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규영의 "나"는 문제없어!
젊은 분들도 어디서 들어본 노래일겁니다.
노래 한번 들어보시죠.
이 세상위엔 내가 있고
나를 사랑해주는
나의 사람들과
나의 길을 가고 싶어
많이 힘들고 외로웠지
그건 연습일 뿐야
넘어지진 않을꺼야
나는 문제없어
→나(주체,스스로)는 힘들고 외로워도 끝까지 길을 찾을 것이다.
짧은 하루에 몇번씩 같은 자리를 맴돌다
때론 어려운 시련에 나의 갈곳을 잃어 가고
내가 꿈꾸던 사랑도 언제나 같은 자리야
시계추처럼 흔들린 나의 어릴적 소망들도
→잠시 시련이나 찾아오거나 내가 꿈꾸던 일들이 변하지 않을때
그렇게 돌아보지마
여기서 끝낼수는 없잖아
나에겐 가고 싶은길이 있어
너무 힘들고 외로워도 그건 연습일 뿐야
넘어지진 않을꺼야
나는 문제없어
→그래도 포기하지마라. 나는 스스로 가고 싶은 길을 갈 것이다.
노래에서 계속 "나" 나! 나!를 그렇게 강조하네요.
데카르트 형이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처럼 자기 존재를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네요.
이제 좀 남 이야기 하지 좀 마라. 왜 맨날 인터넷에 악플을 다느냐! 니 걱정이나 해라!
왜 맨날 싸가지없는 요즘 얼라들! 이런 이야기를 하느냐!
야! 왜 맨날 엄마친구아들 이야기를 하느냐.. 우리 오빠가! 우리 형이!
우리 아빠가 이런 이야기좀 그만해라! 나에 대해 이야기 해봐 나에 대해!
이러면서 등장한게 실존주의입니다.
실존이란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현실적 존재! 현대 실존주의에서는 주체적인 인간 존재를 의미 하는 것이죠.
실존주의 대표적인 사상가는 3명 키에르케고르,샤르트르,하이데거 입니다.
실존주의가 등장하게 된 배경은 과학기술문명과 전쟁 속에서 비인간화되어 가는 인간의 현실을 고발하고
개인의 자율적 결단과 판단 선택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대단히 강조 하였음
먼저 키에르케고르는 실존이란 항상 이것이냐 저것이냐를 선택해야 하는 구체적 상황에 처한 개인
예를들어 신이 물어봅니다. 너 나에게 니 아들을 바쳐라!! 신이냐? 아들이냐? 선택해!
이런다면 객관성보다는 주체성만이 답을 줄 수 있다고 했습니다. 즉 주체성이 진리라는 것 이지요.
만약에 신이 이렇게 물어본다면 이런 실존적인 상황에서 절망에 빠진다고 합니다.
아.. 아들을 선택할까? 아니면 신? 아!! 머리아파!!!!!! 이러면서 절망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고 했지요.
신 앞에 서는 것도 내가 주체적으로 선택하는 것이기 때문에 불안해하지마라. 이를 신 앞에선 "단독"자라고 표현 하였습니다.
키에르케고르가 유신론적 실존주의자라면
샤르트르형은 무신론적 실존주의자입니다.
우리 인간의 본질을 결정하는 신은 없어! 샤르트르가 이를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라는 표현을 했지요.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 뭔소리지??
예를 들자면 아이폰을 만들때 스티브잡스가 이건 용도나 목적이 뚜렷하게 만들죠. 전화를 받고 인터넷을 하려고 만든 거예요.
즉 본질에 따라 그것을 만드는 것이지요. 이런 사물같은 경우 본질이 실존에 앞서는 것이고
인간같은 경우는 인간은 그냥 이 세상에 내던져진 존재로서 실존한 후 스스로 자기 자신의 모습을 만들어간다!라고 해서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라고 말했습니다. 왜? 그 본질을 만드는 제작자인 신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즉 자유로운 존재인데 자유 그 자체는 선택할 수 없다고 합니다. 나는 자유를 선택했어! 이러는 순간 자유가 아니게 되버리는 것이지요.
이를 자유의 부조리라고 표현합니다. 웃기잖아요. 나는 자유를 선택했어! 아니 원래 자유로울 운명인데 자유를 왜 선택해?
자유를 선택한다면 뭔가 한정적인 의미로 가두는 의미로 해석되기 때문에 자유자체는 선택할 수 없다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하이데거 오빠
하이데거 오빠의 실존이란 지금 여기에 있는 현존재 한정된 구체적인 인간을 의미하는 것이지요.
"한정된"인간 = 인간은 죽게된다. 그 죽음 속에서 인간은 불안과 염려 속에서 살아 간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 불안이 바로 진정한 자신을 발견할 기회! 즉 죽음을 회피하거나 두려워 하지말고
스스로 죽음을 앞질러서 받아들이고 자기 스스로 결단을 내림으로써 실존을 회복할 수 있다고 말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