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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선수 김연아에게 보내는 편지
게시물ID : sports_8799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으헝헝엉
추천 : 8
조회수 : 777회
댓글수 : 3개
등록시간 : 2014/03/03 21:50:22
 
사실 이 글을 쓰는 것을 몇 번이고 고심했습니다.
이젠 연아 선수라고 불리는 것도 이상하지만.. 그래도 이때가 아니라면 영영 그렇게 부를 수 없을 것 같아서요.
 
연아 선수의 수 많은 팬 중에 먼 발치에서 응원밖에 할 수 없었던 행동력 없는 팬인 제가 남기는 글을
혹시나, 혹시 1g의 희망으로 어쩌면 연아 선수가 볼 수도 있지 않을까 바보같은 마음에
(혹은, 저와 같은 깨알팬들이 분명 있을거라는 생각에)
막 야근이 끝나 한숨을 돌리던 텅 빈 사무실에서 이렇게 글을 남깁니다.
 
네, 지금은 야근이 끝나 사람이 센티해지는 9시니까요.
센티 받고 오글추가할께요. 죄송해요.
 
 
앞서서, 재미는 없지만 제 이야기를 조금 하려해요.
왜냐면, 제가 연아 선수에게 모든 마음을 뺏기게 된 큰 이유거든요!
 
제가 어렸을때, 그러니까 벌써 20년도 전이네요.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빙상 선수로의 꿈을 키웠습니다.
 
또래에 비해 많이 작아서 체력이 딸리던 저를 재미있게 운동시키기 위해 엄마가 고안해낸 운동이 스케이팅이었어요.
다행히 엄마의 생각보다도 훨씬 저에게 잘 맞았고요.
쇼트트랙 쫄쫄이슈트를 입으며 해를 거듭해 배우고 있던 찰나 은반 한편에 나풀나풀거리는 예쁜 옷을 입고
환상적인 스핀을 하고 있던 어떤 언니에게 눈이 꽂혔어요.
 
그리고 엄마를 졸라 졸라서 피겨 스케이팅화를 신고 처음 빙판에 발을 올렸을 때 느낌은 아직도 생생하네요.
피겨화에 비해 길던 쇼트트랙화는 균형을 잡기 어렵지 않았는데...
피겨화를 신고 빙판에 올라가니 잠시만 집중을 풀어도 몸이 빙글빙글 회전하는데, 그 느낌이 참 좋았어요.
 
생각보다 운동신경도 있었고, 피겨에 나름 적합한 체형이었고, 욕심도 있었던지라
늦게 시작했지만 차근 차근 하나씩 나아가고 있었어요.
하지만 점프를 배우고 있던 초등학교 3학년 때, 예기치 못한 발목 인대 부상이 왔고.
그 이유로 차일 피일 그렇게 좋아하던 피겨를 그만두게 됬어요.
 
어쩌면, 선수로써의 절박한 마음가짐은 그 당시 없었던 걸지도 몰라요.
 
 
피겨를 그만 둔 뒤로 학생인 제가 할 수 있었던 건 막 시작된 인터넷에서 몇 가지 기사를 읽는 것 뿐이 전부.
동계올림픽의 아댄, 페어, 남싱, 여싱을 모두 다 보고 싶어도 그렇지 못한 조건들, 개인적인 생활들에 지쳐
언젠가 제 머리속에 피겨라는 두 글자는 희미해지고 있었어요.
 
 
아직도 기억나네요, 2004년이었죠?
학원을 끝내고 돌아온 집에 엄마가 뉴스를 본 뒤 주니어 그랑프리에서 우승한 소녀가 있다고 넌지시 말했어요.
순간적으로 그게 뭐지? 했는데 곧 피겨라는 것을 알아채자 가슴이 뛰었어요.
자료를 모으고 모으면서 봤어요.
학생인 나는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어서 이 소녀의 팬이 되어주리라 그때 결심한 것 같네요.
 
정확하게 실시간으로 연아 선수의 연기를 처음 본 것은 시니어 데뷔전이던 2006년이었어요.
록산느를 클린했을때, 어느 샌가 나는 펑펑 울고 있었어요.
저 어리딘 어린 작은 아이가, 저런 엄청난 연기를.
 
그것도 피겨의 볼모지 중 최고의 볼모지인 우리나라에...
 
연아 선수가 넘어지면 울었고, 넘어지지 않고 연기를 잘 해내면 그건 또 그것대로 울었어요.
딱히 눈물이 많은 편이 아닌데도 연아 선수의 그 연기가 얼마나 힘들고 어렵고 피나는 연습이 필요한 것인지
알게 되니... 나보다 훨씬 어린 여동생이 저 엄청난 곳에서 모두 이겨내며 연기하는 것이 대견해서 아마도 그랬던 것 같네요.
 
그 뒤로는 말할 것도 없는 승냥이 행보를 걸었습니다.
잘 활동하지도 않던 디씨에 가서 조공때만 용돈을 조금 모아 보내고.
기사란 기사는 다 섭렵하고, 읽고. 좋아하고!!!
캐나다 토론토에서 유학할 때 Finch에 연아 선수가 있다고 해서 당장 달려가서!
대각선 건너에 서 있는 연아 선수를 간신히 보고 하루 종일 들떠있던 그 행운!
(아직도 이 날 그래도 무조건 달려가서 가까이서 얼굴을 볼껄하고 후회해요. 그 때는 뭐가 그리 배가 불렀는지
안그래도 팬에 둘러쌓여있을텐데 굳이 나 까지 가서 괴롭히고 싶진 않다는 생각에 그렇게 보고 말았어요. 희대의등신.)
 
그런데 이상하게, 연아 선수의 경기를 직접 보러 가진 않았어요. 
용기가 없었어요. 진짜 심장마비로 죽을까봐.
 
연아 선수의 포디움에서의 얼굴들을 아직도 기억해요.
어떤 경기에서 어떤 실수가 있었는지, 어떤 경기 때 어떤 인터뷰를 했었는지 정확하게 모든 것을 기억할 순 없지만
처음 음악이 시작이 되고 연아 선수의 표정이 잡히면 아, 이 경기구나!하고 기억이 날 정도로 연아 선수의 모든 경기를 보고 또 봤어요.
 
공부가 집중이 잘 안될 때, 일이 잘 안될때마다
연아 선수가 했던 경기들을 보면서 마음을 다잡곤 했고.
연아 선수가 입었던 경기복들로 만들었던 의류학 전공 프레젠테이션은 교수님의 극찬을 받으며 A+을 받았고
그런 식으로 제 삶을 쪼개고 쪼개 연아 선수의 스토커마냥.... 혼자서 참 응원하고 응원했습니다.
 
말이 엄청 쓸데없이 길고 연아 선수가 제일 싫어하는 오글거림이 잔뜩 들어간 글이라
제 손발도 퇴갤하기 전에 서둘러서 파워한 요약 마무리 하자면
 
연아 선수와 동시대에 살 수 있어서, 피겨 선수를 꿈꾸던 저에게 영광이고 행운이였습니다.
 
항상 행복하길 바랐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는 지금보다 몇천, 몇만배는 더 행복하길 바래요.
 
연아 선수 덕분에 제 삶이 더 밝아지고 행복했습니다.
정말 고마워요, 이제 아프지말아요!
앞으로도 이렇게 연아 선수를 항상 응원할께요!
 
Adios, Queen Yu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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