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퀘스트리아군은 대지위에서 뛰쳐오르는 수많은 병사들을 보며 얼굴을 굳혔다. 사실 이퀘스트리아군은 변신하는 군대인 체인질링을 상대하기 위해 거의 모든 작전들을 상정했었다. 그곳에는 아군의 지휘관으로 변장한 체인질링, 지형지물이나 야생동물로 위장하여 매복한 체인질링, 그리고 아군으로 변신하여 염탐꾼 역을 맡은 체인질링 등의 있을 수 있는 거의 모든 가능성을 상정했고, 그에 대한 열몇가지의 대비책을 수립하는 데 또한 성공했다.
사실상 체인질링군의 최고의 장점인 변신을 통한 교란을 원천 봉쇄한 이퀘스트리아군은 스스로의 채략에 감탄하며 완전히 체인질링군을 경시하고 있었다. 또한 그 경시는 확실히 맞았다. 이퀘스트리아군은 완벽하게 체인질링군의 교란작전에서 빠져나와 도리어 이를 역이용하여 승전을 올리는 쾌거를 이룩해 낸 것이다.
하지만 이퀘스트리아 군의 막사에 승전보가 울린 것은 그 전투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그 이후 단 한번도 이퀘스트리아 군의 막사에 승전보가 울리지 못했다. 체인질링은 변신을 단지 매복이나 혼란의 용도로만 사용하진 않았던 것이다.
드세게 솟구치던 병사들의 몸이 초록빛을 뿜어내며 형태를 변화시키기 시작했다. 변형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어느 사이엔가 그 반투명한 날개는 깃털이 무성한 날개가 되었고 포니와 별반 다를 바 없던 두상은 강철 같은 부리를 가진 그리핀의 얼굴이 되어 포니들을 향해 몸을 던져갔다.
활공하던 페가수스들은 그 모습을 보며 질린 표정을 지었다. 결코 하늘에서 만나긴 싫은, 비행하는 모든 생물의 천적, 그리핀의 형상을 띈 체인질링들이 페가수스들을 덮쳐가기 시작했다.
그것이 바로 체인질링 군의 변신을 사용한 최고의 전법이었다. 비행하는 적을 상대할 때는 그들의 최악의 숙적인 그리핀의 형상을 띄어 싸우고, 대지의 적을 상대할 때는 미노타우루스의 형상을 띄어 싸우는 것이다.
그렇다면 약간의 의문을 제기하는 자들이 나타날 지도 모른다. 예를 들면, 지상 최강의 종족인 드래곤의 모습으로 변하면 될 것이 아니냐, 라는 식이다. 허나 체인질링은 실제로 상대를 보지 않고는 그 상대로 변할 수 없고, 실제로 드래곤을 만난 체인질링들은 하나같이 몰살당했기에 역사상 단 한 번도 드래곤의 모습으로 둔갑한 체인질링은 존재하지 못했다. -전설 상 드래곤의 모습을 가져간 체인질링이 몇몇 있긴 하지만 이들은 실존했는가에 대한 의문이 많다.- 허나 굳이 드래곤이 아니더라도 커다란 상관은 없었다. 이미 그리핀과 미노타우루스의 조합만으로도 최강의 군대인 것이다.
페가수스들은 자신들의 죽음을 직감하며 스스로의 몸을 지상으로 내리 꽂기 시작했다. 참람된 전투의 시작이었다.
어두운 하늘이었기에 장렬히 내리꽂히는 페가수스들의 모습은 사령부의 위치에서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렇기에 사령부의 팬시는 순전한 감으로 죽어가는 페가수스들을 느끼고 있었다.
결코 좋은 느낌은 아니었다. 도리어 끔찍했다. 그 수많은 죽음들, 도저히 상상하기도 힘든 일이다. 허나, 자신은 이퀘스트리아의 총사령관. 어떤 상황에서도, 어떤 전황에서라도 자신은 최선의 결과를 도출시켜야만 하는 것이다.
그것이 끔찍한 희생을 수반하는 것이더라도.
팬시는 얼굴을 굳혀갔다. 2년의 전쟁이 도대체 자신에게 준 것은 무엇일까. 이미 자신이 옛날의 자신이 아니라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어느날, 스마트 쿠키가 자신을 ‘승리에 미친 년’이라고 표현한 것도 절대적인 진실에 기반하고 있는 별명이라는 것 또한 알고 있었다. 그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책임을 회피할만한 성질의 것일까?
팬시는 감상에 질식해가고 있는 자신을 꺼냈다. 허나 감상은 진득하게 자신에게 달라붙어 떨어질 줄을 몰랐고 그 끔찍함에 팬시는 몸서리를 쳤다.
그를 떨쳐내듯, 팬시는 격렬하게 팔을 들었고 그와 동시에 유니콘의 뿔에서 검은 불꽃이 터져나왔다. 소리도 들리지 않고 자세히 보지 않으면 눈에도 띄지 않은 빛의 폭죽이었지만 어스포니들은 그 폭죽이 터지자마자 어둠속으로 뛰쳐 들었다.
팬시의 옆에 서서 조용히 사태를 관망하고 있던 스마트 쿠키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약간은 의아한 표정,
“총사령.”
“무엇입니까.”
팬시가 되물어도 스마트 쿠키는 영 대답이 없었다.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닌, 말을 최대한 아끼는 표정. 하지만 팬시도, 스마트 쿠키 본인도 알 듯 스마트 쿠키는 말을 돌려하는데 큰 재주가 없었기에 그 침묵은 오래가지 못했다.
“굳이 이렇게 해야만 합니까?”
“뭐가 ‘굳이’고, 뭐가 ‘이렇게’입니까.”
“무슨 말을 하는지 알면서도 물어오는 것은 예의가 아닙니다.”
“서로의 말을 경청하는 것 또한, 그것이 비록 똑같은 말을 다시 듣는 것이라 할지라도, 예의입니다.”
“......, 망할. 저 많은 포니들을 굳이 희생시켜야만 하냐는 겁니다!”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군요.”
“이, 망할...!”
“아니요, 아니요. 희생시키는 것이 ‘굳이’라고 표현될 만큼의 커다란 문제냐고 묻고 있는 것입니다. 스마트 쿠키.”
“......예?”
예상치 못한 대답에 스마트 쿠키는 얼빠진 대답을 늘어놓았고 그에 팬시는 웃음을 지었다. 냉혈한 비웃음이 담긴 웃음이었다.
“처음의 전투를 기억하시지요, 스마트 쿠키 총사령관 보?”
“처음의 전투...... 스테란그라드 평원의 전투 말씀이십니까?”
스테란그라드 평원 전투, 체인질링의 변신첩보 능력을 역이용하여 거둔, 최초로 승리한 전투였다. 스마트 쿠키는 최초의 승리를 회고하며 약간의 웃음을 지었지만, 팬시의 표정은 여전히 비웃음을 입에 담은 채로였다.
“아니오, 아니오. 잊으셨습니까? 레베타토스 전투를 말하는 겁니다.”
스마트 쿠키는 그런 팬시의 말을 듣자마자 얼굴을 굳혔다. 단 하나의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마법에 매몰당한 지하도시, 분명 그런 이유로 만나지 않았다면 찬탄을 금치 못했을, 허나 폐허가 되어버린 그 고대의 도시를 기억하며 스마트 쿠키는 온몸에 몸서리가 쳐지는 것을 느꼈다. 그 지독스런 몰살의 기억은 범람하며 자신을 덮쳐갔다.
그렇다, 팬시가 ‘처음의 전투’라고 했을 때 레베타토스를 떠올리지 못한 이유는 그것이 전투라기보단 몰살에 가까웠기 때문이었다.
팬시는 스마트 쿠키의 눈을 통해 비치는 의문과 공포, 그리고 분노를 보며 입술을 씹었다.
“그 때의 당신은 저에게 말했었지요. 전쟁의 유일한 윤리는 승리고 전쟁의 도덕은 부도덕(不道德)이라고. 기억하십니까?”
기억하지 못할 리가 없었다. 자신은 아직도 그 과거의 기억에 묻혀 매몰되어가고 있지 않았던가. 그 때 자신을 노려보던 팬시의 눈을 아직도 자신은 잊지 못하고 있었다.
그 분노와 절망이 휘몰아치던 눈빛을, 자신은 아직도 꿈속에서 보고 있는 것이다.
“스마트 쿠키, 스마트 쿠키. ...... 스마트 쿠키... 당신이... 그런 당신이,”
팬시의 말이 이어질수록 그녀의 어조는 더더욱 고조되었고, 그런 팬시의 모습을 보며 스마트 쿠키는 저도 모르는 공포에 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당신이, 네가..... 네가! 내게, 나에게! 굳이, 저 많은 포니들을 희생시켜야만 하냐고, 말하고 있는 거냐! 묻고 있는 거냐!” “전쟁의 장군인, 총사령인 나에게! 저 포니들의 목숨을 희생시키는 나의 정당성을 따지고 있는 거냐!” “전쟁의 정당성은 승리다!” “저 수많은 포니들의 목숨을 잃고, 희생시키고, 승리를 얻어내는 건 나의 정당이야!” “나에게 정의를 논하지 마라, 스마트 쿠키!” “위선을 부리지 마라, 스마트 쿠키!” “전쟁의 정당성은 승리다!” “어떠한 희생도, 승리를 통해 정당화되는 것이다! 그게, 아군이든, 적군이든! 그게 어떤 자더라도!” “아이에게 젖을 물리고 있던 무고한 어머니라도!” “자신의 의지완 관계없이 전쟁으로 끌려나온 청년일지라도!” “아무것도 모르는 무구한 아이일 지라도!” “필요와 목적이 충족될 시에는 희생시키는 것이 그 전쟁을 책임지는 자의 숙명 아니냐!”
팬시의 비명과도 같은 외침이 끝나자마자, 천지가 요동치는 듯한 거대한 굉음과 함께 전장의 구석에서 장대한 무언가가 솟아올랐다. 야음이 짙은 중에서도 눈에 보이는 장대함에 모두는 숨이 막힌 듯 그것을 바라보았다.
팬시 또한 그 거대한 그것을 바라보다 다시 입을 열었다. 방금 전처럼 광기에 짓눌린 표정은 아니었지만 여전히 그 격노만은 사그라지지 않고 눈에 남아있었다.
“다시는 저에게 도덕 같은 개소리를 늘어놓지 마십시오, 스마트 쿠키 총사령관 보.”
스마트 쿠키는 절망이 되었다.
“쳐라, 찢어! 갈기갈기, 저 씹어먹을 것들의 내장을 파해쳐! 저 빌어먹을 잡놈들에게 지옥을 맛보여줘라!”
목이 찢어지라 외치며 퀴반은 하늘을 오갔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몇 번을 스스로에게 다짐하며 계속해 창끝을 휘둘렀다. 체인질링 보다 도망치는 아군의 피를 더 많이 먹은 창이 다시 또 하나의 그리핀을 꿰뚫었다.
그리핀은 거창한 비명을 내뱉으며 꾸루룩, 피를 쏟아냈고 순식간에 검은 몸의 체인질링이 되어 추락해갔다. 그렇게 대지로 추락시킨 그리핀이 이제 일곱. 퀴반은 그 수에 몸서리치며 다시 창을 들어 다른 그리핀을 향해 날았다.
창은 어둠속에서 번뜩였고, 또 수많은 피가, 시체가 비가 되어 대지를 적셨다. 그 골육으로 이루어진 소낙비를 만들어내는 하늘의 전장은, 확실히 구름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퀴반은 구름 사이를 오가며 비를 찢으며 경쾌하게 창을 들어올리고, 내렸다. 화려하게 빛나는 달 사이로 피가 튀었고 또다시 비가 되어 추락한다. 또다시 퀴반은 창을 들어올렸고, 자신을 밝게 비추던 달빛이 사라짐을 느끼며 절망했다.
그의 두개골은 유명한 연쇄살인범을 맞이했다. 그리핀의 유명한 강철부리는 페가수스의 두뇌를 파헤치다 흥미가 가신 듯 조용히 두개골을 나왔다. 들어갈 땐 경쾌하게, 나갈 때는 신사적으로. 손님의 예의를 안다고 할 만한 부리였지만 집주인인 두개골은 그저 추락할 뿐이었다.
케인데나는 피와 두뇌가 뒤섞인 부리를 닦지도 않고 가쁘게 날았다. 케인데나는 영광된 체인질링 군 그리핀 편대의 편대장이었다. 하늘을 날아다니며 깃털덮인 날개로 구름을 찢고, 날카로운 부리와 발톱으로 적을 갈기갈기 찢어놓는 자신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생각했었고 이런 생활이 자신이 죽을 때 까지 이어지기를 열망했었다.
그런 살해의 꿈은 그녀가 원치 않은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또 하나의 페가수스를 페가수스의 모양을 본뜬 고깃덩이로 만들어버린 순간 케인데나는 자신의 가슴에서 무엇인가 섬뜩한 기분을 느꼈다. 그 기분은 틀리지 않았다. 어느새 가시 돋친 나무가 자신의 가슴을 꿰뚫고 있는 것이었다.
강철 같은 그리핀의 몸이 사라지고, 가시나무에는 천박한 체인질링의 시체가 덜렁거리며 피를 흘리고 있었다. 나무는 또다시 자신이 꿰뚫을 상대를 찾으며 하늘의 전장을 활보하기 시작했다.
나무가 대지에서 솟아난지는 얼마 시간이 되지 않았지만 그 나무에 대한 공포와 충격만큼은 순식간에 체인질링 군을 덮쳐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반대로 페가수스 군은 온몸에 희열이 퍼져만 갔다.
페가수스 군의 군단장, 도렌 파시우스는 과거의 아군을 도륙하고 다녔었던 그 무참한 살해병기가 지금은 자신을 돕고 있음에 묘한 희열에 빠졌다. 적의 무기였을 때는 오죽 증오스러웠던 무기였던가.
허나 지금 나무는 그리핀을 도륙하고 있다. 도렌 파시우스는 총사령관의 말이 사실이었음에 기쁨을 느끼며 목청을 다해 고함을 쳤다.
“찢어, 죽여!”
그리 외치고는 도렌은 자신 또한 창을 뽑으며 전장을 향해 날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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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에서는 말이 없는,
그런 팬픽러가 되고 싶다.
라는 바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