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무혈 쿠데타로 대통령에 취임하였다. 2011년,까지 장기집권으로 높은 실업률과 물가 상승에 의한 정권퇴진 운동 튀니지의 높은 인플레이션과 벤 알리의 독재정치 사건 발생 주요 원인입니다
과일노점상인 무함마드 부아지지의 분신자살이 직접적인 원인이 되어 시디 부 지드에서부터 시위가 시작되어
2010년 12월 18일부터 전국적으로 대규모 반정부 시위로, 23~68명이 사망 최소 100명 이상이 부상
결과
시위대의 압력으로 24년간 장기집권해온 벤 알리가 해외로 도피하고 국가비상사태가 선포됐다
벤알리 대통령은 대통령직을 사퇴, 사우디아라비아로 1월 14일 망명
서방 세계는 이러한 민주화 시위를 재스민 혁명(국화가 쟈스민)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이집트 혁명(코샤리/키파야혁명)
원인및 경과
1981년 전임자 암살로 호스니 무바라크가 권력을 이어 이집트 역사상 최장 기간을 대통령에 재임
대통령이비상사태법으로 필요 이상으로 엄격하게 지배
권력을 확장하고 대통령직을 연장하려는 제도적 시스템을 마련하려던 무바라크 정부의 내무부 장관의 정치적 부패가 드러났다. 이것은 활동가들을 재판 없이 감옥에 집어넣거나 문서화되지 않은 불법 수용 시설을 만들고 그들의 정치적 성향에 따라 대학, 사원, 언론사 직원을 관리하는데 한몫을 했으며
2010년 12월에 있었던 의원 선거는 언론 검열, 체포, 후보자 등록 제한 (무슬림 형제단에게만), 거의 만장일치로의 의회 집권당 승리와 관련된 부정 행위 의혹과 함께 진행된 와중에 인접국인 튀니지 혁명의 성공이 이집트인들을 눈을 뜨게해주어
2011년 1월 25일부터 2월 11일까지 시위가 전국적으로 확산
장기 집권 대통령인 호스니 무바라크의 퇴진을 요구하며 벌어진 반독재 정부 시위입니다
결과
튀니지의 재스민 혁명의 영향을 받았다. 현재까지 최소 시위자 135명, 경찰 12명, 탈옥한 12명, 감옥 서장 1명이 사망, 최소 750명의 경찰과 4,000명의 시위자가 부상, 최소 1000명이 구속당했으며, 무바라크는 1월 29일 내각을 해산하겠다고 발표했으나 시위가 더 가열되어 2월 11일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은 군부에 권력을 이양하고 대통령직에서 하야하였음
코샤리(Koshary):콩과 쌀, 옥수수, 마카로니를 섞어서 삶은 뒤 토마토 소스 등을 뿌려 만드는 코샤리는 이집트 서민층이 즐겨 먹는 음식 (즉 생계형 혁명이란 말) 키파야(Kifaya)
키파야는아랍어로 ‘충분하다’이고, ‘30년 장기집권으로 충분하니 더 이상은 안 된다’는 의미여서 ‘키파야 혁명 이라 합니다 .
리비아 반정부 시위
원인및 경과
2011년 1월13일 벵가지에서 시작된, 카다피 리비아 국가 수반 겸 국가평의회 의장의 퇴진을 요구하는 반정부 시위 이 시위는 재스민 혁명과 이집트 혁명의 영향을 받아 그 규모가 확대
맨 처음에 정부는 벵가지에 군을 보내기 시작했다. 정부의 무차별 진압 작전으로 2월 20일 현재 사망자가 1200명 발생 무력 강경진압으로 전투기와 용병으로 무차별 학살
리비아의 카다피 대통령은 1969년 쿠데타를 일으킨 이래 지금까지 리비아를 통치하고 있으며
리비아의 실업률이 높아지고 빈부격차가 벌어지고 카다피 아들7명의 무차별적인 부정 부패 원유수입대금 착복 등으로 인접국 의 재스민 혁명과 이집트 혁명의 영향을 받아 시위가 시작되어 현재에이르릅니다
-------------------------------------------------------------------------------------------------- 민주화를 위해서 죽어간 수많은 젊은이들을 애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