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을 먹고 나면 허물 없이 찾아가 차 한 잔을 마시고 싶다고
말할 수 있는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 입은 옷을 갈아 입지 않고
김치 냄새가 좀 나더라도 흉보지 않을 친구가 우리집 가까이에
있었으면 좋겠다.
비 오는 오후나 눈 내리는 밤에 고무신을 끌고 찾아가도 좋을 친구,
밤 늦도록 공허한 마음도 마음 놓고 보일 수 있고, 악의없이
남의 얘기를 주고 받고 나서도 말이 날까 걱정되지 않는 친구가......
사람이 자기 아내나 남편, 제 형제나 제 자식하고만 사랑을 나눈다면
어찌 행복해질 수 있으랴. 영원이 없을수록 영원을 꿈꾸도록 서로
돕는 진실한 친구가 필요하리라.
그가 여성이어도 좋고 남성이어도 좋다. 나보다 나이가 많아도 좋고
동갑이거나 적어도 좋다. 다만 그의 인품이 맑은 강물처럼 조용하고
은근하며 깊고 신선하며 예술과 인생을 소중히 여길만큼 성숙한
사람이면 된다. 그는 반드시 잘 생길 필요가 없고, 수수하나 멋을
알고 중후한 몸가짐을 할 수 있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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