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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픽] 빙과 - 뒤풀이上
게시물ID : animation_20226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bk201
추천 : 6
조회수 : 2990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4/02/26 12:35:21
영원할 것만 같던 카미야마제도 오늘 부로 막을 내리고 학생들은 각자의 위치로 돌아가야만 했다. 축제의 끝에 주말이 놓여 있는 것은 서로의 위치로
돌아가기 전 까지 축제의 여운을 털어내라는 의도일 것이다. 학교에서 특별히 마련해준 기간 동안 이 미약한 여운을 침대 위, 적어도 집 안에서 털어
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안타깝게도 지금의 난 나갈 준비를 마치고 신발장에서 신발을 신는 중이였다. 이 상황에 대한 원인을 설명하자면 글쎄..
순전히 잘못은 내게, 정확히 말하자면 축제의 영향을 받아 텐션이 올라갔었던 과거의 오레키 호타로라고 볼 수 있다.
 
"정말로 가는 거야?"
 
"어"
 
"별일이네. 네가 자발적으로 주최한 뒤풀이라니"
 
"..갔다 올게"
 
누나의 비아냥을 무시하고 집밖을 나섰다. 축제 때 나름 선배로써 고전부를 (의도치 않게)도와준 일은 고마웠지만 그런 소리를 들으면서까지 얘기를
계속 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내 언변이 누나와 대등한 수준이 아니기도 하고 말이다.
 
자전거의 페달을 조금씩 밟으며 앞으로 나아가다 보니 사토시와 쉽게 마주칠 수 있었다. 내가 챙긴 과자나 음료수도 적은 편은 아니었는데 이 녀석은
작정하고 가출이라도 할 셈인가 보다. 방금 한 생각을 아무런 여과도 거치지 않고 말해주니 평소처럼 웃으며 말하기를, '축제 때 내가 고전부에 기여한
일이 별로 없잖아. 이런 거라도 열심히 거들어야지' ...얼씨구, 퀴즈대회며 요리대회며 전부 쑤셔 댄 주제에 겸손은, 축제기간 내내 거의 앉아있기만 한
나는 한 트럭으로 가져와야 되는 건가.
 
"그나저나 의외인 걸 호타로. 다른 핑계로 빠질 줄 알았는데"
 
"다른 핑계로 빠지기에는 타이밍이 너무 적절하다고 생각 안하겠냐?"
 
"아무래도 그렇겠지"
 
하여간 이 자식은 다 알고 있으면서도 굳이 내가 이런 말을 입밖에 내기를 원한다. 내가 기어코 뒤풀이에 참여하려는 이유는 먼저 말을 꺼낸 사람으로
써의 책임감이기도 하지만 방금 사토시가 했던 말마따나 고전부의 일원들이 나의 좌우명을 잘 알고 있다는 게 가장 큰 이유였다. 하긴, 지금 후회한들
뭐 하겠나. 아무쪼록 조용한 뒤풀이가 되기를 바라는 게 좋겠지.
 
몇분 동안 페달을 휘저어서야 '호농' 치탄가 가의 저택 대문 앞에 다다를 수 있었다. 치탄타 가의 저택은 빙과에 관한 일로 한번 방문한 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토시는 전과 같은 감탄사를 내뱉었다. 뭐, 나라고 그렇게 덤덤한 반응을 보인 건 아니다. 정원 같은 경우는 적당히 멋을 살린 게 여전히 맘에
들었다.
 
"어서오세요. 오레키씨, 후쿠베씨"
 
벨을 누른지 얼마 안 되어 치탄다가 문을 열어 우리 둘을 맞이했다. 신발장에 올려져 있는 유난히 작은 신발 한쌍은 이바라의 것이 분명하리라.
사토시는 신발장 쪽을 본 순간 곧장 시간을 확인했다. 약속시간에 늦은 건 아니지만 대체 이바라에게 얼마나 붙잡혀 사는 거냐. 치탄다의 안내를 받아
도착한 뒤풀이 장소는 저번, 우리가 빙과에 관한 일로 각자의 의견을 발표하고 정리하던 그 장소였다. 공간도 넓고 밖으로 보이는 연못은 운치도 있으니
뒤풀이 장소로는 안성맞춤이라 볼 수 있다.
 
"안녕 마야카!"
 
"여"
 
딱히 찔리는 점도 없었으므로 당당히 인사를 걸 수 있었다. 하지만 이바라는 우리들에게 무슨 불만이 있는지 잔에 담긴 탄산음료를 고개를 꺾어 단숨에
들이키고는 그 반동을 독설로 내뱉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늦었어!!"
 
독설을 듣더라도 이 얘기만큼은 안 들을 것 같았는데.
 
"약속시간에 맞춰서 왔는데.."
 
즉각 흘러 나오는 사토시의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
 
"준비할 시간까지 염두해야지 딱 맞춰 오면 어떡해! 하여튼 후쿠짱은 섬세하지 못해!!"
 
이제 내 차롄가. 이런 터무니 없는 이유로 독설을 듣는 건 내키지 않지만.. 어쩔 수 없다.
 
"그리고 오레키!! 넌 어떻게 약속을 이리 쉽게 어길 수가 있어!! 치짱하고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데!!"
 
사토시에겐 약간 장난 식이였지만 대상이 나로 바뀌자 사뭇 진지해졌다. ....아, 그럴 수 밖에.
 
"...미안하다"
 
내가 이바라에게 독설을 들을 땐 대개 반론을 쏘아붙이기 마련인데 이번에는 그럴 수가 없었다. 이바라가 방금 한 말을 듣고 늦게나마 생각난건데
축제가 끝난 당일, 고전부의 부실에서 나눈 뒤풀이에 관한 얘기들 중에는 치탄다가 자신의 집에서 음식들을 만들거라 했고 그것을 이바라가 도와준다고
거들었다. 물론 나도 그 당시에는 하이텐션이였기 때문에 평생 안고 가야 할 에너지 절약주의를 쉽게 배반하면서까지 동참하기로 했다. 내 좌우명을
무시한 건 그렇다 쳐도 약속을 어겼다는 점에서 마땅히 사과해야 했다.
 
"그럼 그렇지. 천하의 오레키가 어디 가겠어"
 
진지한 사과를 웃어 넘기다니, 아무튼 화가 풀려 다행이다. 치탄다는 이바라가 식은 모습을 보여줘서야 어색하게 웃으며 상황을 수습하려 들었다.
이바라도 그런 치탄다를 보며 진짜 화낸 게 아니라며 다독거렸다. 하기사 온순의 미덕이 일상인 치탄다의 눈에는 나름 무서운 장면으로 비춰졌을 것
같았다. 
 
"그럼 이제 준비하는 게 어떨까요?"
 
치탄다의 기운 찬 한마디. 우리는 서로 고개를 끄덕이며 각자 준비해 온 것들을 탁상 위에 올려놨다. 아까도 느꼈지만 사토시 이 녀석은 무슨 피난갈
짐을 꾸려 온 것 같다.
 
"후쿠짱, 어디 피난가?"
 
이럴 때만 무서울 정도로 잘 통한다.
 
이바라가 가져 온 것들은 각 종 놀이 도구들이였다. 먹는 거야 치탄다와 이바라가 준비한 음식들과 사토시의 피난 짐이 있었기에 현명한 선택이라 볼 수
있었다. 내가 가져 온 것들은 뭐, 양만 다를 뿐 저 피난민과 다를 게 없으니 이하생략. 그리고 느껴지는 이바라의 따가운 시선. 이건 명백히 내 잘못이
아니라 사토시 쪽의 문젠데.
 
뒤풀이 장소 제공자 겸 보증된 요리솜씨를 자랑하는 셰프인 치탄다는 우리가 탁상에 올려 놓은 것들을 보며 눈을 빛내고 있었다. 내 눈에는 이바라가 가져 온 몇몇 도구들을 제외하곤 다 거기서 거기로 보이는데.. 참으로 신비한 아가씨다.
 
사토시는 1.5L 짜리 오렌지 주스 페트병의 뚜껑을 연 뒤 모두에게 한 잔 씩 오렌지 주스를 따라주었다.
 
"그렇게까지 예의바를 필요는 없어"
 
동급생이 따라주는 오렌지 주스를 영주가 하사하는 술처럼 받던 치탄다에게 한마디 던졌다. 치탄다는 내 말을 듣고선 금새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였다. 치탄다의 지나친 예절은 아마 치탄다 가와 다른 가문들과의 잦은 교류 때문에 생긴 습관일 것이다. 나쁜 습관이 아니긴 하다만 보는 사람들
입장도 좀 생각해 줘라.
 
사토시는 내 잔까지 오렌지 주스를 따라주고 자리에 착석했다. 동시에 치탄다가 방금의 창피에서 벗어나 우리들에게 무언가 동의를 구했다.
 
"저..이런 자리에서 괜찮으실지 모르겠는데.. 선포를 해도 괜찮을까요?"
 
잠깐의 정적.
 
"치짱이 원한다면야.."
 
"그렇게 하는게 더 분위기 날 것 같은데?"
 
어떻게 보면 일개 동아리의 뒤풀이로 보일테지만 우리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서로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닌게 아니라 다른 동아리 보다
몇배나 많은 문집을 판매하기 위해 다들 나름 노력했기 때문이다. 나 같은 경우는 운이 따라 준 경우라 볼 수 있겠지만. 어쨌든 그런 부원들의 노력을
치하하는 부장의 입장에서 선포라는 표현도 나쁘지 않겠지.
 
"좋을대로 해"
 
내 말까지 듣고 나서야 치탄다는 빙긋 웃으며 잔을 든 팔을 높게 뻗으며 외쳤다. 다른 녀석들도 치탄다의 뒤를 이어 잔을 높게 쳐들었다.
 
"지금부터 현립 카미야마 고등학교 고전부, 제 46호 문집 빙과 완판 기념 뒤풀이를 시작하겠습니다!"
 
건배. 제발 적당히 끝났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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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픽은 언제나 자기만족 겸 필력향상으로 씁니다.
라노콘 준비하는데 글이 너무 안써져서 잠깐 다른 길로 새어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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