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른 하늘 아래 흰 창이 내리 꽂히네
저 하늘 너무 밝아 감히 볼 수 없어
내 고개 숙이니
드러난 목 사이로 목이 꿰뚫리네.
수많은 전장 사이
수많은 죽음 사이
이 한 몸 건사하기도 지쳐
다시 볼품없는 칼 한 자루 꼬나들어
나를 불러라 전장아
내 부를 이 너 밖에 없어-”
“뭡니까, 그건.”
“노래입니다. 들어본 적 있으실 텐데요.”
그런 노래 들어본 적도 없다, 라고 응수할 생각이던 스마트 쿠키는 생각을 고쳐먹었다.
“도대체 왜 이렇게 넋을 놓고 계신 겁니까!”
“예?”
낭창하게 물어오는 팬시의 대답을 스마트 쿠키는 참을 수 없었다.
“겨우 잡은 공세입니다, 몰아 붙여야 할 것 아닙니까!”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감금에서 풀려난 다음에 만난 것이 이렇게 넋을 빼놓고 있는 상관이라니,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렇게 온갖 죽음들을 무릅쓰고서 잡은 공세인데, 그 최고 지휘관이 이딴 모습이라니!
제 분을 이기지 못해 거친 숨을 몰아쉬는 스마트 쿠키를 보던 팬시는 입을 열었다.
“......, 재밌는 것 하나 가르쳐드리죠.”
그러며 팬시는 지도 위에 빨간 줄 하나를 그었다. 줄이 그인 곳은 자신들이 서있는 그곳, 시엔본 평원이었다.
“전 이곳을 모든 곳이 끝나는 지점으로 잡았습니다. 당연히 모든 병력과 자원을 이곳의 탈환을 목적으로 쏟아부었지요. 공세종말점이 무엇인지는 아시지요?”
“......”
당연 스마트 쿠키도 공세종말점이 무엇인지는 알고 있었다. 모든 공세가 종말 되는 시점, 그야말로 공세‘종말’점이다. 그리고 동시에 팬시가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 지도 알 수 있게 되었다.
“네, 맞습니다. 전 이곳을 공세종말점으로 수립하고 모든 작전을 계획했습니다. 즉 우리가 서 있는 이곳, 이 시간이 공세종말점입니다. 이 이상 우리는 체인질링군에게 타격을 입힐 수는 없습니다.”
“...... 그럼 어째서 퇴각하지 않습니까.”
“제 목적은 이곳까지였습니다만, 푸딩헤드 총리는 그렇지 않은 모양이더군요.”
“그녀는, 푸딩헤드는, 체인질링의 멸절을 바랍니까?”
어렴풋이 짐작했던 푸딩헤드의 속내였지만, 인정하고 싶은 것 또한 아니었기에 스마트 쿠키의 음성이 떨렸다.
“네. 완전무결한 멸망을 바랍니다. 자, 이젠 어쩔까요. 우린 더 이상 공세를 이어갈 수 없고 퇴각했다간 명령에 불복종하는 것이 되어버립니다. 노래라도 같이 부르시렵니까?”
감금되기 전까지의 팬시의 모습과는 너무나도 달랐다. 그렇다고 해서 전쟁 이전의 팬시하고도 그 모습은 닮지 않았다. 그것은 마치 모든 것을 포기한 듯한 자의 모습. 그랬기에 더더욱 스마트 쿠키는 슬퍼졌다. 차라리 그대를 미워할 수만 있으면 좋을 텐데, 그 무력감이 자신마저 잠식해가 도저히 팬시를 증오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스마트 쿠키는 팬시를 안았다.
부들거리는 팔과, 흠칫거리는 턱과, 조용히 떨려오는 심장이 팬시의 온기를 타고 전해져왔다. 동시에 스마트 쿠키의 눈에는 수많은 유해위에 오롯이 서있는 나무의 열주가 비쳤다. 그 상(像)이 아롱졌다. 자신의 얼굴을 타고 굴러 떨어지는 따뜻한 선을, 팬시의 것일 것이라 믿으며, 그렇게 스마트 쿠키는 현실에 안주했다.
승리자였으나 패자일 둘은 서로를 동경하며 동정했다. 저가는 햇빛이 그들을 비추었다.
그러니까, 이런 시점에 들어왔으니 어느 정도의 오해야 당연한 것 아닐까.
“죄송합니다! 나가겠습니다!”
갑작스레 들려온 고함에 두 명은 화들짝 놀라 떨어졌고, 그제야 그들의 행위가 어떻게 보일 가능성이 있는지 알 수 있게 되었다.
“아, 아니, 그러니까, 이건,”
“말 더듬지 마십시오! 더 이상하잖습니까!”
“아뇨, 전혀 이상한 게 아닙니다. 스마트 쿠키 총사령관 보님, 팬시 총사령관님! 사랑은 상대가 어떠한 상태에 놓여있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사랑하느냐 사랑하지 않느냐로 결정되니까요!”
“이런 망할!”
스마트 쿠키와 팬시는 정말 그들이 사랑하는 사이라 해도 좋을 만큼 서로의 감정을 이해했다. 그것은 끔찍할 정도의 공포였다. 로제니아 섭사직의 평을 종합하자면 어떻게 포장하려고 해도 결코 ‘입이 무겁다’라고 할 순 없는 성격이었기에 더욱 그러했다. 두 명의 군 통솔권자는 그들에 비하면 말단이나 다름없는 섭사직에게 열심히 변명해야만 했다.
한동안의 오해와, 한숨과, 거친 설전과, 몇 번을 되묻는 말들이 시간을 채우고 나서야 로제니아는 어리둥절함과 함께, 자신이 갑작스레 들이닥친 이유를 설명할 수 있었다.
“정찰병의 보고입니다! 체인질링이 무엇인가를 열심히 옮기고 있다고 합니다!”
“무엇인가?”
“네, 상자로 단단히 포장된 무엇이라고 합니다! 생일파티라도 열려는 것일까요?”
스마트 쿠키는 억지로 로제니아의 물음을 무시해야만 했다. 이런 때에 저런 농담을 받아버리면 웃음도 웃음이지만 제정신을 유지하기 힘들어지는 것이다. 그런 생각에 동의를 표해주길 바라며 스마트 쿠키는 팬시에게로 고개를 돌렸고, 겨우 겨우 웃음을 참고 있는 그녀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패, 팬시?”
“푸, 푸흡... 푸하하하하핫!! 아하하하하하하하!!”
스마트 쿠키는 진정으로 이 총사령관이 저 말도 안 되는 농담에 웃음을 터뜨린 것인가 의문을 가졌고, 그것은 로제니아 본인 또한 마찬가지인 듯 했다.
“어째서 웃으시나요, 팬시 총사령관님? 혹시 스마트 쿠키 총사령관 보님께서 부르신 것 때문에 그러하시는 겁니까?”
스마트 쿠키는 생각을 정정했다. 그것은 농담이 아니었다. -그걸 진심으로 한 말이었다니!- 그런 스마트 쿠키의 생각에도 아랑곳 않고, 팬시는 계속해 웃음을 터뜨렸다. 진심으로 팬시는 행복했다. 지금껏 이런 행복은 느끼지 못했다고 생각하며.
웃음으로 잔뜩 붉어진 얼굴을 쓸어내며 팬시는 기쁜 마음으로 말할 수 있었다.
“아니요, 전 여태껏 단 한 번도 희망을 찾아보려고 생각한 적이 없었습니다. 정말 단 한 번도 없었지요. 늘 지옥과 참혹 그 사이를 걸어가는 듯한 느낌에 치를 떨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에서야 전 이 아름다운 세상을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정말 감사합니다, 로제니아 섭사직. 전 이제 포기하지 않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스마트 쿠키는 알 수 없는 전율을 느끼며 물었다.
“무엇을 포기할 수 없단, 말씀이십니까?”
“당연히,”
말의 휴지(休止) 사이에 갑작스런 고함이 끼어들었다.
-총사령관님! 적의 습격입니다!
“이 전쟁이지요.”
여전히 알 수 없는 전율이라고 생각하며 스마트 쿠키는 칼을 뽑았다.
더없이 많은 미노타우루스들이 칼을 빼어들고, 그 거대한 도끼를 쥐고 이퀘스트리아 진영으로 밀려오고 있었다. 하늘의 별처럼, 체인질링들은 쏟아지고 있었다. 스마트 쿠키는 그 거대한 공포에 몸을 떨었다. 그리고 약간의 의문이 들었다.
그것은 작은 것이었다. 그리고 근원모를 물음이었다.
끈적끈적한 위화감이 자신을 덮쳐오는 것을 느꼈다. 무엇 때문에,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리도 위화감이 느껴지는 것일까. 다시 한번 더 스마트 쿠키는 체인질링들을 바라보았다. 변함없이 끔찍스레 많은 병력이었다. 미노타우루스로 변신에 달려오는 그들의 모습은 흡사 노도(怒濤)와도 같았다.
도대체, 무엇이?
그런 의문이 자신의 머리를 가득 채웠을 무렵, 문득 떠오른 사실에 스마트 쿠키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팬시를 황급히 바라보았다.
“패, 팬시...!”
스마트 쿠키가 바라본 팬시의 얼굴에도 그 사실을 알아챈 듯 잔뜩 근심이 묻어나 있었다.
“네.”
서로는 그 말도 되지 않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체인질링 군에는, 그리핀으로 변신한 체인질링은 단 하나도 존재하지 않았다.
체인질링 군의 하시오덴트 중대장은 자신의 임무가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고 그랬기에 그 표정은 우울하기 그지없었다. 죽음이 확실한 전장에 자신들의 병사들을 보내는 것은 역시 기분 나쁜 일이다. 그것을 자신의 중대원들이 알아주길 바라지는 않았다.
이런 고민은 언제나 장교의 일이다. 병사들이 알 게 해서는 안 된다.
멀리서 다가오는 이퀘스트리아 군이 보이기 시작했다. 평소와는 달리 적은 수다. 하시오덴트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금방 그 웃음을 지었다. 쓴웃음 대신 그가 얼굴에 띄어 보인 것은 광포한 미소였다.
“바짝 쫄은 거냐, 이퀘스트리아 이 병신들아! 야, 저 새끼들 좀 봐라, 바짝 쫄아서 병사들도 지들 좆만하게 내보내는구만! 야, 이 씨발새끼들아!”
중대장의 악질적인 농담에 병사들도 따라 웃었다. 확실히 이퀘스트리아 군은 여태껏 보여 왔던 병력에 비해 터무니없이 적은 숫자를 보이고 있었다. 하시오덴트는 호기롭게 거대한 도끼를 들어보였다. 미노타우루스로 변신한 체인질링만이 들 수 있는 무거운 병기였다.
“자, 다 쓸어버려라. 오늘 점심은 포니 구이다!”
미노타우루스로 변신한 체인질링들은 그 명령에 따라 흉포하게 뛰쳐나갔다.
“허어, 새끼들. 좆나게 많구만. 야, 저-기 앞에 보이는 게 뭐냐?”
어스포니 군 위베나 휘엔 중대장은 자신의 부관, 오세노아에게 물었고 오세노아는 조용히 대답했다.
“소대가리군요.”
“맞아, 좆나게 큰 소대가리지.”
-자 다 쓸어버려라, 오늘 점심은 포니 구이다!
들으라는 듯 커다란 고함에 실려온 말은 휘엔 중대장을 미소 짓게 만들었다.
“저 병신이 뭐래냐?”
“우리를 구워먹겠다는 군요. 체인질링이 포니를 먹는다는 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는데.”
“나도 마찬가지다. 저 새끼 대가리가 꽤나 딸리는 모양이야. 야, 우리 맛있냐?”
“먹어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군요. 중대장께서 협조해주시겠습니까?”
“사양하지, 너 같은 변태한테 먹힐 바에는 차라리 내가 나를 뜯어먹겠다.”
중대장과 그 부관의 한담에 병사들은 피식피식 웃음을 흘렸다. 위베나 휘엔도 덩달아 웃음을 터뜨렸다.
“저기 커다란 착각을 하고 있는 병신새끼들한테 우리가 누군지 좀 가르쳐줘야 쓰겠다. 움직여라, 이 육시할 새끼들아! 우리도 밥만 축내지 말고 할 일도 좀 해야지!”
어스포니들은 각각의 병장기들을 움켜쥐었다. 더 이상의 말은 필요 없다, 라고 휘엔은 생각했다.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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