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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은 백마탄 왕자가 아닙니다. 검증의 문제.(스압)
게시물ID : sisa_75460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청과
추천 : 12
조회수 : 449회
댓글수 : 7개
등록시간 : 2016/08/20 20:5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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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현실에서도 그렇고 인터넷상에서도 그렇고

시민의 정치참여 방법에 대해서 대단히 착각하시는 분들이 있고
정치인을 판단하는 문제에 있어서도 대단히 착각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정치인을 지지하는 것만으로 정치참여가 끝나는 것이 아니고.
정치인에게 내가 바라는 심상을 씌워서 보는 것은 판단의 근거가 될 수 없습니다.

군대에서 병사들은 언제나 자신의 상관이 똑똑하고 게으르길 바라거나,
혹은 무능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사실은 지휘관도 인간이라는 점입니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욕망을 기반으로 행동합니다.

소설이나 동화속에 등장하는 절대적 영웅처럼 완전무결한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 사람을 찾는 것이라면
예수나 부처를 찾아서 정치인이 되어야 한다고 설득해야겠죠.

특히 정치인들의 심리가 우리가 일반적으로 바라는 것처럼 
옳바른 사회를 만들기 위해 정치를 한다거나, 사회에 기여를 하기 위해 정치를 한다고 전제하는 것은 가장 큰 잘못입니다.
물론 이런 뻔한 말은 당연히 다 알고 계시겠지만.
수 많은 사람들은 항상 자신이 지지하는 정치인이 옳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지지하는데, 기본적으로

정치인은 정치권력을 쥐는 것에 삶의 목적을 두고 있습니다.
이건 정치인이 내가 보기에 선하든 악하든 아무 관계없는 이야기이고

다시 말하자면, 본인들이 유권자들로부터 표를 받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할 수 있고,
혹은 정치를 하는 데 필수 불가결한 생존자금, 이른바 정치자금을 지원받기 위해서는 자신의 신념이나 논조조차 꺾을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물질적인 이득을 초연하여 자신의 신념을 관철하려고 했던 노무현 대통령이 꼴통이고 바보 소리를 들었던 것이고
지금까지 유일하게 대선자금을 당에서 지원받고 국민의 저금통으로 지원받을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노무현 대통령을 존경 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허나 중요한 것은 이 나라 정치판에 노무현 같은 사람이 또 있느냐고 묻는다면 제 생각에는 없다고 가정하는것이
유권자들의 옳바른 판단의 시작이 됩니다. 그 사람이 옳은 말을 하고, 옳은 행동을 한다 해서 제2의 노무현을 바라고 지지하면 안 됩니다.
정치인들은 정치권력을 위해서는 위선조차 진심으로 속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
정치인은 본인들이 권력을 얻기를 바랍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정치권력으로 사회를 바꾸려고 했던 것은 권력을 수단으로 민주주의라는 결과를 얻기 위한 것이지만.
대부분의 정치인들은 권력을 결과로 두고 정치 활동을 합니다.

본인의 욕망이 어디에 닿아있느냐는 정치인을 판별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인데,
왜냐면, 본인이 권력을 쥐는 것이 최종적인 목적이라면 그 과정에서 인기영합적이고 선한 정책을 펼치는 것으로 유권자들의 표를 끌어오려는 시도가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이것은 이명박 이후로 나타난 이미지 정치인들에게 가장 많이 보이는 패턴입니다.
(심지어 노무현을 공격했던 자들도 노무현 사후 이후에는 잘못했다며, 혹은 자신은 친노였다면서 주장하는 경우를 많이 보는데
그것은 그들이 친노이거나 뉘우쳤기 때문이 아니고, 이 나라 진보진영에 노무현이라는 이름이 그만큼 막강한 영향을 발휘하기 때문입니다.)

결과적으로 본인의 이익을 위한 권력이기 때문에 이러한 이미지에 집중한 정치인들은 
유권자들이 원하는 정치력을 발휘하지 않을 경우가 매우 많습니다. 이미 권력을 차지하고 난 후로는 유권자로부터 어떠한 책임도 추궁도 도의적으로 무시하기만 하면 상관없는 이야기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명박의 재산기부 공약은 재단설립으로 인한 재산 늘리기에 사용되었고, 
이명박의 선심성 공약은 그가 대통령이 됨으로써 막대한 비리로 인한 재산축적의 과정에 불과했습니다.

안철수는 생각할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파악할수 있는 애매모호한 '새정치' 구호로 
정계에 등장해서 사람들의 기대를 끌어모았는데, 
대다수 지지자들은 안철수에게서 자신들이 기대하는 영웅에 대한 환상을 그대로 투영했고 그것이 바로 지지의 기반이 되었습니다.
이런 백마탄 왕자를 바라는 심리는 결국 야권분열과 더민주의 분당으로 나타났습니다. 

기본적으로 누구나 할수 있는 말은 누구나 할수 있습니다.
사랑이나 평화, 평등, 시민의 권리 또한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입니다. 


다만 그것을 말하는 본인이 누구인지를 먼저 봐야 합니다. 
그리고 정치인의 이익이 누구의 이익으로 나타나는지를 봐야 합니다.
메갈리아 티셔츠의 문구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티셔츠를 팔아 이득을 얻는 주체가 누구인지를 봐야한다는 말입니다.
그 선한 말 좋은 말을 수단으로 쓰고 있는 것이 아닌지를 봐야한다는 말입니다.

저는 시사게에 예전부터 김종인에 대해서 옹호하는 발언을 했는데, 
물론 그런 댓글이나 글을 쓰면 무조건 반대를 많이 먹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판단기준이 매우 다릅니다. 

정동영이 좋은 말 좋은 행동을 했다고 해서 용서하지 않았던 이유는
그가 반드시 배신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인데, 정치인은 과거를 돌아보면서 그가 지향하는 방향이 어디인지, 혹은 그가 그렇게 판단하도록 만드는 핵심 가치가 무엇인지, 아니면 그의 판단에 영향을 주는 세력이 어디인지 유추할 수 있습니다.

과거의 행동을 점수표로 -20점이고, 
지금 그 정치인이 잘못한 행동을 사과하고 잘 한 행동을 하여 +30점이니 합쳐서 +10점이라고 평가하는게 아닙니다.
결과적으로 정동영은 다시 분열의 아이콘이 되었습니다.

정치인은 언제든지 거짓 사과와 거짓 행동으로 유권자를 기만할 수 있습니다.
왜냐면 그런 바르게 보이는 행동조차 권력욕이 동기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정치인의 행동을 보고 판단한다는 것은 점수를 매겨서 쓴다는 원론적인 이야기가 아니고
그 정치인의 인생 전반을 돌아보고 이 사람이 친구라면 믿을수 있는가.
성격이 더러워서 친구가 될수는 없어도 적어도 이득이 되는가.
내가 생각하는 정치로써의 사회 영향력에 이득이 되는가를 따져야 하는것입니다.

이해득실의 측면에서 나에게 이득이 될수 있는가.
그리고 이 사람에 대한 신뢰란 나에게 이득이 되는 행위를 끝까지 해낼 수 있는가입니다.(일관성과 안정성)

김종인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 말았는데,
김종인은 기본적으로 경제민주화를 위해 기득권이라는 자신의 위치조차도 신경쓰지 않고 
일관된 정책을 추진했습니다.

그가 성격이 더럽든, 혹은 매우 극 보수적인 시각에서 국방정책을 주장하든,
결론적으로 경제민주화에 대한 열망 하나만은 진실이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결과로써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조차도 경제민주화의 아이콘으로써 선거단에 김종인을 영입할수밖에 없었습니다.
경제계에 미치는 그의 영향력은 이미 김종인 사단이기 때문입니다.

도덕적이고 완전무결함을 바라는 일반적 진보에게 김종인은 꼬장꼬짱한 노인이고 
진보라는 이름으로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사람으로 보일 것입니다.
그러나 김종인은 본인이 기득권으로써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경제민주화란 주제로 결과를 추구하는데,
본인이 편하게 살 생각이라면 재벌들에게서 배척을 받고, 아무에게도 환영받지 않으며
진보진영에서도 믿지 못하겠다고 말하는 그깟 경제 민주화 안 해도 됩니다. 노회찬이 삼성 x파일을 터뜨렸다가 국회의원직을 상실했다는 
사실, 그리고 정치자금이 기업으로부터 나온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오히려 김종인이 주장하는 경제 민주화는 대다수 정치인들의 힘이 되는 
기득권에게 별 다른 이익이 없습니다. (정치자금끊길까 염려되면 모를까.)

저는 여기서부터 김종인의 다른 사상은 둘째치고 경제민주화 하나만은 더민주의 새 프레임으로써
김종인이 더민주에 반드시 필요하다 생각했기 때문에 

오유 시사게에 만연했던 김종인을 쳐내야 한다느니, 김종인은 더민주에 암적인 존재라느니 하는 일반적 주장에 동의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또한 김종인은 적장 밑의 장수였다는 의미에서도 상징성이 있습니다. 

박근혜 캠프 밑에 있었기 때문에 믿지 못하겠다가 아니라 오히려 참여정부에서도 경제부총리 제안을 받았을만큼 
일관된 경제민주화에 대한 열망 그 자체를 신뢰할수 있다고 본 것입니다. 
진영논리가 아니라 경제민주화가 되느냐 마느냐를 따라갔던 그 일관성말입니다.


즉 위에서 언급했던 그 사람의 일관성에 대한 신뢰와,
경제민주화를 통해 일반 대중이 먹고할 여유가 생김으로 인해 정치 참여가 확대된다는 민주주의적인 이점이
제가 생각하는 이해득실의 측면에서 합치했기 때문에 김종인을 옹호했다는 이야기입니다.
김종인은 어떤 욕망으로 인해서 경제민주화를 추구하는지 관심법이 없는 이상 저는 그의 심리를 모릅니다.
그러나 경제민주화라는 일관성과 그것에 대한 결과만은 저라는 유권자와 합치하기 때문에 그를 더민주에서 내쳐서는 안 된다는 판단을 하게 되었습니다.

다른 정치인에 대한 판단기준도 마찬가지입니다.

과거에 그 정치인이 어떤 행동을 했다면 그 행동은 잘못한 행동이라고 평가하고 끝내는 것이 아니고
그 사람은 왜 그런 행동을 했을까. '왜' 그랬을까에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그렇게 따지고 나면 탄핵에 찬성했거나 열린우리당을 깨고 나갔던 정치인들을 
왜 배반의 아이콘으로 생각하고 신뢰하지 않는지 이해가 되실 것입니다.

표면적으로는 그들 내심을 알수 없는 자들이며. 그들의 대부분이 특정 계파 아래에 있는 정치인이라는 점. 
언제든지 그들만의 이유가 있다면 통제되지 않은 상태로 튀어나갈 여지가 있는 사람이라는 인식.
즉, '통제되지 않는 도구'라고 정의내릴수 있습니다. 

앞서서 정치인은 유권자의 표를 받기위해 무엇이든 한다고 했는데,
다른 측면에서는 정치를 지속하기 위한 정치자금을 받기위해 무엇이든 할수 있는 것도 다른 원인이면서
동시에 그런 자금은 일반 유권자의 후원금보다는 그러한 계파에서 나옵니다.
친이계와 친박이 나뉜 이유는 정치인의 가치관 때문이 아니고, 그들 정치가 가능하게 하는 금전적 후원자로써의 힘과
그들 이름을 빌어서 지역유권자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복합적으로 존재하는 것입니다. 엄연히 이권을 따라간다는 이야기입니다.

통제되지 않는 도구는 사용자를 해칠 우려가 높습니다. 
정치인을 도구로 사용해야 하는 유권자들에게 이것은 심각한 위험 부담이 됩니다.


정치인은 그냥 평범한 사람의 하나로 보시고 
그가 사기를 치고있는 아닌지 그걸 먼저 판단해주시기 바랍니다. 
기본적으로 욕망의 발현으로 정치를 하고 있다는 점을 먼저 상기해주시기 바랍니다.

간혹 운이 좋아서, 어떤 사람의 진심을 판단할 수 있었던 때도 있습니다.

정치를 그만두고 떠났던 문재인이 돌아온 것은 노무현의 죽음 때문이었고 이것은 그를 믿을수 있는 검증의 예입니다. 
진보진영이 모두 노무현을 욕했을때 끝까지 친노를 자처했던 것은 문재인과 유시민 천호선뿐이었습니다. (제가 기억하기로는)
노회찬이 삼성파일을 터뜨렸을때 정상인이라면 어떤 국회의원도 그런 짓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확실한 검증의 기회는 이렇게 오는 것입니다.
정치인이 백마탄 왕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전제하고 정치인에 대한 기대부터 버리고 나서
이해득실을 따져 결과를 추구해야만 정치로 세상이 바뀝니다. 그리고 그 정치인이 이해득실 이전에 
신뢰할수 있는지 그걸 검증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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