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오랜만에 봉사활동을 갔습니다. 고등학교 졸업 후로 처음이니 2년만이네요. 제가 사는 인천에서는 꽤 먼 곳인 서울 은평구의 소년의 집이라는 곳입니다. (지하철 3호선 녹번역에 위치하고 있는 곳이랍니다.) 전 날 새벽 유성우 본다고 밤 늦게 잤다가 못 일어나 학교도 빼먹었던 저이지만, 다행히 오늘은 제시간에 일어나 집을 나섰습니다. 약속시간이 8시 반이었기 때문에 인천인 저희 집에서 적어도 6시 반에는 나가야 했죠. 졸음에 겨운 눈꺼풀을 들쳐 업고서 1시간 반가량 전철을 타고, 녹번역에 도착했습니다. 그리고는 걸어서 걸어서 조금 언덕진 소년의 집이라는 곳에 당도했습니다. 들어가보니 같이 오늘 하루 봉사하기로 한 학생들이 있더군요. 저까지 총 24명 정도 되었습니다. 인원을 확인한 그 곳 담당 사회복지사가 대략적인 소년의 집 설명을 하기 시작했죠. "소년의 집은 어감상 교정시설(소년원)로 알기 쉽지만 그런 교정시설이 아닌 보육시설입니다. 예전의 고아원의 개념으로 볼 수 있겠죠..." 그렇게 사회복지사의 대략적인 안내가 있은 뒤, 그 곳의 실상황 설명이 있었습니다. 이 곳 서울소재 소년의 집은 현재 영유아부터 초6년까지의 부모에게 버려진 아이들을 맡아 양육과 교육을 맡고 있으며, 소년의 집 시설 안에 병원과 학교 등을 갖추고 있다 하더군요. 나중에 살펴보니 시설은 꽤 괜찮은 편이었습니다. 다만 인원에 비해 시설양이 다소 적었지요. 그리고나서 우리는 각자 맡을 곳을 배정받았습니다. 오늘 자원봉사자들은 5세 이하의 유아반을 맡게 되었는데 이들은 총 12개 반으로 나눠져 있고, 각 반당 10-12명의 유아들이 있다고 하더라구요. 전 그 중 5반을 맡게 되었습니다. 인원 수에 맞게 각 반당 인원은 2명씩 배정되었죠. 어떤 남자분 둘은 장애아 반에 지원을 해서 들어가시더군요. 전 솔직히 장애아까지는 좀 엄두가 안 났습니다. 다운증후군같은 타고난 병을 가지고 있는 유아들이 있다고 하는데 특수교육수업을 받은 적은 있었지만 교육에 관심이 있어서였지, 직접 맡을 수 있는 상황이 되니 선뜻 나서기가 힘들더군요. 여하튼 배정 받은 뒤에는... 그 때 쯤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여기 오기 전에는 소년의 집이라서 초등학생 정도의 아이들을 맡겠거니 했는데 5세 이하라니.. 좀 많이 당황스러웠습니다. 그래도 이왕 하기로 하고 온 것! 주먹 불끈 쥐고, 전 배정받은 방에 들어섰습니다. 방과 복도는 마루바닥으로 되어 있었는데 방문을 열자마자 안에 있던 아이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달려들더군요. 하하... 이렇게 당황스러울수가... 아이들은 저와 같이 봉사할 분에게 안겨서는 떨어질 줄을 몰랐습니다. 이런 상황이 너무도 생소한 저흰 당황스럽기도 하고, 아이들이 너무 귀엽고, 밝아서 도저히 떼어낼 수가 없더군요. 그렇게 시작된 아이들 보육일은 솔직히 그리 힘들지는 않았습니다. 아니, 힘은 들었지만 즐거웠다고 말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아이들에게 맞고,-_-;; 말상대해주고,(무시당하기 일수이지만) 업어주고...(한 번에 세 명씩을 업으면 정말 힘듭니다.) 금새 녹초가 될 것 같더라구요. 그래도 한 때 막노동까지 했던 몸인데 말이죠. 그래도 마냥 즐거웠습니다. 정말 이상하게도 웃음이 입에서 떨어지질 않았거든요. 봉사활동하면서 이렇게 웃게 되리라고는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습니다. 그렇게 아이들에게 즐겁게(?) 시달리며 있던 차, 수녀님이 절 부르시더군요. (소년의 집에는 많은 수녀님들이 보육과 관리를 담당하고 계십니다. 전 불교신자지만 이 분들은 정말 존경스러운 분들이라 생각되었습니다. 솔직히 종교가 무엇이냐를 따지는 것과 자신의 종교를 더 퍼뜨리고 신자를 모으느냐보다, 이렇게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직접 나서는게 진정 종교의 근본정신에 가장 가까운 것인데 말이죠.) 수녀님의 부탁인즉슨, 김장 준비를 하려면 무를 다듬어야 하는데 무 옮기는 일을 맡아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무가 얼마나 많길래 하는 생각을 하며 수녀님 뒤를 따랐습니다. 그런데 그 무의 양이라는 게... 상당하더군요. 처음 사회복지사의 안내 때 소년의 집 인원이 천명이라는 것이 느껴질 정도의 양이었습니다. 그렇게 장갑을 끼고, 수녀님들과 작업자들, 자원봉사자들께서 다듬으신 무를 주방으로 옮기는 일을 했습니다. 처음엔 이 정도야 했었는데 하다보니 허리도 아프고, 꽤 힘들더라구요. 그렇게 한 시간 가량 작업을 마치고, 다시 원래 배정받았던 방으로 올라갔습니다. (나중에 들은 얘기인데 후에 배추김장을 할 때에는 이보다 서너배 많은 양을 한다고 하시더군요. 정말 진심으로 하는 일이 아니라면 못 할 일이란 확신이 들었습니다.) 11시 반 쯤 되니 아이들의 배식이 시작되더라구요. 그리고 우리 자원봉사자들은 시설 밖으로 나가 식사를 했습니다. 점심 끼니를 때울 정도의 그리 좋지만은 않은 식사로 배고픔을 달랜 후, 방으로 돌아오니 아이들이 자고 있더군요. 저뿐만이 아니라 보시는 분들 모두 그렇게 느끼실 겁니다. 아이들 자는 모습은 천사같다고..^^ 아이들 중 반은 자고있고, 반은 장난감 갖고 놀고 있고. 행여 잠을 깰까 우린 방에서 조용히 빠져나와 윗층의 직원 휴게실을 향했습니다. 위에 가보니 다른 봉사자 분들이 먼저 쉬고 계시더라구요. 남자분들은 저와 같이 일하느라 지쳤던지 누워 계시는 분도 계시고, 여자분들도 아침 일찍 집을 나서서 그런지 지친 기색이 역력하더라구요. 물론 저 또한 잠을 제대로 못 자서 지치고, 일까지 한 뒤라 의자에 앉으니 몸이 축 늘어지는 게 힘들었습니다. 언제나 쉬는 시간은 왜 이렇게 빨리 가는 건지... 슬슬 피곤한 몸을 이끌고 다시 방으로 향했습니다. 제가 들어가니 아이들이 다시 달려듭니다. "와락!" "형...업어줘요!" "오빠...업어줘요!" "아저씨,업어줘요!"-_-;;; 봉사활동 끝난 뒤 생각해보니 이런 말을 수백번은 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만큼 아이들이 저만 보면 달려들어서 쓰고 있던 모자를 벗기려 하고, 티에 달린 모자를 잡아 당기고, 목걸이를 당겨 목을 조르고,(덕분에 목에 멋진 줄이 하나 새겨졌습니다.-_-;;) 그래도 마냥 귀엽고 예쁜 애들이라 말 상대도 해주고 업어주기도 하고, 그렇게 시간을 보냈습니다. 오후 2시 정도 되었을 무렵, 아이들이 할 과제로 숫자, 글자 연습 종이가 나왔습니다. 4-5세의 아이들이 쓸 것이라 글자는 그림그리기 수준 정도로 큼지막하게 인쇄되어 있었는데 아이 키우는 게 왜 어려운지 정말 실감이 나더라구요. 전 2명의 남자아이를 데리고, 숫자와 글자를 가르쳤습니다. 의미를 가르쳤다기보다는 어떻게 쓰는 지를 가르쳤죠. 하지만 이 두 아이들은 도대체가 제 말은 말같지도 않은가봅니다. 이렇게 하라고 하면 글자는 쓰지 않고, 낙서를 하질 않나 한 명 잘 한다 잘 한다 구슬리면서 가르치면 옆아이는 이내 질투하고, 가르치던 아이의 종이에 낙서를 하려 합니다. 휴우...... 정말 한숨이 나왔습니다. 여기서 일하시는 분들은 어떻게 애들을 맡으시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여하튼 그렇게 아이들과 머리 써가며 가르친 덕에 그 반 아이들 종이에는 다행히 삐뚤빼뚤 써내려간 글씨들이 빼곡이 자리잡았습니다. 개구쟁이 아이들 가르치기가 이렇게 힘들 줄이야... 그런 생각을 하면서 아이들에 둘러싸여 있는데 또 다른 분이 올라오셔서 청소를 부탁하셨습니다. 마대걸레로 밖에 아이들이 놀 공간을 닦아주시라고 하셨는데 차라리 이게 훨씬 쉽단 생각이 들더라구요. 얼마만에 잡아보는 마대걸레인지 옛생각도 나는게 말이죠. 그래도 청소하면서 그렇게 기분 좋게 한 건 처음인 듯 싶습니다. 그렇게 정성스레(?) 청소를 마치고, 중간중간 물건 나르는 일을 도우면서 아이들과 같이 한 나절을 보냈습니다. 얼마 안 되는 시간이었지만 일이 막상 끝날 시간이 되자 아이들 모습이 하나하나 기억에 남더군요. 무작정 내 무릎에 앉아 모자 잡아당기던 코흘리개 다래, 오빠 가지 말라며 옷 잡고 늘어지다가 막상 갈 때 되니 안녕! 한 마디 하고 돌아선 깍쟁이 민주-_-;;, 글자 가르치려니 친구 꺼 샘난다고 낙서하다가 혼이 난 개구쟁이 의준이, 그 외 내 옷을 마구 잡아당겨 내 정신을 혼미하게 한 아이들... 별로 그리 오래 있지도 않았는데 막상 일 끝나고 가려니 참 기분이 그렇더라구요. 아이들은 그렇게 자기들과 있다가 가버리는 사람들의 경험이 많아서인지 우리가 갈 때에는 담담하더라구요. 가야하는 우리가 당황할 정도로 말이죠. 적어도 붙잡기는 할 줄 알았는데... 이 녀석들...-_-+ 그래도 서운한 마음보다는 아이들이 오죽하면 저 정도까지 됐을까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앞섰습니다. 한 번 왔다가면 또 언제 보게 될 지 모르는 자원봉사자들임을 아는 모양인지 그렇게 부모들에게 버림받은 아이들은 수녀님과 보육인들 안에서 노는 모습으로 저희와 헤어졌습니다. 어느덧 소년의 집 시설을 나설 때에는 주변도 어둑어둑해지고 있었습니다. 난생 처음 아이들 돌보는 봉사활동을 마친 뒤, 전 그렇게 씁쓸한 마음을 안고 집으로 향했습니다. ...서울 소재 소년의 집은 서울시 은평구 용암동에 위치한 보육,교육,치료를 겸하는 종합양육시설입니다. 현재 소년의 집은 시립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정부의 지원금과 일반인들의 지원금, 가장 절실한 봉사자들의 활동으로 시설이 운영 중입니다. 소년의 집은 서울에 소재한 영아-초6까지 맡는 시설과 부산에 소재한 중1-고3까지 맡는 시설로 나눠져 있습니다. 국가대표 축구선수인 김병지선수가 이 곳 소년의 집 출신이랍니다. 그래서인지 부산소재 소년의 집은 축구를 잘 하는 아이들이 많다고 합니다. 현재 알로이시오(창립자 신부님 이름)라는 학교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다고 하더라구요. (소년의 집에 많은 수녀님이 일하시는 까닭은 이 소년의 집이 마리아수녀회에서 운영하는 시설이기 때문입니다.) 소년의 집에 오게 되는 아이들은 대부분 버려진 아이들인데 몇 달 전부터는 작년 월드컵으로 인한 월드컵베이비의 영향으로 시설 수용 인원이 넘어갈 만큼 많은 아이들이 맡겨지고 있다고 합니다. 참 어이없죠. 계획도 없이 키울 사정도 안 되면서 무작정 애를 낳고 버리니 말이죠. 또한 심각한 것은 요즘 들어 경제상황이 악화되면서 부모의 의사와는 다르게 부득이하게 아이를 맡기는 경우가 늘고 있다는 것인데 많은 금액이 들어가는 자녀양육비와 극심한 경제악화로 인한 어이없는 상황으로 정말 안타까운 현실임이 분명합니다. 유아양육시설에 한 번이라도 가 보신 분들이라면 아시겠지만 봉사자분들은 아이들 미소에 한 번 가슴 아파하고, 아이들이 매달리는 데 한 번 더 가슴아파하게 됩니다. 그만큼 해맑고, 예쁜 아이들인데 그렇게 사람을 그리워하며 자라고 있지요. 그나마 소년의 집에서는 보육인을 이모라 부르고, 수녀님을 엄마라 부르게 하고 있더군요. 여하튼간에 왜 이 아이들이 이렇게 정에 굶주려 살아야만 하는 세상이 만들어져야만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아직도 그 해맑은 미소들이 눈 앞에 아른거리네요. *
http://boystown.seoul.kr/ 소년의 집 홈페이지 주소입니다. 요즘도 많은 일거리로 인한 봉사자와 아이들과 함께 있어줄 봉사자가 많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관심있는 오유인분들은 홈페이지 한 번 꼭 들려보세요.^^ 한 분,한 분의 관심이 자라나는 아이들에게는 세상의 희망이 되어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