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소치 동계올림픽은 'Homage to Queen Yuna'
잠결에 눈을 떠 보니 아내가 멍하니 TV 화면을 보고 있고 딸은 엉엉 울고 있더군요.
새벽 4시 20분.
전 "넘어졌어?" 하고 물었고, 아내는 김연아 선수의 완벽한 연기와 판정 불만을 얘기해 주더군요.
딸은 "김연아 선수 얼굴 보니까 그냥 눈물이 나와"라며 눈물 콧물 쏟고....
재방송으로 확인하고 인터넷으로 기사와 전문가 분석, 해외 언론의 반응 등을
훑어 보고 이런 저런 측면을 가족과 이야기 했습니다.
1. 세계 모든 팬들에게 행복을 준 Queen Yuna, 최고 !
우선 무엇보다, 메달 색깔이나 결과와 관계없이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시대에 함꼐 해 줘서 고맙다는 말부터 하고 싶네요.
아마도 국적을 떠나 경기를 본 모든 분들의 한결같은 마음일 겁니다.
지금으로서는 마지막이 될 듯 한 그의 무대, 박수와 찬사 이외의 평이나 분석은 무의미해 보입니다.
전 아직 독일의 피겨 요정 카타리나 비트를 기억합니다. 당시만 해도 '인간이 해 낼 수 있는 최고의 빙상 기술과 연기'라고 했던 그녀. 하지만, 연아는 이미 비트로부터 칭송과 추앙을 받는 존재가 되어 있더군요.
환경이 파괴되고 인간성에 대한 의문이 드는 참 아픈 이 시대, 인간이 아름다울 수 있음을 보여 준 그녀에게 감사할 뿐입니다.
앞으로도 연아보다 더 스케이트를 잘 타는 선수는 나올 수 있겠지만, 표정과 몸짓, 속도와 유연함....무엇보다 모든 어둠을 물리치고 더러움을 씻어줄 듯한 그 신비한 미소 만큼은 어떤 누구에 의해서도 재연되기 어려울 듯 합니다.
그래서 그녀를 '전설'이라고 감히 부르는 것이겠죠.
God Save the Queen Yuna, Long Live the Queen
김연아2. 판정, 홈 텃세
많은 분들의 분노에 공감하고 동참하며 이해합니다.
하지만, 심사위원들을 포함한 누구도 평가할 수 없는 '예술'을 보여준 연아와 '승리를 위한 경쟁'에 맞춘 기술과 구성(트리플 점프를 한 차례 더 편성)을 내세운 다른 선수들을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무의미해 보입니다. 우리가 1988년 서울 올림픽과 2002년 월드컵에서 숱한 편파판정, 홈 텃세 논란에 휩사였던 것을 돌이켜 본다면 이해못할 문제도 아니구요. 하필이면, 그 편파와 홈텃세가 인류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김연아 선수를 상대로 행사되었다는 사실이 큰 국제적 논란을 불러 일으키는 것이겠죠. 심판진 구성과 심판들에 대한 매수 등 '근거있는 의혹'이 제기된다면 당연히 규칙에 따라 조사하고 문제 삼아야하겠죠. 하지만, 아직 그런 '근거있는 의혹'이 제기되지는 않은 듯 합니다. 유럽, 특히 주최국 러시아와 가까운 동유럽 출신 중심의 심판진의 '팔이 안으로 굽는' 채점과 평가였다면, 분노는 할 수 있으나 판정결과의 합법성과 정통성에 영향을 주지는 못할 듯 합니다.
3. ISU 피겨 평가방법의 개선
이번 사건을 통해 우리 모두가 생각해 봐야 할 것은 기록이 아닌 '평가' 점수로 우열을 가리는 피겨 종목 평가방식의 개선 문제지요. 이미 오래 전부터 많은 문제가 제기되어 '가장 높은 점수와 가장 낮은 점수 제외'라는 방식이 도입되었지만, 여전히 다수의 심판이 합세하면 조작은 가능합니다. 수많은 승부조작으로 홍역을 치른 FIFA의 공식 경기 심판 선발 기준처럼, 출신 대륙별로 선수 그룹을 나누고 심판들은 같은 대륙 출신이 아닌 사람들로 구성하는 방식 등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ISU 에서 다수, 주류를 점하고 있는 유럽 국가들의 동의와 협력이 무엇보다 필요한 부분이죠. IOC가 적극적으로 개입해서라도 다시는 올림픽이 이런 판정 시비로 얼룩지지 않도록 제도적 개선책이 마련되길 바랍니다. 그 결과 다음 평창 올림픽이 역대 가장 깨끗한 올림픽이 되었으면 합니다.
4. '스포츠의 공공성' 문제
두 가지죠. 하나는 대표선수, 즉 '엘리트 선수' 육성 및 지원 방식과 학생 및 시민의 생활스포츠 활성화. 김연아 선수는 그동안 오직 부모님의 헌신과 재정부담으로 세계최고가 되었습니다. 전용 링크도 없어 수시로 외국으로 훈련하러 가야하고, 브라이언 오서 등 최고의 코치와 음악 및 연기 전문가, 패션 디자이너 등 도저히 보통 가정에선 감당할 수 없는 비용입니다. 물론, '가능성'이 알려지고 유명해 진 이후엔 광고 수입과 기업 스폰서 등이 생겼지만 그 단계까지 가는 길, 특히 성공여부에 대한 확신이 없는 길고 험한 과정에 전재산을 쏟아부어야 하는 부모의 마음이 어땠을 지 짐작조차 하지 못합니다. 이상화 선수나 박승희 선수 등 다른 종목 다 마찬가지죠. 지금 초등학교, 중학교에서 운동을 하는 친구들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종목별로 차이는 있지만 잘 하고 가능성이 보일 수록 더 많은 돈을 들여 레슨을 받고 장비를 사고 전지훈련을 떠나야 하죠. 애초에 돈이 없는 저소득층 가정 친구들은 꿈도 꾸지 못할 일입니다. 학교의 운동부 코치나 감독 역시 대부분 비정규직에 보수가 없거나 쥐꼬리입니다. 선수 부모들이 돈을 내 충당하죠. 공동 기물이나 장비 역시 마찬가지구요. 이래서야 되겠습니까? 학교와 지역, 국가를 대표하는 선수들은 적어도 자기비용을 들이지 않고 운동할 수 있게 해줘야 하지 않을까요?
비용조달의 문제가 대두되죠. 국가예산? 안그래도 부족한데요. 결국 기업과 지역사회, 학교재단, 동창회, 프로 구단 등에서 지원하고 투자하고 육성하는 시스템이 답일겁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선. 그런데, 그 '시스템'이 제대로 돌아가려면 정부, 체육회, 각 협회, 지자체, 학교재단 등 시스템의 '중심축' 내지 '엔진' 역할을 해야 할 주체들이 깨끗하고 투명하고 효율적으로 운영되어야 가능한 이야기죠. 결국 '정치'가 제대로 되고, '행정'의 투명성과 공정성이 중요합니다.
5. 지나친 '국가주의' 떨쳐 버립시다
안현수 파동, 우리 선수 넘어지게 한 영국 쇼트트랙 선수에 대한 사이버 테러.... 결코 우리를 자랑스럽지 못하게 만드는 부끄러운 모습입니다. 김연아 선수도 '한국'이라는 작은 틀 안에 가두지 말고 '세계의 예술가'로 날아오르게 해 줘야 합니다. 러시아의 애국주의와 편파 판정 의혹을 비판하려면, 적어도 우리는 애국주의에서 탈피한 공정한 '스포츠 정신'을 갖추고 있어야 갰죠. 스포츠에서 우리가 배울 것은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규칙을 준수하며, 공정한 경쟁을 한 뒤 결과에 승복하는 자세입니다. 지나친 학업과 입시에 시달리는 우리 어린이 청소년에게 보다 많은 체육시간을 보장해 주고 스포츠의 즐거움을 맛보게 해 줘야 하는 이유입니다. 그런 스포츠를 애국주의와 상업주의의 도구로 전락시키고 이용하고 조작한다면, 우리 삶은 구제받기 어려운 타락으로 치닫기 쉽습니다.
긴 글 읽어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스포츠여, 영원하라.
God Save the Queen Yuna, Long Live the Queen Yuna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