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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청설모
게시물ID : readers_750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드립대마왕
추천 : 0
조회수 : 420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3/05/29 17:57:08

단편] 청설모

**년 5월 그날의 아침은 선선했다. 평소 민들레 씨앗에 불을 붙이고 타들어가는 모습을 보며 『이게 어릴 적엔 불어서 퍼트렸잖아? 그건 잘못 된 행동이었어. 씨앗을 퍼트리면 자라 날거고 무의미하게 자란 풀들은 싸그리 잡초라고 불리면서 뽑혀지거나 잊혀 지잖아? 잡초 스스로에겐 비극이고, 누군가에겐 노동이 될 행동이었던 거지.』라고 말하곤 했던 O상병과 수도통합병원에 가기 위한 버스를 기다리던 중이었다. 사단 중심부에 자리한 우리 중대와 달리, 의무대는 숲이 감싸고 있는 외각에 위치해 있었고, 그래서 그날의 아침은 선선했으리라 생각한다.

그 선선한 아침을 O상병과 같이 있는 것은 꺼림칙했다. 일상의 아름다움을 짓밟는 사람이란 선입견이 있어, 그를 피했었다. 그때, 쪼르르-청설모 한 마리가 열 걸음 남짓 거리를 두고 다가왔다. 그리고 다시 쪼르르- 나무를 향하는 것을 보고 있던 찰나, 무언가 빠르게 날아들었고 쪼르르-하던 걸음엔 다급함이 더해졌다. 땅에서 되튀겨 오른 그것은 돌이었다. O상병의 행동임은, 그것이 돌임은, 무언가 빠르게 날아들던 그 찰나에, 아니 이미 청설모가 나타났을 때부터 예상 된 행동이었다. 『아깝다.』다시 돌을 주우며, 던지며, 그는 말을 이었다. 『청설모가 말이지. 응-. 외래종- 그러니까 황소개구리 같은 놈이란 말이지. 생태계를 파괴하고 토종다람쥐들을 힘들게 한다니깐? 잡아야 돼 저런 건. 일발백중 알지? 내가 잡을 거야 저놈.』.

나는 그것이 잘못 된 정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책을 찾아 공부 한 것은 아니고 인터넷에서 봤었다. 배스라는 외래종 물고기를 말하며 청설모도 언급한 글이었는데, 누군가 그 글의 댓글로 청설모가 외래종이란 것은 잘못 된 정보라고 글을 쓴 사실이 명확하게 기억이 났던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의 행동을 보고 있었다. 그저 보고 있었다.


나의 침묵을 합리화 하려는 것은, 곧이어 일어난 상황 때문이다. 2분 남짓 나무 위를 바라보고 있던 O상병을 보며 놓쳤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다시 쪼르르- 청설모는 움직임을 보였고, O상병은 돌을 던지려는 자세를 잡고, 이내 그 돌에 맞은 청설모는 추락했다. 바닥으로.. O상병은 환호성을 지르며 달려가 늘어진 가죽 덩어리를 군홧발로 툭툭 차며『기절했나? 죽은 건 아닌 것 같은데』하더니 발로 콱, 그것의 머리를 짓밟았다. 나는 경악했다. 소름이 돋은 거겠지, 속이 시렸다. 그는 못 볼 것을 보았다는 듯 그것을 발로 추스르곤 터벅걸음으로 걸어오며 군홧발을 흙과 풀이 듬성한 바닥에 비비적거렸다.

나는 원래부터 그가 꺼림칙했다. 불편했다. 청설모를 돌로 잡는 사람이 있을 줄 몰랐다. 그가 정말 그것을 죽이고자 했는지도 몰랐다. 외래종을 운운하며 아는 척을 하는 그에게 그 아는 것이 잘못 됐다고 말 할 필요는 없었다. 그는 일상의 아름다움을 짓밟는 사람이었다.

모르겠다. 기억나는 것은 그 날 아침은 선선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의 침묵과 상관없이 그 일은 일어났을 것이다. 그것은 그의 재미를 위한, 그저 그의 행동에 필요했던 악마적 합리화였다. 나는 나의 침묵보다는 오롯이 그에게 공감할 수 없었던 내 자신의 앎이 더욱 원망스러웠다.

그래 나는 투쟁도, 충성도 할 수 없었던 겁쟁이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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