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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서른살 공시생입니다.
게시물ID : military_7511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코유엘
추천 : 8
조회수 : 1061회
댓글수 : 13개
등록시간 : 2017/05/02 14:5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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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서 말씀드린 것 처럼, 저는 밥 빌어먹고 살 길 막연한 공시생 나부랭이입니다.
 
그리고 저는 작년에야 갓 병역을 마치고서 떨리는 마음으로 올해 첫 소집을 기다리고 있는 늦깎이 예비군 대상자입니다.
 
이 게시판에서 글을 자주 보시고 작성하시는 분들께서는 어쩌면 그리 곱지 않은 시선으로 저를 쳐다보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제 의도야 어떠했든 복무중의 저는 여러분들의 주적이었을 테니까요.
 
의무복무기간 동안 장교로서 떳떳하게 복무하고자 노력하긴 했지만, 그 어떤 미사여구를 붙여도 현 대한민국의 군 제도상 저는 필연적으로
사병의 정당한 권리를 제약해왔었고, 그걸로도 부족해 때로는 얼마 되지않는 최소한의 권리 - 휴식 시간 마저 뺏어가며 주말에도
사역을 시켰던 적이 있었던 주적이었음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핑계는 많습니다만 - VIP 방문 예정으로 피치 못했다, 대대장의 지시였을 뿐이다, 이번 주말에 단장이 순시할 계획이 있을거라더라 등등 -
어쨌든 저는 얼마 남아있지도 않은 사병들의 군 복무 규범 상 권리를 제한하면서도 그에 떳떳이 항거하지 못하였던 비겁자란 사실은 변함이 없습니다.
 
그러나 지금 이 글을 적어보고 있는 이유는,
이미 전역한 마당에 이제와서 여러분들 앞에서 고해성사를 하려는 것도 아니고,
또 무언가 알량한 정의감, 혹은 사명감에 의한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위에 구구절절 넋두리와 같은 형편을 적어본 것은,
제가 쓰는 이 글이 절대 누군가를 가르치려 들거나 설득하려 하는 것도 아니고,
심지어 그럴 자격도 없는 무능력한 비겁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미리 밝히려 할 뿐입니다.
 
그러니, 혹여 제 정리되지 않은 지저분한 글이 어디선가 여러분의 마음을 불쾌하게 만들었다면
그것은 애초에 이 글이 비겁자의 변명의 연장선이어서일 것입니다. 허튼 소리를 내뱉어 기분을 상하게 한 점 진심으로 용서를 구합니다.
 
------
 
서두가 너무 거창하게 길었습니다. 이 역시 죄송합니다.
글 재주마저 미천하여, 핵심만 짚어서 요약하지를 못하였습니다.
 
그저, 공시를 준비하며 배우게 되었던 대한민국의 근현대사를 보며 느꼈던 감정을, 한번 적어보고 싶었을 뿐이었습니다.
 
저는 학창 시절 이과생이어서, '근현대사'를 배우지 못하였습니다.
 
막연히 '이 나라가 썩었다, 친일파 청산이 되어있지 못한, 정의롭지 못한 나라다,
윗놈(?)들은 모조리 썩었고 진보고 보수고 전부 제 배만 배불리는 도적놈들이다'라는 기본적인 상식 아닌 상식만 갖추고서
작년까지 살아왔습니다.
 
전역 후 먹고 살 길이 막막해서, 또 본디 성격이 내성적이고 경쟁적인 분위기에 잘 적응하지 못해서,
어리석은 선택인 줄 알면서도 공시를 준비하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생애 처음으로, 간략하게나마 근현대사를 배우게 되었습니다.
 
 
솔직히 배우면서 이해가 잘 가지 않았습니다.
 
국권을 피탈당했습니다. 나라를 빼았겼습니다. 많은 동포들(국민도, 시민도 적절한 표현이 아닐듯 하여 사용해보았습니다.)이 괴로움을 겪었습니다.
헌데, 조금 이상했습니다.
 
일제, 그리고 친일 민족반역도당.
한 눈에 봐도 '적'은 뻔한데, 36년 독립운동 역사는 산발적이었습니다.
뭉칠 기회조차 결코 쉽지 않았지만, 그나마도 뭉치지 못했습니다.
 
3.1 운동을 계기로 뭉칠 뻔했던 독립의 움직임은, 겨우 임시정부 하나 탄생시키곤 그마저도 3년 후, 공중분해 되었습니다.
누구는 실력양성을 외쳤고, 누구는 무장투쟁을 외쳤습니다.
자기들의 외침만으론 결코 저 일제를 무너뜨리기 쉽잖다는 것을 다들 알고 있었을 텐데, 결국 뭉치지 못하고 각자 갈 길로 흩어졌습니다.
 
그 중 일부는 민족반역자로 확실히 돌아섰고, 남은 독립지사들은 작은 힘을 그러모으고, 또 때로 다시 뭉치기도 하였지만,
그 역량을 제대로 발휘할 새도 없이 또 좌익으로, 우익으로 갈라졌습니다.
 
결국, 외세에 의해 망한 나라가 또 국제정세에 맞물려 독립이 되더군요.
 
 
독립 이후에는 더 이상했습니다.
 
좌우합작까지 추진해보았으나 끝내 분단이 되고야 만 것은 미소 냉전에 의한 산물이었다고 이해할 수 있다 손 쳐도.
 
부정부패를 더이상 참지 못하고 이승만 정권을 무너뜨린 시민들이, 채 1년이 가지 못해 다시 군부독재의 수렁에 굴러떨어졌습니다.
누구는 그것이 독재인 지도 모르는 듯 하였고, 또 누구는 독재의 비호아래 이익을 챙겼겠지요.
그러나 피해를 직접적으로 느끼던 시민들이 또다시 힘을 결집하여 행동에 나서기 까지는 또 십수년의 세월이 필요했습니다.
심지어, 유신 이전 직선제로 대통령 투표가 있던 시절에도, 역사는 투표를 통해서도 독재정권이 승리하였다고 기록하였더군요.
 
결국 반인반신을 쓰러뜨린 갓슬레이어가 나온 이후에야, 독재는 끝이 나고 주권은 시민들에게 돌아오는가 싶었습니다만,
또 1년을 채 가지 못하고 갓 슬레이어는 처형, 군부는 다시 또 권력을 잡았습니다.
 
 
87년, 민주화의 열망이 이 나라를 뜨겁게 달구던 여름, 모처럼만에 자신들의 손으로 이 나라의 대표를 뽑을 수 있었던 국민들은
그 손으로, 투표로, 직전 군사 쿠데타로 정권을 탈취했던 세력의 2인자를 대통령으로 선출했습니다.
 
 
처음 강의를 들으며, 너무도 외람된 생각이지만,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전부 머저리들인가?
뭉쳐야 힘이 되고, 그래야 살고, 흩어지면 결국 각개격파 당하여 노예로 전락하는 것은 옛날부터의 진리가 아니었나?
제 배를 불리기 위하여 제 동포를 팔아먹고 등쳐먹던 자들이 권력을 쥐고 승승장구하고 있는데, 그걸 보고만 있나?
왜 저들끼리 갈라져서 싸우고 힘을 분산시켜서 결국 또 '스스로 노예를 자처하는' 결과를 만들어내는 걸까.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었는데.
 
이제는 뼈저리게 알 것 같습니다.
 
저 당시에도 지금도, 사람들은 '내 삶' 앞에서는 비겁해지기 마련이더군요.
제 군복무 3년동안 너는 권력에 항거해 보았나, '올바름'를 위해 목숨바쳐 싸워보았나.
 
돌이켜 생각해보니, 아니었습니다.
그건 헛수고다, 그건 개죽음이다. 누구 하나 알아주지 않고 너만 괴롭다.
장교가 장교의 권익도 못 챙기면서 병사의 권익을 챙겨준다는건 위선 아닌가.
넌 네 위치에서 열심히 살았을 뿐이야. 너도 네 휴식시간 뺏겨가며 일하고 있지 않는가. 오히려 '명령'에 불복하며 작업을 지연시키는
'일부' 병사들도, 옳은 것은 아니지 않느냐 하고. 스스로에겐 그렇게 설명하고 있더군요 제가.
 
근현대사에서, 직선제를 손에 쥐고도 성공하지 못했던 시민혁명들 역시, 이해가 갑니다.
사람이란 원래, '내 삶'을 앞에 두고는 '당연한 대의'보다, 그로 인해 포기해야 - 당분간, 어쩌면 영구히 - 할 나의 권리를 떠올리면,
그리고 심지어 그 '대의'가 전혀 정의로워 보이지만은 않다면, 선뜻 힘을 모을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네, 어리석습니다.
이성적으로 조금만 생각하면 말도 안되는 것 같지만, 그래도 막상 그것이 내 일이 되어버리면, 전혀 별개의 문제가 되어 버리더군요.
 
이번 대선에서 어떤 결과가 나오든, 분명 후세는 그렇게 기록할 겁니다.
 
시민들은 기껏 제 손으로 절대권력을 빙자하여 포악을 저지르던 지도자를 탄핵해놓고서,
 
새로이 치른 대선에서는 '당연히' 이길 줄 알았던, 부정부패한 지도자에 정면으로 맞서던, '야당' 대통령 후보가 '낙승'한 것은 아니었더라 - 하고.
(이길까요? 질까요? 분명 박근혜 탄핵 시킬때만 해도 당연히 다음 통령은 문재인- 이라고 스스로도 생각했지만, 이제는 모르겠네요)
 
역사는 세부적인 내용까진 가르치지 않으니까요.
왜 2030 남성들이 분노했는지, 왜 성평등운동을 표방하는 페미니즘이 사실은 성'패권'적인 운동이라고 비판받는지,
기회는 공정할 것이라던, 사회는 정의로울 것이라고 외치던 한 정치가에게 열광하던 사람들이
어째서 고작 한달 여 사이에 실망하고서 분루를 삼키며 지지를 철회할 수밖에 없었는지.
 
우리가 아무리, 이것은 정의가 아니다, 이것은 공정한 것이 아니다. 이대로는 헌 권력 - 부정부패 를 무너뜨리고 또다른 권력 - 여성우월주의 를 옹립하는 너절한 정치 쿠데타가 될 뿐이라고 우리의 정당한 권리를 아무리 소리높여 주장하여 본들.
 
불과 20여 년 후면 역사는 그렇게 우리를 폄하할 것입니다.
뭉쳐도 부족할 판에 각자의 정의를 외치며 갈라져버린 어리석은 민중들이었다고.
제일 유력했던 '대안'에게 힘을 실어주지 않은 우리를 비하하겠지요.
 
 
글쎄요. 이제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문재인을 찍고서 '나는 역사에 떳떳하다'고 자부심을 가지며 이대로 답도 없는 30대 무직 남성으로 여성할당제의 그늘에 묻혀 취업난에 허덕이게 될까요.
아니면 일말의 찜찜함을 안고서 그래도 나는 '진짜 정의는 여성주의를 옹호하지 않아' 라며 무효표를 던지고서 그 결과를 - 문재인이 당선이 되는 안되든 - 감수하게 될까요.
 
 
적어도, 저는 이제 그 어떤 "말도 안되는 비겁함"에 대해서도, '그 어떤 자기들만의 정의'에 대해서도, 비난은 하지 못하고 살 것 같습니다.
올바르게 살려고 노력하며 애썼던 것 같은데 왜 무엇을 선택해도 전 부끄러워야만 하는 걸까요..
 
저만의 고민일 지, 혼자 헛소리를 여기에 쓰고 있는 건지도 잘 모르겠지만.
 
그저. 한번 쯤 느낀 바를 여기 적으며 공감이든, 가르침이든, 받아보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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