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헉.. . 헉 ”
거친 숨을 들이쉬며 호흡을 가다듬으려 애쓴다.
“ 휴 ... ”
이내 진정이 된 듯 그는 의자에 털썩 앉아버린다.
그리고 잠시 어렸을 적 자신의 모습을 회상하기 시작했다.
그에게는 이 일을 마친 후엔 의례 하는 행사와 같은 일이다.
그는 참 정의의 사도를 좋아했다. 강력한 초능력과 신체능력으로 사회를 어지럽히는 악당들을 너무도 쉽게 제압하고 박살내버리는.
하지만 그가 나이를 먹어가면서 그러한 환상은 너무도 쉽게 흩어져 버렸다.
세상엔 그런 강력한 히어로는 없었다. 아니, 악당들이야 말로 강력한 힘과 부를 이용해 약자들을 실컷 괴롭히고 있었던 것이다.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이내 평범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의 적응이 끝나가던 그가 다시 히어로의 환상을 떠올린 계기는 아주 우연한 것이었다.
더러운 몰골을 하고 조악한 무기를 들고 자신의 집을 침입한 노숙자를, 그가 너무도 간단히 제압하였던 것이다. 노숙자는 코피를 흘리며 살려달라고 소리쳤지만, 그의 입에서 나는 악취 때문에 이미 이성을 잃고 자비를 잃은 주먹은 무자비하게 그 노숙자의 모든 신체를 박살내버렸다.
그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그 노숙자는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었고, 보통 사람이라면 자신이 저지른 일을 깨닫고 경악할 만도 했지만, 그는 이상하게도 태어나서 처음 느껴보는 수준의 성취감의 황홀경에 빠져들었던 것이다.
그는 자신이 태어난 이유를 그제서야 알게 된 것 마냥 새로 태어난 기분을 느꼈다.
어렵지 않았다. 악당들은 천벌로 다스려야 한다. 정의의 사도들이 그래왔듯이. 세상에 사연이 없는 사람, 아니 악당이 어디 있겠나. 요즘엔 감성팔이가 대세인 건 인정한다. 하지만 그들의 본질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들은 언제라도 그 흉악한 송곳니를 들이댈 게 뻔하다. 모든 계산이 끝나고 결심이 끝난 그는 과감하게, 하지만 겸손의 미덕을 아는 정의의 사도처럼 은밀하게 일을 처리하기 시작했다.
요즘 세상에 신상 터는 게 뭐가 그리 어렵겠나. 그의 주 타겟은 명백한 죄를 지었음에도 가벼운 형벌을 받았거나, 무죄를 선고받은 그런 파렴치한한 쓰레기였다. 그런 쓰레기의 신상정보는 인터넷의 성인광고보다 더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아니 저절로 얻어졌다.
그 후엔 주도 면밀한 계획을 짜고, 발톱과 이빨을 다 빼버린 늑대마냥 홀로 숨죽여 다니는 그들을 하나하나 찾아 본보기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또한 악당들의 무리에게 공포를 심어주기 위해서는 가벼운 처벌로는 되지 않는다. 그는 성심성의껏, 최선을 다해 한명 한명을 제압하고 박살내주었다.
오늘로 6명 째다. 회상이 끝난 그는 악당들에게 보여주는 메시지- 그의 트레이드 마크와 같은 말인 “악당은 천벌을 받아라” 를 방 가득히 적고, 깔끔하게 그의 흔적을 모두 지우고 아무 일 없는 듯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몇 시간 후, 항상 혼자 자축하는 장소인 집앞 국밥집에 가서 국밥 한 개와 소주 한병을 시킨다.
마침 TV에서는 그것좀 알고싶다 가 하고있군.
굳이 평소보단 이른 시간에 일을 처리한 이유는 바로 이것때문이었다.
5명을 무참히 살해한 정의의 사도의 탈을 쓴 연쇄 살인마 특집이다.
바로 그의 이야기다. 너무나도 뿌듯함이 목구멍 깊숙이 느껴진다.
이제 내일이면 그 숫자는 6명으로 늘어났음이 대서특필 될 것이다.
한참 자축을 하고 있던 그에게, 갑자기 심기를 불편하게 하는 이야기가 TV너머로 들리기 시작했다.
“ 두 번째 피해자인 김모씨는 얼마 전 진범이 잡힘에 따라 누명이었음이 밝혀졌고, ....... ”
이런.. 다음 타겟이 정해졌군. 아니지.. 기회가 없으려나... 후후
저 녀석은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하니까. 큰 일을 할 때는 사소한 실수는 넘어갈 수 있는 것이다. 자, 이 술 한잔에 털어버리자.
술 한잔을 털어넘기며 자축을 끝낸 그의 등 너머로는 프로그램 진행자의 마지막 멘트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 더욱 큰 문제는 정의의 사도를 자처하는 유사 살인사건 범죄가 발생하고 있다는 것인데요..”
쳇, 별 어중이 떠중이들도 내 흉내를 내려나 보군.
적당한 취기 덕이었을까, 기분이 좋아진 그는 터벅터벅 그의 집으로 향했다.
정의의 사도를 하느라 바쁜 나머지 일정한 수입도 없이 살고 있는 그는
돌아가신 부모님이 물려주신 유일한 재산인 달동네 언덕 끝에 있는 집으로 다 떨어진 운동화를 신고 한참을 걸었다.
사람이 있을 리 없는 길인데, 누군가의 인기척이 뒤에서 느껴진다.
기분 탓인가, 기분 탓이 아니다. 정의의 사도를 시작한 이후, 그의 감각은 이상하리 만치 예민해져있는 게 사실이다.
약간은 발걸음을 재촉한다. 하지만 티가 나선 안된다. 하지만 취기 때문인지, 아니면 가로등 하나 없는 길의 뒤죽박죽 높낮이를 가진 계단 때문인지, 아니면 낡아 밑창이 다 닳아 제 기능을 못하는 운동화 때문인지 그는 다리가 꼬여 넘어지고 말았다.
터벅... 터벅 ...
식은 땀이 등을 흠뻑 적신다.
가로등은 없지만 달빛에 반사된 , 추적자의 안광이 날카롭게 빛나고 있다. 증오와 경멸의 눈빛, 그 안광은 분명히 그를 향하고 있었다.
“ 왜 .. 죄없는 사람을 죽였나. ”
“ 뭐 ? 뭐라고 ? 나.. 나는 그런적이 ”
“ 역시 악당답게 거짓말을 하는 군. 용서의 여지는 없다. ”
이게 무슨 말인가. 나는 정의의 사도다. 뭔가 큰 오해가 있는 것 같다.
추적자의 마른 입술에서 나지막히 한마디가 흘러나온다.
아마 그가 이 세상에서 들을 수 있는 마지막 말일지도 모르겠다.
“ 악당은. 천벌을 받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