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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활동가냐? 도장깨기 전문가냐?
게시물ID : sisa_75166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둥글이8
추천 : 3
조회수 : 438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6/08/06 08:10:15

설익음에 대하여 (메갈리아 활동 등을 보며) 


과거에 침잠해 있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는 의미의 ‘진보’가, 방향성 없는 무턱댄 저항과

돌격으로까지 왜곡되어, 막연한 감성적 불편함까지를 실랄하게 토로하는 것이 유행처럼 번

진 듯 하다. 쉽게 얘기하면 본인들 기분 나쁘면 그에 저항하고 타도의 기치를 높이는 것에

‘진보’의 수식이 붙고 있다는 말이다. 신중한 판단력과 수용력이 있으면 좋게 넘어가거나 합

리적인 문제제기로 해결될 사안에 감정을 싣고, 증오를 담으며, 구획을 나누고, 전선을 형성

해 필요없는 갈등을 만들어 내는 경우가 근래 몇년 사이에 부쩍 늘어나고 있는 듯 하다.


이는 가뜩이나 자신들이 독점 하다시피한 과잉개념을 타인에 대해 강요하면서 빚어지는데,

이것이 특히나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 유행처럼 번져 있는 것은 후기 산업사회의 감각적인

시대상의 영향도 있을 듯하다. 과거에는 그래로 사람들끼리 지키고 합의하는 도리라는 것이

암묵적으로 관계의 균형을 잡아 줬는데, 지금은 그냥 감각적으로 보이고 느껴지는데로 질러

대는 듯 하다.


문제는 그러류의 진보성은 ‘날카롭게 간 창 끝’과 같은 성질을 지니고 있어서 한번 찌르면

다시 빼기도 힘들 뿐만 아니라, 창끝을 연마하는데 너무 공을 들인 나머지 상대가 아군인지

적군인지, 아니면 지금이 창을 휘둘러야 하는 상황인지에 대한 분별 자체를 하지 못하고 무

턱대고 휘둘러대는 것에 재미를 붙이고 있다는 것이다. 불필요한 갈등이 빚어지는 것은 당

연하다.


특히나 삶의 여러 가지 가능성과 스펙트럼을 다양하게 수렴하고 통찰해야할 시기가 바로

20대 30대 초반이다. 그런데 이때 섣불리 특정 개념에 침잠하고 그에 집착해 버리면 그 외

의 모든 이해는 오직 자기가 믿고 있는 특정한 개념 안으로 수렴이 된다. 이때부터 모든 세

상의 문제는 자신이 가진 개념으로 환원되는 위험한 문제가 발생되는데, 이로 인해 세상을

보는 시야는 급격히 좁아진다. 하지만 이러한 ‘독단’은 그것이 강하면 강할수록 오히려 현실

을 명확히 보고 있는 것 같은 착시효과를 만들어 냄으로 악순환은 반복된다.


그러한 압착된 개념에 ‘진보성향 특유의 저항적 기질’이 맞물리면 대단히 복잡한 일이 발생

된다. 여기서 ‘진보성향 특유의 저항적 기질’은 부당한 권위에 맞서기 위해 우리의 내면에

자리하고 있는 반항기를 말한다. 문제는 이것이 아주 건전한 주체의 형성 훈련을 따라 그야

말로 ‘부당함에 대한 저항력’으로 생성된 경우라면 바람직하지만, 때로는 부모로부터 억압을

받은 경험 등에 의한 병적 히스테리가 기반이 된 경우가 흔하다는 것이다. 이런 경우를 모

두 퉁쳐서 ‘저항적 기질’이라고 말하는데, 후자의 ‘히스테리적인 기질’이 ‘독단적 개념’과 만

나면 복잡한 문제를 발생시키게 되며, 한번 이 수렁에 빠지면 그로부터 헤어 나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런 이유로 가끔 보면 진보운동 한답시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도장

깨기’같은 일을 하고 다니는 진보를 우리는 종종 보게 되는 것이다.


이런 표현이 과하다면 과할수도 있지만, 쥐뿔도 없는 이들이 투덜대기만 하고, 나서서 작은

실천은 하지 않고 머릿속 개념놀이만 하고, 남이 뭔가를 이뤄놓은 것이 있으면 그것이 자기

이상과 무엇이 다른 것과를 비교하면서 끊임없는 분란꺼리만 만들어 낸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나는 그들이 ‘보다 나은 사회’를 만들어낼 힘을 보태는 것은 둘째 치고, 평생 본인들의

정신적 문제(내적갈등, 분열)나 해결해 낼 수 있을지가 걱정이다. 이는 개인적으로 아주 오

래전부터 느꼈던 소회다.


니체는 ‘어떻게 인간이 자기 자신다워지는 가?’에 대한 실존 철학적 문제에 대한 답으로 3

단계 변신론을 주장한다. 즉 인간은 ‘낙타’에서 ‘사자’, 마지막에 ‘어린이’로 변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단계를 거쳐야 인간은 자기 자신다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낙타의 상태’라는 것은 무거운 짐을 등에 올린체 물도 못 마시고 꾸역꾸역 사막을 걷는 것

과 같은 ‘무한 인내’의 상태를 말함이다. 이는 한편으로 관습과 제도에 대해 복종하고 순응

하는 태도로 일단 이의 체험을 자처하고 견대 낼 용기와 지구력을 길러야 한다는 것이 니체

의 주장이다. 어줍쨚은 이해와 반발심으로 설익은 주장들 하고 다니며 소란을 피우는 일명

‘입진보’들보다, 겸허히 주변의 이야기들을 수용하며 낙타의 상태를 견뎌왔던 지극히 ‘보수

적 성향’의 인물들이 진보로 돌아설 때 아주 무서운 파괴력을 지니게 됨은 두 말할 나위 없

다. 그 과정을 견대내야 비로소 ‘사자의 상태’로 넘어갈 수 있다고 말한다.


‘사자의 상태’라는 것은 거리낌없는 자유정신을 표현하는데, 기존의 가치와 규범을 파괴하고

스스로의 가치와 질서를 규정해서 살아가는 삶을 뜻한다. 즉 스스로 자신의 왕국을 만들어

사는 삶을 말함이다. 이는 낙타의 짐을 제대로 져본 적이 없는 이들에게는 해당이 없는 사

항이다.


이 단계를 넘은 최종적 지향은 바로 ‘아이의 상태’이다. 이는 그야말로 ‘노는 상태’이다. 스

스로의 규칙을 만들어서 제 맘대로 노는 ‘그 어느 것에도 제한당하지 않는 무한 생성과 창

조’의 상태를 말함이다. 이는 사자가 ‘자기 질서’를 규율하는 능력을 넘어 그 질서마저도 제

맘대로 휘고 꺾고 뒤집고 엎어 칠 수 있는 상태이다. 삶을 놀이로 여길 수 있는 상태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여전히 내 스스로가 낙타의 상태에 있다고 여긴다. 그나마 나는 그 짊어진

짐을 인내하고 꾸역꾸역 한발이라도 앞으로 나아가려 애를 쓰면서 사자가 될 날을 도모하고

있을 뿐이다. 하여간 나 역시 그렇게 제대로 성장하지 못한 상태여서 사람들의 행태를 예민

하게 관찰하는데, 낙타의 짐을 제대로 짊어져 본 적이 없는 설익은 이들이 여기저기서 사자의

포효를 쏟아 내는 것에 귀가 간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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