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빠진 목소리로 휴브리스는 중얼거렸다.
“저, 저게...... 뭐야?”
눈은 저것이 생명을 도륙하는 나무라며 강변했고 머리는 그것이 미친 소리라며 무시했다. 휴브리스는 재빨리 고개를 돌려 이 정신 나간 상황을 설명해줄 다른 누군가를 찾기 시작했지만, 모두가 그 모습을 보며 얼빠진 표정 일색임을 확인하고는 절망에 빠졌다. 그럴 수 밖엔 없는 노릇이었다. 식물이 거침없이 체인질링을 집어삼키고 있는 이 불가해한 광경에 어느 누구도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물을 태우는 불을 보는 듯한 기괴함에 누구는 혼절을 하고파했고 누구는 꿈이기를 간절히 바랐다.
꿈이 아니었다. 환상이 아니었다. 확실히 그림자가 있고 아픔이 있는 명명백백한 사실이고 현실이었다. 그 끔찍함에 휴브리스는 고개를 돌리고 싶었지만 이미 그의 두 시선은 그 상식외적인 광경에 붙박이고 말았다.
그의 정신은 몽롱해져갔고 영혼은 끝없이 추락했다. 가없는 나락으로 추락하던 그를 꺼낸 것은 다름 아닌 왕이며 아버지이자, 자신이 끊임없이 증오하는 루데셉툰의 목소리였다.
“아둔한 것들, 겁먹지 마라! 이는 어스포니들이 쓰는 같잖은 수법일 뿐이다. 어차피 나무일 뿐이야! 저 나무들이 솟아난 곳으로 가, 불을 질러라!”
루데셉툰은 그리 외치며 손수 진고(晉鼓)를 울렸다. 그에 비상식적인 나무에 혼이 팔렸었던 체인질링 몇몇이 바람같이 나무가 솟아난 곳으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날아가려 했다.
땅이 뒤집히는 듯한 굉음이 다시 대지를 울렸다.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에, 또다시 체인질링들은 충격에 빠졌다. 정확히 말하자면, 미쳐버리고만 싶었다. 부디 자신이 미치기를. 그렇다면 저 말도 안되는 일을 이해하려 할 필요도 없겠지. 더 나아가, 저 일을 책임질 필요도 없겠지.
거대한 나무들의 열주(列柱)가 무심히 체인질링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스마트 쿠키는 전장을 보며 전율을 느꼈다.
결코 기분 좋은 전율은 아니었다. 도리어 이다지도 끔찍할 수는 없는 전율이었다. 공포였다. 이루 말할 수 없는 공포였다. 그리고 분노였다. 온갖 가지의 감정이 뒤섞여 머릿속을 침범해갔다.
“아아,”
말이 입에 막혀 나오지 않았다. 말을 내뱉는다 해도 구토가 먼저 치밀어 오를 듯 한 기분이었다. 머릿속으론 부정에 부정을 거듭해서 인식하지 못했으나 각막은 명백히 상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아무리 스스로 저것을 ‘거무튀튀한 무언가’라고 생각하고 있어도 눈을 속일 수는 없었다.
사실은 허상보다 강력한 법이다.
“나, 무.”
잊을 수 없는 공포가 현실이 되어 자신을 덮쳐갈 때 스마트 쿠키는 자신이 미쳤다고 밖엔 믿을 수가 없었다. 거대한 나무, 무한히 잡아 먹혀지는 적군들, 전쟁 때 끝없이 봐왔던, 잊을 수 없는 지옥이었던 것이다.
어떻게 저 나무들을 잊을 수가 있을까. 망각은 자신에게 자비를 배풀어 주지 않았고, 자신은 망각하기에는 너무나도 멍청했다. 수많은 생명들을 집어삼키는 나무들을 잊기에는 자신은 너무나도 멍청했다.
잊을 수도 없을 만큼 멍청한 자신은, 기억 속에 기억을 숨겼고, 잠가 기억 속에 열쇠를 숨겼다. 그랬을 터인 자물쇠가, 너무나도 허망하게 열려버린 그곳엔,
“ 으아아아 아아아아 아 아악 아아아아 아악 아아아아아악 아 아악 아아악 악 아아아으아아악 아악으아아악 ”
터져가던 머리들이, 찢어 흩날리던 팔들이, 날개들이, 눈들이, 뇌수들이, 장들이, 비산해서, 날아서, 흩어지고, 떨어지고, 떨어지고, 피가, 떨어지고, 떨어지고, 나무가, 먹고, 포니를, 집어삼켜, 자신을, 집어삼켜, 모든 걸, 집어삼켜, 전부, 다, 죽여, 피가, 뚝뚝, 나무가, 까맣게, 피에 적셔져가는 자신이, 발굽이 떨려 움직이지를 못하는 자신이, 모든 것이, 세상이 너무나 붉고,
그 지옥 같던 기억들이 하나하나 날실이 되어, 저 지옥 같은 현실이 하나하나 씨실이 되어 자신을 짜갔다.
완성된 테피스트리는 하나뿐인 자신만의 지옥이었다.
“팬시,”
“네.”
“저건, 뭡니까.”
“나무입니다.”
“저건, 뭡니까.”
“피입니다.”
“저건, 뭡니까.”
“찢기고 있는 체인질링들입니다.”
“우린 승리합니까.”
“네.”
“우린 승리합니까.”
“네.”
우린 승리하니까.
그래.
스마트 쿠키는 자신과 대화하던 팬시에게 칼을 날렸다. 스마트 쿠키의 칼은 허공을 갈랐다. 스마트 쿠키도 알고 있었다. 자신이 허상과 대화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물론 깊게 생각하진 않았다. 깊게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다.
아무런 생각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고, 싶었지만.
스마트 쿠키는 절망에 접혀져버린 자신의 다리를 기어이 폈다. 발굽에 닿는 맨땅의 감촉이 너무나도 이질적인지라, 난생 처음으로 땅을 밟은, 혹은 한번도 밟지 않은 미답지를 밟은 기분이 들었지만 이제와서 그것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어색한 발걸음으로 조금씩 옮겨가던 발굽들이 점점 더 빨라지기 시작했고 나중에는 발굽에 불이 붙은 마냥 달려 나갔다.
그렇게 그녀의 발굽이 닿은 곳은 총사령부, 팬시의 막사였다.
“팬시!”
“스마트 쿠키. 예의를 갖추십시오. 지금의 전 총사령관이고 당신은 나의 보좌입니다.”
“그딴 건 아무래도 좋습니다, 저게, 대체 뭡니까.”
“오랜 친구 아닙니까. 나무입니다. 과거 삼종족 전쟁 때 어스포니의 주력 무기,”
“그 따위 것을 묻는 게 아니란 것쯤은 당신도 알고 있지 않습니까! 저게 대체 뭡니까!”
스마트 쿠키는 열을 내며 발굽으로 전장을 누비고 있는 나무들을 가리켰다. 집어 삼키고, 찢어 죽이고, 터지게 하고, 수많은 냄새나는 시체들을 만드는 나무들을 가리켰다.
팬시는 웃었다.
“전쟁의 이유입니다.”
“......네?”
“못 들으셨습니까. 전쟁의 이유입니다. 이 전쟁의 이유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팬시의 말은 스마트 쿠키에게 검과 창이 되어 폐부를 꿰뚫었다. 삼종족 전쟁이 끝난 후 ‘나무’들의 씨앗이 소거되는 도중 몇몇 사라졌다는 것은 단순한 소문이 아닌 사실의 직시였다. 확연한 사실이었다. 그것이 다른 종족, 다른 나라의 손에 들어갈 경우 끔찍한 결과를 나을 수 있다는 것은 타고난 진리였기 때문에 이퀘스트리아의 정보국은 개설직후 이 씨앗을 찾느라 여념이 없었다. 푸딩헤드가 책상을 뒤엎고 플래티넘 공주가 정보국장의 따귀를 후려치고, 믿을 수 없을 만큼의 욕설과 비방이 캔틀롯 궁 내를 오가고, 정보국의 폐국 논란이 짙어지는 사소한 사건들이 있고 난 후 씨앗의 소재가 파악되었지만, 그 씨앗들의 소재는 너무나도 절망적인 것이었다.
나무들의 씨앗들은 유서깊은 체인질링 국가의 영토내로 날아갔다는 소식이 푸딩헤드에게 알려지고, 얼마 안 있어 쉽고 빠른 대처가 캔틀롯 내의 판단의 의무를 가진 자들 사이를 오갔다.
전쟁이었다.
“밝힐 수도 없고 정중히 부탁할 수도 없는 것을 나라에게서 가져오기 위해서는, 역시 전쟁이 재격이라는 판단이었습니다.”
스마트 쿠키의 뇌 내 질서는 그녀의 이성 앞에 정중히 사과했다. 이럴 수밖에 없었노라고. 이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할 수 있다고. 이성은 이해의 산물이니까.
스마트 쿠키는 상관 폭행의 죄로 감금당했다. 그다지 큰 유감이 느껴지진 않았다, 라는 것이 그녀의 감상이었다.
그날 밤, 체인질링은 유사 이래 최악의 참패를 만나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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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끝났습니다.
3부로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