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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삶]‘정조의 문체’를 거역한, 글쓰기의 자유인 ‘이옥
게시물ID : readers_748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릴케
추천 : 1
조회수 : 291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3/05/26 16:55:28
글쓰기와 반시대성, 이옥을 읽는다 
 채운 지음 | 북드라망 | 312쪽 1만6000원

 배웠다 하는 관리들이 밤새 하는 짓거리라니…. 조선 정조 11년인 1787년의 일이다. 예문관에서 숙직을 하던 김조순과 이상황은 <평산냉연>을 탐독하다가 정조에게 발각됐다. 평·산·냉·연이라는 네 명의 꽃미남과 꽃미녀들이 등장하는 청나라의 유명한 연애소설이다. 기가 막힌 정조는 그 책들을 다 불태워 버리도록 명하고 잡서를 보지 말도록 경계한다. 바로 문체를 바른 곳으로 돌린다는 ‘문체반정’의 시작이다.

 정조는 계몽군주로만 알려져 있으나 완고한 주자학자이기도 했다. 성리학을 집대성한 주자의 문장론은 ‘도본문말(道本文末)’로 요약된다. 문은 어디까지나 도를 표현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정조 또한 문체에 유난히 엄격했다. 정조는 당대의 문체가 진지함과 실용성을 잃고 우울한 정서가 과도하게 표현되거나 상식을 벗어나 치우쳐 있으며 경박하다고 수차례 한탄했다. 

 그 모두가 명말청초의 패관잡설(항간에 떠도는 자질구레한 이야기) 때문이라며 관련 서적 수입을 금지하기도 했다. 반면 “시대를 아파하고 세속을 분개하는 내용이 아니면 시가 아니다”라고 했던 다산 정약용의 견해야말로 정조의 생각에 부합했다.

 그런데 이옥(1760~1815)이라는 ‘한미한 유생’은 정조의 이 같은 방침에 대놓고 몇 번이나 ‘개긴다’. 1792년 10월 처음으로 정조에게 문체를 지적당한 이후 하루에 반성문으로 시 50수씩 쓰는 것도 모자라 아예 ‘충군’에 처해진다. 죄인을 군역에 복무하게 하는 제도로 유배나 다름없는 가장 엄한 형벌 중 하나다. 이후 다시 과거를 치렀으나 다시 문체 때문에 충군에 처해진다. 별시 초시에 응시해 수석을 차지했지만 정조에 의해 꼴찌로 강등당하기도 한다.

 도대체 문체가 무엇이길래 그렇게 지독히도 고집했을까. 문체는 단순히 형식적인 수사학이 아니었다. 동아시아에서 읽고 쓴다는 것은 옛글에 담긴 전통과 지배적 담론을 몸으로 익히고 그것을 재생산하는 과정을 의미했다. 고문의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자질구레한 것들을 멋대로 써내려간 이옥의 글은 성리학자들의 눈에 마뜩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 예컨대 무엇이 진리인가를 따지는 글은 어떤 진리가 있다는 건 인정하는 꼴이다. 그런데 이 담론 바깥에서 이뤄지는 진리 찾기와 무관한 담론들은 진리 자체의 존재를 의문시하고 나아가 그 담론 자체를 붕괴시킬 수도 있다. “어떻게 쓰는가 하는 문제는 결국 무엇을 쓸 것이냐는 관점의 문제”이며 “새로운 사상은 언제나 새로운 글쓰기를 싣고” 온다.

 만약 ‘글의 모범’이 있다면 ‘느낌의 모범’ 혹은 ‘정서의 모범’도 있어야 한다. 누구나 말이 안되는 걸 안다. 이옥의 글은 옛글을 모방하는 대신 ‘세계’를 모방했기에 생동감이 넘쳤다. 이옥의 문장을 두고 벗 강이천은 “붓 끝에 혀가 달렸다”고 했다. 이옥이 문체를 버릴 수 없었던 이유도 “보라는 대로, 봐야 하는 대로 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보통 인간, 지식인, 남자/여자, 아이/어른 등 특정한 위치와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글을 쓴다. 그렇게 조망한 세계가 유일한 세계의 모습이라고 확신한다. 그러나 이옥은 때론 시정잡배의 눈으로, 때론 인간의 눈을 벗어나 하찮은 벌레나 미물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벌레의 세계에서 보면 인간이 움켜쥔 신념이나 가치, 탐욕은 초라하기 이를 데 없다. 무의미한 일상을 나열해 자칫 무가치하게 느껴질 수 있는 이옥의 글이 빛나는 지점이다.

 이옥은 “천지만물에 대한 관찰은 사람을 관찰하는 것보다 더 큰 것이 없고, 사람에 대한 관찰은 정을 살펴보는 것보다 더 묘한 것이 없고, 정에 대한 관찰은 남녀의 정을 살펴보는 것보다 더 진실한 것이 없다”고 말한다. 그의 글에는 오십대 퇴기와 이십대 청년의 로맨스가 등장하고, 시집갈 날을 받아놓고 좋아서 어쩔 줄 모르는 노처녀의 마음이 묘사된다. 유배 중에도 끊임없이 세상을 다스리는 법을 연구했던 다산과는 달리 이옥은 그저 유배 중에 보고 듣고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로드 무비처럼 써내려간다. 남편 아홉을 먼저 보내고 그들 옆에 묻힌 과부 이야기, 시장에서 돈을 훔쳐 곤장 스무 대를 맞고 나오면서도 ‘내일은 실수하지 말아야지’ 하고 다짐하는 도둑의 이야기가 그렇다.

 당대의 많은 지식인들이 문체 때문에 정조에게 반성문을 썼다. 그러나 이옥은 회개하지 않았다. 오늘날 우리는 냉큼 회개한 자들의 글보다 이옥을 더 기억한다. “볕도 안 드는 골방에서 싸구려 커피에 컵라면을 먹으면서도 열심히 곡을 만들어 부르는 인디밴드처럼, 아마 이옥도 그렇게 별일 없이 살았을 것”이라는 저자의 표현이 재미있다. 저자의 말처럼 “시대의 필연성을 믿기 위해서라면 굳이 읽고 쓸 필요는 없다. 우리가 읽고 쓰는 것은 그런 믿음을 거부하기 때문”이기에 이옥은 충분히 읽을 가치가 있다.

http://m.khan.co.kr/view.html?artid=201305241941515&code=90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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