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붙이지 못한 편지
게시물ID : readers_1208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어느하루
추천 : 1
조회수 : 389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4/03/01 16:42:23
나이 어린 철 없는 시절에는 내 부끄러움도, 푸념석인 투정도 친한 친구가 아닌 사람들에게 할 수 있었다. 나이를 조금 먹고 어른들이 말하는 철든 사람이 되었을 때는, 내 어려움도, 가슴아픈 상처도 친한 친구에게 말하기 어려워졌다.
 
나이가 들수록 하나라는 숫자가 절실해진다. 내 마음 터 놓을 한명의 친구가 문득 그리워지고 모두가 나에게 그만두라고 충고할때 한번 해 보라고 용기를 주는 한 사람을 필요로 한다. 그들이 내 삶에 의미가 되어준다. 10여년간의 단 한사람이 나에게, 그나마 덜 외로운 삶을 선물해 줬듯이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존재이고 싶었다. 긴긴 밤을 이런저런 이야기로 같이 보내주는 사람이 되고싶었다. 늦은 시간 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손잡고 걷다가 눈길을 끄는 풍경을 함께 보고. 작은 포장마차의 옅은 불빛 아래에서 소주한잔 홀짝이며 하루동안 있었던 자잘한 이야기들을 나누는 그런 사람이 되고싶었다.
 
함께 마트에 들러서, 그다지 평소에 즐겨먹지 않았던 음식들로 장을 보거나, 서로의 옷을 골라주거나 하며 그다지 즐거울 것 없는 일들임에도 서로 얼굴을 마주보며 웃을 수 있는 시간들을 보내고 싶었다. 가끔 피곤함이 너의 몸을 나른하게 만들어 상대방을 향한 배려심이 조금 사라져 버리는 날에도, 어린아이같은 투정 대신에 아무 말 없이 너의 머리가 기댈수 있게 팔을 내어주는 사람이고 싶었다.
 
사실, 너와 헤어진 일이 그렇게 힘들지는 않았다. 지금 나를 한 박자 쉬어가게 만드는건 내 옆에 이런 생각들을 실천할 기회마저 없게 떠난 너를 그리워 하는 것 보다, 다른사람을 마음에 품고 살아갈 자신이 없어진 내 초라함이다. 나는 모든 사람들을 너와 비교한다. 너의 목소리와 너의 말투와 너의 모습들을 내 옆의 사람들과 비교한다. 언젠가 내가 했던 말처럼. 나는 너의 그림자를, 아무런 연관성도 없는 사람들의 행동에서 찾으려하고, 비교하고, 이내 지우려한다. 그래도 아직은 살아갈 만 하다. 내 삶이 더이상 혼자만의 아픔을 품은채 이어지지 않길 바랄뿐이다.
 
다시 시작할 용기는 없다. 한번 크게 아프고 나면, 늘 마음에 걸리던 너의 존재 없이 다른 사람을 사랑하며 살아 갈 수 있을것 같았다. 나는 너와 새로운 만남을 시작하면서 우리의 만남의 끝을 함께 시작했다. 널 끝까지 믿어주겠다며 안심시키면서도, 우리의 이별이 아름다울 수 있을까 걱정했다. 마음에 걸리는 일들은 너를 떠나는 나의 발걸음을 더 큰 보폭으로 만들었고, 시작과 함께한 약속은 쉽게 잊혀졌다.
 
그래, 나는 너무 자신이 있었다. 오래 간직해온 마음이 내 부정적인 생각과 암울함을 기어이 이겨내는 모습을 상상하며, 나는 또 내일을 살아갈 용기를 얻고 있었다. 같은 방 안에서도 수줍은 마음에 너를 똑바로 볼 수 없었던 나지만. 작은 자동차 안 옆 자리에 앉아서도, 말없이 앞만보며 생각에 잠겨있던 나지만. 그래도 나는 네가 좋았다. 너무 좋아서, 그 마음만큼 네가 불편해졌다. 행복해야 할 때 행복해하고, 웃어야 할때 웃어야했는데, 나는 늘 너의 표정을 살피고, 너의 행동을 살피고, 너의 반응을 짐작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내가 과거의 너를 사랑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현재의 네 모습이 과거의 내가 바래왔던 모습들이 아닌것 같아 늘 불안해했다. 사람들은 시간속에 변해갔고, 나 역시 변해버렸지만 너만은 이전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길 바랬었다.
 
그게 내 욕심이고, 내가만든 좁은 우물이었다는걸, 1년도 더 지난 지금에서야 깨닫는다. 드라마 속 주인공들 처럼 행복해지지 않고, 얼마간의 아픔과 불행한 시간을 보내고 나서야 조용하게. 그리고 덤덤하게 알아간다. 있는 그대로의 네 모습을 사랑하지 못한 내가 한심하고 바보같다. 돌이켜보는 일을 일찍 그만두었어야 했다고 불이 꺼진 컴컴한 방안에 홀로 누워 생각했다. 드라마나 영화속 주인공 처럼 잘날것 없는 내가, 주인공들의 잘난 사랑을 꿈꾼게 잘못이겠지만, 나는 말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는 감정의 교류가 우리 둘 사이에도 잔잔하게 흐르기를 바랬던거다. 실상은 늘 불안해하고 자신감은 여전히 없었다. 인터넷에도 돌아다니는 최악의 연애 상대는 이런 사람이다 라는 글에나 있을법한 사람의 모습으로, 너를 사랑하고 있었다.
 
그래도, 이건 사랑이라고 끝까지 믿고 싶었다. 내 눈물에, 얼렁뚱땅 고백을 승낙한 것 처럼 되어버린 호숫가 옆 벤치에서도 나는 이건 사랑이야 라고 속으로 소리치고 있었다. 믿기 어렵겠지만. 그런 억지스러운 내 감정이, 나는 남들도 인정할 만한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어이없어 웃어버리고 말았을지도 모르지만.
 
지금. 따듯한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하루의 시름을 위안받고, 위로하고, 사랑하며 살고있을 사람에게. 10년전에 말 했듯이. 너만은 행복하라고 전해주고 싶다. 그리고 이 글로, 나는 진정 너와 너의 그림자를 잡고싶지만 그러지 않는게 좋을거라고 답을 내린다. 다시만나더라도 이전같지 않을 너에게. 이전과 똑같이 바보같을 나에게, 보내지 못할 편지를 이 글로 대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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