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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역사님께서 빨치산은 친일파에 대항한 사람들이라시는데
게시물ID : sisa_49103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서애류성룡
추천 : 0/6
조회수 : 1053회
댓글수 : 4개
등록시간 : 2014/03/04 11:57:59
정식명칭은 조선인민유격대

해방 이후, 남한에서 사회주의 세력은 나름 평화적인 방법으로 정권장악을 꿈꾸고 있었으나 제주도의 4.3 사건이 발발하면서 무장세력화를 모색하게 된다. 처음엔 남로당계열이 야산대라는 이름으로 산발적인 게릴라전을 벌이고 있었으나 여순사건과 그에 호응한 각 반란사건의 잔당들이 지리산으로 도피했을 때 일제강점기 때 무장투쟁 경력이 있던 이현상이 이들을 규합하여 무장세력화한다. 이 이외에도 전국 각지의 지명수배된 사회주의자들이 산발적인 무장투쟁을 벌이고 있었으나 대부분은 도피성에 가까왔다.

김일성은 월북자를 비롯한 다양한 인원들로 편성된 부대를 만들었다. 한국전쟁 발발 이후 북한의 점령이 급속도로 진행되면서 남한 각지에 이 부대를 대규모로 남파시켰고, 이는 거의 정규군의 일개 부대와 비슷한 규모였다.[6] 그러나 인천 상륙작전으로 북한군의 허리가 잘리자 퇴로를 잃어버린 북한군 잔당과 북한의 남한 각 행정부처, 그리고 협력세력들은 퇴로를 잃은 채 무장세력으로 정착된다. 그러나 북한이나 서로간의 연계가 거의 되지 않고 각자 독자적으로 활동하였다. 

각 세력은 행정구역 도 단위로 활동하였는데 경남도당, 경북도당, 전남도당, 전북도당 등 상당수의 세력이 태백산맥에서 뻗어나온 각 산들에 터를 잡고 활동하였기 때문에 태백산맥, 그 중에서도 지리산은 빨치산의 대명사격이 되었다.

한편 북한은 남로당 출신의 이승엽을 주축으로 이들을 지원하고 규합하여 후방 교란세력을 만들기 위해 계속 100~1000 단위의 무장공비집단을 만들어 남파하나 대부분 주전선에서 걸려 괴멸되었고 과거 빨치산 경력이 있던 이현상의 독립 제4지대만이 가까스로 살아남아 독자적으로 활동하였다.

이후 독립 제4지대는 이승엽의 명으로 조선인민군 유격대 남부군으로 개칭하며 이현상을 필두로 하여 각지에서 활동하는 빨치산 세력을 규합하려 하였으나 이미 회복된 대한민국의 치안하에서 제대로 활동할 수 있을 리 없었다. 이현상의 4지대는 지리산을 근거지로 한국전쟁이 종전된 1953년 9월까지 저항했고, 이현상이 사살된 뒤에야 와해되었다.


그러나 사실 대부분의 생포된 유격대원들은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 일정심사를 거쳐 민간인 학살 등에만 연루되지 않았다면 대개 재판을 받고 얼마 안 가서 방면되었으나 고립된 빨치산들은 그 사실을 알 리 없었다. 물론 한국군 등 진압군측에선 무의미한 피해를 줄여 보기 위해 이런 사실들을 빨치산들에게 선전해서 투항을 권유하기도 했다. 하지만 고립되었던 유격대원들은 이를 사실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생포된 유격대원을 이렇게 취급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당시 대한민국 정부는 이들의 교전권을 인정하지 않고, 적의 비정규군이 아니라 '납치되거나 오도되어 가담한 선량한 양민' 또는 일반 범죄자로 간주했기 때문이다. 이는 몇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유격대의 경우 정규군과는 달리 교전권을 인정하기에는 굉장히 미묘한 형태이다. 게다가 후방 치안을 확보하기 위해 추가적인 유격대원의 증가를 막아야 했는데, 만약 빨치산들을 교전권 당사자로 인정하면 오히려 빨치산이 더욱 증가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

물론 진압군측에서 화가 나서, 또는 상당히 크게 다친 자를 그 자리에서 바로 사살해버리는 것이야 막지는 못했겠지만, 일단 산 아래로만 내려오면 목숨은 보장받았다. 김영옥 대령의 회고록에서도 잡은 포로 중 크게 다친 한 사람을 계속 끌고 다닐 수 없어서 죽여버린 적이 있다고 하며, 그 자신도 조금 후회하기도 했다고 한다. 만약 이들을 한국 정부가 교전권이 있는 존재로 인정해버렸다면 오히려 북한과의 포로 교환시 북한으로 송환 당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북한은 자신을 지지해준 조선인민유격대를 정규군으로 인정하지 않았을 뿐더러 데려갈 생각을 애초에 하지도 않았다.
정전협정으로 전쟁이 끝난뒤에도 빨치산 세력에게 산에 내려가 지하활동을 계속하라는 무전만 전해주었을 뿐 그들에게 아무것도 해주지 않았다. 이 무전을 전해줄 당시 대한민국의 국군이 한창 토벌작전을 펼치던 중이라 산으로 내려가라는건 하루빨리 죽으라는 소리와 다름이 없었다.

오히려 대한민국측이 정전협정때 제발 유격대원들을 데려가라고 먼저 제의했는데도 북한측에서는 일절 대답하지 않았다. 북한의 입장으로써는 유격대원들은 그저 일회용품으로밖에 보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대한민국 토벌대에 의해 지리산 본부를 제외한 나머지 유격대 지지구는 모두 사라지고 말았다. 그렇다고 지리산 본부도 안정된 곳은 아니었다. 해방구들이 모두 사라지면서 고립 상태가 되어 상황이 최악이긴 마찬가지였다.

북이 이렇게 빨치산을 내팽개친 것은 김일성과 만주 빨치산계가 박헌영을 중심으로 한 남로당계를 견제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던 걸로 보인다. 빨치산 간부들의 상당수가 남로당계와 인연이 있던 인사들이었기 때문이다. 

탈북자들 증언에 의하면 북한에서도 버림받은 존재이며 인정하지 않아서 기껏해야 남조선 내 자발적인 혁명전선, 즉 제2전선으로 불릴뿐이지 우리와는 상관은 없다는 투라서 잘 모른다고 한다. 덕분에 탈북자들이 남부군같은 영화를 보고 이랬었구나? 놀라기도 한다고.(탈북가수 김용의 책 <머리를 빠는 남자>에서도 언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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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빨갱이가 아님 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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