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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충일기념 자작소설] 1951년 9월 1일 (1)
게시물ID : readers_758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곡두
추천 : 2
조회수 : 394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3/06/06 00:37:40

이 글은 실제 2사단 32연대 7중대의 한국전쟁 당시의 사실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소설이며, 

상황이나 인물 설정은 실제 전쟁에 참여했던 분들과 관계 없음을 밝힙니다.


본 글은 별로 유명하지 않은 공모전 3등을 먹은 글이라 타 사이트로 펌하시지 마시고 

오유에서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_  _)

사실 많이 부족한 글이 소재가 괜찮다는 이유로 입상한 것이기에 부끄러운 것도 있고, 

현충일을 보내시는 데에 도움이 되시길 바라며 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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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막이 하늘을 가르고 공제선을 수놓는 시간. 햇살이 그 적막을 품고, 떠오르고 있었다.

참으로 오랜만에 맛보는 꿀 맛 같은 휴식이었다. 한 숨이 담긴 시간에 나누어 주는 주먹밥 하나를 날렸을지 몰라도, 이리도 편할 수가 없었다.

1951년 8월 28일. 전쟁이 발발한지도 어언 1년이 넘어가고 있었다.

아직 이 곳 화천의 날씨는 뜨거운 공기를 내뿜는 솥단지마냥 펄펄 끓는 날씨였다. 밤이 깊어도 그 열기가 채 가시지 않고 공기마저 따뜻하게 만드는 지라, 단 꿈에 빠져야 할 시간에도 그 꿉꿉함에 차마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이는 이나, 모기며 벌레들에 시달리는 이들이 다수였다. 그러나 이 전장에서 그 작은 뒤척임조차 느끼지 못하고 잠드는 이 또한 다수였다. 그런 그들의 전투복은 이미 위장을 했는지 안 했는지 조차도 분간이 되지 않을 정도로 흙 범벅이 되어있던 것이다.

“으..... ”

아직 이미 말라비틀어진 선혈자국을 쥐고는 햇살이 닿아 잠깐의 고통에 신음을 흘릴까 조심하는 이들이 있었으며, 그럼에도 아랑 곳 없이 흙이 잔뜩 묻은 소총을 끌어안고, 여기저기를 긴장한 채로 바라보는 이들도 있었다.

“더 몰려올 겁니다! ”

“그러니 더욱 못 내려가네! 이 고지에 올 때부터 사수하라는 명령을 받았단 말일세! ”

“고지에서 인해전술로 밀고 오는 저 중공을 어떻게 막을 수 있단 말입니까!! ”

“하라면 해! 언제부터 그런 거 따지고 전쟁했다고 그래!! ”

어지러이 흩뿌리는 촛불에 의지하는 어두운 천막은 그야말로 촛불 따라 아슬아슬한 분위기를 연출한 채, 한껏 얼어서 흘러가지를 않고 있었다. 신규진 중위는 이를 굳게 다물고는 이소겸 중사를 죽일 듯이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안 그래도 승산이 없는 전투에서 전 중대원을 사지로 집어넣는다는 것에 기분 좋을 지휘관이 있을 리 없었다. 그러나 신규진 중위는 특히 크게 화를 내었다. 17연대를 대신해서 투입된 지 얼마 안 되었지만, 사방이 전쟁터인 한반도에서 부상자등을 합산해서 전투력이 100%인 곳이 있을 리가 없었다. 이곳까지 와서 명령을 어기기에는 지영욱 중위, 자신으로써도 후퇴는 납득하기 어려웠다. 또한 화력의 우위를 지키고 있는 그것만으로도 자신감을 배는 채워주고 있었다. 단순히 자신감뿐인데도 이 확신 없는 전쟁에 자신뿐 아니라 중대전체를 걸어야만 했다.

“빌어먹을. 마음대로 하십시오!! ”

신규진 중위는 그 분위기에 토할 것 같은 거부감을 나타내며 천막을 찢을 듯이 젓히고는 나가버렸다. 그런 신규진 중위를 신경도 쓰지 않고 이소겸 중사는 다시 상황판으로 눈을 돌리었다.

“현재 수색중대가 진현리 밑쪽으로 상황을 보고 있고, 저희 중대 분견대가 봉당덕리 쪽으로 올라가 진지를 잡았다고 20분 전에 무전이 왔습니다. ”

“현재 포병들은 어디 있습니까”

“저희 뒤쪽으로 올라오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머지않아 그쪽에서 간부한명을 보내준다고 했습니다. ”

“문제는 여기 앉아서 포병들의 도움을 바랠 수는 없지 않습니까. 명색이 이 고지에 올라와서 말입니다. ”

지영욱 중위는 이소견 중사에게 더욱 확고한 자신의 의지를 밝히었다. 이소겸 중사 또한 신규진 중위 같은 풋내기에게 밀리는 것이 못마땅한 상태였다. 항상 앙숙처럼 실랑이를 벌이던 지영욱 중위조차도 자신의 편을 들어주는 의외의 상황만 빼고는 정상적인 상황이라 생각하며 포병들이 빨리 오기만을 바라고 있었다. 다만 너무 의욕적인 지영욱 중위의 행동에 또 다시 의견차이로 다투지 않길 바라고 있었다. 지영욱 중위는 어느 새 지친 몸뚱이를 야전 의자에 뉘인 채 쥐죽은듯이 고개만 아래쪽으로 살짝 꺾여서는 잠이 들었다. 이소겸 중사는 그런 지영욱 중위를 보고는 조용히 천막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행보관님. 중대장님은 뭐라고 하십니까?”

“734 고지에서의 철수는 없다고 하시는 군. 당연한 거야. 아직 적들이 오지도 않은 상태에서 겁을 먹는 게, 빌어먹을 정권을 제외하고는 없으니까...”

“아..아이고 행보관님... ”

“허허.. 내 살짝 흥분했구만, 미안허이.. ”

이소겸 중사에게 말은 걸은 이의 가슴에는 김휘교라는 이름이 있었다.

“자네처럼 약관도 되지 않고 하사가 된 이도 드물지.. 이런 전쟁 영웅에게 철수하라는 것 자체가 국가 손실이 아니겠냐 말이야... ”

“아..아닙니다. 그리 큰일을 한 것도 아닌데.. 영웅이라뇨.. ”

그러면서도 김휘교 하사의 어깨에 힘이 들어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듯 슬쩍 들썩였다.

이소겸 중사는 잠시 그의 눈치를 살피었으나 이내 곧 시선을 병사들에게 돌리었다.

멍하게 하늘을 쳐다보는 이들. 이내 기운이 없어 지영욱 중위, 중대장처럼 고개를 떨구고 잠이 들어버린 이들이 대다수였다. 김휘교 또한 이소겸의 시선을 따라 자연스레 그들에게 시선을 옮기었다. 무척이나 힘겨운 모습에 둘은 암묵적인 합의라도 한 것 인양 한숨을 쉬면서 고개를 돌리었다. 그 동안에 벌어진 734 고지의 수색전은 2~3명의 사망자를 내면서 중대원의 사기를 저하시키고 있었다. 화력 면에서 앞서 일지는 모르나 인원으로 밀어붙이는 중공군을 막기에는 역시 병력의 차이를 이겨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전쟁의 절정을 달리를 와중 미군의 도움으로 강원도 땅을 밟은 지도 몇 개월이 되어가고 있었다.

50년 9월 15일 인천 상륙 작전의 성공이 없었다면, 한반도는 이미 적화 통일이 되었을지도 몰랐다. 어쩌다가 운이 좋았다면 낙동강 전선에서 아직도 버티면서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상황을 하루하루 버티었을 것이다.

만약에 미군이 오지 않았다면, 현재의 정부는 모두 자신들의 밥그릇을 들고 다른 나라로 향했을 것이다. 전쟁이 시작되고 들려오는 정부가 후퇴한 일은 그만큼 타격이 컸고,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하고도 정부를 믿지 못하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오히려 국군의 군법보다 미군의 군법이 더 강한 파장을 일으키는 것처럼 한국군의 승리라는 말보다 연합군의 승리라고 외치는 젊은이들의 말처럼 말이다. 이런 때에 필요한 존재가 국군의 영웅이고, 그 영웅이라는 타이틀을 가진 이들은 자신과 가족의 무사안녕을 위해서 최전방에 몰려 자신의 능력을 과대 포장하는 언론사와 군부의 꼭두각시가 되었다. 그럼에도 총대를 메고 떨리는 마음을 다 잡을 수 있는 것은 자신이 지키는 가족의 생사보다 자신보다 더 어리거나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과의 전투를 했던 것, 그렇게 살아남아 하사가 되고 이제 얼마의 전투를 더 거치면, 아니 어쩌면 이번 전투를 통해 살아남는다면, 중사가 되는 김휘교 자신의 미래를 위한 것이었다. 불안한 마음의 한켠에는 저 기운 없는 병사들에게 자신과 같은 일이 일어 날 수 있기를 그는 조용히 잠을 취하는 시간을 쪼개어 기도를 올리었다.

해는 점차 머리위로 솟아올라 치열 해질지 알 수 없는 734 고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열기를 채 적응할 새도 없이 수색 정찰을 나갔던 이들이 들어오고, 또 다른 분대가 수색 정찰을 교대하며 나가고 있었다. 수색중대에 분견대, 그리고 중대에서 일부가 수색 정찰을 돌아가면서, 언제 밀어 닥칠지 알 수 없는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 소겸은 조용히 천막근처의 나무에 기대어 꿀맛 같은 단 잠을 청했다. 김휘교는 자신상관을 바라보고 있다가 병사들이 있는 쪽으로 발걸음을 하였다. 이슬은 채 모이기도 전에 그리 튼튼하지도 않은 철모를 타고 내려와 뚝뚝 떨어졌다. 이미 피곤에 절어 자신의 몸 상태가 정상인지 아닌 지 조차 가늠하기가 힘들 정도로 앓아있는 이들. 그들을 바라보며 김휘교는 학도병으로 징병되어 낙동강전성에서 싸웠을 당시를 회상했다. 위장도 소용없는 낮에 그들이 들어오지 않을 것이라는 헛된 믿음에 꿀맛 같던 휴식이 독약 같던 하루하루가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어찌되었든 모두는 살아 돌아갈 수 있기를 바라고 있었다. 미래조차 보장되지 않았다는 생각으로 시름시름 앓을 수밖에 없는 것 또한 어쩌면 당연한 동전의 양면과도 같았다.

“엄마.... ”

김휘교는 소리가 나가 걸어가던 걸음을 멈추고 소리가 난 곳을 찾아 두리번거렸다. 주위에 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이제 갓 열여섯, 열일곱 정도가 되었을 법한 아이가 눈에 띄었다. 고르게 숨을 쉬고는 있지만, 볼 살이 심하게 들어가 흘러내리던 이슬이 샘물을 이룰 정도로 헬쓱 해져 있었다. 손에는 차마 입에 넣지 못한 절반만 남은 주먹밥이 꼭 쥐어져 있었다. 아마도 주먹밥을 먹다가 피곤에 못 이겨 잠이 들어버린 듯 했다.

강제 징집된 학도병이 아니라 스스로 자원해서 군에 오는 경우, 이런 시대에 전쟁에 자원할 정도의 불우한 이들이란 것을 상황만 보아도 대강 알 수 있었다.

“석경이 녀석...잠꼬대 하고는... ”

김휘교는 자신의 동생 같은 지석경을 자신처럼 어려운 상황에 맞닥뜨리면서 이겨나가고 같이 1개월 정도를 동거동락 하면서 더욱 가까워져 있었다. 그러면서 이 아이가 자신보다 빨리 하사가 될 가능성도 있었다. 약간의 라이벌 의식을 갖으면서라도 석경이 살아남을 수 있도록 강요하고 싶었지만, 마음이 여린 탓에 독한 마음으로 다그치지도 못하였다. 곤히 잠든 석경을 지나친 그는 자신이 속한 소대의 소대장이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2소대장인 이영석 소위는 잠을 설치면서 끊임없이 날아오는 여러 전문 중에 중대, 소대가 모르는 것을 알려 줄지도 모르기에 유선 인터폰에 기대어 있었다. 김휘교는 천천히 그에게 다가가 옆에 앉았다.

“중대장님은 뭐라셔? ”

“이대로 물러나기에는 이곳까지 올라온 병력이 받은 정신적이나 육체적으로 사기저하가 될 수 있다고 하셨답니다. ”

“하기는 아깝지. 뭐가 이리 급한 건지 알고는 있는지 모르겠네... ”

“미군이 이쪽으로 투입되지 않는 다고 들었습니다. ”

“그래야 변명거리라도 생기지. 솔직히 이렇게나마 궁색이 갖추어진 곳에 온 게 행운이라면 행운이지 싶어. 하루에도 최소 몇 십명이 전쟁이라는 것 때문에 이유없이 죽어가는 것에 비하면 말이지... ”

이영석은 김휘교를 스스럼없이 대하였다. 그런 점에서는 김휘교는 만족했다. 전쟁속의 군대, 아니 그저 군대라는 이유로 수많은 욕설과 고성이 오고가는 것은 어쩔 수 없다면, 어쩔 수 없었다. 그럼에도 이영석처럼 부사관과 허물없이 대할 수 있는 것이 김휘교에게는 신기할 뿐이었다.

“미군. ”

“그래도 미군이 없으니 자신들의 공이 더 크게 될 수 있는 기회입니다. 잘만하면 사기적으로도 이득 볼 것만 생각하면 안되는 겁니까? ”

“단순히 그렇기도 하지만, 미군이 투입되지 않아서 더 불안할 것 같은데..갑자.. ”

“그건 아니라고 봅니다. ”

“자자.. 진정하고 내 말을 들어봐. 미군이 오지 않는다. 그렇다면 하늘에서 기습할 수도 있는거지.. 여러 소문이 있으니 우리에게 합류된다고 해도 우리가 그들과 협동해서 잘 할 수 있다고는 못하니까.. ”

“제 말이 그럽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에 더 끈질기게 매달려야 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

이영석은 자신의 이상을 말하는 김휘교를 바라보곤 그저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이영석 같은 경우 소위로 임관을 한 후, 화천 쪽으로 온지 3개월가량이 되면서 갖은 전투에 관한 이야기와 사진들을 보며 무엇이 전쟁의 참혹함인지를 알 수 있었고, 독립군이자 광복군이었던 조부에게 들었던 2차 세계대전에 있던 전쟁의 잔혹함을 두 귀에 못이 박히듯이 들었다. 결국 이영석, 자신이 간부로 지원한 것을 포기할 것 같지 않자, 아버지께서 조부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셨다. 그리고 살아 돌아오라고, 몇날 며칠을 그렇게 하셨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 간절함만큼은 이 734고지를 뒤덮을 것만 같았다. 실제 이영석보다 전쟁을 오래 겪은 김휘교였기에 이영석의 그런 점은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실제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전쟁터 한 가운데에서는 한 가지 희망이라도 가지고 있지 않는 다면 정말 미쳐버릴지도 모릅니다. 이제 약관인 저보다 나이어린 녀석들이 하얀 이를 번뜩이며 덤벼들 때를 생각하면 지금 당장도 저절로 식은땀이 흐릅니다. 거기다가 상당한 죄의식이 절 놔두지 않으니 말입니다. ”

“흠... ”

김휘교의 말에 이상이라고만 생각하던 이영석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였다. 처음으로 전쟁에 투입되었을 당시 볏짚에 북한군이 숨어있다고 판단해서 쏜 총에 죽은 여아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한데다가 2개월가량을 악몽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지금 현재까지도 그러했기에 김휘교의 말에 무엇이 그렇게 자신들의 생각을 바꾸어 놓았는가, 왜 이 말에 반박하지 못하고 한숨에 한숨만 겹치어 동감할 수밖에 없는지, 결론은 죽지 못한다면 평생 이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실질적으로 전쟁에 참여한 군인들 중에 알지 못하게 이런 생각으로 죽어간 이들이 많았다. 다만 모든 인원을 저격 등의 이유로 군의 사기를 상승시키기 위한 도구로 사용되고 있었다. 민간인들의 석연찮은 죽음조차도 그런 이유로 이용되었다.

김휘교는 자신의 이야기에 이영석이 기운이 빠진 채로 멍하게 있자 석경이 기대고 있는 잠이 든 곳에 앉아서 조용히 햇빛을 즐기었다. 이영석은 얼마나 생각에 깊게 빠졌는지, 김휘교가 다른 곳에 앉아 있는 것을 한참 후에야 알았다.

이제 얼마 안 있으면, 자신의 소대원 몇 명과 수색정창을 가야 했기에 볼을 두들기며 정신을 차리려고 노력했다.

“소대장님! ”

이영석은 고개를 들어 책가방보다 큰 무전기를 들고 있는 이대민 일병을 바라보았다.

“우리 소대 전령. 대민씨 왜 그래~ ”

“언제 수색 정찰 가는지 서재한 분대장이 물어보랍니다. ”

“이제 C팀이 들어올 때 됐으니까. C팀이 들어오면 그때 나간다고 전해줘. ”

“어디까지 가는지도 물어보라고 했습니다. ”

“아마 분견대가 있는 봉당덕리까지 갈꺼야. 잘 전해줘. ”

“예. 알겠습니다! ”

이대민이 소대 쪽으로 뛰어가자 이영석은 또 다시 생각에 잠기었다. 이젠 피할 수도 없는 두 줄기의 강이 하나의 커다란 전쟁이란 운명 속에 흘러들어가고 있었다. 아니 이미 그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을 뿐이었다. 종잡을 수 없는 변화의 바람으로 인해 제대로 파악하는 사람도 없을 뿐 더러 이영석 또한 자신이 죽을 수 없는 이유를 산문으로 서술 할 수 있을 정도로 죽음을 두려워하며, 악몽조차도 버티어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조금만 버티면 후방으로 전출이 가능할 것이다. 잘 하면 연합방위군에서 일을 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어렸을 적, 어린 자신을 프랑스와 영국을 넘나들며 공부를 시키셨던 아버지. 그 아버지를 위해서라도 살아남아 아버지를 모셔야 했다. 이미 휴전으로 인한 땅따먹기라는 것을 아는 지금. 무의미한 개죽음을 당할 수는 없었다. 독립을 위해 싸우다가 정작 광복이 되는 것도 보지 못한 채 그저 한 끼의 밥을 제대로 먹고 싶다는 생각이 독립이든 광복이든 알게 뭐야 라는 무지몽매한 이들이 일본 경찰에게 신고하여 체포가 되고, 총살을 당하게 되었다고 한다.

체포부터 총살을 당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겨우 이틀 만에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그 시점이 1945년 2월 1일, 이영석의 아버지는 그런 한국에서 살기 싫어 이미 오래전에 조부의 강요로 자신을 데리고 프랑스에서 영국에서 생활을 하였다. 하지만 조부의 죽음으로 한국에 관한 이야기만 나오면 냉소부터 흘리게 되었다. 그 영향은 이영석도 받았다. 그래서 더욱 한국에 오고 싶지 않았다. 현재 대통령인 이승만 박사의 강연을 듣지 않았다면 말이다. 생각이 있는 지식인들이 한국으로 돌아와서 자유민주주의로 독립된 새로운 한국으로 만들어가야 한다는 그의 생각. 광복이 되기도 전이었지만, 이승만 박사의 강연 때문에 아버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전쟁이 시작된 나라에 와서 소위라는 계급을 받고 조부가 찾으려 했던 나라를 새롭게 하기 위해 왔다. 그러나 전쟁이 진행되면 될수록 이영석은 지쳐가고 있었다. 이번 734고지 전투만 끝난다면, 후방으로 빠져 더 높은 곳을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살아야 했다. 아버지의 말을 듣지 않은 것을 후회할 때가 많았다. 악몽을 꾸기 시작하면서 더욱 심각했다. 그런 생각을 하다가 준비를 하고 있는 소대원을 보았다

“지금은.......지금은 집중할 때다.”

그렇게 말하고는 다시 한 번 양손바닥으로 볼을 치고는 수색정찰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폭풍전야 속에서 서로 의지하고 기댈 이들은 이곳에 있는 인원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믿음으로 경계를 하고 휴식을 취하는 것이었다.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렇게 서로를 의지했다. 살아서 가족을 만나고 싶은 생각으로 근근이 버텨나가고 있었다. 그들이 몰려온다 라는 압박감 속에서도 그들보다 우위를 지키기 위해선 체력안배가 필요했다. 적은 병력으로 최대의 효과, 단순히 화력이 많다는 이유, 이전에 쉼 없이 달려온 이들의

체력을 안배한 부대가 방어, 즉 수성을 한다면 말 한마디만 잘하면 사기 면에서도 높은 상승효과가 있을 것이다. 지영욱은 그런 것까지 계산에 넣어서 이번 전투에서 질 것이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자신의 계획에 실수가 될 것은 없다고 생각했다. 자신도 수색정찰을 10번 가까이 했다. 적들이 들어올 것 같은 지역, 예상외의 상황이 발생할 경우의 수도 몇 개의 생각해 두었다.

물론 줄어들지 않는 적의 수에 의해서 사기가 떨어질 경우 생각해보았다. 그러나 지영욱의 머릿속에는 기적이란 가능성을 넣어두었다. 아니 기적도 필요 없이 실패는 있을 수 없었다.

과거에 자신의 할아버지며 아버지가 벌인 일들에 대해 정이하기 위해서는 과거를 냉정히 잘라낼 수 있어야 했다. 무엇이 옳고 그림이란 생각은 이미 오래 전에 버리었다. 친일파건 매국노건 공을 세우고 승리하면 그만이었다. 매국노로 찍혀 일본으로 쫓겨 도망갔지만 인재가 없다는 이유로 친히 모국은 자신에게 중위라는 계급까지 주어가며 전쟁에서 살아남는다면 친일명부에서 삭제시켜주는 것은 물론이며 압수했던 재산도 돌려준다는 각서까지 써주며 전장을 이끌어 달라고 했다. 동경대에서 지리학을 익혀 박사로 졸업했던 이력이 매정히 쫓아내었던 자신을 고향으로 이끌어주었다. 그렇기에 전쟁에서의 패배는 다시 이곳에서 쫓겨나 과거의 영화를 놓칠 수 있다는 생각에 자신의 모든 상황을 100%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어야만 했다. 만약 전투에서 승리하면 살아남는다면, 몇 년 전에 당했던 돌팔매질은 꽃잎으로 자신을 반갑게 환송할 것이다. 그런 생각에 더욱 한줄기의 풀뿌리 같은 실낱같은 희망에 모든 발버둥을 쳐야만 했다. 아버지가 어떠한 일을 하였건 과거의 일은 모두 없던 일이 될 수 있었다. 자신이 누리던 영화를 아들에게도 물려줄 수 있었다. 복잡하게 생각할 것이 없었다. 모든 편법이나 이기심을 내세우더라도 살아남아야 한다. 살아서 위풍당당하게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래야 한다. 그렇게 다짐한 지영욱은 주먹을 쥐었다 폈다는 반복하며 바리에서 일어나 장구류와 소총을 챙기고는 천막을 나섰다. 지영욱은 이영석이 자신의 소대와 수색정찰을 가기 위해 준비하는 곳을 발걸음을 하였다.

“나도 같이 가지 그래.. ”

“중대장님.. ”

“말리지마, 영석군..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우리 중대원이 안전하게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명령하는 것뿐이니까 말이야.. ”

“그래도 5일 동안 10번이나 다녀오시지 않으셨습니까.. ”

“5일 동안 수색정찰로만 중대원을 3명이나 읽어버린 무능한 중대장이니 어쩔 수 없지 말이야... ”

“후우- ”

이영석은 이 고집불통의 중대장을 설득하기에 이제는 진이 빠져 버린 듯 한숨을 내쉬었다. 수색 도중에 적이 나타날 수 있기에 현재 중대장이 직접 하기 에는 여러모로 불상사가 생길 우려가 있었다. 중대장을 만난 지, 이제 일주일가량이 되었을 뿐인데, 한 번도 지영욱의 고집을 꺾을 수가 없었다. 중대장과의 마찰로 인해 전투를 제대로 해보지도 못하고 부대가 와해되었던 기억. 처음 병력의 절반이 사망 또는 부상을 당한 패전의 기억. 그 것으로 인해 이영석은 함부로 지휘관에게 자신의 전략이나 생각을 관철시키기에 겁이 났다. 연대며, 사단이며 이 734 고지의 전략적 거점으로 방어의 선봉장이나 다름없었기에 쉽게 무엇을 할 수 있으려면, 증원 부대 도착 전까지 얼마나 버틸 수 있는 지가 문제였다. 이미 수십 곳의 위장비트와 실제 중대원이 숨는 비트를 만들었다. 벙커도 몇 개 제작을 했지만, 수많은 인원을 상대할 위협사격 지역에만 만들어 놓아서 전투가 시작된다면 벙커의 병력을 비트 지역으로 빼낸 뒤에 적들의 피해를 배가시키기 위해 벙커의 내 외부를 다이너마이트와 뾰족한 잔 돌멩이들을 설치해 놓았다. 그리고 이번 수색 정찰 또한 비트 지역과 벙커들을 점검하고 더 많은 비트를 설치하기 위해 가는 것이었다. 중간 중간에 지뢰 지역도 설치하기 위해, 거의 소대 규모로 꾸려서 봉당덕리까지 가는 것이었다. 이영석이 알기로는 지영욱은 군의 사기에 많은 중점을 두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자기 자신을 걸고 하는 도박이나 진배없었다. 듣기로는 지영욱의 아버지가 친일파로 숙청되었다가 일본으로 추방되었었다고 들었다. 독립군의 자손과 친일파의 자손. 허나 지영욱은 한 번도 이영욱과 그 점에 관해서는 이야기 하지 않았다. 다만 상급자로써의 모습으로 자신을 대할 뿐이었다. 이영석이 그를 껄끄럽게 대하고 피했던 이유가 그랬다. 혹시나 그런 이야기를 하다가 순간 화를 참지 못하고 전에 그랬던 것처럼 와해가 될 것 같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전방에서 전투를 하는 부대 곳곳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은 매정하기를 넘어서 매우 차가웠다. 독립군이라고 특혜를 주지도 않고 친일파라고 해서 어려운 지역으로만 가는 것도 없었다. 그저 부족한 간부들을 채우기 위해 과거의 전력은 모두 묻어주고 있었다. 그 것에 대해 왈가왈부할 수 없지만, 간혹 가다가 자신의 조상을 죽인 매국노라는 생각에 주먹이 쥐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것에 매달릴 수 있는 여력이 없었다. 살아 돌아가야만 하는 것에 모든 것을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과거는 묻어두고 있어야 하는 때였다.

잠시의 충동을 억제해서, 커다란 일을 막았을 때, 당당히 나아갈 수 있도록 말이다. 이번에는 정말 실수란 있을 수 없었다. 그렇게 참을 수 있는 상황. 아니 그런 것조차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처절하게 전투에 임해야 겠다고 다짐도 했다.

그리고 지금 자신과 앞에서 병력을 이끌고 있는 이 사람. 지영욱을 자신의 상관이자 중대를 이끄는 최고 지휘관인 중대장일 뿐이라 생각해야만 했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상태에서 두 시간이 훌쩍 지나가버렸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나무가 흐트러져 잘못하면 보이지 않을 수밖에 없는 동굴이 아구를 벌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수색 정찰 중 한 명이 차마 발견하지 못하고 빠져 버린 곳이었다. 시체가 어디 있는 지조차 알 수 없을 정도로 깊은 곳이었다.

“이 곳인가? 몇 번을 와서 보았지만, 이런 동굴이 있을 줄은 몰랐는데 말이지..”

“사상자는 이현제 일병입니다. 전투가 끝나면 전투 중에 죽은 사망자들과 동급으로 보고하려고 합니다. ”

이영석의 말에 지영욱은 고개를 끄덕이고 그 동굴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이용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안 그런가?”

“쉽게 이용할 수는 있는 만큼 저희 병력이 역으로 헤맬 수 있기에 이용할 시에 신중하고 조심해야 하는 곳입니다. ”

지영욱의 의견에 이영석은 조심스럽게 자신의 의견을 내었다.

“맞는 말이야. 서재한 분대장은 할 말 없나?”

지영욱이 자신을 직접적으로 호명하자, 순간 당황한 서재한은 정신을 추스르고 지영욱을 바라보았다.

“지금까지 만들어놓은 비트만 수십 수백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렇지. ”

“이런 상황에서 완전한 위장으로 동굴을 가린다면 그냥 운이 안 좋겠거니 하는 상황이라 이곳부터 본격적으로 우리 중대의 함정이 줄줄이 있다는 것을 눈치 채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렇게 되느니 차라리 나무 몇 개로 대충 보이게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가 뭔가? ”

“바로 이곳이 비트 지역이라고 말해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위장비트의 안일함에 신경을 곤두세우다가 고지에서는 진짜 비트 지역으로 혼란을 야기 시키기 위함입니다. ”

“서재한 분대장의 말이 일리가 있습니다. ”

“음.. 그렇군. 그렇게 하도록 하지. 분견대는 다른 쪽으로 빠지라고 해야겠는걸. ”

지영욱은 이렇게 말한 뒤, 천천히 풀숲을 헤치며 전진하고 있었다. 아직 채 마르지도 않은 이슬에 전투복이 젖었지만 이제는 그것에 신경 쓰는 것조차 무의미 하다고 느낄 정도였다.

아직 전투가 벌어지기도 전이라 그런지, 폭풍전야의 정적이 분위기를 지휘하며 전염병처럼 긴장을 심어주고 있었다. 소총을 얼마나 꼬옥 쥐었는지 손에 땀이 차서 손가락 사이로 물기가 가득 묻어 소총을 타고 흘러들어가고 있었다.

소총이며 장구류는 이슬 범벅이 되어, 언제 빨았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지영욱과 이영석이 이끄는 수색조는 이제 분견대가 진지를 잡고 있는 봉당덕리로 들어서고 있었다. 태양이 그들에게 햇빛을 장대비처럼 쏟아내고 있는 시간대였다.

신규진은 아직도 화를 삭이지 못하고 식식대며 결국 손에 담배를 꽂아 놓았다. 그 연기가 꽤 심한지, 뿜어낸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앞이 보이지도 않을 정도였다. 자신은 일본 앞잡이 앞에서 고개를 숙이며 전투를 하려고 이곳에 온 것이 아니었다. 기껏 책상에 앉아 전투교본이나 몇 번씩 긁적이며 읽었을 법한 자신의 상관인 지영욱. 하지만 자신은 전쟁이 시작된 6월 25일부터 전투에 배치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비록 석연치 않은 이유로 후방에만 배치되었다가 처음으로 전방에서 전투를 하게 된 것이다. 1월에 있던 전쟁 중 가장 크게 후퇴했을 당시에도 후방에 배치되어 있다가 전방에서 간부들의 사망률이 높아지면서 기회를 얻게 된 것이다.

이번 전투로 앞을 가로막는 모든 불운을 청산하고 더 높은 곳을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을 지켜줄 이들이 필요했다. 이기적이라고 해도 변명을 할 생각은 없었다. 어쨌든 준비할 새도 없이 최전방으로 배치 받고 아직 보지 못한 적들에게 느끼는 공포심이 심해진 탓도 있었다. 중대에 대해 제대로 파악도 못한 채 이제 몰려오려는 중공군에게 허무하게 개죽음 따위를 당하고 싶지 않았다. 사면초가

그야말로 절벽 끝에 매달려서는 뒤를 쫓아온 범이 그냥 지나가기를 바랄 뿐이었다. 하지만 이 중공이라는 짐승들은 아무것도 상관없이 절벽마저도 그 많은 인원으로 무너지게 할 것이다. 얼마나 많은 인원이 들어와서 죽어나갈 지, 숫자조차 가늠되지 않았다.

자신이 이제껏 생각하던 모든 작전들. 물론 전쟁의 관례로 볼 때에 최고 지휘권자의 말을 어길 시에는 성공이든 실패시든 즉결 심판이 발생될 수 있었다. 허나 즉결 심판도 때에 따라서 다를 수 있다. 그런 상황이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떠올랐다.

지금 할 수 있는 모든 것들. 지금 이 734 고지를 아는 만큼 그것을 이용하는 것이 개인의 역량 차이를 알릴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자신은 그 차이를 알아야 했다. 거기에 생각이 미치자,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나 지영욱은 보이지 않았다. 무전병인 유재인 일병만이 앉아서 연대 및 대대에서 오는 무전을 체크하고 있었다.

“무전병! ”

“일병! 유재인! ”

유재인이 일어나자 신규진은 그에게 거침없이 걸어왔다. 그의 거침없는 걸음걸이에 유재인은 잔뜩 긴장했다.

“중대장님 어디계시나. ”

“봉당덕리로 수색정찰 가셨습니다. ”

“수색정찰?”

“예. ”

“이런 급한 때에 무슨... ”

뒷말을 흐린 신규진은 유재인을 바라보았다. 아뭄리 당당하고 언제나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는 유재인이었지만, 간부가 이렇게 중대장이 수색정찰을 갔다는 이유로 자신을 몰아붙이는 것이 다소 당황스러웠다.

“그런데 넌 왜 안 갔어! ”

역시 예상했던 질문이었지만, 당황한 심정을 진정시키며 애써 침착하면서 철모를 살짝 위로 젖히며 유재인은 신규진을 바라보았다.

“혹시 모를 전문이 날아올 경우 이곳보다 더 전문이 잘 올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필요하면 이대민 일병에게 전파하라고 하셨습니다. ”

“이래서야 뭐가 되겠느냔 말이야! 다 죽으라는 거야 뭐야!! ”

신규진이 식식대며 1소대 진지 쪽으로 사라지자, 유재인은 한숨을 푸욱 내쉬며 SCR-609를 만지었다. 얼마 전까지 무전병이 될 것이라고는 꿈에도 몰랐던 자신이었다. 그저 전문을 듣고 말할 줄 안다는 이유로 무전병이 되어버렸다. 원래 무전병은 이틀 전 수색정찰 당시 커다란 동굴에 빠져 살았는지 모를 이현제 일병이었다. 그는 유재인과 같이 부대로 온 동기였다. 동기의 실종을 슬퍼할 새도 없이 SCR-609를 들고 다녔다. 불편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싫은 티를 낼 수는 없었다. 다른 전우들과 같이 수색 정찰을 가고 싶어도 무전기를 다룰 수 있는 사람이 자신 이외에는 없다는 이유로 빠지게 되었다. 물론 이현제의 사고 당시 중대에 2개 있던 SCR-609가 한 개가 된 탓도 이유 중 하나였다. 고아나 다름없던 자신에게 전투에 나가지 않을 이유도, 나가야 하는 이유도 없었다.

그 와중에 전쟁에 참여해 나라를 구원해야 한다는 학생들의 말에 일종의 자격지심을 느끼고 전쟁에 지원했다. 내 나라는 지금 어떤지 하는 그런 구구절절한 말보다는 자신보다 잘난 저 학생들도 싸우러 가는데 나는 이곳에서 무엇을 하는 것인가 하며 자신도 모르게 주먹이 쥐어졌다. 그리고 스스로 북으로 향하는 기차에 몸을 실었었다.

전쟁이 발발한지 거의 1년이 다 되어가고 있는 시점이었다. 왜 이제야 왔을까 라는 낙담도 없다고 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런 낙담보다는 이곳에서의 간부와 병사. 그렇게 나누어질 뿐, 자신을 고아라고 업신여기기보다는 동기에게 주워들은 SCR의 사용법으로 인해 이제는 동기의 빈자리를 메우고 있는 자신이 저도 모르게 자랑스러웠다.

왜 전쟁이 터지었는지 모른다. 허나 이곳에서 무엇이든 필요한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죽고 죽이는 전쟁터이지만 그런 존재가 되었음에 그저 감사할 뿐이었다.


오후에 작열하는 태양이 그늘조차 허락해 주려 하지 않자, 곳곳에서 볼멘소리들이 흘러나왔다. 정신을 겨우 차린 이들 중에 물을 찾는 이들도 수두룩했다. 지영욱도 아직 해가 지지는 않았지만 거의 저녁때에 돌아와서 중대원들을 다독이며 살피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 식사도 다 끝났지만, 그리 나아진 상태들은 아니었다. 멀리서 수색정찰조를 꾸리는 신규진이 보였다. 지영욱은 별로 다가가고 싶지는 않았다. 아침에 그렇게 다투듯이 이야기를 하고 걱정하는 척으로 보이는 것이 싫었다. 그러나 신규진이 지영욱 자신을 발견하고는 앞으로 걸어왔다.

“중대장님. ”

“어. 1소대장. ”

“지금부터.. ”

다 듣기도 전에 지영욱은 긴장해버려 목울대의 소리가 울리도록 침을 넘기었다.

“음음..진현리 쪽부터 633고지 쪽을 돌아서 2~3일간 수색정찰을 가려고 합니다. ”

“뭐?”

“2~3일입니다. ”

“말도 안 되네! 신규진 중위!! ”

지영욱은 신규진의 어이없는 일처리에 당황했다. 신규진은 그럼에도 당당하게 눈을 똑바로 뜨고는 자신의 요구를 지영욱에게 받아들여달라고 고집을 부리고 있는 것이었다. 다른 간부들이 보이지 않기에 지영욱은 한숨을 내쉬고는 신규진을 진정시키고 설득시킬 방법을 찾고 있었다. 지영욱의 눈동자가 자신을 떠나 다른 곳을 향하는 것을 느낀 신규진은 그의 의도를 알아차리고 몰아붙이기로 마음 먹었다.

“중대장님. 지금 상황을 제대로 보아야 합니다. 단순히 734 고지를 사수해서 적들을 막으면 전멸이란 말입니다. ”

신규진은 회심의 미소를 날리며 이야기를 했다. 고개를 숙인 지영욱은 당연히 그 미소를 볼 수 있을 리 만무했다. 얼굴을 찡그린 채로 신규진의 시선을 피하던 지영욱은 고개를 돌려 신규진의 시선을 마주했다. 표정은 조금 전과는 달리 차분하면서 냉정해보였다. 신규진은 그런 지영욱의 표정에 긴장을 안 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명령 불복종으로 처결하겠네. ”

지영욱이 마지막으로 꺼내든 카드. 그것에 신규진은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확실한 대안이 있더라도 상급자의 권한 및 명령이 떨어지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이 군대이고, 그런 시스템이었다. 허탈한 웃음으로 멍하게 지영욱을 바라보는 신규진을 내버려 두고는 지영욱은 뒤로 돌아 걸어갔다.

“대신 734 고지를 탐색하고 정찰하는 것에 몇날 며칠이라도 허락해 줄 수 있네. 자네 말대로 지금 당장 중공군이 들어와도 이상하지 않으니 말일세. ”

지영욱이 걸어가며 내놓은 중재안에 신규진은 얼굴을 찡그렸지만, 벌떡 일어나 지영욱의 힘없이 축 늘어진 어깨를 보며 손을 올리었다.

“충성! 감사합니다! 지금 당장 준비해서 나가겠습니다! ”

신규진의 그 자신감 넘치는 소리에 지영욱은 어깨위에 오른 손을 두어 번 흔들 뿐, 기어코 자신의 앞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신규진은 당장에 1소대의 3분의 2가량이나 되는 인원을 추려내어 734고지 주위를 수색정찰 하기 시작했다.

“소대장님. 구태여 이렇게 비트를 더 만들지 않아도 되는 거 아닙니까? ”

“필요해! 아직 더 만들어야해. 살고 싶으면 하라는 대로 해! ”

신규진의 말에 소대원들은 당황했지만, 워낙에 확고한 말투인지라 소대원 모두 신규진에게 자그마한 토도 달지 못하였다. 지친 몸을 하기에는 너무 힘든 일이었지만, 전쟁 동안은 비일비재한 일이었기에 이제는 물먹은 스펀지 같은 몸뚱이도 반사적으로 움직였다. 신규진 또한 가만히 있지 않고 야전삽을 들고 직접 땅을 파고 있었다. 그러한 신규진의 모습에 소대원들은 더욱 군소리를 할 수 없이 땅을 팔 뿐이었다. 어떤 비트는 땅을 절반만 파고 만 것도 있고, 지뢰를 설치하기도 했다. 물을 부어 진흙으로 만들어 적군이 들어갈 경우 거동이 불편하게 하는 등 수두룩했다. 중대원들이 쓸 비트는 표식을 해두어 비트끼리 길을 연결하여 교통호처럼 만들기도 했다. 신규진은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축소된 지역인 734 고지에서만 만들었지만, 다양한 형태로 함정을 파고 있었다. 만약의 사태에 벌어질지 모를 게릴라전을 위해서라도 현재 자신과 소대원들이 하는 이 행동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고수하고 있는 진지의 밑쪽 뿐 아니라 진지 위쪽, 즉 정상부근에도 여러 가지 비트를 팠다. 2소대 부근에서 작업을 하고 있을 때, 병사들을 살피고 있던 김휘교가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신규진에게 다가왔다.

“지금 뭐하시는 겁니까? ”

야전삽으로 땅을 파던 신규진은 자신의 행동을 멈추고 이마에 맺혀 흘러내리는 땀방울을 닦아낸 후 김휘교를 바라보았다.

“비트까고 있소. ”

“비틉니까? ”

“살려고 하는 방법이야. 다양한 법이니 여러 가지 찾아야봐야 하지 않나...”

“아~ 비트.. 예전부터 생각하지만, 땅 구덩이를 파고, 숨어서 공격한다는 것이 참 대단 한 것 같습니다. ”

일반적인 상식이었음에도 자신의 생각에 동조해주는 듯한 김휘교의 말에 신규진은 잠시 우쭐 했다. 하지만 내색은 하지 않았다.

“그것 외에도 중공군 놈들이 들어가서 죽을 무덤도 만들어 놓았지. ”

“무덤이라... ”

“지뢰도 깔고 그랬다는 얘기야.. ”

“이야~ 역시 배운 사람은 뭐가 달라도 다릅니다. ”

김휘교는 신규진의 생각에 놀라워하며 추켜세우다가 무언가 생각이 났는지 표정을 굳히었다.

“그러면 중대원들도 모두 헷갈리는 거 아닙니까? ”

그 말을 할 줄 알았다는 듯이 신규진은 어깨에 힘들 주고 대답했다.

“우리 중대만 알 고 있는 표식을 해놓았지. 소대별로 전파해줄 테니 기다리던지 아니면 중공 놈들이 오지 전에 도와서 하나라도 더 파는게 어때? ”

신규진의 말에 뜨끔한 김휘교는 멋쩍은 듯이 웃음 짓고는 자신의 소대 쪽을 바라보자, 2소대원들은 한숨을 내쉬면서 야전삽을 챙겨 1소대를 도왔다. 물론 후에 전 중대원이 자발적으로 734고지를 하나의 커다란 함정으로 만들어 놓을 정도로 파고 또 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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