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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동안 방황하고 이제는 잘 살고싶어요...
게시물ID : gomin_102004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infinite
추천 : 13
조회수 : 723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4/03/02 18:24:43

 

 글을 어떻게 시작해야될지 모르겠습니다. 솔직히 난 이 글을 쓸때마다 밀려오는 부끄러움을 참을 수가 없습니다.

3년 전 내가 처음 글을 쓸 때는 내 가슴속에 있는 이야기들을 밖으로 토해내는 게 

마치 알몸으로 거리에 내처진 것 처럼 한 없이 부끄러운 내 자신을 모두에게 드러내는 것이 너무나도 부끄러웠지만 

이제는 매번 같은 말, 같은 내용, 같은 고민에 3년 동안 매번 같은 글을 써놓으며 많은 사람들에게서 조언을 듣지만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 내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 말입니다.

 

 정말 부끄럽습니다. 부끄럽고 이 엄청나게 긴 글을 다 써놓고도 올릴까 말까를 걱정하고있었습니다.

전 힘들 때마다 덩치에 어울리지도 않은 일기도 써봤었고, 몇 년 전 여기 오유에 글을 올리고

베오베까지가며 과분한 격려와 조언을 받았었습니다. 심지어 이메일 통해 많은 분들한테 연락도 받았었고

아주 간혹 그때분들의 안부 메일도 가끔씩 받고있고 정말 고마운 사람들이 많다는 걸

느껴보고있었습니다. 아프고 부끄러운 걸 숨기지 말라는 어느 한 분의 조언에 다시 한 번 용기내어 글을 올려봅니다.

 

 나는 어릴적부터 학습부진아였습니다. 공부에 별 흥미도 없었고 해야할 필요성도 그 때 느끼지 못해 하지않았었습니다.

근데 어릴적엔 누구나 다 그렇듯 이 세상 주인공은 '나'이고 만화영화 속 주인공처럼 어떤 비범한 능력을 숨기고 

언젠가 그 능력이 빛을 바랠것이라는 대책없는 생각에 항상 철부지로 살았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인문계 고등학교에 입학했었습니다.

드디어 태어나 처음 공부란 걸 해보았고 태어나서 처음 숙제때문이 아닌 공부를하려 수학책을 펴보고,

내가 필요해서 참고서를 사보고 자율학습시간을 단 한 번 빼먹지 않았고, 심야자율학습까지 소화했었고 그때 내 딴에는 정말 열심히 했었지만 

내 학습 수준은 정말 골 때린다는 표현에 어울릴 정도로 낮았었습니다. 

그 땐 명사,동사,형용사가 뭔 지, 자연수가 뭔 지, 소수가 뭔 지, 심지어 분수조차 더하질 못하였으니..

그 땐 공부가 아니라 그저 책에 쓰여있는 것들을 읽고 공책에 받아쓰는 시간이었고

성적 따윈 오를 기미는 없었습니다. 수준별 수업을 하는 학교에서 저는 항상 끝 반의 끝자리를 벗어나질 못했었습니다.

 

 그렇게 1년이 지났었습니다.

정말 뭘 한 것 없이 1학년 생활이 끝났었습니다.

내심 막연했었습니다. '어떻게 공부를 해야되지?' 어떻게하면 될지 말입니다.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던 중 책 한권을 읽었습니다. 내용은 대충이랬었습니다.

'어떠한 경우에서도 포기하지 말고 꾿꾿히 버텨내는 신념을 가져라 그것은 언젠가 너에게 성공의 열쇠를 쥐어줄 것이다.'

 또 공부의 왕도이란 TV프로그램을 보았었습니다. 정말 미친듯이 공부하는 친구들을 보면서 정말 나도 저렇게 공부하고싶었습니다.

 

그리고 종이 한 장을 꺼내어 손에 쥐기 알맞은 크기로 잘라내어 아래와 같은 글을 빽빽이 써내려갔습니다.

1.한계를 뛰어넘자나 자신과 타협하지 않고 결심한 것은 어떠한 경우에서도 포기하지말자

2.바보같고 우직하게 노력하되 진짜 바보가 되지 말자

3.비록 내가 겁쟁이이지만 ''이기에 할 수 있는 자신감을 잃지 말자

4.힘들고 지칠때 '이정도면 되어다'라는 생각할때 나보다 더 노력하는 사람을 잊지 말고 내가 더 노력할 수 있다는 것을 잊지말자

 

"끈기/인내/악바리/우직/오기/불굴/정신력/근성/노력/정신력/깡다구"

 

  저걸 빽빽이 쓴 종이를 테이프로 돌돌 감아놓고선 신념이랍 시며 항상 손에서 놓지 않기로 결심하고

너무 멋져보였습니다. 정말 이거하나면 세상 못할 거 없을 것 같은 자신감

그리고 어릴적 내 특별한 능력 무언가를 찾은 거 같단 생각에 정말 행복했었습니다.

 

그리고 정말 손이 흠뻑 땀에 젖더라도 저 종이를 놓치않고 항상 맘속으로 저 글귀들을 곱씹었습니다.

 

 등교 시간 귀에 이어폰 꼽으며 영어 듣기를 하고, 수업 때도 공부, 쉬는 시간에도 공부하고, 점심시간, 청소 시간, 저녁 시간 때도 자습실에 찾아가 공부를 했었고,

자습실에서 교실로 올라올 때도 제가 만든 단어장을 외우며 올라갔었습니다. 

그렇게 야자를 소화하고, 도서관에 가 12시 가까이 심야 자습을 하고 집에 도착해 책상에 앉아 조는 한이 있더라도 새벽 2시까지 의자 위에 앉아있었습니다.

 

 신념이란 놈은 공부뿐만 아니라 제 행동 양식 모든 것을 바꿔놓았습니다.

오래달리기를 할 때나 웃자고 치는 배드민턴이나 뭐든 한 번 하면 정말 폐가 끊어질 것 같아도 악바리, 정신력. 끈기, 이 종이 뒤에 적힌 단어를 가슴속에 곱씹으며 뛰고

한여름에도 평소와 다름 없이 공부를 하다가 흩뜨려지는 제 자세를 보고 이래선 안 되겠다며 허리를 곧게 펴고, 다리는 붙이고

가만히 있어도 푹 찌고 답답한 열대야 밤에 그렇게 목석마냥 한치의 움직임도 없이 앉아 공부하겠다고 결심을 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푹푹 찌는 밤공기와 답답함에 폐소 공포증이 밀려들어 왔고

식은땀과 막혀오는 질식감에 숨은 헐떡거리고 정신도 거의 제정신이 아닐 정도가 되어 공부는 뒷전이고 그저 괜한 오기에 손 에 쥐었던 제 신념이라는 종이를 미친 듯이 쥐어 짜며 참았던 미친 짓을 했었습니다.

 

 하지만 그땐 내가 갇혀있거나 엄청나게 답답한 걸 굉장히 싫어한다는 것만 알았지, 폐소 공포증에 공황장애가 올 줄은 꿈에도 모르고 있었던 터라 이게 뭔 일인지도 모르고 영문도 모른 채 당황하고 절대 자세를 풀지 않겠다는 결심은 공황장애를 이기지 못하고 녹다운되어 태어나 겪어본 적 없던 멘붕 뭔지 제대로 겪어보고 다시 참아보겠다며 이 짓을 몇 번이나 반복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땐 내가 갇혀있거나 엄청나게 답답한 걸 굉장히 싫어한다는 것만 알았지, 폐소 공포증에 공황장애가 올 줄은 꿈에도 모르고 있었던 터라 이게 뭔 일인지도 모르고 영문도 모른 채 당황하고 절대 자세를 풀지 않겠다는 결심은 공황장애를 이기지 못하고 녹다운되어 태어나 겪어본 적 없던 멘붕 뭔지 제대로 겪어보고 다시 참아보겠다며 이 짓을 몇 번이나 반복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몸도 굉장히 안좋아졌었죠. 피로성 요통으로 허리가 아파, 수업시간이 끝나 쉬는 시간이 되면 교실 바닥에 털썩 누워 아픈 허리를 달래고, 쉬는 시간이 끝나고 수업시간이 되면 다시 앉아 허리 통증과 싸우기 일 수였어요.

꾸벅꾸벅 졸며하던 새벽공부에 스트레스 때문인지 아니면 하도 앉아있어서 그런 지 오줌보가 터져 콜라 같은 시커먼 오줌을 눈 적도 있습니다. 

그래도 행복했었어요. 정말 이렇게 열심히 하는 것도 살면서 처음이고 무슨 일이든 이렇게만하면 무엇을 못했을까라는 생각에 굉장히 자존심도 강했었습니다

 

 하지만 성적은 전혀 오르지 않았어요. 겨우 개념은 익혔다 싶었지만 항상 풀어야하는 문제를 보면 그저 막막하기만 할 뿐 풀지를 못했지만 그저 손 에 쥔 종이를 더욱 더 쌔게 쥐며 공부할 뿐이었어요. 

그런데 수능을 바로 한 달 앞으로 둔 마지막 모의고사인 10월 모의고사 성적표를 받아들구요.

태어나서 처음으로 남들앞에 펑펑 울어봤어요 정말 애기처럼 말이죠.

처음엔 왜 우는 지 그저 성적표만 봤을 뿐인 데 눈물이 주르륵 흐르더니 끝내 이 눈물 흘리는 내 모습이 너무 부끄럽고

처량해서 엉엉 울었어요. 그러고도 다시 공부했었어요.

 

그렇게 수능을 쳤었습니다. 결과는 보기좋게 망했었구요. 10월 달에 실컷 울었던 덕분인지 눈물은 흐르지 않았었습니다. 하지만 수능장을 빠져나온 그 때, 모두가 짐을 내려놓은 듯 기뻐 날 뛰는 같은 또래들속에 저 혼자 다른 세상 사람처럼 동 떨어져 아무 표정없이 걷는 제 모습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아무 생각없이 수능다음날부터 재수를 시작했었어요.

축제같은 수능 뒤 교실 속에서 책상을 벽에 맞대어 혼자 공부를 했었었습니다. 

 

고등학교 마지막 방학이 시작되고, 설렘 반 기대 반으로 재수를 시작했었습니다. 

정말 세상에서 가장 노력해보고싶었습니다. 제 손에 쥐고있던 종이의 글귀 꼭 어기고 싶지 않았었습니다.

손가락 물어 뜯어 혈서 쓸 자신없으면 재수를 하지말라는 인터넷 어느 글에 엄지 손가락을 물어 뜯고

폐소공포증을 고친답시며 의자에 몸을 고정시키고 꼬박 5시간동안 꼼짝없이 앉아있다가 정말 골로 갈 뻔 한적도 있고 미친 소리 같겠지만 그 딴애는 나름 좋았던 시절이었습니다.

 

 아침 9시 독서실 문 열기 전에 도착하여, 점심은 대충 독서실 앞 편의점에서 빵과 바나나 우유로 버티며, 저녁이 되어서 밥을 먹으로 집으로 다시 가 1시간 내로 식사를 끝마치고 다시 새벽 2시까지 공부하러 가러가며 하루 16~17시간을 책상 머리 위로 고개를 쳐 박고 있었고 사당오락을 맹신하며 4시간 씩 자가며 머리를 꾸벅이며 졸더라도 절대로 책상머리에 누워 잠을 자지 않겠다며 나른한 점심만 되면 외투를 하나 걸치며 한겨울 바람 쌩쌩 부는 독서실 옥상에가 빵을 먹으며 영어단어를 외우고 졸음을 쫓던 기억도 생생하고 거기엔 항상 오른 손에 제 신념이 쓰인 종이를 꽉 쥐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졸업을 했었습니다. 절대 끝나지 않도, 끝도 나지 않을 것만 같았던 내 소중한 학창시절이 전부 끝이났어요. 

무서웠었습니다. 물처럼 흐르는 시간속에 빠져 허우적 거리었고, 눈 떠보니 아무것도 준비되어있지 않는 내 모습이었습니다.

다시 허우적거리며 눈을 뜰 때닥치지도 않은 먼 미래의 일까지 바로 제 앞에 있다고 느껴졌었습니다.

 

 우울증도 왔고, 공황장애도 왔었습니다. 

말로 표현하기 힘든 감정이 하루종일 제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었습니다.

헌데 정말 미련했었습니다.

이런 것도 참고 버틴다면 후에 큰 힘이 될꺼랍시고, 참고 버티고 혼자 끙끙 앓았었습니다. 

 

 다행히 시간이 약이 되었습니다.

살면서 겪은 가장 끔찍한 기억이었지만 겨우 다시 펜을 잡을 수 있었습니다.

쉬었던 시간이 있었던 만큼 더 열심히 공부해야된다는 부담감을 느꼈었습니다.

하루 16~17시간 공부하고 째지게 낮잠 한 번 자보는 것이 소원이 될 지경에

제 유일한 쉬는 시간이 인강보며 좀 맘편하게 공부하는 것 뿐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저와 같은 처지의 재수생 친구가 하는 공부 방송을 보게되었습니다.

정말 대단했었습니다. 저와 비교도 할 수 없을만큼 공부도 잘하는 친구가 너무나도 열심히했었습니다

정말 자존심이 땅 끝까지 떨어져버렸었습니다. 살면서 처음 느껴본 열등감이었습니다.

겨우 한 시간 자며 벌떡 일어나 밥도 거러가며 19시간 20시간 공부했었습니다.

 

 보름째 되던 날, 혼자 아침밥을 먹으려 라면을 끓이다. 인강을 보다 거진 정신을 잃듯 책상 위에 앉은 체 잠을 자는 바람에 집을 홀랑 태워 먹을 뻔 한 뒤 20시간 공부 하는 건 포기했었지만 정말 열심히 했었습니다.

헌데 시간이 지날수록 머릿속에 멍해졌었습니다. 암만 집중하려해도 머릿속은 하얗고 젖먹던 힘을 다해 집중하려해도 공허감이 저를 사로잡아먹는 느낌이었습니다.

만성피로에 항상 무거운 몸을 이끌고 다녔는 데 머릿속까지 이러니 답답해 미칠 지경이었습니다. 슬럼프 따위 나한테는 오지도, 온다고해도 잘 극복할 방법이 있을 거라 생각했는 데

아무런 방법이 없는 거 같았었습니다.

 

여름이 되자 서울에서 기숙재수학원을 다니던 친한 친구녀석이 울산에 내려와 저녁을 먹었습니다.

많은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쪽 친구들은 졸리면 샤프로 허벅지를 찌르고 손등에 피가날 정도로 물어 뜯어 졸음을 쫓아내고

밥을 먹을 때도 책을 손에서 떼지 않고 공부하다 응급실에 실려가는 친구들까지

너무 분한 건 나처럼 공부를 못하는 것도 아니고 의대갈 실력에 그 정도의 노력을 하기까지

저는 너무 자존심에 상해있었습니다. 아니 한 없이 약해보이는 저가 싫었습니다

 

 정말 잠이 오면 샤프가 아닌 칼로 허벅지를 쑤시고 싶었지만 참아 겁이나 하지 못하였고

대신 손등은 피와 침이 범벅이되고 손에 흉터가 날 정도로 물어뜯었지만 잠은 깨지 않았고

멍한 머릿속또한 마찬가지였습니다

 

 그 친구가 꿈에서까지 나타났었습니다. 꿈을 꾸면 현실구별은 커녕 불구덩이도 아무생각없이 뛰어들어가는

내가 그 친구가 꿈에서 나오면 이 친구가 서울에서 공부를 안하고 왜 여기있냐라며 갑자기 정신을 차리고 꿈에서 깨곤했었습니다.

 

 이 친구 때문에 자존심이 상해 억지로라도 항상 더 이상 아집부려가며 공부할 힘도 안났었습니다.

내 신념이랍시며 주먹에 종이쪼가리 한장이 제게 너무 무겁고 무서워졌습니다.

바보같이 노력하는 게 너무 멋있어보였는 데 그저 바보였던 것이 너무 화가 났었고 모두 다 때려치웠었습니다.

더 이상 책상앞에 앉아 공부도 하지 않고 방구석에 앉아 컴퓨터만하고 낮엔 자고 밤에는 일어나있고

울고 싶어 자전거를 타고 한적한 도로나 공원에 찾아가 혼자 음악들으며 꺼이꺼이 울고있었습니다.

 

그렇게 도피하듯 배를 타던가 군대에가던가 어디론가 떠나려했었지만

이 불안한 정신상태로 어딜 떠나기에는 너무 겁이 났었습니다.

  

 막장을 치닫는 생활을 하였고 언제나 그렇듯 시간은 허무하게 지나가 수능 날이 다가 왔었습니다.

그리고 흐지부지 수능도 치고 나왔었습니다. 학교 밖을 나오니 1년 전과 똑같은 주변 분위기 속에서

여전히 나또한 그때 느낀 똑같은 이질감을 느끼며 혼자 집으로 걸어왔는데 집에 오니 부모님께 너무 죄스러웠지만, 그냥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았습니다.

 

성적표가 제 메일로 와있고 열어보기 바로 직전, 정말 염치없고 뻔뻔하지만 정말 신께 간절히 빌었습니다.

욕심 따위 안 부립니다. 정말 내가 흘린 눈물만큼만 정말 내가 힘들었던만큼만 그것만이라도 보상해달라말이죠.

정말 솔직히 말해서 재수생활을 할 때, 내가 공부를해서 원하는 대학문을 밟을 수 있을까란 생각에

대학문은 둘째치고 정말 원없이 공부해서 후회없이 재수생활을 끝내야겠단 생각을 했었는 데

이렇게 6등급짜리 성적표를 받기위해서 정말 후회없이 공부해보자라는 생각을 한 게 너무 바보같았었습니다.

 

 참 어이가 없고 누구를 원망해야될지 모르겠었습니다.

이슬비처럼 비가 부슬부슬오는 데도 그냥 우산도 없이 뒷산에 올라가서 펑펑 울었습니다.

죽고 싶었습니다. 너무 부끄럽고 화가 나고 어이가 없었습니다.

전 솔직히 큰 거 안바랬었습니다. 정말 저가 하는 만큼만 했던 만큼만 노력했고 울었던 눈물만큼만 보상받기를 원했었습니다.

 

남들은 자기가 공부하여 어느정도 수준까지 올라 그 이상 오르지 않는다며 좌절하였지만

저는 여태껏 한 번 성적 한 번 올려본 적 없고 성적이 안나온다고해도 바보처럼 더 열심히 하자며 대수롭지 않게

넘어간 놈이었고 공부를 하고 한 번 성적이라도 올라가 기쁜 마음을 누려본 적도 없었고

초등학교 중학교 공부를 안한 건 맞지만 그래도 그걸 극복하겠다며 잠도 안자고 공부했고

 

 여태 잘못된 공부법으로 공부했다고한들 4년이라는 시간동안 단 한 번 무언가를 성취할 수 없다는 걸 이해하지도 못하겠고

내 머리가 병적으로 나쁜거 같지도 내 옆에있던 공부 잘하는 친구들보다 말도 잘하고 오히려 더 잘하는 것도 많았는 데

도대체 뭐가 어디서부터 잘 못된지를 모르겠었습니다.

 

 그렇게 그 뒤 부턴 아무 생각도하지 않았습니다. 인터넷 속에서 무슨 무슨 대학,학과란 글자만 봐도 컴퓨터를 끄고, 성적이란 소릴 들어도 자릴 피하며 말이죠.

우연히 인터넷에서 본 노력과 열정에 대한 명언들이 다 헛소리에 거짓말처럼 보이고 심지어 오유의 열심히 노력하여 무언가를 성취했고 누구든 할 수있다는 글에

한참을 비웃고 거짓말이라며 글을 쓰고 다니기도 했었습니다.

 

 만날 잠만 퍼자고 시간을 축내었고 대학 따위 어떻게 될 지 생각도 안했었습니다. 그냥 옛날 고3 담임 선생님한테가서

원서 접수 마지막 날 부랴부랴 몇 군데 넣었습니다.

떨어질 거라고 덤덤하게 4월 달에 군 입대를 신청했었습니다.

 

 그 날 밤 잘자고 있다가 새벽에 뜬금없이 일어나 그 자리에 누워 울었습니다. 숨도 잘 못쉬겠었고 불을 키고 책상에 앉았는 데

거울에 비친 울고 있는 내 모습이 너무 불쌍했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대학에 합격하였습니다.

살은 20kg 넘께 찌었고 좋은 학교로 편입해야한다는 목표도 생겼지만 공부라곤 그저 강의시간빠져먹지 않고 시험공부를 하는 게 전부였습니다.

그 외에는 그냥 기숙사에서 잠만 잤었습니다.

비루해진 몸때문에 멋진 옷 한 번 입어보지 못하였고 허름한 츄리링 차림에 기숙사와 강의실 이외엔 바깥 나드리 한번 제대로 가보지 않았습니다.

 

 항상 머릿속은 다시 정신차려야한다는 생각으로 가득차있었지만, 항상 방구석에 누워 잠을 자고 컴퓨터에 앉아 게임을 할 뿐

아무것도 하지 않았었습니다. 

얼마전 마라토너들이 도로위를 뛰는 걸 보았고 저는 그것이 너무 부럽고 멋져보였었습니다. 

찢어버릴것 같은 폐와 근육이 타들어가는 것 같은 고통에도 꿋꿋이 참고 이겨내며 계속 달리는 모습이 너무 멋져보였습니다.

나도 저렇게 하면 다시 모든 할 수 있을 거 같았었습니다.

 

 재수를 포기한 뒤 지갑에 만년 담아두었던 종이를 꺼내서 손에 꽉 쥐고 집 앞에 운동장으로 뛰어나갔었습니다.

백 바퀴 천 바퀴 이렇게 정해진 게 아니라 진짜 쓰러져서 더 이상 뛰지 못 할 정도로 죽기 전까지 달리려했엇습니다.

헌데 너무 무서웠었습니다. 뛰지도 않았는 데 손은 부들부들 떨리고 숨도 차고 완전히 겁에 질려있었습니다.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고 자신도 없었지만 그때 처럼 꾹 참고 뛰면 될 꺼 같다 생각하고

벌벌 떨면서 뛰었습니다.

헌데 숨은 턱 끝까지 차오르고 폐는 찢어질 것 같고 온 몸은 타는 것 같고, 머릿속은 하얘졌었습니다. 

아무리 뛰어야지 참아야지 참아야지..아무리 손에 쥔 종이를 꽉 쥐어도 힘을 줘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정말 예전같았으면 악으로 깡으로 다리를 절면서라도 뛰었을텐데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 자리에 서서 멍하니 있었습니다.

그러곤 그냥 집으로 뛰어갔습니다.

 

몇 번을 같은 짓을 해봐도 똑같았었습니다. 더 이상 참고 노력하는 게 내 맘대로 되지 않았었습니다.

오히려 왜 이렇게 힘든걸까 왜 이렇게 참아야하는 지, 지금 당장 포기해라는 제 목소리가 제 맘속에 떠나질 않았었습니다.

 

 이때문에 항상 이런 것들을 포기해야되는 것이 아닐까 진지하게 생각하는 날들마다

잠을 자고 꿈을 꿀 때 저는 항상 운동장 바닥위에서 운동장을 돌고있었습니다.

온 몸이 움직이지 않아 쓰러졌는 데 정말 꿈에서 젖먹던 힘을다해 손바닥으로 기어가는 내 모습을 끝으로 잠을 깼고

항상 눈가에는 눈물이 맺힌 체 일어났었습니다. 꿈 속이었지만 너무 간절했었습니다.

 

 저는 이전에 쓴 오유의 글을 정말 수백번 봤었습니다.

저를 많이 격려해주시고 많은 사람들은 제게 아주 많은 조언을 해주셨고

수백번 되물었었습니다. 

 

어떤 누군가가 제게 누군가가 말했었습니다.

'마음의 짐은 잠시 내려두고 편안하게 쉬는 시간을 가지고 친구들을 만들고 잘 어울리고다녀라.'

 

  내 나름 모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을 다 포기하고 그 후 1년은 정말 머릿속에 무언가 가득차서 쉬는 게 쉬는 것이 아니었는 데

시간이 지나고 점점 마음에 있던  날카로운 응어리들이 무뎌졌었고 저는 이미 3년동안 거의 대다수의 시간을 쉬는 데 써버렸었습니다.

덕분에 아무것도 하지 않았고 아무런 준비도 계획도 없이 시간만 흘려보낸 뒤

이젠 내가 무슨 걱정을 하는지 내 처지가 어떤지 완전히 잊어버릴 때도 많습니다.

예전에는 가끔씩 가슴이 미어터져서 정말 뛰지 않고는 못 참는 날들이 있었는 데

이젠 그런 것 조차 느껴지지 않고 항상 내가 무언가 잘못된 걸 느끼지만 이제는 이런 고민을 하지 않기위해 컴퓨터를 키고 게임을 하는

지루한 일상의 반복에 넘어가는 달력을 보며 내가 이런 의미없는 시간을 보내고있다고 자책하는 것 뿐 입니다.

 

 또한 이런 글을 쓰는 제 모습을 보면 방구석에만 들러붙어서 친구 하나 없이 사는 히키코모리로 보이겠지만

저는 생각보다 친구도 많고 저를 애틋하게 여겨주는 친구들도 여럿되고 그 친구들 앞에서는 아무일도 없는 척

세상에 고민 걱정 없는 녀석마냥 지내고있습니다.

 

 또 다른 사람은 제게 말했었습니다.

 

 사람들이 하는 말에 귀닫은 체 지 말만하고 남들 말은 전혀 듣지 않는다는다며 다그치는 사람들의 말이 저는 슬펐었습니다.

저는 3년을 하루같이 같은 고민을 했었습니다.

몇 백개의 댓글들을 저는 하루에 여섯 일곱번 씩 본적있구요.

별의 별생각을 하면서 머릿속으로 세뇌를 해봐도 다음날이 되면 똑같은 고민을 하고있었습니다.

 

끝으로 사람들은 제게 말했었습니다.

대학 간판이 전부가 아니다. 공부의 재능이 없는 거 같다...

내가 하고고싶은 걸해라, 꿈을 찾아라..

 

 저는 이미 꿈을 찾았었습니다.

제 꿈은 공무원, 배우, 가수 등 이런 직업 따위가 아닙니다.

저는 제 자신이 자부심있게 사는 게 꿈 입니다. 뭐든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노력하고 

남들한테는 몰라도 나한테 만큼은 부끄럽지 않게 살고, 백발의 노인이되어서 마지막을 기다릴 때

정말 뜻깊은 삶을 살았다는 말과 함께 눈을 감는 것이 제 꿈입니다.

 

 저는 항상 목표를 가지고 살아왔었습니다. 철없던 어릴적에도 아주 터무니 없는 그런 계획들을 세워놓고 살았구요.

고등학교를 들어가 태어나 처음 공부라는 현실적인 목표도 세워왔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오해를 하길 내가 공부한 건 오직 보기 좋은 대학간판 하나만 보고 뒤도 보지 않고 살아갔다고 생각하겠지만

전 나름 저가 배워보고싶은 공부가 있었고 보다 좋은 환경에서 많은 걸 공부해보고 싶었었습니다.

물론 재수를 실패하고 가고싶은 학교는 가지 못했었지만 이전부터 정해놓은 학과는 맞춰서 들어갔었습니다.

 

원래 계획이었다면 대입 성공 후 운동을 하고선 특전사,udt에 입대하고 그 다음부턴 정말 멋지게 살아보고싶었었습니다.

헌데 다 꼬였습니다. 정말 저는 재수고 뭐고 다 포기하고 살아가는 거 아닌가 싶습니다..

 

사람들은 네 몸과 맘을 다 버리는 짓이라며 새 인생을 찾아 살라는 데

 정말 다 포기하고 다시 사는 법을 찾아 살아야하나요..

헌데 저는 바보라서 잘 모르겠습니다.

영화 속 많은 것을 잃었지만 피나는 노력속에서 어떤 결과에 박수쳐주고

삶이라는 치열한 전쟁속에 고통과 인내를 통해 나 자신을 지키라고 말하는 사람들의 말들은 다 거짓말입니까?

 

 

바보같은 제 머릿속에는 도무지 답이 나오지 않습니다.

 

난 부끄럽습니다.

이따위 사춘기를 겪는 듯 중2병에 빠져 인생을 소모하고있구요.

난 부럽습니다.

이 따위 고민을 하지 않는 평범한 사람들이 너무 부럽습니다.

나도 다른 평범한 나이또래들처럼 그저 연애문제에 매달려 살고싶고

그저 무얼하며 어떤 직업을 가져야할지 이런 장래에 대한 고민에 빠지고습니다.

 

나란놈은 어릴적 꿈에 사로잡혀 이따위로 사는 내 모습이 너무 한심하고

도무지 답이 나지 않는 것에 이골이 납니다...

 

 저는  오히려 만날 힘들다고 울던 그 날들이 너무 그립습니다.

우는 날은 정말 뼈져리게 후회하며 속이라도 뻥 뚫리는 기분이었는 데

지금은 눈물 한 방울보기도 힘들고 그냥 방에 앉아 게임을 하는 게 하루 일상 끝에

 어떻게든 되겠지란 안일한 생각에 항상 무슨일이든 방관하고 결국엔 포기하게 만들어버립니다.

 

 가끔 방안에 아무것도 하지 않고 누워있으면 살고있는 게 아니라 죽어가고있다는 걸 느낄 때가 많습니다.

이렇게 하루하루 의미없이 하루는 흘러가고 아무런 생각없이 죽은 척 사는 저가 너무 싫어요. 이제 진짜 다시 살아나고싶은 데

도저히 일어날 용기가 안나는 저가 이제 너무 싫어요.

저한테 정말 이제 별 시간이 남아있지 않습니다.

이제는 정말 잘 살고싶은 데 도저히 용기가 안납니다.

미쳐버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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