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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신학을 공부하고 있는 학생입니다
게시물ID : science_3174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어쩌다그랬누
추천 : 5
조회수 : 505회
댓글수 : 5개
등록시간 : 2014/02/24 00:50:25
만, 창조론은 믿지 않습니다.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는 그 신빙성이나 논지가 이성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렵기 때문이며,
둘째는 소위 신앙을 가지고 살아가는데 있어 '창조'라는 사건을 문자 그대로 믿는 것이 본질적으로 벗어난 일이며, 
그것이 기독교의 진정한 가치를 반영하는 것 역시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선 밝혀둘 것은 제가 알고있는 과학적 사실이나 상식은 중, 고등학교에서 교과서를 통해 배운 것이 전부이며, 
그렇다면 아마도 여기 과게에서 상주하시는 분들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지식이겠지요.

그래도 이렇게 글을 쓰는 이유는 창조론을 부정하는데에 굳이 진화론을 내놓지 않아도 충분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오겠습니다.

창조론을 믿는 기독교인들의 태도는 창조론 자체를 신봉하는 것 이전에 그러한 명제가 명시되어있는 성경에 대한 신봉, 
기독교적으로 말하자면 성경을 '신이 직접, 또는 인간의 몸을 통해 작성한 한치의 오차도 없는 책'이라고 믿는 성서무오설에서 비롯합니다. 
하지만 이는 이미 기독교 안팎으로 해체된 논리입니다. 아주 간단한 예로 구약에서 하나님은 종종 야훼, 엘로힘 등 다른 이름으로 불리며(중동의 서로 다른 토착 종교들이 유대교 전통과 합쳐지는 시기의 증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신약에서 예수의 생애를 다룬 4개의 복음서(마태, 마가, 누가, 요한)은 서로 다른 이야기들을 하고 있습니다.

또 하나의 예로서, 제 기억이 맞다면 국어 교육과정에서 옛 단군 설화, 즉 곰과 호랑이가 쑥과 마늘을 먹고 사람이 되어 단군과 혼인을 맺는 이야기를 곰부족이 하늘부족과 연합하여 호랑이 부족을 무찔렀다- 등으로 해석하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이 외에도 여러 설화나 신화들을 비유로서 보고 역사적 사실을 유추하는 방식을 흔히 역사해석학적 관점이라고 부릅니다. 성경 역시 이런 시각으로 보아야한다는 것이 벌써 1세기 가량 신학계에 자리잡고 있습니다(물론 군데군데 짙은 음영이 있기는 하지요. 예를들면 미국의 보수적인 개신교나, 그 영향을 크게 받고 독자적으로 발전해 온 한국의 기독교나...). 

앞서 창조론을 믿지 않는 두 번째 이유로 창조론 등의 것들을 단순히 문자적으로 '믿는' 것이 기독교나 신앙생활의 본질이 아니라고 한 바 있습니다.
여기서 누군가 저에게 그렇다면 기독교의 본질이 무엇이냐, 고 물으신다면 제 역량으로 대답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하지만 다만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무엇이 비교적 합당한 것인지는 제시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렸을 적 5살 터울의 동생을 임신하셨던 만삭의 어머니를 기억합니다. 그 때 어머니는 제 손을 잡고 어머니 배 위에 올리시곤 '니 동생이야, 너도 이렇게 엄마 뱃속에 있다가 나왔어. 동생이랑 똑같이. 동생 태어나면 잘해줄거지? 예뻐해줄거지?' 하고 이야기 하셨습니다. 

이 때에 어머니는 저에게 동생과 제가 같은 자궁에서, 같은 사람의 정자와 난자로 임신된, 같은 유전형질을 가진 인간이라는 '사실'을 가르치려고 이런 말씀을 하셨을까요? 물론 그러셨을수도 있지요. 하지만 어머니는 제가 그러한 과학적 사실을 인지하고 이해하는데 그치지 않고 동생을 사랑하길 바라셨을 겁니다.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하나님의 이름을 빌려 세상의 창조라는 거대한 스토리를 쓴 이도 비슷한 이유였으리라 생각합니다. 기독교가 중동의 작은 유목민족의 종교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에 감안한다면, 이 사막 한 가운데에서도 특별한 계획을 가지고 나를 이곳에 있게한 이가 있을 것이며, 내가 속한 이 민족이 지금은 비록 초라하지만 태초의 인간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위로 또는 자긍심을 갖도록 작용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사실여부가 아니라 가치지향입니다. 신앙은 무엇을 믿는지가 아니라 무엇을 행할 것인지를 묻는 것이라고 배웠습니다. 그 행위에 초점이 맞춰진다면 무엇을 믿는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종교와 교파, 사상을 초월해 인간애적 본성으로 화합하고 협력하는 모습들을 우리 사회에서도 충분히 볼 수 있습니다.

ps1. 앞서 밝혔듯 제 과학 상식이 깊지 않기에, 또한 제가 아니어도 과학적 지식이 깊으신 분들은 많으니 창조론자들이 진화론자들을 공격하는데에 대한 반론 등을 하지는 않겠습니다.

ps2. 창조론자 또는 기독교인분들이 이 글에 불만 또는 의문이 많으시리라 생각합니다. 죄송하지만 일일히 답변해 드리고싶지는 않네요. 너무 귀찮고 힘들어요.

ps3. 예전에 기독교를 비꼬는 유머를 날려 베오베까지 갔으나 별이별 비판이 다 일었고 제 스스로 콜로세움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그 중 가장 기가찼던 부분은 '목사 아들이라는 놈이 잘하는 짓이다'라는 논조의 비판이었습니다(이 글에서는 신학생이고 저 글에서는 목사 아들이냐 하시면 둘 다 맞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미리 말씀드리자면 저는 물론 저희 아버지 역시 이런 생각을 가지고서 신앙인으로 사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으며, 아버지와 저는 적어도 이런 부분으로는 이견을 가진 적이 없습니다. 썪은 동아줄을 쥐고 주위에 화를 일으키는 지금 한국 교회의 태도보다는 훨씬 이롭다고 확신합니다. 작게는 저나 저희 가족의 신앙생활, 아버지가 계시는 교회, 크게는 한국 교회나 한국 사회에도 말이지요.

퇴근하고 쓰는 글이라 두서없고 길기만 합니다. 혹시나 다 읽어주신 분들이 계신다면 그것만으로도 감사해야겠네요. 모두 굳밤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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