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잿빛 길을 걷다 - 12
게시물ID : panic_7530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Avalanche
추천 : 1
조회수 : 450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4/12/13 16:23:08
우리가 침매터널 쪽을 나오자마자 봤던 풍경은, 잿빛으로 뒤덮인 세계에서 볼 수 있었던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색깔을 가득 가진 풍경이었다.

 

푸른 바다 위에 놓인 회색의 콘크리트 다리의 초입에서, 우리는 안도와 승리의 환호를 질렀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지옥을 빠져 나온 후, 우리는 탁 트인 넓은 공간으로 나와 한걸음씩 걷기 시작했다.

 

 

 

 

 

 

평소의 이 시간대 같으면 적어도 차가 십수대는 다니고 있을법 했다.

 

하지만, 우리가 다리 위를 거닐며 본것은 버려지고 뒤집힌 차들이었다.

 

주인을 잃은 채, 덩그러니 놓여있는 자동차들은 차마저 버리고 뛰어야 할수 밖에 없었던 급박한 상황을 보여주는 증거물인것 같았다.

 

완전히 뒤집혀버린 차도 있었고, 대충 세봐도 다섯대는 부딪혀 반쯤은 찌그러진 차들도 볼 수 있었다.

 

문이 열린채로 버려진 차들도 대다수였다.

 

우리는 혹시나 이 긴 다리를 건너게 해줄 버려진 차가 있을까, 사냥감을 찾아다니듯 하나하나 확인하며 지나갔다.

 

정말 친절한 사람이 있다면 열쇠도 꽂아놓고 버려놨을 수도 있다.

 

상훈이는 앞쪽에 있던 2012년형 소렌토로 발길을 돌렸다.

 

차문이 열린채로 버려져있던 베이지색 소렌토는, 차 주인이 정말 다급하게 몸을 피했다는걸 보여주고 있었다.

 

안쪽에서는 무엇인지 모를 끈적한 액체가 잔뜩 묻어있었다.

 

놈들이 안쪽에 타있던 건지, 혹은 안에 타있던 주인이 놈들중 하나로 변한건지는 알 수 없지만, 굉장히 높은 점도를 가진 갈색 액체가 가득 차량 시트에 붙어있는걸로 봐서는, 절대로 손을 대서는 안될 차라고 생각했다.

 

상훈이는 열려있던 차 문을 닫고는, 또다시 하얀 선을 따라서 걷기 시작했다.

 

 "너 이 다리 몇미터짜리 다린지 아냐?"

 

상훈이는 하얀선에 발을 맞춰 걸으며 나에게 물었다.

 

 "침매터널 180미터, 다리길이만 해도 8.2킬로미터."

 

난 상훈이 뒤를 따라걸으며 말했다.

 

상훈이는 얼굴이 확 구겨지는 듯 했다.

 

 "미친 그걸 언제 걸어가. 빨리 차 찾아봐야겠다 진짜."

 

상훈이는 하얀선을 따라 걷던 발길을 주변으로 돌려 또다른 차들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우린 적당한 차를 하나는 찾아봐야했다.

 

8.2킬로미터를 전부 걸어갈수도 없을 분더러, 이렇게 부피있는 가방을 메고 가는건 우릴 잡아주쇼 하고 광고하고 다니는거랑 다를게 없었다.

 

물론 차량엔진소리 자체가 큰 소음을 만들어내 놈들을 끌어올게 뻔하지만, 차 없이 거가대교를 건너고, 옥포까지 넘어가는건 무리가 있을것이다.

 

 ", 우리 이왕 타고갈거면 RV 쪽으로 찾아보는게 낫지 않을까?"

 

난 주변을 둘러보며 차를 찾고있던 상훈이에게 소리쳤다.

 

내가 골똘히 생각하는 동안, 상훈이는 벌써 내 수십미터 앞쪽에 있었다.

 

상훈이는 내가 소리치는걸 듣고는, 옆에 있던 그랜져 보닛 위쪽에 엉덩이를 걸치곤 나에게 소리쳤다.

 

 "! 안돼! 큰차는 피해서 찾아! 너무 눈에 띄는거도 안좋아!"

 

상훈이는 나를 보고 크게 소리치곤, 보닛 위에서 내려와 조수석 앞에 서서는 안쪽을 지켜보았다.

 

그리고는, 그랜져 차문을 잡고는 힘껏 잡아당겼다.

 

잠금이 해제되있던지, 차문은 아무런 저항도 없이 활짝 자신의 안을 보여주며 우리를 맞이하고 있었다.

 

상훈이는 아무런 제약도 없이 깔끔하게 열리는 차문을 보곤 씨익 웃고 있었다.

 

그랜져라 조금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그래도 없는것보단 나을것이다.

 

난 한달음에 상훈이에게 달려갔다.

 

내가 상훈이 근처로 갔을땐, 상훈이는 차 안쪽으로 머리를 넣고 안쪽을 살펴보고 있었다.

 

 "이야... 이거 안도 깨끗하고.... 안에 청소한지 얼마 안됐는지 깔끔하네..."

 

상훈이는 안쪽 시트쪽을 살짝 매만져보며 중얼거리고 있었다.

 

난 반대쪽으로 돌아가 운전석쪽의 문을 열었다.

 

문을 열자마자, 난 아주 상쾌한 향기를 맡을 수 있었다.

 

아마도 차 주인이, 감염사태가 터지기 전에 큰맘 먹고 새 방향제를 장만 했나보다.

 

곧 쓸모가 없어졌지만.....

 

난 운전석과 조수석 사이를 뒤져봤다.

 

혹시나 이 사이에 열쇠를 버려놓고 도망갔을 수도 있었다.

 

난 버려진 휴지들 틈바구니 속에 손을 넣어 뒤적거려 보았다.

 

아래쪽에서 딱딱한 느낌이 느껴졌다.

 

모양이 직사각형 비스무리한걸 보니 스마트키인것 같았다.

 

난 구겨진 휴지들을 손으로 헤집어보았다.

 

한층 한층 휴지들이 벗겨질때 마다, 그 아래에 있는 검은색이 조금씩 드러나고 있었다.

 

난 반쯤 헤집어진 휴지 사이로 손을 집어넣어선 그 검은색 물체를 집어 올렸다.

 

은색 열쇠고리에 걸려있는 스마트키였다.

 

난 스마트키를 손에 쥐곤, 뒷좌석에서 머리를 박고 열쇠를 찾고있던 상훈이의 머리를 살짝 두드렸다.

 

무언가가 자신의 머리를 툭툭 치고있다는 느낌을 받은 상훈이는, 머리를 들고는 나를 보았다.

 

그리곤, 내 손가락 사이에서 달랑대며 빛을 내고있는 스마트 키를 보곤, 씨익하고 웃음을 보여주었다.

 

 

 

 

 

 

우린 넓은 바다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달리고 있었다.

 

사장교를 이어주고 있는 하얀색 철골들이 아주 빠른 속도로 우리를 지나치고 있었다.

 

중간중간을 이어주는 다리, 그리고 터널을 지나 우리는 거제도로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차를 찾고 나서는, 일사천리라는 말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거가대교를 횡단하고 있었다.

 

10분정도를 달렸을까, 우린 우리의 왼쪽으로 거제방면 거가대교 톨게이트가 지나가는 걸 볼 수 있었다.

 

거제로 들어왔다는 걸 넌지시 우리에게 알려주고있는 파란색 톨게이트였다.

 

상훈이도 그걸 봤는지, 나에게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다왔다. 거제다. 우리 집이라고.."

 

우린 희망에 차있었다.

 

드디어 집에 돌아왔다는, 드디어 고향에 돌아왔다는 기쁨에 우리는 서로 눈을 마주쳤다.

 

상훈이는 액셀을 더욱 세게 밟아 속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콘크리트 길을 따라 가며 우리는 주변의 풍경을 둘러보고 있었다.

 

우리가 기숙사에서 봤던 그 지옥같은 풍경이 여기도 펼쳐진게 아닐까 내심 걱정되기 시작했다.

 

난 점점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만약 우리 집 주변마저 지옥이 되어버렸을수도 있다는 걱정이 머리속을 메우기 시작했다.

 

난 초조함에 창문을 열고는 머리를 쓸어넘겼다.

 

만약 집 문을 딱 열고 들어갔는데, 온 집안이 피범벅이고, 부모님 방안에는, 부모님이 아닌 괴물이 자리잡고 있다면.....

 

난 불안한 마음을 떨치려 상훈이에게 말을 걸려 했다.

 

내가 상훈이쪽으로 고개를 돌렸을때, 난 볼수 있었다.

 

양손으로 핸들을 꾹 잡고서는, 흔들리는 눈동자로 앞을 응시하고 있는 상훈이었다.

 

겉으로는 날 잡아주고, 흔들리지 않게 잡아주고 있었지만, 그 자신은 얼마나 흔들리고 있었을까.

 

난 초조하게 핸들을 톡톡 두드리며 운전을 하고 있는 상훈이를 보았다.

 

무언가가 불안한지, 상훈이는 앞쪽과 옆쪽을 번갈아 보며 액셀을 밟고 있었다.

 

상훈이조차도, 고향에 돌아왔다는 안도감과 함께, 자신의 보금자리가 부서졌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우린 그렇게 콘크리트 길을 따라 계속 달렸다.

 

거가대교쪽으로 이어진 길은, 송정이라는 곳쪽에서 끝이 났는데, 거기서 언덕 하나만 넘어간다면, 바로 모든 옥포를 한 눈에 담을 수 있는 장소가 있었다.

 

더군다나, 상훈이는 무엇이 불안한지 올라서다 시피 액셀을 밟아대서, 차 엔진은 굉음을 내며 바퀴를 굴려대고 있었다.

 

원형 인터체인지 길을 따라서 돌아 내려온 후, 우리는 그 언덕을 향해 차를 몰았다.

 

우리의 시야에서, 점점 하늘은 좁아지고, 우리 마을이 보이기 시작했다.

 

고층 아파트들부터 보이기 시작했고, 산 위에 있는 아파트들도 하나둘씩 보이기 시작했다.

 

우리는 기대감과 걱정감이 뒤섞인 상태로 언덕을 넘었다.

 

우리가 언덕을 넘자마자, 차는 급정거를 할 수 밖에 없었다.

 

상훈이는 창백해진 얼굴로 급브레이크를 밟았고, 우리가 몰던 차는 아주 긴 스키드 마크를 남기며 언덕의 중간쯤에 멈춰섰다.

 

상훈이는 좌절감에 젖은 눈으로 옥포를 보고 있었다.

 

나조차도, 커져가는 걱정에 조금이라도 진정을 시켜보려 했다.

 

눈을 감았다 떠보기도 하고, 머리를 조금씩 쓸어 넘겨보기도 했다.

 

하지만, 옥포 군데군데에서 피어나고 있는 검은연기들과, 당장 바로 앞에 보이는 아파트의 한쪽 벽이 완전히 그을려 있는 풍경은, 불안감을 더욱 키워주었다.

 

상훈이는 다시 액셀을 밟아서는 차를 굴려갔다.

 

우리가 옥포 위쪽에 있는 큰 길가에 들어섰을때는, 온 마을 군데군데에서 나오는 놈들을 볼 수 있었다.

 

중간쯤에 왔을땐, 또다른 차량의 바리케이트 때문에 차를 멈춰야만 했다.

 

상훈이는 완전히 굳은 얼굴로 모자를 쓰곤 차에서 내리고 있었다.

 

 "김경현, 빨리 내려."

 

상훈이는 나에게 무심한 한마디를 던지곤, 뒷좌석에 던져놨던 가방을 꺼내어 메고 있었다.

 

나도 옆에 두었던 모자를 챙겨 쓰곤, 바로 차에서 몸을 날리듯 내리곤, 가방을 꺼내 메었다.

 

상훈이는 입술에 피가날정도로 깨물고 있었다.

 

도대체 무엇이 그렇게 불안한지, 내가 느끼는 불안감 그 이상의 불안감의 원천이 무엇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상훈이는 내가 침매터널 안에서 느꼈던 불안감과 공포를 느끼고 있는듯 했다.

 

 "여기쯤이면 우리 집까지 두골목정도 가면 되니까, 빨리가자. 빨리...."

 

상훈이는 바람막이의 지퍼를 올려 옷을 여미곤, 앞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 박상훈. 천천히좀....."

 

난 차속에서 열쇠를 끄집어 내곤, 상훈이의 뒤를 따라 달리다시피 하며 걸었다.

 

주변에서 그르렁대는 소리가 울려오고 있었다.

 

아마 차 소리를 들은 놈들이 그 소리의 진원지로 점점 진주하고 있었다.

 

옆쪽 골목에서 저음의 그라울링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왼쪽에 있던 골목쪽에서 파란색 작업복을 입은 한놈이 걸어나오고 있었다.

 

상훈이는 도끼를 한번 손위에서 굴리더니, 걸어오는 속도를 그대로 실어 도끼를 찍어버렸다.

 

상훈이의 도끼질에, 놈의 목은 그대로 허공에 떠올라 검은색 피를 흩뿌리고 있었다.

 

머리가 분리된 본체는, 비틀거리며 선 자세를 유지 하고 있다, 스르르 중심이 무너지며 바닥으로 무너지고 있었다.

 

상훈이는 마치 눈이 뒤집힌듯, 집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그 다급한 마음은, 점점 우리를 몰아치고 있었고, 우리는 불과 300미터 정도 남은 집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우리가 골목길에서 몸을 돌려, 우리 집이 한눈에 보이는곳에 도달했을때, 우린 아파트 중간쯤에서 생긴 그을음을 볼 수 있었다.

 

이미 한번 불이 났다가 사그러 들었는지, 연기는 나고 있지 않았지만, 그 그을음 뒤에 숨어있을 이야기는 뻔했기 때문에, 우리는 걱정을 등에 업고 집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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