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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 거울
게시물ID : panic_7506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오유女
추천 : 4
조회수 : 1412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4/12/04 02:07:40


 유독 날이 추웠다. 집 안에 있는 데에도 몸이 으슬거리며 한기가 느껴질 정도였다.
 점심 쯤에 잠에서 깨, 어제 뭘 했는지 뻑적지근한 몸을 이끌고 화장실로 향했다.
 평소에도 추위를 잘 타는 편이라 유독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곤 했는데
 오늘따라 더 추운 날씨에 견딜 수 있는 최대한의 뜨거운 온도로 물을 틀었다.

 샤워를 마치고 거울을 보니 김이 잔뜩 서려있었다.
 내 얼굴은 커녕 거울에는 김 때문에 내 형체도 잘 비치지 않았다.

 그때였다. 거울에서 흐릿하니 뭔가 검은 형상이 보이는 것 같았다.

 뭐 묻었나 싶어 샤워기로 거울에 물을 뿌렸다. 깨끗해진 거울에 비치는 것은
 검은 형상은 커녕 그냥 발가벗은 내 상체 뿐이었다.

 잘못봤나 싶어 대수롭지 않게 넘기고, 물기를 닦고 로션을 바르기 시작했다.

 그러다 문득 거울을 쳐다보니 어느새 다시 뿌옇게 김이 서려있었다.
 그리고 조금 전에 봤던 검은 형체가 또다시 흐리게 비쳤다.

 눈을 찌푸리며(안경을 벗고있을 때 자주 하는 버릇이다)다시 거울에 물을 뿌렸으나
 비치는 것은 여전히 별 문제 없는 내 상체 뿐이었다.
 혹시하여 뒤를 돌아보았지만, 역시 아무것도 없었다.

 뭐야. 진짜 잘못봤나? 갸웃하며 마저 로션을 발라나갔다.
 얼굴과 목에 꼼꼼히 바르고 마무리를 하는데
 그 잠깐 사이에 거울에 다시금 뿌연 김이 끼어있었다.

 내가 너무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한 건가? 이상하게 김이 빨리 서리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이번에도 어김없이 검은 형체가 어른거렸다.
 이쯤되자 황당하고 기가차서 마지막으로 확인해보자 싶어 샤워기를 들었다.
 그리고 물을 뿌리려던 순간이었다.

 뭔가 기분이 싸해서
 물을 뿌리기 직전, 시늉만 하고 멈췄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길고 검은 머리카락을 사방으로 늘어뜨린 사람같은 괴기한 형체가 바닥에 납작 엎드린 채로 발치에서 나를 올려다 보고 있었다.

 눈이 마주쳤다고 느낀 순간, 난 기절했다.





 헉.
 눈을 떴다. 정신을 차리자마자 주변을 둘러보았다. 난 누워있었고, 장소는 내 침대였다.
 뭐야...꿈이었잖아.

 그럼 그렇지. 안심이 밀려왔다. 아무래도 요즘 피곤했던 모양인지 평소에 안 꾸던 악몽을 꾼 듯했다.

 어휴, 놀래라. 최근엔 공포영화도 안 봤는데.

 얼마나 잔 건지 입 안이 텁텁했다. 괜히 놀랐던 가슴을 진정시키며 가글이라도 해야겠다 싶어 화장실로 향했다.
 그리고 화장실 문을 열자마자 난 그대로 멈췄다.

 검은 머리카락들이 잔뜩 화장실 바닥에 뭉쳐있었다.

 참고로 난 최근에 밝은 갈색으로 염색했으며 단발이었다. 내 머리카락은 절대 아니었다. 오싹하니 등줄기에 소름이 올라오는 순간 나는 어제 저녁 기숙사 생활을 하던 여동생이 집에 돌아왔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동생의 머리카락은 엉덩이께에 닿을 정도로 몹시 길었고, 한움큼 빠지거나 한다면
 지금 안경을 안 쓴채라 잘 보이진 않지만 저 정도 머리카락 뭉치가 되지 않을까 싶었다.

 아, 진짜. 샤워하고 나면 빠진 머리카락들 좀 치우라고 그렇게 일렀었는데.

 잔소리를 좀 할 요량으로 여동생을 불렀다. 방문이 닫혀있긴 하지만 충분히 들릴 법한 큰소리였다.
 여러번 외쳤으나 대답이 없어 이상하단 생각이 들었다. 방에 없나? 밖에 나갔나?
 ㅇㅇ아? 다시 한번 외치며 동생의 방문을 열었다.

 그리고 동시에 거짓말처럼 사실 하나가 떠올랐다.


 아, 맞다.
 여동생.
 어제 내가 죽였지, 참.


 그리고 다시 돌아본 화장실 바닥의 검은 뭉치는
 내 쪽을 향한 동생의 잘린 머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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