝에 마침내 격퇴하였다. 

1233년 대장군 ·어사대지사(御史臺知事)를 거쳐 1237년 전라도 지휘사(指揮使)가 되어 나주성(羅州城)에 있을 때, 적도(賊徒)들을 규합하여 백적도원수(百賊都元帥)라고 자칭하며 광주(光州) 등지의 주현(州縣)을 수중에 넣고 세력을 떨치던 이연년(李延年)에게 포위되었다. 그러나 이에 별초(別抄) 30명을 이끌고 그들과 싸워 이연년을 죽이고 패주시켰다. 뒤에 추밀원부사(樞密院副使)가 되어 더욱 민심을 얻게 되었다. 이에 권세를 잡은 최항(崔沆)의 시기를 받아 1249년 백령도(白翎島)로 유배되었다가, 2년 후 최항이 계모와 계모의 아들 오승적(吳承績) 등을 죽일 때, 그들과 인척관계라고 트집잡아 바다에 던져 죽임을 당하였다. 
[출처] 김경손 [金慶孫 ] | 네이버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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