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편 공주님께 술 한잔 올립니다 -
- 4편 공주님께 들려드리니 옛날이야기 좋아하시는지 -
변신의 여왕은 낭만을 꿈꾸는가
세상에는 사랑을 먹고 사는 종족이 있다. 이는 시적인 수사법이 아닌 단순한 사실의 나열이다. 이 사실에 그들이 낭만적이라고 함부로 지껄이지 말기를 바란다. 그들은 사랑을 먹으며 살아야 하기에 사랑을 뺏어야만 한다. 자급자족으로는 살기가 부족하다는 것은 공리이다. 그렇기에 그들은 사랑을 약탈해야만 한다. 세상은 공평하기에 (혹은 세상은 우리를 신경 쓰지 않기에) 그 사랑을 먹는 자들에게는 한 가지 특별한 재능이 주어졌다. 그것은 다른 자의 모습을 베낄 수 있는 재능이다.
그들은 다른 자들 사이에 들어가 모습을 베껴 그들의 사랑을 약탈할 수 있다. 그리고 이들의 모습에서 우리의 모습을 또한 반추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살기위해 다른 자들의 사랑을 약탈해가는 그들의 모습은........
[종족론] 153p에서 발췌
여왕은 구멍이 숭숭 뚫린 자신의 다리들이 멋대로 널브러진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다지 여왕다운 위엄이 넘치는 모습이 아니었지만 크게 신경 쓰지는 않았다. 어차피 여왕은 크게 자신의 위엄에 신경 쓰는 자가 아니었다.
어차피 지금은 여왕의 위엄보다 더 중요한 사실이 자신을 짓누르고 있었다.
체인질링의 여왕 크리살리스는 이퀘스트리아 침공에 실패했다.
그 사실은 여왕의 족쇄가 되어 평생을 따라다닐 것이다. 크리살리스는 직감적으로 알아챘다. 그리고 특별히 그 사실에 신경을 쓰고픈 마음은 없었다.
“하아, 하하하!”
허탈한 웃음이 자신의 입술을 비집으며 터져 나왔고 크리살리스는 굳이 웃음을 막지 않았다. 참담한 실패였지만 웃음은 멈추질 않았다. 터져나온 웃음은 길게 세었고 곧 웃음은 흐느낌이 되었고 그 흐느낌은 울음이 되어, 통곡이 되었다.
크리살리스 여왕은 가슴이 찢어질 것처럼 울음을 터뜨렸다. 커다란 울음은 폭풍같은 비가가 되어 절벽의 극장을 울렸다. 관객들의 박수갈채는 없었다.
외로운 비가였다.
외로운 울음이었다.
어린 체인질링의 공주는 구슬 같은 눈물을 흘리며 펑펑 울고 있었고, 거대한 궁전이었지만 그녀의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렇기에 그녀를 달래줄 자는 없었고 그녀의 울음은 계속해 공전을 울리기만 했다.
웅웅웅... 웅웅웅... 웅웅웅...
궁전은 그녀와 함께 같이 울어주었다. 적어도 어린 공주는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늘 그래왔다. 그녀의 옆에는 아무도...
“공주님. 청승맞게 뭐하십니까?”
어린 공주는 그 말을 듣고 더 크게 울기 시작했다. 내심 살풋 미소를 지은채로. 옆의 목소리는 다시 들려왔다.
“폐하가 아끼는 자기가 깨졌군요. 공주님이 깨뜨리셨습니까?”
“으, 응...”
공주는 슬쩍 목소리의 주인공을 바라보았다. 그녀가 바라본 그곳에는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자가 있었다. 가장, 자신이 좋아하는,
“욘석, 크리살리스! 오빠가 함부로 놀지 말랬지!”
“오빠, 잘못 했어!”
“자기는 깨져서 위험하다고 했지, 어디 다치진 않았어?”
“응, 안다쳤어.”
“그럼 됐어. 아바바마께는 내가 말씀드려 놓을 테니까.”
체인질링의 예복을 차려입은 젊은 왕자는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에 공주도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들의 국가는 영원할 것이다. 모든 체인질링은 그 사실을 믿었고 결코 의심하지 않았다. 체인질링의 왕자도, 공주도, 어느 누구도 그 사실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들은 영원할 것이다.
“서로간의 욕망을 표출시켜 봅시다.”
푸딩모양의 모자를 뒤집어쓴 포니가 중얼거렸고 그의 앞자리에 있던 포니는 머리를 책상에 박아버리고 싶은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저걸 진정 말이라고 하고 있는 것일까. 분명 자신의 존경스러운 상관이었지만 가끔 그 고귀한 얼굴에 발굽을 날리고픈 심정은 늘 느끼고 있는 것이었다.
“그런 표정 짓지 마십시오.”
“왜요!”
그 말은 비명과 흡사했다.
“찌그러진 쿠키가 되버리잖습니까. 스마트 쿠키.”
“그딴 게 이유라면 얼마든지 찌푸리고 싶군요, 푸딩헤드.”
“아직도 자신이 사춘기의 소녀라고 주장하고 싶은 거라면 말리지는 않겠습니다.”
푸딩헤드라 불린 분홍색 포니는 차를 약간 들이켰고 그 모습을 스마트 쿠키는 씹어먹을 듯이 노려보았다.
“왜 하필 접니까.”
“왜 하필 우리냐고 물어보십시오.”
“왜 하필 우리입니까.”
“그때 우리가 시간축을 뒤틀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예?”
“아무것도 아닙니다. 제가 말하고픈 이유는 한가지 뿐입니다.”
뒷말을 잇기 위해 푸딩헤드는 숨을 들이켰고 스마트 쿠키는 그 입에 집중했다.
“당신이 가장 할 짓이 없기 때문입니다.”
스마트 쿠키는 ‘그게 지금 법무대신을 총사령관 보에 앉히는 자가 할 말이냐!’라고 외치진 않았다. 그저 자신의 오래된 욕망을 표출시켰을 뿐이었다.
푸딩헤드는 처음으로 신임하는 부하의 발굽의 간을 맛볼 수 있었다. 이름에 비해 그렇게 고소하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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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뵙습니다, 여러분.
오랜만에 뵙습니다, 만. 이것 참, 드릴 말씀이 없네요.
재밌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