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개의 급보와 함께 체인질링의 왕은 격분했다.
“이퀘스트리아 이 개새끼들이!”
대신들과 왕자들이 참석한 대회의장이었지만 왕은 언사를 자제하지 않았고 그에 많은 자들이 별 유감을 느끼진 못했다. 왕의 평소 언행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고 그럴만한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첫 번째 급보는 이퀘스트리아에서 보내온 선전포고문이었다. 이것이야 이미 내다보고 있던 것이었다. 어차피 한번은 전쟁이 일어날 상황이었으니. 하지만 악보(惡報)는 악보. 악보를 가져온 파발에게 행하는 유서 깊은 행동원리에 따라 왕은 칼을 들었고, 두 번째의 급보에 칼을 멈춰야만 했다.
두 번째 파발이 가져온 급보는 레베타토스가 함락되었다는 사실이었다. 체인질링의 역사 속에서 하룻밤만의 도시 함락이란건 있지도 않았고 있을 수도 없는 일이었기에 왕과 대신들은 큰 충격에 빠졌고, 첫 번째 파발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두 번째 파발의 목이 잘려 대전을 데굴거렸고 왕은 선전포고문을 읽었다. 그리고 얼마 안있어 바로 선전포고문을 집어던졌다. 왕의 눈은 분노에 이글거렸고 모두가 그 분노에 질려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이..... 이......”
기가차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자신만만한 본인과는 동떨어진 말이라고 생각해 왔었지만 이번만큼은 달랐다. 왕은 비로소 이 이퀘스트리아의 정신 나간 총리대신 ‘푸딩헤드’의 면모를 가늠해 볼 수 있는 귀중한 귀회를 얻은 것이다.
신하들 또한 그 유려한 필체로 적힌 선전포고문으로 눈을 돌렸고 모두가 혀를 찼다. 선전포고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목 잘 닦고 기다려주시기 바랍니다, 존경하는 체인질링의 왕 루데셉툰. 좀 닦아 놓으면 그 목도 어느 정도 봐 줄만 하겠지요. 부디 제가 목을 모으는 취미가 있다고 생각하진 마시길. 그런 취향은 나중에 얻을 생각이지 지금 얻을 생각은 없기 때문입니다. 물론 멋진 여가활동이라고는 생각합니다만 루데셉툰 당신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제 알바 아닙니다. 저의 부족한 부하, 스마트 쿠키를 당신에 대한 사랑으로 보냅니다. 도착과 동시에 목을 내밀어주시길. 빠른 결제는 늘 좋은 법이지요. 이만 줄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발칙한 년, 체인질링을 얼마나 우습게 보는 것이란 말이던가!”
체인질링의 왕은 홀(笏)로 탁자를 내려쳤고, 요란한 소리와 함께 탁자가 부서져 내렸다. 요란한 탁자의 종언과 함께 체인질링의 왕은 선언했다. 왕다운 위엄과 기품이 깔린 고함이었다.
“지금 당장 출군을 준비하라!”
아무도 거부할 수 없는 권언이었다.
체인질링의 왕궁은 순식간에 들쑤셔놓은 벌집마냥 시끄러워졌다. 비단 왕궁뿐만이 아닌, 온 도시가, 온 나라가 충격의 소용돌이에서 허우적거렸다.
비상소집명령에 따라 강제 징발되는 청년들이 괴성을 지르며 발악했고, 울었으며, 한탄하면서 병사들에게 끌려갔고 처녀들과, 여동생과, 누나들과, 어머니들이 그들의 소매를 잡으며, 병사들의 발을 잡으며, 울며, 발악하며, 온 몸을 부여잡고 통곡했다.
병사들은 그들의 마음을 이해했다. 허나 그뿐, 그들의 간곡한 청을 들어줄 권한따위 그들에게 있을 리가 없었다. 그들또한 결국 하나의 군인이며 병사일 뿐, 명령에 충실해야만 했기에......, 그들은 무자비한 검을 휘두르며 차근차근히, 하지만 확실하게 그들을 끌고 갔다.
그 모습을 왕궁에서 지켜보는 휴브리스는 마음이 착잡했다. 분명 조용한 잠으로 맞이해야 했을 그 잠은, 몇 가닥의 횃불들과 비명, 공포 덕에 소란스러운 모습으로 변화했다. 실로 지옥도라고 할 수 있을런지도 모른다.
그 순간, 휴브리스는 온 몸을 타고 흐르는 소름을 느꼈다.
곧 우리들은 전쟁이라는 지옥에 떨어진다. 그런 생각을 애써 무시해왔던 것을, 이제 와, 절감하는 것이다. 이것이 지옥이라고? 비웃음당해도 싼 말이었다. 이제야 겨우 지옥의 시작일 터인데, 무슨 태평한 소리란 말인가.
옆의 사티로스는 흥분되어 미치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저걸 보라고, 형님! 이제 전쟁이 시작 되는 거야!”
휴브리스는 동생을 바라봤다. 사티로스는 언제나 불같은 아이였다. 화려함을 좋아하는 아이였고 휴브리스는 그런 동생을, 좋아했었다. 자신과는 다른 자신감, 같은 것이 넘치는 아이였다. 물론 이젠 아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이미 어엿한 청년이 되었었지만 자신에게 있어선 늘 동생이었고 아이였다.
그런 자신이 언제부터 동생을 싫어하게 됐을까. 기억은 모호하다. 이미 다 낡아 바스러져, 글자마저 흐릿한 책을 읽는 듯 한 기분이다.
“넌 전쟁이 좋으냐, 사티로스.”
“형님, 전쟁은 시작됐으면 말이지. 즐겨야 하는 거라고 생각해.”
“전쟁을 즐길 수 있겠느냐, 사티로스.”
휴브리스는 음울한 눈빛으로 동생을 바라봤다. 그리고 사티로스는 기백있는 눈으로 자신을 노려봤다.
“형님, 얼간이 보는 듯한 눈으로 날 보는 건 관두지 그래. 그래봐야 아무것도 바뀌는 건 없어. 이미 전쟁은 시작됐고, 피할 수 없어.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몰라?”
“...... 전쟁이 그렇게 쉽게, 합리화 될 수 있는 거냐. 사티로스.”
“헛소리야. 합리화라니, 우리는 이미 태어났을 때부터 다른 걸 죽인다는 전재로 태어났어. 우린 다 예비살해자라고, 형님. 혼자 고고한 척은 그만두지 그래.”
사티로스는 빙긋이 웃어보이고는 자리를 떴고, 혼자 남은 휴브리스는 머리를 부여잡았다. 끔찍한 기분이었다.
저 모두를 죽이는 게, 당연한 일이라고?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지? 저 아버지를, 아들을, 청년을? 말해 보아라, 사티로스. 저 모두를 죽이는 게 우리가 태어났기에 일어난 일이라면, 사티로스, 그러면, 차라리, 살지 않는게, 나은 일 아닌가? 말해봐, 사티로스!
형님, 관둬. 왜 그렇게 피곤하게 살아? 어차피 죽을 놈은 죽고 안 죽을 놈은 안 죽는 그런 세상이야. 이런 세상에서 왜 도덕을 찾고 의리를 찾고 명분을 찾아. 그런 건 저기 서기한테나 집어던지라고. 전쟁이 일어났으니 죽이고, 병사들이 끌려가는 건 당연한 이치야.
아니, 당연하지 않다. 우리는,
아니, 당연해. 우리는,
살아있으니까,
살아있으니까.
휴브리스는 자기와 대화하던 사티로스의 형상에 칼집을 집어던졌다.
“꺼져라, 이 망할 환상아!”
칼집을 맞은 환상은 낄낄거리더니 연기로 화했다. 혼자남은 휴브리스는 어깨를 부여잡고 울었다. 긴 통곡이었다.
“우리는, 죽이지 않고 살아갈 수 있어.... 죽이지 않고도, 얼마든지...”
휴브리스가 고통속에 울부짖을 동안, 크리살리스는 의도치 않은 누군가를 만나고 있었다.
“이, 분은 누구시죠, 아, 아바마마?”
“흐음, 너도 듣기는 해봤을 거다. 집사장, 로덴부레트다.”
“처음 뵙겠습니다, 공주님. 앞으로 공주님을 모시게 된 로덴부레트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가볍게 인사해오는 로덴부레트라는 자에게, 크리살리스 또한 저도 모르게 인사했다.
“네, 네... 반가워요, 로덴부레트. 전 크리살리스, 체인질링의 공주입니다.”
서로는 어색하고, 긴밀하고, 조용한 눈빛으로 그 간극을 채웠고, 왕은 건조하게 웃었다.
“내가 없는 동안 너를 보살피며 이 성을 섭정할 자란다. 내가 가장 믿는 수하이기도 하지.”
“이, 이분이 말입니까, 아바마마?”
“그래. 로덴부레트. 내 오랜 벗이기도 하지.”
그런 말투는 왕에게서 처음 듣는 말이었기에 크리살리스는 놀란다. 그러며 약간의 기억이 자신에게 들려주는 듯도 했다. 오랫동안 벗이며 친구였던 집사장이, 아버지, 왕에게 있었다는 소문을 들은 듯 했다.
왕이 왕이기 전부터 왕과 깊은 친분을 쌓아왔고 왕에게 여러 조언들을 아끼지 않았으며, 지금은 그에게 모든 충성을 다하고 있는 오랜 벗. 소문속의 집사장. 크리살리스는 분명 그런 말을 들어본 적이 있었던 것이었다.
허나 이는 너무나도 갑작스러운 만남, 게다가, 아바마마가 없을 때라니? 그건 무슨 말이란 말인가?
“아, 아바마마.”
“왜 그러느냐 크리살리스.”
“아바마마가 없을 동안이라니요,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말 그대로다. 전쟁이 일어났단 소리는 들어봤겠지, 공주야.”
분명 듣기는 했었다. 전쟁이 일어난 이야기는 이미 온 나라에 돌고도 남았으리라. 실로, 오래간만의 전쟁이었고, 아직 전쟁의 전, 자도 모르는 꼬맹이들이 자신들이 무공을 세우겠다며 시끄럽게 굴고 다니기도 했었으니.
“예, 분명......”
“이번 전쟁은, 모두가 출정할 것이다.”
“네?”
“들었잖느냐, 모두가 출정할 것이라 말했느니라.”
그러고 보면, 왕은 보기 힘든 완전무장을 하고 있었다. 그 빛나는 갑주의 모습에 크리살리스는 어린 마음에서도 이해했다. 지금은, 전쟁의 폭풍이 휘몰아치고 있는 시대였다.
“상대는, 이퀘스트리아인가요.”
왕은 약간 놀란 표정으로 공주를 보고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왕자가 가르쳐주더냐? 그렇단다. 이퀘스트리아지. 이제 왕족 중에선 유일하게 너만이 이 왕궁에 머물고 있는 것이란다.”
왕은 발굽을 뻗어, 자신의, 사랑할지도 모르는, 사랑하는, 사랑하려하는, 공주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왠지 모르게, 그 발굽이, 마지막일 것 같아, 크리살리스는 울어버렸다.
“아, 아바마마, 아바마마...”
“아니, 왜 우느냐?”
“아바마마.... 아바마마... 가지 마시옵소서..... 아바마마.....”
“허어, 참...”
평생 한번도 이런 어리광을 부리던 적이 없었던 크리살리스였기에 왕의 낭패는 상당했다. 자신의 절친한 친우에게 성을 맞기고 떠나야 할 때이건만, 이제 와서 이런 어리광이라니, 무슨 웃기지도 않은 일이란 말이던가.
곤란했지만, 혹은 곤란했기에 왕은, 아마도 처음으로 크리살리스를 안아주었다. 그런 파격에 왕 본인마저 놀란다.
“크리살리스, 공주야.”
“... 네, 네, 아바마마.”
왕은 잠깐 곤란한 표정을 짓고는, 다시 웃음을 머금었다. 그리고 살짝 공주를 밀어 자신과 눈을 맞추게 했다.
“돌아올 것이야. 짐은, 그리고 너의 오빠들도, 모두가 승전하여 다시 이곳으로 돌아올 것이다. 모두가 그렇게 돌아올 것이야. 물론, 어쩔수 없는 일 때문에 못 돌아오는 자들도 간혹 생길지 모른다. 허나, 공주야.”
왕은 공주의 어깨를 잡았다. 강인한 힘이 담겨져 있었다. 그에 공주도 눈을 왕에게로 맞춘다.
“돌아올 것이야, 짐도, 너희 오빠도, 어느 국민도, 단 한명도 내가 그곳에서 죽게 놔두진 않게 할 것이야. 어느 무엇보다도, 네가 여기에 있는데 내가 설마 전장에서 잠을 자겠느냐. 그러니 걱정 말고, 열 밤만 자거라.”
“열 밤이요?”
“그래, 열 밤. 그 안에 모든 전쟁을 다 끝내고 왕궁으로 돌아오겠느니. 이는 왕으로서의 약속이다. 왕으로서의 약속은 어떤거지, 크리살리스?”
“겨, 결코 어길 수 없는 절대의 약속이에요...”
“그럼 내가 오지 않겠느냐?”
“올, 거에요!”
크리살리스의 눈에 가득하던 걱정과 울음은 이미 걷힌 지 오래였다. 이젠 믿는 것이었다. 왕이 분명 돌아올 것이라, 믿는 것이었다.
“내일 출정식이 있으니, 울지는 말거라.”
왕은 장난처럼 웃으며 공주를 쓰다듬었고, 휘적거리며 자리를 떴다. 그리고 왕이 간 자리에 남은 두 명. 크리살리스는 처음보는 집사장에게 다시금, 인사했다.
“아바마마가 안 계실 동안 성을 잘 이끌어 주시길 바라요, 로덴부레트.”
체인질링의 공주다운 관록이 엿보이는 인사였고 그에 로덴부레트도 미소지었다.
“언제, 어디서든 하명하십시오. 성주(城主) 전하.”
약간은 요란스러웠던 밤이 지났다.
크리살리스는 그 일 이후 피곤하여 잠에 빠져들었고, 왕은 남은 서무 처리를 로덴부레트에게 인계하느라 진땀을 뺐다. 휴브리스는 출정전의 시간을 어떻게 할지 몰라 성안을 돌아다니다가 밤을 지새버렸다. 사티로스는 곧 있을 살육을 기대하며 술을 삼켰다. 펠롭스는 어떻게든 전쟁을 멈추고 싶어 안달이었다.
끌려간 청년들은 앞으로 있을 끔찍한 살육을 예견하며 밤을 떨었다. 어린 여동생들은 곧 돌아온다는 오빠의 말을 곱씹으며 눈물을 찔끔거렸고 어머니는 자식의 걱정에 밤자리를 설쳤다. 누이는 떠난 남동생들의 빈자리가 익숙치 않아 계속해 대답도 없는 남동생의 이름을 불러보았다. 딸들은 밤 새 우는 어미를 달래며 아버지를 걱정해보았다.
그리고 이 많은 시름들이 계속될 날들을 가늠해보았다.
시름 많은 밤이 지나고 어느새 새벽, 잠이 짧은 장교들은 이미 병사들을 재촉해 사열을 마친 상황이었고 왕이 사열대로 들어선다. 사열식마다 입고 있었던 화려한 의복이 아닌, 견고한 갑옷을 입고.
밤새 식은 공기는 병사들의 이성을 차게 날을 세우게 한다. 번뜩이는 병사들의 안광을 맞으며 체인질링의 위대한 왕 루데셉툰은 거침없이 고함을 지른다.
“체인질링의 아들들아!!!”
왕의 고함에 병사들 또한 마주 고함친다. 그에 덩달아 어젯밤에 갓 징발된 병사들도 악에 받쳐 고함친다. 공포가 고함에 물들고 곧 다수의 괴성은 희열과 광분의 함성이 되어 사열장을 울렸다.
“체인질링의 아들들아, 병사들아, 구원자들아, 용사들아! 구국의 영웅들이 될 자들아!!!”
연호될수록 병사들의 괴성 또한 커져만 갔다. 스스로가 소리를 치는지도 잊을 정도로 열광이 젖어들 무렵, 루데셉툰은 왕의 권위를 상징하는 홀(笏) 대신 검을 뽑아들었다.
“이 검 앞에 저 무지하고도 무례한, 천하의 개자식들의 몸을 바쳐라! 찢어발길 육신을 내놔라! 적들을 역사와 나라에게 목숨을 바치게 하라!”
쿵, 쿵, 쿵, 쿵.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체인질링들은 병장기들을 땅에 두드렸다. 장군들이, 장교들이, 부사관들이, 병사들이, 노예들이, 귀족들이, 만인이 병장기를 땅에 두드리는 모습은 희열이었다. 그 장렬한 모습에 지켜보고 있던 여인들도 덩달아 희열에 빠진다. 잠시만 휘몰아칠 것만 같던 흥분은 이제 모두를 집어삼켰다.
그 희열의 혼란 속에서 왕마저 검으로 땅을 두드릴 즈음에, 한명의 사내만은 씁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제 1왕자, 휴브리스. 빗나간 화살을 이름으로 가진 그는 암울하게 그 형상들을 바라보았다.
저, 곧, 죽을 자들.
갈기갈기 찢겨져 땅에 내동댕이쳐지고는 결국 들짐승과 날짐승의 먹이가 될 자들, 저, 맥없이, 죽을 자들. 그리고, 그리고......
그걸 부추기는 자신들.
휴브리스는 끔찍한 기분에 휩쌓였다. 결코 유쾌한 기분은 아니었다.
“외쳐라, 너희들은 누구냐!”
그 말에 번뜩, 저도 모르게 휴브리스는 외친다.
“휴브리스! 체인질링에게 승리를 가져다줄 자!”
자신의 선창과 함께, 갖가지 악에 받친 목소리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사티로스! 저 잘나빠진 포니들의 모가지를 딸 놈이외다!” “슈발탄, 적들을 섬멸할 자입니다!” “지외드의 아들, 윅슨! 포니들을 쳐 죽이고 오겠습니다!” “엑소나 모론토스, 적들의 입을 침묵하게 하겠나이다.” “모르드나, 그들의 아구창에 칼을 쑤셔박을 자다!”
함성들이 악다구니가 되어 연병장을 휘몰아쳤고 휴브리스는 몸을 떨었다. 자신이 함성을 외쳤다는 것에 대해 놀라서가 아니었다. 함성을 외칠 때 자신이 분명 희열을 느꼈음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출정식과 홀인계식 -분명 섭정은 로덴부레트였지만 정통적인 성주는 크리살리스였기에 그녀가 홀을 인계했다- 은 거창하지도, 소박하지도 않게 진행되었고 어느새 각적(角笛)이 울렸다. 거대한 각적은 그 위용만으로도 병사들의 기를 살리는 데에 충분했다.
저벅저벅, 저벅저벅.
철컹거리는 군장들이 길을 울렸다. 체인질링의 군대는 가을이 저물고 겨울이 들어서는 장으로 진군한다. 전쟁과, 혹한과, 살육이 난무할 장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