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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기부천사가 싫다
게시물ID : sisa_49024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AAA5
추천 : 4
조회수 : 533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4/03/01 04:06:55
나는 기부천사가 싫다


이선영



“후원 신청하시려구요?”

“어, 방송을 봤는데, 부모 없이 할머니랑 사는 아이를 돕고 싶어. 나 혼자 애들 키우기가 너무 힘들었어…. 꼭 그런 아이를 찾아줘요. 그래야 내가 살겠어….”

모금 방송이 시작되고 안타까운 아이들의 사연이 전파를 탄 후 한 할머니의 전화가 걸려왔다. 후원 접수를 받고 있던 나는 “그래야 내가 살겠어…”라는 할머니의 말을 듣는 순간 갑자기 목이 메었다. 돕지 않고는 못 살겠다니…. 그 깊은 마음을 채 헤아리기도 전에 절절한 한마디만으로 눈물이 왈칵 쏟아진 것이다.

사회복지 기관에서 일하면서 주책없이 눈물을 흘린 기억이 또 한 번 있다. 중국집 배달원으로 생활하면서 어려운 아이들을 도와온 후원자의 갑작스런 교통사고 소식을 듣고 빈소를 찾았을 때였다.

고아원 출신으로 고시원에서 외롭게 지내온 고인의 빈소는 ‘철가방 천사’ 소식을 듣고 찾아온 기자들과 유력 인사들의 조문으로 북적이고 있었고,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인들이 보낸 근조 화환도 속속 도착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높은 분들의 이름이 붙은 꽃이 오토바이 헬멧을 쓴 채 환하게 웃고 있는 고인의 영정 앞에 놓이는 순간, 그 순간 갑자기 울음이 터져 나왔다. 장례식장 분위기를 취재하고 있던 한 기자가 다가와 “근조 화환을 보고 왜 우셨나요?”라고 물었을 때 나는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아이들을 도와야 내가 살겠다는 할머니의 마음, 햇볕도 들지 않는 고시원에 살면서도 아이들을 도와온 후원자의 마음, 그 소박하지만 숭고한 정신, 작지만 거대한 실천이 감히 가늠할 수 없는 크기로 다가온 순간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언제까지 아픔을 겪어본 사람끼리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가야 하나’, ‘언제까지 가난한 사람이 더 가난한 사람을 위해 그 팍팍한 지갑을 열어야 하는 걸까’라는 원망이 밀려왔다. 우리나라는 고액 기부자마저 평생 어렵게 돈을 벌어온 김밥 할머니, 채소 장수 할머니, 폐지 줍는 할머니이지 않은가?

철가방 천사로 알려진 후원자를 비롯해 기부자 할머니들은 자신들과 똑같은 고단함과 아픔을 겪고 있는 이웃을 위해 나눔을 실천해왔다. 비슷한 처지에 놓인 사람들의 아픔에 공감하기 때문에 모른 척할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같은 시대, 같은 공간에 살고 있음에도 정치인들을 비롯한 사회 지도층은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지 못한다. 시민들의 고통을 보지 못하고 그들의 외침은 들리지 않는다.

국민들의 아픔에 공감하지 못하는 나라, 불행한 가정환경이 평생 굴레가 되어 가난을 벗어날 수도 고시원을 벗어날 수도 없는 사회를 만든 사람들이, 철가방 천사가 된 고인의 삶 앞에 온갖 미사여구를 붙여 꽃을 선물할 수 있을까? 고인의 기사를 연일 대서특필하며 ‘이렇게 어려워도 나누며 산다’는 메시지를 전한 언론들은 나누며 살지 못한 사람들을 부끄럽게 하고 죄책감마저 느끼게 했다.

하지만 재벌과 부자들의 사회적 책임을 촉구하지 않고, 기업과 부자들을 위한 부당한 혜택에는 침묵했던 언론이 시민들에게 지갑을 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이것이 장례식장에서 만난 기자에게 대답하지 못한 내 눈물의 이유이다.

나는 더 이상 어려운 환경에서 힘겹게 나눔을 실천하는 후원자의 소식을 듣고 싶지 않다. 주책없이 눈물 흘리고 싶지도 않다.

더 이상 천사들이 자신의 고통을 타인의 삶에 투영하고 염려하며 힘겹게 나서지 않아도 되길 바란다. 철가방 천사가 되는 대신 어려운 과거는 훌훌 털고 토끼 같은 자식 낳아 행복한 가정을 꾸릴 수 있는 사회이길 바란다. 할머니가 도움이 필요해 텔레비전에까지 나와야 했던 아이들을 걱정하며 다급히 전화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길 바란다. 불행한 일이 닥쳤다 해도 사회와 나라가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고 보호해줄 거라는 믿음이 존재하는 나라이길 바란다. 도움을 주면 천사가 되고 도움을 받으면 위축되는 자선과 시혜가 아니라, 함께 살아가고 연대하는 방식으로 기부가 존재하길 바란다. 그래서 감히 ‘기부 천사’가 없는 세상을 꿈꾼다.


글쓴이 사회복지 기관에서 일하고 있다.
 
미국과 한국의 차이점이라 한다면 미국은 부자들이 기부를 해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사용한다면
한국은 가난한 사람들이 기부를 하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일부 사용한다는 것이다.
 
 북유럽은 기부와 자선이 별로 없는 대신에, 정부에서 사회적 약자를 배려한다고 해요..
그곳은 사민주의 나라이자 세금을 많이 떼어가니깐요.. 북유럽에서는 국회의원 직업이 3D 업종이라고 함..
국민들을 위해 봉사한다고 함..;  빈부격차가 적구요..
 
 
 

기부는 훌륭한 행위지만 복지제도와는 달라

기부는 개인의 자발성에 기초해 사회 공헌
복지는 ‘세금으로 하는 기부’…훨씬 안정적

# 2년 전 장학금 3억원을 내놨던 보성의 기부천사가 이번에도 얼굴을 감춘 채 2억원을 기부했다. 보성군장학재단은 “지역인재 육성을 위한 장학기금 모금계좌에 지난 4일 오전 10시께 ‘박님’이라는 이름으로 2억원이 입금됐다”고 6일 밝혔다. 농협 보성군청출장소에 개설된 장학재단 계좌엔 1억원, 7000만원, 3000만원 등 세차례에 걸쳐 입금됐다. 이 기부자는 2011년 10월14일 2억원, 나흘 뒤인 18일 1억원 등 모두 3억원을 입금해 군민과 재단을 깜짝 놀라게 만든 바 있다. 보성 얼굴 없는 ‘기부천사’
 
2013년 3월7일)이런 소식을 접할 때마다 ‘그래도, 정말 살 만한 세상이구나’ 하며 많은 사람들이 뿌듯해합니다. 거액을 선뜻 좋은 일에 쓰라며 기부하는 것은 훌륭한 일이라고 할 수 있겠죠. 더구나 ‘이름 없는 기부천사’이니 더욱 뜻깊게 다가옵니다. 전남 보성뿐 아니라, 전국 각지에서 때마다 신분을 밝히지 않고 거액의 기부를 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전북 전주와 제주 등에서도 돈과 쌀 등을 어려운 이웃들에게 남몰래 전달했다는 소식이 전해오곤 합니다. # 전북 전주의 ‘얼굴 없는 천사’가 올해도 어김없이 찾아왔다. 27일 오후 1시53분께 전주 노송동주민센터에는 40~50대로 추정되는 한 남성이 전화를 걸어왔다. 그는 “(전주시가 2년 전 세운) 얼굴 없는 천사 비석 옆을 봐주세요. 어려운 이웃을 위해 써주세요”라는 말을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그가 얘기한 곳에는 현금 뭉치와 돼지저금통이 든, A4용지를 담는 종이상자가 놓여 있었다. 액수는 모두 5030만4600원이었다. 5만원권 1000장이 100만원씩 10묶음으로 있었다. 돼지저금통에는 500원짜리 동전 358개, 100원짜리 119개, 50원짜리 16개, 10원짜리 80개 등이 들어 있었다. 성금을 전달한 시점과 방식, 전화 목소리 등을 살펴볼 때 지난 12년간 찾아왔던 그 ‘얼굴 없는 천사’로 보인다. 노송동 얼굴 없는 천사의 기부는 200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4월 당시 노송동사무소를 찾은 그는 민원대에 58만4000원을 놓고 사라졌다. 그 뒤 그는 해마다 12월 성탄절을 전후해 노송동을 찾아 ‘불우이웃을 위해 써달라’는 짤막한 쪽지와 함께 소리 없이 사라졌다. (전주 ‘얼굴 없는 천사’ 올해도 오셨네/<한겨레> 2012년 12월28일)전주의 ‘얼굴 없는 천사’는 10년 넘게 선행을 이어오며 지역의 유명인사가 되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 전주의 천사는 부자여서 기부에 나서는 것만 같지는 않습니다. 이런 따뜻한 마음들이 많아진다면 더욱 살기 좋은 세상이 될 것만 같습니다. 하지만 과연 기부만으로 세상이 살기 좋아질 수 있을까요? 이런 기부들이 지닌 눈에 보이지 않는 상징적 힘은 무척 크지만, 냉정하게 따진다면 가난한 사람들에게 두루 혜택이 돌아갈 정도로 큰돈이 모인다
고 보긴 어렵습니다.
 
 물론 대기업 재벌 회장님들도 거액의 기부를 하곤 하죠. 이건희 삼성 회장,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등도 수천억원에서 많게는 수조원까지 여러차례 기부를 약속하고 실행해왔습니다. 대기업들도 연말이면 으레 수백억원의 기부금을 사회단체에 기부하곤 합니다. 하지만 이런 돈이 모여서 수조원의 자금이 마련된다 해도, 돈의 온기가 사회 구석구석에 미치지는 못하는 것 같습니다. 기부는 틀림없이 훌륭한 행위이지만 한계 역시 뚜렷합니다.
 
기부는 우선, 의무가 아닙니다. 기부는 개인의 자비심에 전적으로 달려 있습니다. 그러니 하면 좋고, 안 해도 어쩔 수 없는 것이죠. 도움은 지속적으로 주어지지 못하고, 받는 사람은 혜택을 받아 고마워해야 할 일입니다. 그렇다면 기부의 일회적이고 시혜적인 한계를 벗어나, 생존권의 차원에서 가난한 이들이 살 수 있도록 하는 지속가능한 방안이 있을까요? 그게 바로 세금을 통한 복지입니다. 똑같은 액수를 마련한다고 해도, 개인의 의지에 의존해 모으는 것보다 세금을 통해 의무적으로 정부가 모아 가난한 이들을 위해 쓰는 게 더 안정적일 겁니다.
 
기부 문화가 세상에서 가장 발달한 미국은 빈부격차가 극심한 반면, 기부·자선 등이 별로 없지만 복지체계를 잘 갖춘 북유럽 국가들은 분배가 고루 잘 이뤄지고 있습니다. 물론 북유럽 국가의 복지는 세금으로 유지됩니다. 따라서 그 나라 국민들은 세금으로 충분히 이웃과 나누고 있기 때문에 기부를 할 필요가 없는 거죠. 미국에선 천문학적 액수를 기부하는 부자들이 나서서, 세율을 높여 세금을 더 많기 걷자는 요구를 하기도 합니다. ‘버핏세’라는 말이 만들어지기도 했는데, 세계에서 손꼽히는 부자인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이 “부자들에게 세금을 더 많이 거둬야 한다”고 주장한 데서 유래한 이름입니다. 워런 버핏 회장은 매년 수조원씩을 기부하는 ‘기부왕’이기도 합니다. 선한 기부와 안정적인 복지가 함께 이뤄지면 금상첨화일 테지만, 두 가지가 함께 이뤄지지 못한다면 안정적으로 오랜 기간 가난한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복지가 더 잘 이뤄지는 게 좋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물론 복지를 위해선 더 많은 돈을 벌고 더 많은 재산을 보유한 사람들이, 기부가 아닌 세금으로 사회에 공헌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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