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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와 세계사 동시에 보기1(고인돌과 피라미드)
게시물ID : history_1428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궤변론자
추천 : 2
조회수 : 2619회
댓글수 : 4개
등록시간 : 2014/02/27 19:32:37

우리가 수능과 공무원시험에서 한국사가 필수가 되면서 한국사를 죽어라 하고 있다. 상당히 좋은 일이다.

역사는 굉장히! 중요하다. 역사를 게을리 하는 민족은 절때 발전할 수 없다!!

그런데 우리는 게을리하고 있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한국사는 시험에 나오니깐 죽어라하지만

세계사는 완전히 내팽겨친다. 사실 중고등학교때 한국사와 세계사를 나눈 나라는 일본과 중국 한국밖에 없다.


원래 한국사 동아시아사 세계사는 = 역사 history다. 영미에서는 통합역사를 배워서 세계적인 안목과 자국의 역사를 조망 할 수 있는데

우리는 시야가 너무 좁다. 항상 우리는 세계화를 갈망한다. 싸이 강남스타일 근데 세계화를 시키려면 일단 세계를 알아야한다. 글로벌~

적을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이라고 나만알아서는 안된다. 모든 학문이 융합되는데 한국 교육은 아직도 문이과 나누기 바쁘고

뭐 동아시아사 서양사 한국사 다 쪼개놔서 깊게는 배우나 넓게 보지는 못한다는 한계가 있다.

부모님이 늘상 어렸을 때 하는 이야기 반찬 편식하지마! 이러신다.

왜? 영양소 불균형으로 건강에 안좋으니깐!! 부모님이 맞는 이야기다.

우리는 학문 편식을 하고 있다.


물론 한 학문을 깊게 배우는게 나쁘다는게 아니라

한가지만 깊게 파고 있는게 문제입니다.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사람보다. 하나도 알고 둘도 아는 사람이되자.


단편 한국사와 세계사를 동시에 보기 시리즈를 연재해볼까 합니다. 양은 좀 소프트하게~

다소 부족하지만 너그러운 양해를 바랍니다!





1. 고인돌과 피라미드


첫번째이야기는 기원전 1000년 무렵 청동기시대 때의 무덤 고인돌이다.

수백톤이 나가는 이 돌을 옮기려면 사람 수백명은 필요했다.


아니 이렇게 수백명의 사람들이 옮기면서 까지 무덤을 만든이유는 뭘까?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길래...

그 대단한 사람을 교과서에서는 군장이라고 배웠다.

군장은 왜 나타났나? 분명 석기시대 때는 없었는데 말이다.

바로 청동기시대때 농업생산량이 급상승 하면서! 잉여 농산물 즉 먹고도 남은 농산물들이 많아 빈부격차가 생기고

농산물을 약탈하고 부족을 통합 사람들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지배자가 생기고 피지배자가 생겼다.


그럼 신석기시대 때에는 잉여 농산물이 없었을까? 물론 미비하지만 있었다. 빗살무늬토기가 곡식저장용도니깐 근데 보시면 알겠지만

저장을 한다하더라도 일주일정도면 다 동이난다. 그리고 워낙 생산력도 떨어져서 겨울 때는 곡식이 없어 굶어 죽었겠지요.

하지만 농산물 생산증가로 청동기시대 때에는 겨울에 곡식을 많이 쌓아두면서 굶주린 놈들이 약탈하는 거지요.


고로 석기시대를 평등사회 청동기시대부터 계급사회가 나오게 된 것이지요.

석기시대때는 너도나도 채집하고 물고기 잡아 먹으며 생활했는데 청동기시대 때부터 싸움잘하는 일진들의 빵셔틀이 된거죠.

고로 그 빵셔틀들이 일진이 죽으면 고인돌로 무덤을 만들어 주었지요. 남들은 다 돌맹이 들고 있는데

일진은 청동거울로 싹~ 비쳐주면 와~~ 대단한 사람이네? 위엄 과시 풍조도 생겨나겠지.

예를들어 나는 티코타는데 친구는 벤츠타면서 자랑질 하는 것 처럼

청동기시대때 군장 일진들의 우두머리인 단군이 우리나라 최초국가인 고조선을 세우면서 문명의 역사가 본격적으로 출발하게 된 것이지요.





그렇다면 세계에서는 어땠을까? 우리와 비슷한 흐름이였을까?


이집트를 한번 가보자.


이집트는 세계에서 가장 먼저 일어난 문명 가운데 하나이다. 문명이란 원시사회를 벗어나 도시와 국가를 이루어 사는 상태

고조선처럼 말이지요. 이집트의 대표적이 트레이드 마크인 피라미드 그런데 피라미드는 놀랍게도 우리나라 고인돌 보다 더 먼저 건립이 된다.

기원전 2600년경인데 우리나라 청동기시대가 기원전 1000년경에 도래하는데 이집트 피라미드가 건립 된때는 우리나라 신석기시대 때 였다.

어떻게 이집트는 우리나라 보다 빠르게 문명사회로 진입할 수 있었을까?


그 답은 신석기시대 때 있다. 우리가 신석기시대때 뭐를 시작했다고 배웠나? 벼농사!! 농경과 목축을 시작했다고 배웠다.

이집트와 우리나라가 신석기시대 출발은 비슷하게 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신석기시대 때에도

벼농사나 목축이 전체 노동량의 10%이하였다. 나머지 90% 아직도 채집이나 수렵 사냥에 의존하였다.


허나 이집트는 벼농사가 시작되자 기아급수적으로 생산력이 올라갔다. 왜? 아까 말했다시피

이집트는 가장 오래된 문명 중 하나이다. 우리가 초중딩때 4개의 문명을 배웠다.

중국 인도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이 네개의 공통점 큰 강을 끼고 있다.

중국은 황하강 인도는 인더스강 메소포타미아는 티그리스 유라테스강 이집트는 나일강

이걸 우리가 흔히 나일강의 기적이다!!라고 하듯이 신석기때 벼씨를 발견하게 되면서 강도 끼고 있겠다. 입지조건이 좋아서

생산력이 급격하게 올라가 우리보다 더 빨리 문명사회에 진입했다. 


우리조상들이 명당 풍수지리를 강조하는 것도 여기에 있는 것 같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봐라! 입지가 최고지!!

물론 고인돌은 비교가 안될만큼 피라미드는 우리보다 더빠르게 LTE속도로 건립되고 웅장하지만

실망 할 것 없다. 우리가 현대사회로 오면서 건축기술이 뛰어나 이집트를 압도했다.

우리가 요새 140층 건물은 껌으로 짓는다. 역사는 누가 먼저 가느냐도 중요하지만 언젠간 역적하는 것도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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