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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의 매국적 외국기업 후원기사
게시물ID : sisa_7469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크리트
추천 : 18
조회수 : 670회
댓글수 : 11개
등록시간 : 2009/09/08 13:13:47
조선일보의 매국적 외국기업 후원기사
선경 비디오테이프, 녹십자 백신 개발 비사

아직도 국내에서는 대한민국의 국력이나 실력에 대한 자신감이 많이 부족해 보인다. 외국생활이 10년을 넘다보니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조국의 모습이 너무나 자랑스러운데도 정작 국내에 계시는 지인들과 얘기를 나누다보면 외국에 비친 조국의 모습보다는 한 10년쯤 감이 뒤져있음을 종종 보게된다.

가령 지난 2007년 한국은 세계지적재산권기구(WIPO) 특허협력조약(PCT)의 특허출원 순위 4위 국가가 되었다 (링크). 이제 우리나라 앞에 있는 국가라곤 미국, 일본, 독일 정도이다.

2003년 7위, 2004년 6위, 2006년 영국을 제치고 5위, 2007년 프랑스를 제쳐버리고 4위로 도약한 거다.

DJ, 노무현 정부의 강력한 과학기술 지원 정책에 힘입어 일취월장했다고 보면 틀림이 없을 거다. 하지만 이런 과학기술 발전을 모두 DJ, 노무현의 공으로만 돌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멀리는 박통시절부터 폭발적 공대증설과 국내기술 개발에 정부차원의 대대적 지원 그리고 외국기술과 경쟁이 붙을 경우 과감한 국내기술보호정책을 아끼지 않은 덕도 감안해야 할 거다.

박통시절 예화를 하나 들어 보겠다.


1) 선경의 비디오테이프 생산기술 개발 비사

1970년대 대표적 국제기술중에 하나를 꼽으라고 한다면 폴리에스테르필름 생산기술을 들 수 있다. 지금이야 VHS 테이프가 역사의 뒷편으로 찌그러들어가 있지만 당시에는 소니의 베타 테이프와 반대진영의 VHS 테이프를 생산하는 원천기술인 폴리에스테르 필름 생산기술은 전세계에서 4개국 7개사 정도가 그 기술을 확보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나날이 비디오테이프에 대한 수요는 늘고 덩달아 주로 일본을 중심으로 한 수입물량도 장난이 아닐 정도로 증가하던 시절이다.

지금은 SK로 이름이 바뀐 당시 선경은 처음에는 외국기술도입을 추진했지만 모두 거절당했다. 하기사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당시 국제 폴리에스테르 필름 시장은 매년 국제수요가 20% 이상 증가하고 있어서 생산기술을 확보한 회사들에게는 막대한 수익을 보장해 주고 있던 기술인데... 그런 기술을 한국과 같은 잠재적 경쟁자에게 넘겨줄 이유가 없었다.

결국 선경은 KIST와 손잡고 자체 기술개발에 회사의 운명을 건 대대적 투자를 단행한다.

당시 개발과정이 얼마나 힘들었는지에 대한 일화가 있다 (선경사보 1993년 4월호)

공장을 건립하고 시험제품을 생산해 내는데.. 생산 족족 실패만 계속되어 나중엔 폐필름이 쌓이고 쌓여 공장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높이 쌓이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더불어 개발에 너무 많은 자금이 투입되어서 나중에는 월 4%의 고리사채까지 끌어다 쓸 정도로 회사의 사정이 악화되었다.

그런데 만 2년을 생으로 고생을 한 끝에 마침내 1977년 12월에 제대로 된 폴리에스테르 필름이 생산된다. 고생끝에 낙이 펼쳐지는 순간인데.....

바로 그 순간에 일본의 뒤통수 치기가 들어온거다.

선경이 자체 기술로 폴리에스테르 필름 생산기술을 확보했다는 정보를 입수하자 일본의 데이진이 삼성의 제일합섭에 폴리에스테르 필름 생산기술을 이전해 주겠다고 제안을 한거다.

당시 국내 분위기도 반반이었다. 선경의 기술을 과연 믿을 수 있냐? 차라리 지금 일본의 기술을 들여와 국내 수요라도 자급자족하자... 는 파와 국내개발 기술을 보호해야 된다는 파가... 팽팽하게 둘로 나뉜 상태였다.

결국 박통은 선경의 손을 들어줬고 기술개발촉진법에 따라 선경의 기술을 4년간 보호해 주기로 했다.

이 조치가 선경에게 얼마나 큰 복덩어리였냐하면 이 기간동안 폴리에스테르 필름으로 벌어 놓은 돈이 나중에 대한석유공사를 인수해서 선경이 국내 굴지의 재벌로 도약하는 종잣돈이 되었다는 게 정설이니 말이다. 더불어 그 당시 세팅된 기술개발 인력이 이후 선경의 기술력의 모태가 된 건 말할 나위도 없고 말이다 (관련자료 링크).

박통이 독재자로 욕은 먹지만 저런 국내개발기술에 대한 보호조처는 칭찬받아 마땅하다.


2) 녹십자의 독감백신 생산기술 개발

이런 식으로 외국 기술을 들여와 국내개발 기술을 한방에 날려 버릴려는 시도는 노무현 정부 당시에도 있었다.

이미 1995년에 독감백신 생산기술을 개발한 녹십자가 설비자금이 부족해 거의 10년을 손가락만 빨고 있던 시절인 2006년 세계적인 제약회사인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사가 경기도에 독감백신 생산공장 건립을 제안한다.

멀쩡히 국내개발 기술이 있는데 연간 5천만 도스분량의 독감백신 생산설비를 도입하려는 찰라에 노무현 정부는 정부지원금 162억원을 투입해서 녹십자로 하여근 전남 화순에 연간 2천5백만 도스분량의 독감백신 생산설비를 건립하게 만들었다. 덕분에 올해 3월에 완공된 이 공장을 통해 국내에도 다른 외국 선진국들과 비슷한 시기인 11월 중순경에 500만명 분량의 신종플루 백신 공급이 가능하게 되었고 말이다. 국내 생산 독감 백신의 경우 다국적 제약회사들의 백신보다 불순물의 함량이 1/3에 불과할 정도로 기술력도 남다르다.


사진출처: 이투데이 (링크)

그런데 9/4일 조선일보에는 GSK가 그 당시 국내에 독감백신 생산공장을 건립하려 했는데 노무현 정부의 반대로 무산되었다고 비판하는 기사가 실렸다 (링크).

박통시절처럼 법으로 4년씩 보호해줄 형편은 안될 망정 명색이 국내 제1의 신문사가 멀쩡히 국내개발 기술로 국내 수요를 충당하는 독감백신 생산회사를 제쳐놓고 외국계 독감백신 생산공장의 도입을 도와주는 꼴은 또 무엇이란 말인가....

이미 녹십자의 독감백신생산 공장으로 경제낙후지역이던 화순에는 연간 3천여명의 신규일자리가 창출되고 매년 경제이익도 1500억원 수준에 이르는데 말이다.

과연 저러고도 조선일보는 박통시절의 향수를 못잊는다는 말을 할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다. 정말 조선일보는 보수주의 신문사도 아닌 것 같다. 박통이 오늘날 조선일보가 써대는 기사들을 본다면 어떤 표정을 지을지 궁금하기 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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