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페미니스트'라고 한것은 아니고 남성의 도움없이 '우리 여성들'(이라 하고 페미니스트라 읽는당)이 스스로 쟁취한것이라고
하는데 사실일까? 당근 개구라임. 요즘엔 메갈과 패미를 옹호하는 입장으로 변절한 것으로 추정되는 한때 유명하고 잘나갔던..
'B급 좌파'라는 책으로 반향을 일으켰던 진보지식인 김규항을 글을 소개하겠슴.
이글은 그가 한창 총명하던 2002년에 쓰인 글임.
김규항의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페미니스트들에겐 유감스런 얘기겠지만, 내 주변의 진보주의자 남성들은 하나같이 주류 페미니즘(정확하게, 90년대 이후 한국의 주류 페미니즘)을 마땅치 않아 한다. 그렇다고 그들이 정치적으로 진보적일 뿐 여성이 처한 성적 억압엔 무감각한 형편없는 남근주의자들인 건 아니다. 그들은 적어도 ‘여성100인위원회’의 활동을 원칙적으로 지지하고 <밥꽃양>을 보며 가슴을 쓸어내리는, 여성에 대한 성적 억압을 분명한 사회적 억압의 하나로 파악하는 남성들이다. 그러나 그들은 이른바 여성에 대한 성적 억압과 싸운다는 페미니즘을 하나같이 마땅치 않아 한다.
나 역시 그들 가운데 하나다. ‘노력하는 마초’인 나는 주류 페미니즘을 몹시 마땅치 않아 한다. 내가 그 페미니즘을 마땅치 않아 하는 이유는 그들의 ‘사회의식’이 분명한 사회적 억압의 하나에서 출발하면서도, 모든 건강한 사회의식이 갖는 인간해방운동의 보편성을 거스르기 때문이다. 사회의식이란, 단지 제 사회적 억압을 사회에 호소하는 게 아니라(만일 그런 게 사회의식이라면 ‘서초구민들’이나 ‘의사들’의 빌어먹을 호소도 사회의식일 테니), 제 사회적 억압을 통해 다른 이의 사회적 억압을 깨닫고, 제 억압을 모든 사회적 억압의 지평에서 조망하고 겸손히 연대하는 보편적 인간해방운동의 상태를 말한다.
주류 페미니즘은 다른 이의 사회적 억압에 정말이지 무관심하다. 이를테면 주류 페미니즘은 모든 사회적 억압의 출발점인 계급문제에 대해 정말이지 무관심하다. 그들은 아마도 여성이라는 계급이 일반적인 의미의 계급보다 더 근본적이라 생각하는 듯하다. 과연 그런가. 페미니즘을 둘러싼 해묵고 아둔한 논쟁이기도 하지만, 여성의 억압이 근본적으로 계급에서 오는가 성에서 오는가는, ‘중산층 혹은 상류계급 여성이 하층계급 남성에게서 억압받을 가능성’을 살펴보거나 ‘중산층 혹은 상류계급 여성의 억압과 하층계급 여성의 억압을 비교’해봄으로써 간단히 알 수 있다.
주류 페미니즘이 그런 저급한 사회의식에 머무는 실제 이유는 그 페미니즘의 주인공들이 작가, 언론인, 교수(강사) 따위 ‘중산층 인텔리 여성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성적 억압의 보다 분명한 피해자인 하층계급 여성의 고통을 이해할 만한 처지에 있지 않으며, 그 고통을 이해하려 하지도 않는다. 그들은 단지 그들에게 남은 유일한 사회적 억압인 성적 억압을 ‘남성 일반과의 문제’로 만드는 데 열중한다. 건강한 싸움보다 나른한 카타르시스에 익숙한 그들은 그들이 증오해마지않는 남근주의를 넘어서기는커녕 흉내내며(이를테면, 한 대중적인 페미니스트 잡지는 가수 박진영을 ‘먹고 싶은 남자’라 지칭한다), 심지어 투항한다(이를테면, 한 도발 전문 페미니스트는 정치적 남성인 생리적 여성을 대통령으로 밀자고 주장한다).
나는 성적 억압의 실체인 가부장제가 전적으로 자본주의에 의한 것이라 주장하는 덜떨어진 맑시스트가 아니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는 자본주의가 가부장제를 어떻게 사용하는가를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가부장제의 기본 단위인 가족은, 자본주의를 유지하는 기본 단위이기도 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족을 위해 묵묵히 헌신하는 ‘좋은 여성’의 실제 임무는 오늘 노동력(남편)을 뒷바라지하고 다음 세대의 노동력(자식)을 양육하는 것이다. 자본은 남성에겐 노동의 일부라도 지불하지만 그들을 노동할 수 있게 뒷바라지하거나 양육하는 여성에겐 한푼도 지불하지 않는다. 자본의 입장에서 ‘좋은 여성’이란 얼마나 유익한가.
봉건사회의 관습인 듯한 가부장제가 근대사회(자본주의사회)에서 끈질기게 집행되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그 집행은 제도교육, 미디어, 도덕 따위 이런저런 자본의 선전장치를 통해 마치 공기를 마시듯 뱃속에서부터 자연스럽게 진행된다. 가부장제와 싸운다는 주류 페미니즘은 실은 그 선전장치의 성실한 일부다. 유한하기 짝이 없는 그들은 그들에게 남은 유일한 사회적 억압을 일반화하여 카타르시스하는 데 열중함으로써, 모든 여성이 제 억압을 통해 보편적 인간해방운동에 이르는 정당하고 필연적인 기회와 가능성을 성실하게 차단한다. 그 페미니즘은 그저 남근주의의 이면이다.
이글을 통해서 알 수 있는 사실은.. 주류 패미니스트가 2002년 훨씬 이전 부터 저급했었고 당대의 진보지식인 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한 비주류였다는 것임. 과거 페미스트의들에게서 웬지 익숙한 메갈, 워마드스런 향기와 느낌적 느낌이 들지 않음?
페미니스트가 메갈을 포용한것은 단순한 판단착오가 아니라 서로 닮은 구석이 많기 때문임. 호환성이 좋담 말이시..
어쩜 어떤 의혹 대로 페미니스트들이 메갈을 만들었을 수도 있겠슴..
그럼 진보진영 내에서도 환영받지 못하고 보수적인 사회에서도 욕들어 먹던 그들이 어떻게 주류에 편입할 수 있었느냐?
페미니스트들이 자력으로 투쟁해서 얻은 성취인가? 하면 말도 안돼는 것이고 김대중 정부가 여성인권을 대변하는 '여성부'를
만들었고 여성인권을 대변하는 주류들이 페미니스트였기 때문에 그들이 대거 여성부에 진출, 드뎌 페미니스트가 주류권력에
도달하게 된것임.
뭬뭐뭐? 자력? 투쟁으로 얻어? 스스로 쟁취? 개풀뜯어 먹는 소리하네. 김대중대통령 덕이지 은덕도 모르는거뜰..
어느덧 누구도 성평등문제에 대놓고 이의를 제기하지 못하는 시대가 되었고
페니미즘이 이미지 세탁이 되어서 양성평등이나 여성인인권 운동 같은 보편적 정서로 인식될 만큼 페미니즘은 확장되었슴.
한때 오유에서 페미니스트를 자임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았슴?
하지만 주류 페미니스트는 조금도 변하지 않았고 아니 오히려 퇴보하여 확장된 페미니즘을 부정함.
자기들이 주도하는 편협하고 유치한 '남근주의' 로 한정 시킴.
그게 그들의, 한국형 페미니즘의 본질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