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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충일기념 자작소설] 1951년 9월 1일 (3)
게시물ID : readers_758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곡두
추천 : 1
조회수 : 404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3/06/06 01:00:04

이 글은 실제 2사단 32연대 7중대의 한국전쟁 당시의 사실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소설이며, 

상황이나 인물 설정은 실제 전쟁에 참여했던 분들과 관계 없음을 밝힙니다.


본 글은 별로 유명하지 않은 공모전 3등을 먹은 글이라 타 사이트로 펌하시지 마시고 

오유에서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_  _)

사실 많이 부족한 글이 소재가 괜찮다는 이유로 입상한 것이기에 부끄러운 것도 있고, 

현충일을 보내시는 데에 도움이 되시길 바라며 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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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규진은 지영욱의 전문에 순간 당황했지만, 지영욱의 판단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 왜 실탄 요청이 안 되는 지에 대한 의문이 있었지만, 그것에 생각을 매여 놓을 수 없을 정도로 사태 급박하게만 나아갔다.

“우아아아-!! ”

그 때 갑자기 1소대 우측에서 들려온 고함 소리. 그것에 놀란 신규진은 급하게 그 쪽을 바라보았다. 「탕!」

“소대장님!! ”

“기습이다!! ”

신규진은 점점 멀어지는 듯한 목소리는 겨우 들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미 뒤로 넘어가기 시작한 몸은 바로 세울 수 없었다. 기습으로 인해 아수라장을 만든 중공군의 기습 조는 급하게 1소대를 뚫고 정상으로 쏠살같이 달려나갔다. 소대는 비트로 몸을 숨기며 분산되어 버렸다.

“쿨럭.... ”

총알이 통과한 구멍에서는 신규진의 기침과 같이 피가 울컥 솟았다. 이런 식의 죽음을 원했던 적은 없었다. 광복이 되기 전에도 독립을 알게 모르게 후원하던 아버지의 밑에서 투사가 되겠다며 임시정부로 쫒아가던 때가 어제처럼 생생하게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비록 만주로 투입되기도 전에 광복이 되었지만, 그 경력을 인정받아 군 간부로 지원 할 수 있었다. 항상 의욕만 넘친다는 핀잔과 함께 후방에서만 전쟁을 지켜보아야만 했다. 이제 드디어 기회가 찾아왔는데, 지금 자신은 차가운 땅과 같이 점점 식어가는 몸뚱이일 뿐이었다. 전투에서의 죽음은 이리도 허무하기 이를 데 없었다. 죽는 사람의 신원에 관계없이 말이다.

OP로 진격한 중공군에 쫓겨 OP에서 벗어난 유재인은 SCR과 자신의 소총을 바라보았다.

무엇이 내가 지금 해야 하는 일인가.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나를 필요로하는 사람은 누구인가에 대한 생각을 끝마친 유재인은 수화기를 들었다.

“대대장님. 지금 적이 중대OP까지 쳐들어왔습니다. 중대장은 나가서 싸우고 있습니다.저도 사나이답게 죽겠습니다. 

그럼 안녕히 계십시오! ”

유재인은 수화기를 정리해서는 비트에 던져 흙으로 덮었다. 이로써 대대와의 교신은 끊어지게 되었다.

“이 녀석! 무슨 짓을 하는 거냐!”

소총만을 들고 있는 유재인을 발견한 이소겸이 달려와 호되게 말을 하였다. 유재인은 그런 이소겸의 말을 듣지 않은 채로 OP쪽으로 달려가려 했다.

“멍청한 녀석! 그 쪽으로 가면 그저 개죽음이다! 어서 따라와! ”

“싫습니다! ”

“이이.... ”

“이 중사분 말이 맞소. 일병군. 우리 모여서 힘을 모아야지. 혼자하면 힘들지 않겠소?

진정들 하고 살아있는 사람ㅁ들을 더 모아야 하지 싶소.. “

그 새 이소겸의 옆에 다가온 전유호는 쓸데없는 두 사람의 감정싸움을 자제시키고 OP 반대쪽 다른 방향으로 시선을 옮기었다. 전유호의 비교적 차분한 말에 이소겸과 유재인은 무언의 동의를 하고는 전유호의 시선에 맞추어서 걸어 나갔다. 「탕! 탕!」

“어서 숙여! ”

이소겸의 목소리가 과연 총성이나 총알의 소리보다 빠를 수는 없었다. 결국 전유호는 종아리에 총상을 입어 쓰러졌다. 그럼에도 비명소리가 나지 않았던 것은 자신의 소총을 재갈로 이용해 비명소리를 막은 전유호의 기지였다. 얼마나 심하게 물었는지 잇몸에서마저 피가 줄줄 새어 나왔다. 전유호에게 다가온 이소겸은 그런 전유호의 모습에 혀를 차고는 자신의 전투복 상의를 찢어 전유호의 상처를 동여매었다.

“좀 살살 맬 수 없소? ”

“거 참. 입은 아직도 사셨구랴... ”

신음을 흘리며 말하는 전ㄴ유호와 그런 전유호의 말을 받아치는 이소겸을 보며 유재인은 새삼 그 둘과 자신이 군대에서 지낸 시간에 대한 차이를 느끼고 말았다.

“괜찮으십니까? ”

“허허. 자네 몸이나 걱정하소. 생채기가 왜 그리 많소.. ”

유재인은 총격에 놀라 그만 가시덤불에 들어가 생채기가 늘어 얼굴 곳곳에 빨간 핏줄기를 이루고 있었다. 이소겸 또한 그런 모습에 얼굴을 찡그리며 유재인을 바라보았다. 유재인은 머쓱한 듯 머리를 긁적였다. 그러나 잠시의 여유를 즐길 새도 없이 그들의 주위에서는 다시 총격과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지영욱은 교통호와 비트를 이용해 적들 사이를 돌파하며 1소대 및 2소대, 3소대의 분산되어 버린 병력을 모아 나갔다. 이영석은 혼신에 힘을 다해 진지를 버티고는 있었으나 OP지역에서 들려오는 총격에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와중에 지영욱이 뛰어다니며 병력을 직접 재편해서 지휘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순간적인 열등감은 이영석의 눈을 번뜩이게 만들었다.

“2소대는 좌측능선 쪽으로 이동해 OP를 친다! ”

“소대장님? ”

“OP는 이미 적에게 들어간 상태이니 2개 분대 규모로 들어간다! 나머지는 끝까지 진지를 사수하라! ”

갑작스런 이영석의 명령에 백병전만을 위주로 싸우고, 그나마 적들이 떨어뜨린 총알로 총격을 가하던 2소대는 모두가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영석은 고집을 꺾지 않으며 김휘교에게 나머지 인원의 지휘를 맡기고 직접 OP쪽으로 2개분대를 이끌고 올라가기 시작했다. 지영욱은 현재 진지 고수만을 생각하며 무너진 3소대의 병력과 1소대를 재편하기 위해 뛰어다니기 바빴다. 진지가 무너진 3소대는 진지가 무너진 것 이외에도 소대장인 김지국의 죽음으로 비트로 흩어진 인원을 모으기가 힘들었다. 1소대의 경우 적의 기습으로 사망한 신규진 이외에 간부는 죽지 않아 진지 사수와 함께 방어 임무를 잘 수행하고 있었다. 그 중에 1개 분대는 하사 부소대장을 따라 비트를 왔다 갔다 하며 적의 혼란을 가중 시키며 적들이 설로 공격하도록 유도하고 있었다. 소대장의 죽음으로 많이 흔들릴 것 같았던 2개 소대는 살아 있는 간부들과 지영욱이 뛰어다니 결과. 천천히 전열을 가다듬어 반격의 고삐를 틀어쥐기 시작했다.

중간의 진지에서 싸우던 중대 전체는 지영욱을 따라 8부 능선까지 이동해 사주 진지를 점령하여 끝없이 피가 난무하는 백병전을 해나갔다.


자정. 적의 공세는 7중대의 끊임없는 저항에도 멈출 줄을 몰랐다. 그야말로 해변 가의 바위에 파도가 부딪히듯이 그 수는 줄어들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9월 2일 새벽 01시. 정상 OP지역의 기습 조를 성공적으로 전멸시킨 이영석은 8부 능선까지 밀려온 중대를 보고는 2소대 지역으로 내려왔다.

“보소. 소대장님! ”

전유호의 외침에도 이영석은 듣지 못했는지 아래로 내려갔다. 이소겸은 숙였던 몸을 일으키며 본부소대 병력을 재정비했다. 그 잠깐의 여유를 벌게 해준 이영석에게 감사할 뿐이었다. 유재인도 부지런히 부상자들의 치료를 도우며 바쁘게 왔다 갔다를 반복했다.

전유호 다친 몸이었지만 이소겸과 유재인이 하는 일을 도왔다. 지금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734 고지 정상은 조금씩 치료를 하며 8부 능선의 병력들이 싸우기 용이하게 하기위해 도움을 주었다. 이영석은 이때에 소대원을 재소집하였다.

“우리구멍이 너무 커집니다! ”

“김휘교 하사! 상관의 명령에 불복하는 건가! 지금 이곳보다 그쪽이 더 급하단 말일세!”

김휘교는 이영석의 입에서 나온 불복이라는 말에 결국 쓴 침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는 이영석의 명령에 따라 2~3명으로 1조씩을 꾸리기 시작했다. 물론 석경과 자신이 같은 조로 편성되게 하였다. 순식간에 꾸려진 13개의 조는 간격을 띄어 동쪽 사면으로 이동했다.

“공격! ”

이영석은 곧장 적으로 육탄 공격을 감행했다. 지영욱이 재정비한 3소대의 잔여병력이 지키던 서쪽 사면은 지영욱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OP쪽으로 후퇴하며 무너지고 말았다.

“이대로 끝인가.. ”

“아직 죽지 않았소... 설사 죽더라도 후회하며 죽고 싶소? ”

지영욱의 한숨 섞인 푸념에 전유호는 따끔하게 한마디를 했다. 그러자 지영욱은 숙였던 고개를 들어 전유호를 바라보았다.

“하긴 이제껏 벌여놓은 일이 있는 데, 멈추기엔 늦은 것 같군요. ”

전유호는 지영욱의 어깨를 툭툭 쳐주었고, 지영욱은 힘겨운 미소를 지으며 다시 OP지역을 지키기 위해 뛰어다니기 시작하였다.

“최성우 하사! ”

“예! 중대장님 ”

“적진으로 들어가서 혼란을 가중 시키게! ”

“넵! ”

최성우는 3소대의 1개 분대를 이끌고 위급한 OP에 숨통을 트이게 하기 위해 자살하러 가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적진으로 향했다. 이 상황에서 눈물은 그야말로 사치였다.

“아악!!”

중공군은 가운데를 뚫고 들어오는 1개 분대를 향해 총탄을 소비했고, 서로에게 총을 쏘아대는 꼴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모든 총알이 그들을 피해주지는 않았다. 최성우의 귓불 아래 쪽으로 난 구멍은 여지없이 최씨 집안의 3대독자를 차가운 시체 덩어리로 만들어버렸다.

가난하고 힘없는 집안을 일으키기 위해 간부로 지원해 나온 전쟁터. 그러나 나오지 않아도 될 전쟁은 참혹하기 이를 데 없었고 피할 수도 없었다. 그와 하나뿐인 어머니의 가족사진이 그의 품에서 빠져 나와 나뭇잎마냥 전쟁터 속에서 휘날렸다.

최성우가 이끌고 나간 1개분대가 그렇게 죽어나가자 지영욱은 마음을 더욱 굳게 다잡았다. 소총을 쥔 손에는 땀이 배여 나와 흘러내릴 정도였다.

“본부소대 1개 분대는 날 따라서 적진을 돌파한다!! ”

분명 미친 짓이었다. 그러나 지영욱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최성우의 공격에 주눅들어버린 적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지영욱은 그러한 모습에 더욱 마음을 다 잡고 적진으로 달려들었다.

“서라!! ”

한번 주눅들어버린 적은 그 한마디에 뒤를 쳐다보았다가, 눈을 번뜩이며 달려오는 지영욱과 한국군을 보고 기겁하여 꽁지가 빠지게 도망갔다.

“이얏!! ”

지영욱의 총칼에 무너지는 중공이 그새 서너 명이 넘어갔다. 지영욱은 기어코 기관총을 메고 뛰어가는 적을 총칼로 찌른 뒤에 빼앗았다.

“이것을 위의 OP에 전해주게... ”

“예! ”

병사는 기관총을 들고 OP지역으로 들고 올라갔다. 그 모습을 보며 지영욱은 잠시나마 안심해버렸다. 「탕!」 지영욱은 순간 흐릿해지는 의식과 힘이 빠지는 몸뚱이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가슴 쪽에 난 상처를 만져 그 곳에서 나오는 피를 확인했다.

“후우- ”

광복이 되어 대학을 졸업하면서 다시는 밟지 않을 동경 땅을 폐인마냥 되어 밟았었다. 그리고 폐허가 된 일본에서 맨손으로 일어나려던 그때, 전쟁이 터지고 많은 수의 사람이 죽자 나라는 자신을 찾았다. 그 때의 그 편지. 자신의 심장을 지켜 주리라 믿던 그 편지마저 구멍이 나서 지금은 자신의 피에 젖어 버렸을 것이다. 얼떨떨한 심정으로 다시 고향에서 두발 뻗고 잘 수 있다는 생각으로 나온 전쟁터. 희망이란 가능성으로 싸웠지만, 역시 지영욱에게는 가능성만이 있었을 뿐이었다. 자신의 상황이 허탈한 듯, 입꼬리를 슬쩍 올린 채, 지영욱은 웃으면서 스러져 갔다. 마치 지영욱의 죽음을 기다렸다는 듯이 734 고지는 중공군의 손에 들어가 버렸다.

이영석은 무너지는 중대를 보며 내색할 수는 없었지만, 쉼 없이 답답함을 느끼었다.

서재한은 그런 이영석을 바라보다가 몸을 일으키려 했다.

“뭐하는거야! ”

이영석이 손으로 제지하자, 서재한은 조용히 손으로 가슴팍에 매달린 한 개의 수류탄을 가리켰다.

“수류탄이 하나 남았습니다. 그냥 목표도 보지 못한 채, 날려버리기는 아깝다는 생각인데.

소대장님도 그렇게 생각할 거라고 제 나름 판단했습니다. ”

“이렇게 달려들면 죽을 뿐이야. 그냥 땅바닥에 나뒹구는 고기 덩어리라고!!! ”

흥분한 이영석에 비해 서재한은 차분하고 냉정하기 이를 데 없었다.

“살려고 달려드는 겁니다. 가겠습니다. ”

서재한은 이영석의 손을 뿌리치고 적들이 있는 곳을 달려갔다.

“서재한!!!!!!!!!!! ”

「탕탕탕!」곧이어 이어진 총격에 이영석은 하는 수 없이 고개를 숙였다. 서재한은 수류탄을 입에 물고는 달려갔다. 어차피 한번 죽는 인생 누군가에게 기억되고 싶었다. 일본에 의해 강제적으로 끌려가 전쟁으로 인해 죽은 아버지가 꿈꾸던 독립투사처럼 말이다.

서재한의 눈에 호에 엎드려 있던 대여섯 명이 보이자, 몸을 날려 두 놈의 목을 감싸고는 안전핀을 뽑았다.

“꺼져버려! 중공놈들아!! ”

「콰앙-!」호에 있던 대여섯 명은 그 자리에서 서재한과 함께 즉사해버렸다. 이영석은 잠시 멈춘 총격에 서재한이 달려간 곳을 보았다. 서재한은 돌아오지 않았다. 같이 행동하던 서재한의 죽음이 확실하자, 이영석은 잠시 멍해졌다. 싸우던 도중 죽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자신이 스스로 죽어 적을 제압하는 모습을 보자 소름이 치밀어 올랐다. 자신의 머릿속에 남아있던 가미가제라는 말이 생가의 수면위로 떠오르자, 이영석은 갑자기 두려워졌다.

“일본이 아직도 우릴 조종하는거냐........ ”

갑작스런 정신적 충격에 이영석의 생각은 이미 광복하기 전으로 돌아갔다. 이미 끝났다고 생각했던 그 전쟁의 굴레. 그러나 그 전쟁이란 놈은 물귀신처럼 자신의 할아버지를 끌고 사라져갔다. 그 때의 충격이 살아나고 있었다.

“난 죽고 싶지 않아! 죽고 싶지 않다구!! 이 일본 놈들아!! ”

이영석은 몸을 일으켜 적들에게 달려들었다. 정신적인 충격은 이영석 자신이 처한 상황마저 망각하게 만들어버리고는 그의 몸에 몇 개의 구멍을 선사했다.

“쿨럭...난...할아버지처럼 되고 싶지 않았다구요... ”

사그라지는 목소리와 함께 무릎 꿇은 이영석의 몸은 고개를 숙였다. 이영석의 유언과도 같은 말이 끝나자 그의 눈에서 진한 핏물이 눈물인양 떨어져 내렸다. 독립군의 자손으로 자랑스러움을 품고 살았던 어린 시절. 그리고 이어진 나라의 배신과 일본 제국에 의해 사형된 자신의 조부. 그 삶을 그대로 반복하고 싶지 않아 돌아온 조국. 이영석은 식어가는 몸뚱이를 그런 조국에 버리고 쓸쓸히 자신의 조부의 곁으로 걸어갔다. 

간혹 들려오는 비명소리와 총격에 나뭇잎 더미에 의지하여 숨은 3인. 유재인은 잔뜩 주눅이 들어 숨조차 쉬기가 어려웠다. 전쟁에 잔뼈가 굵은 이소겸과 전유호조차도 숨을 죽이며 청각에 의지해서 숨어 있었다. 734 고지 전체에 퍼져있는 함정비트들도 이미 그 쓰임새

가 다했을 것이다.

“아! 아직 있겠군! ”

“뭐라는 건지 모르것소.. ”

“다이너마이트.. ”

“다..다이너!! ”

“이런! ”

“흡!! ”

이소겸에 말에 놀란 유재인의 목소리가 커지자 전유호는 다급히 손으로 그의 입을 막았다.

다행히 유재인의 목소리를 들은 중공군은 없는 듯 했다.

“이 일병분, 성격 뭐 같소.. ”

“어쨌든. 난 그 곳으로 가서 폭파시키고 올 터이니 여기 잘 있으시오.. ”

“이 일병분과 있으라 켓소? ”

“그럼 그 다리를 해가지고 일병 혼자 냅두고 가겠다는 겁니까? ”

이소겸이 슬쩍 혼자 가겠다는 분위기의 말을 꺼내자 전유호는 반론을 접지 못하고, 끈질기게 이소겸을 붙잡을 무언가를 생각했다.

“생각해 볼 것도 없소. 혼자 가야 더 은밀히 갈 수 있단 말이오. 쓸데없이 셋이 갔다가다 죽고 싶은 거요? ”

“하지만 이 중사 분.. 백에 백으로 위험하지 않소.. ”

이소겸은 자신의 대검을 살펴보았다. 전유호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이소겸은 유재인의 머리를 한번 쓰다듬었다.

“나라가 살아있으니, 그 35년 동안도 죽을 둥 살 둥 신음하던 그때와는 다릅니다.

이 아이가 산다면 이 전투가 비록 지더라도 일어날 겁니다. 부탁합니다. ”

“이 중사분... ”

이소겸은 자신의 소총을 챙겨 일어나 급하게 뛰어나갔다. 뛰어가는 이소겸을 발견하였는지, 몇 번의 총성이 들렸지만, 왠일인지 그들의 소리는 전유호와 유재인에게는 가까워지지 않고 있었다. 자신보다 어른들과 있다보니 순간 어린애가 되어버린 유재인은 정신을 차리고

전유호를 바라보았다.

“살아오시겠죠? ”

“살아 올 거라 했으니, 그말을 믿소... ”

유재인은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숨을 죽였다.

그 시각, 이소겸은 다이너마이트가 설치된 흙더미를 향해 뛰고 있었다. 자신이 살펴볼때에도 어디였는지 쉽게 찾을 수 없던 곳이었다. 그러했기에 적들도 쉽게 찾을 수는 없을 것이라고 믿고 뛰고 또 뛰었다. 며칠 전에 파놓았던 적들이 모르는 비트는 은, 엄폐를 하며 그 곳까지 안전하게 갈 수 있도록 도왔다. 왠만한 비트에 중공군의 시체가 꼭 한구씩은 있었기에 적들에게 노출될 수도 있었지만, 다행히도 흙더미가 시야에 들어오는 곳까지 갈 수 있었다. 주위에는 알아들을 수 없는 중국어로 중공군들이 서성이고 있었다. 이제 얼마나 조심히 저 근처까지 갈 수 있는 지가 문제였다. 이소겸은 최대한 낮은 포복으로 몸을 낮추어 천천히 흙더미로 이동했다. 나뭇가지에 생채기가 나서 피가 흘러도 그 속도를 낮추거나 더 빠르게 하지 않고 직진만 생각하며 기어갔다. 한참을 왔다고 생각한 이소겸은 얼마나 왔는지 살피기 위해 살며시 고개를 들어올렸다. 「퍽!」

“허억! ”

이소겸은 갑작스레 느껴진 복부의 통증으로 인해 새우마냥 몸을 구부리며 천천히 고개를 들어올렸다. 그러자 그 곳에는 누런 이를 드러내며 웃고 있는 중공군이 서있었다.

“#@@$%#$# ”

중공군은 인상을 구기고는 알 수 없는 말을 했다. 그리고는 손을 다른 쪽으로 가리켜 누군가를 부르려는 것 같았다.

“그렇게는 안 된다! 이놈아! ”

이소겸은 누워 잇는 상태에서 소총을 휘둘러 그 중공군의 정강이를 가격했다.

“악! ”

짧은 비명소리와 함께 무릎을 꿇은 중공군을 보며 이소겸은 몸을 일으켜 대검을 목에 꽂아 넣었다.

“으악!!!! ”

중공군의 몸이 무너지는 모습에 신경 쓸 새도 없이 다른 중공군들이 달려오기 시작했다. 이소겸은 급하게 몸을 일으켜 달리기 시작했다. 「탕탕탕!」 이어지는 총격이 이소겸의 귓등까지 가까워졌다.

“아악! ”

이소겸은 오른 쪽 허벅지를 양손으로 부여잡았다. 그 많은 총알 모두가 자신을 피해 갈 리 만무 했지만, 막상 이렇게 되니 눈앞이 캄캄해지며 달려가는 몸뚱이는 속도를 달려가던 속도를 주체하지 못하고 땅바닥을 굴렀다.

“크윽... ”

겨우 멈춘 몸뚱이의 고통에 이소겸은 신음을 토해내며 고개를 들었다. 고통에 찌들어 있던 이소겸의 얼굴을 곧바로 자신의 앞에 있는 다이너마이트가 있는 흙더미와 그 바로 밑에 늘어진 조그만 줄이 있었다. 그것은 본 이소겸은 살며시 미소를 짓고는 곧장 자신의 상의에서 라이터를 꺼내어 그 줄에 불을 켰다. 그리고 살아있는 불이 왠지 아까운 마음에 담배 한 개를 꺼내어 물었다. 전투가 끝나면 고지 정상에서 피려고 남겨둔 것이었다. 허벅지의 총상을 입어 양손으로 부여잡았던 터라 담배는 그새 피 범벅이었다.

담배에 불을 붙인 이소겸은 그대로 흙더미에 기댄 뒤, 한모금의 연기를 뿜었다. 「탕!」

이소겸은 연기에 앞이 보이지 않던 자신의 가슴에 총알이 박히었지만, 얼굴을 찌그러트리기는커녕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스러져 갔다. 많은 중공군이 이소겸이 죽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걸어왔다. 「퍼어엉!」 격렬한 폭음, 흙더미 내부를 채우고 있던 다이너마이트가 폭발하며 그 주위의 많은 이들의 죽음이 있었다. 그리고 다이너마이트를 감싸고 있던 자잘한 돌멩이들에 죽지도 못하고 불구로 만들기 충분한 상태가 된 이들도 있었다. 이소겸의 시체는 형체를 알아 볼 수 없을 정도로 너덜너덜해져 734 고지에 뿌려졌다. 그가 마지막에 뿜어낸 담배 연기 마냥 흩뿌려진 것이다. 엄청난 폭음. 이소겸에 의해 폭발한 다이너마이트의 폭음이 734 고지를 덮자, 정적이 찾아왔다. 김휘교는 폭음이 이제는 잠잠해지리라 예상하고 숙인 고개를 조금씩 들어올렸다. 얼마나 큰 폭발이었는지 주위에는 온통 흙먼지가 요동치며 흩뿌려져 있어서 어두운 와중에서 더욱 주위를 분간하기 어려웠다. 김휘교는 지석경을 자신의 자로 밑에 숙이게 하고는 청각에 더욱 신경을 기울이며 훑어보았다.

“후우- 엄청나네... ”

“다시 포격이라도 시작된거야? ”

“아닌 것 같은데.. ”

지석경은 김휘교가 자신의 머리를 잡고 있어 들어 올리지 못한 채, 포격이 다시 시작 되었는 지 물었다. 김휘교는 연이어 터지지 않는 폭음을 근거로 포격이 아니라고 말했다. 조용하던 734 고지에 다시 알아 들을 수 없는 고함들이 울려 퍼졌다. 새벽이 깊어가는 시각, 이제 중대원이 얼마나 생존해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김휘교가 그 생각을 하자마자, 적들은 흙먼지를 뒤집어 쓴 채로 그의 시야로 들어왔다. 하나 둘 늘어가는 중공군은 무엇을 찾기라고 하는 듯, 총칼로 바닥을 찌르면서 천천히 접근하고 있었다.

김휘교는 순간 급하게 머리를 굴려야만 했다. 이대로라면 둘 다 죽게 될 것이라고 말이다.

“석경아. ”

“어? ”

“고개 들지 말고 듣기만 해. 이제 내가 곧장 직진해서 달릴 거야. 그러면 너는 바로 오른쪽으로 뛰어서 앞 쪽에 있는 비트로 숨어. 알았지? ”

“왜? ”

“왜가 어딨어. 언제 형이 너 실망 시키디? ”

지석경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김휘교는 언제나 자신의 말을 잘 따라준 지석경의 머리를 쓰다듬고는 곧장 정면, 중공군이 걸어오는 곳으로 달리었다.

“으아아아!!!!!!!! ”

김휘교의 괴성과 함께 중공군의 시야가 온통 김휘교에게로 향하고 있을 때, 하늘이 도왔는지, 오른쪽으로 달려 나가는 지석경에게 눈을 돌리는 중공군은 없었다.

‘석경아. 살아야한다... 죽을힘을 다해 살아야 한다... “

김휘교는 속으로만 이 말을 삼킨 채, 지석경의 뒷모습도 보지 못하고 그저 적군을 향해 달려들 뿐이었다.

“흑........흑...... ”

지석경의 눈가에 어느 샌가 고인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리다가 김휘교와 숨어있던 비트 방향으로 흔적을 남기듯이 흩날리었다. 「탕!」 한 발의 총성이 울리자, 지석경은 김휘교가 알려준 비트로 쏜살같이 들어간 후, 눈을 질끈 감고 귀를 막았다. 당장 터져 나올 것 같은 울음을 간신히 틀어막았지만, 그 작은 틈새로 슬픔은 여지없이 새어나왔다.

그렇게 소리 없는 슬픔을 삼키다 지쳐 잠이 들어버렸고, 얼마의 시간이 지났는 지, 알 수 없었다.

“이보오... 상병분.. 일어나소! ”

지석경은 자신의 귀척에서 들리는 소리에 놀라 몸을 웅크린 채 급하게 고개를 들어 자신을 부른 이를 바라보았다. 그는 바로 전유호였다. 옆에는 유재인이 비트에 묻어 두었던 SCR을 메고, 땀에 절어진 것도 모자라 흙 범벅이 된 모습으로 누런 이를 내놓으며 웃고 있었다.

“어서 일어나소! ”

지석경이 상체를 일으키자, 주위에 같은 군복 차림의 사람들이 서 있었다.

“이것으로 총 7명 생존이군요. ”

“그런 것 같소.. ”

“어서 생존자들을 후방으로 이송해라. ”

“옛! ”

“남은 인원은 잔당을 처리하러 봉당덕리 633 고지로 간다! ”

“넷! ”

많은 인원의 우렁찬 함성에 734 고지가 떠내려갈 것만 같았다. 명령을 받은 병사들은 지석경을 일으켜 세워 전유호와 유재인을 비롯한 7중대의 생존자들을 이끌어 후방으로 이송하게 도왔다.

「1951년 9월 1일 20시부터 734고지, 동 고지를 완전히 탈환하는 9월 2일 07시까지 벌어진 이 전투는 734 고지를 지키던 7중대 인원 단 7명이 남을 때까지 용전하여 1개대대 규모의 병력을 사살하고, 증원 부대의 역습을 용이하게 하여 10명의 포로를 잡았다.

이에 이승만 대통령과 미 트루먼 대통령은 표창을 내린다고 발표하였다. 」

신문을 들고 읽고 있던 전유호는 조용히 침대에 누워 잇는 지석경과 그 옆의 또 다른 침대 에 누워 잠을 청하고 있는 유재인을 바라보았다. 그 전투 후에 지석경은 전투에 관한 소식 을 들을 때마다 쓴 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전유호는 그런 그를 보며 그저 한숨만 쉬었지만,

다행히 유재인은 표창을 받는다는 소식에 기뻐하며 좋아했다. 그 것만으로도 유재인을 책임지고 있는 자신에게는 그나마 위안이 되었다.

“너희만이 그 사람들의 꿈이었을 지도 모르겠구나..... ”

전유호는 조용히 신문을 접고, 자신의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창문을 바라보았다.

창문 밖은 전쟁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바쁜 손길들이 오고 가고 있었다.

이제 막 여름이 지나고 있는 한반도는 핏빛이 저물기도 전에 그 위를 다시 피로 적시는 전쟁이 한창이었다.




드라마 '전우'ost  김장훈 - 친구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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