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허, 데페 하신다고요? 후... 힘 내세요."
게시물ID : dungeon_31320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잉여를위하여
추천 : 5
조회수 : 702회
댓글수 : 4개
등록시간 : 2014/02/22 00:02:00
  때는 아직 만렙이 70인 시절.

  "뭐 데페를 하겠다고?"
  "응."
  "...힘내. 이 말 밖엔 못하겠다."

  내가 남 레인저를 하겠다는 말을 했을때 처음 들은 말은 이것이었다. 왜 남 레인저를 택했느냐고? 별거 없다. 서든데스, 그게 내겐 너무나도 매혹적이었다. 환상! 이상! 말뿐만이 아닌 실제로 존재하는 일격 필살! 독버섯은 아름다운 외양으로 동물과 인간을 홀려 죽음으로 이끈다고 하던가. 하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난 서든데스를 원하였고 결국 레인저를 선택하였다.

  "멍청한 녀석. 할거면 차라리 블러디아나 할 것이지."
  "서든데스가 없잖아."
  "서든데스? 그 허깨비같은 패시브 하나만 보고 데페를 하겠다고? 제정신이야?"
  "응. 제정신."

  당시에 블러디아를 키우던 내 친구는 소위 말하는 만렙이었다. 녀석은 나보다 경험상으로 뛰어났고, 또한 이전에 데스페라도를 키우던 레인저 유저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 친구는 내게 한숨을 내쉬며 이야기했다.

  "힘내.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그것 뿐이야. 전에 데페를 했던 유저로서 말하자면 넌 지금 후회할 선택을 하고있는거야."
  "선택하는건 나야. 그 결과가 후회라면 아무래도 좋다고."
  "꽉 막힌 녀석...."

  그렇게 내 어두컴컴할 뿐인 앞날을 지닌 레인저 인생이 시작됐다.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때론 즐거워 하면서, 때론 남여차별에 대한 불평불만을 내뱉으면서. 하지만 그 속도가 너무도 느렸던 탓일까? 서든데스는 패치로 사라져 죽음의 표식이라는 괴상망측한 스킬만이 남았다. 나는 절망했다. 오로지 서든데스만을 바라보고 키워왔던 남 레인저는 그렇게 각성을 목전에 두고 서든데스를 잃었다. 이제 내게 남은 것은 후회 뿐. 결국 난 그토록 원하던 각성 퀘스트를 마치고 레인저를 접었다. 그동안 내가 나름대로 들여왔던 노력이 신기루에 불과했다고 온 몸으로 내게 외치는 것 같아서....
  결국 난 여 레인저에게 밀린다는 현실이 아닌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을 뒤로하고 던파마저 접어버렸다.

 -

  나로 하여금 다시 던파를 시작하게 만든건 불사조 유니크 이벤트였다. 나는 오로지 120일을 채우기 위해 폭주했다. 각성 패시브 스킬따윈 찍지 않았다. 이리도 정감이 가지 않는 스킬은 없을 것이다 라고 생각하며, 나는 오로지 120일을 채우기 위해서만 던파를 했다. 그런 내 모습을 본 내 친구, 던파를 접은 내 친구가 비웃듯이 말했다. 물론 그 비웃음은 내 머릿속에서 멋대로 만들어진 것이지만.

  "데페 아직도 하고있네?"

  난 그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내가 해야할 것은 오로지 120일을 채우는 것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 사실을 알지 못하는 내 친구가 다시 내게 말을 붙였다.

  "서든데스 사라졌다고 해서 데페를 접은 줄 알았는데."
  "12강 유니크만 먹고 다시 그만 두려고."
  "그러냐? 그래라."

  이전에 11강 진 : 갈라테아를 12강으로 만들다 터트린 이후부턴 던파를 하지 않게된 친구는 그렇게 내 곁에서 사라졌다. 던파를 할 생각은 없나보다. 하기사, 나도 이 서든데스를 빼면 볼 것도 없는 약캐를 뭐하러 키우려 했는지 원.

  "...정말 정감이 안간다. 너."

  나는 레벨이 60인 내 데스페라도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그리고 얼마 가지 않아 불사조 유니크의 대여기간은 120일이 되었고, 나는 완벽한 12강 불사조 유니크를 받고는 바로 던파를 껐다. 아마 계기가 없다면 던파를 다시 시작할 일은 없을 것이다.

-

  무엇을 해야할 지 모르겠다. 컴퓨터 앞에 앉기는 하였으나 웬만한 게임들은 그래픽 카드가 허잡한 탓에 돌릴 엄두가 나지 않았고, 결국 나는 다시 돌아갈 수 밖에 없었다. 던전 앤 파이터로.
  때는 만렙이 85로 확장되고 나서도 3개월에서 6개월 가까이 시간이 흐른 후였다.

  "어라? 너 돌아왔네?"
  "응. 할게 없어서."
  "롤은 어떡하고 여기 왔냐 너, 크크."
  "집에서는 잘 안돌아가더라. 그래서 왔다."
  "뭐 아무튼, 잘 왔다."

  친구는 블러디아 대신 검마를 키우고 있었다. 아직 나보다 레벨은 낮지만 곧 나를 추월할테지.

  "왜 블러디아 안키우고 검마를? 너도 결국 여귀검의 채찍에 맞길 원하는 수많은 마조히스트들 중의 한명이었…."
  "그런 것도 있지만, 블러디아는 망했거든."
  "응? 망하다니?"
  "…보면 알아."

  친구는 블러디아를 잡아들고서 내게 무언가를 보여주었다. 무척이나 끔찍한 광경을.
  트윈 건 블레이드는 막타를 잃고서 아주 잠시나마 빛을 발하던 과거를 잃었다.

  "제기랄. 트윈 건 블레이드는 그냥 지속시간동안 여거너를 옭아메는 감옥으로 전락했어. 이거 알아? 상황이 역전됐어. 이제 데페가 블러디아보다 좋아. 제기랄, 내가 왜 데페를 지웠을까…."

  충격적이었다. 바로 몇년 전까지만 해도, 아니 몇년 전까지 거슬러 오를 필요도 없다. 고작 2년 전까지만 해도 데페는 블러디아보다 약캐였다! 하지만 이젠 다르다. 데페는 블러디아보다 약하다. 패시브의 이유로. 그리고 궁극기와 같은 여러 스킬들의 개편으로.

  "…염병."
  "염병? 그래. 염병이지. 나한테는 말이야. 근데 넌 왜?"
  "평등을 원했어. 언제나 말이야. 여캐라는 이유만으로 나보다 뛰어난 블러디아가 너무 미워서, 그래서 던파를 접어버렸거든. 애정이 식었다고나 할까. 하지만 말이야 이건 아니잖아. 역차별이라니? 내가 원한건 평등이었는데 왜 역차별이 된거야?"
  "그거야 모르지. 그걸 알면 우리가 불평불만을 하겠어?"

  결국 우리는 답을 얻지 못하고 -애초에 답을 얻을 수 없는 의문이었기에.- 사냥에 전념했다.

-

  이계에서 껍질 까는 기계로 일하지 못하고 마을을 배회하던 중, 누군가가 자신의 친구로 보이는 사람에게 핀잔을 주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멍청아! 왜 블러디아를 하려고 해! 요즘은 차라리 데페가 더 나은거 몰라?"
  "아 몰라! 난 내가 하고싶은 걸 할거란 말이야!"
  "에이 답답해서! 난 몰라! 나중에 후회하든 말든 그건 네 책임이야!"
  "책임지라고 할 생각따윈 없어!"

  어딘지 모르게 어색한 광경. 바로 몇년 전까지만 해도 반대의 상황에 놓여있던 나는, 여거너를 선택한 이름도 얼굴도 모를 그 누군가가 참으로 안쓰러웠다.
  이런 내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친구의 핀잔에 짜증이 난 여 레인저는 악을 지르듯 채팅창에 혼잣말을 마구 내뱉었다.

  "제기랄. 여 레인저 안좋은거 누가 몰라?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거라고! 내가 하고 싶다는데 왜 자기네들이 난리인데!"

  그리곤 어디론가로 사라져버렸다.
  생각같아선 저 녀석에게 돈이라도 몇푼 쥐여주고 싶은 생각이었지만 생각으로 끝났을 뿐, 실천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나는 이제 내 채팅을 듣지 못할, 지금은 약캐로 전락했다는 여 레인저를 향해 중얼거렸다.

  "…힘내."

  물론 소용없는 짓이지만.
꼬릿말 보기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