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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으로 보는 사회]일베의 사회적 파장에 대해(홍성원-삼인행)
게시물ID : readers_759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망했쓰요
추천 : 0
조회수 : 432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3/06/06 17:31:45

 요즘 일간베스트에 대한 논란이 많죠. 여성 비하, 강간 모의, 지역 비하 등등... 수 많은 문제점이 있지만 그 중에 가장 화두가 되는 것이 바로 그들의 정치적 주장이었습니다. 그들은 광주의 민주화 운동은 폭동이다...를 시작해서 배를 가르는 아픔으로 겨우 내린 민주주의가 채 아물기도 전에 난도질을 시킨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등의 독재자들을 찬양하여 이 들의 표현의 자유에 대한 토론까지 이뤄졌었습니다. 한 낱 사이트로는 엄청난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죠. 이들은 당시의 독재는 무지한 국민들을 위한 구국의 결단이었으며 그 시대를 지낸 분들은 그것에 만족하고 찬양했다고 합니다. 실제로 몇몇 어르신들은 독재자들의 결단이 없었다면 이토록 경제가 발전하지도 못하고 빨갱이가 판쳤을 거라 말하시는 분들이 많으십니다. 분명 우리는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은 있어선 안될 독재자였으며 모든 항쟁과 운동들은 민주주의의 완성을 위한 초석이 되었음을 배웠건만 왜 되려 그 시대의 피해자들에게 질타를 받아야 하나 싶습니다. 제가 소개할 삼인행이라는 소설은 홍성원 작가가 76년도 유신시절 시대에 도전하는 젊음과 이미 시대에 익숙해진 기성세대의 대화를 통해 이 사회가 과연 건강한가에 대한 물음을 던지는 이야기입니다.

 

 줄거리는 굉장히 간단합니다. 쇠섬이란 작은 섬 옆에 부두에서 죄목을 모른 채 도망쳐 온 젊은이와 서의 명령으로 이 젊은이를 연행해야하는 늙은 시골 형사 김태수 이 둘은 눈 내리치는 겨울에 급하게 택시기사 남씨의 택시를 타고 서로 갑니다. 윗 사람들의 닦달로 눈길에서 빠르게 달리던 택시는 결국 바위에 부딪혀 사고가 나고 결국 근처의 파출소로 움직였더니 갑자기 서에서 젊은이를 석방하라는 명령이 내려지며 끝납니다.

 

 참 웃긴 내용입니다. 언제 사고 날지 모르는 빙판길에서 엑셀 꾹 눌러가며 달리다 사고까지 났건만 당장이라도 데려오지 않으면 안 될것 같더니 갑자기 젊은이를 풀라고 합니다. 이는 젊은이가 ‘죄아닌죄’로 연행되고 있었음을 암시합니다. 아시다시피 소설은 유신시대에 발표된 소설입니다. 민주국가에 투표대신 군의 힘으로, 법보단 대통령의 ‘어명’이 더 중시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죄아닌죄’ 도 ‘죄’로 치부하고 잡혀가면 ‘탁치니 억!하고’ 죽는 마술도 그저 그러려니 하는 말이 통하지 않는 사회였죠. 국민의 대표와 국민은 전혀 소통이 되지 않고 거짓말은 모든 진실을 묵혀 ‘거짓은 거짓’이 아니고 ‘진실은 진실’이 아니었습니다. 이를 두고 젊은 세대와 기성세대의 시선은 참으로 판이 합니다. 이는 연행되는 젊은이와 늙은 형사의 대화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자넨 젊음의 충격만 높이 샀지, 그 충격을 완충시킨 늙은이의 지혜는 무시하는군?’

 ‘그렇다면 왜 늙은이의 지혜로 젊음의 충격은 용납하지 못하십니까?’

 ‘그전에, 왜 자네들은 노인들의 지혜를 낡았다고 공박만 하나?’

 ‘그게 바루 우리 젊음의 가장 값진 특권 아닙니까?’

 

 이처럼 젊음의 충격과 노인의 지혜는 빙글빙글 꼬리를 물며 그 갈등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없습니다. 이런 의미없는 논쟁에 노인이 가장 중요한 화두를 던집니다.

 

 ‘현대 사회에서 개인이 대체 무슨 일을 할 수 있다는 건가?’

 

사실 노인이 이런 질문을 던진 것은 진짜 궁금해서 물었다기 보다, 자신도 겪었던 뜨거웠던 시절이 결국엔 다 부질없었음을 이미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이를 알 수 있는 부분이 있는데 이 시골 형사가 시골에 남게된 이유와 연관되어 있었습니다. 택시 기사 남씨의 말을 보면

 

 ‘아마 형님이 아니었으면 윌 마을의 사십 대 이상 되는 장정들은 절반 이상이 육이오 때 죽었을 게요. 빨갱이루 몰려 숱한 사람이 죽게 생겼는데 형님이 좋은 언변으루 그 많은 사람들을 총살에서 구해 주셨수. 형님이 반평생을 우리 마을에 눌러 사신 건 딴 데루 가지 못하도록 우리 마을에서 붙잡은 때문이오’

 

 그렇습니다. 더 나은 삶을 요구하는 것은 어느 시대에나 젊은 세대였고, 또한 그 시대의 젊음은 지금의 기성세대였습니다. 그들에겐 자신의 청춘을 바쳤음에도 불구하고 계속된 사회적 문제에 모든 것을 포기하고 그저 사회에 맞춰 살기를 택한 겁니다. 젊음이 어떠한가에 대해선 알지만 그들은 자신의 보호하기 위해 ‘변명’을 내놓을 수 밖에 없던 겁니다.

이 때 젊은이의 대답이 참 인상적입니다.

 

 ‘무엇을 하기위해 우리가 이러는 게 아닙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세상이지만 눈뜨고 깨어 있기라도 해야 되지 않습니까? 세상의 주인이 되구 안 되구는 끊임없이 그 세상에 간섭을 하느냐 포기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저두 나이 들면 그렇게 되겠죠.허지만 그건 제가 나이 든 후 그때쯤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문젭니다. 내가 젊었을 때 부질없이 한 일은 그것대루 벌써 이 세상에 한몫을 해 버린 후입니다. 우리한텐 젊음이 한 번뿐이지만 이 세상엔 젊음이 매년 똑같이 계속되고, 그렇게 젊음이 계속되다 보면 세상은 끊임없이 젊음의 충격을 받게 되는게 아닙니까?’

 

 이 처럼 사회가 젊은 세대에게 바라는 것은 당장 사회가 바뀌는 것을 경험케 하는 것이 아닌, 올바른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깨닳고 스스로 움직이는 것, 그것 하나만을 요구하는 겁니다. 6월 민주항쟁이든 518 민주화 운동이든 비교도 안 되는 군력 앞에 하루살이처럼 죽을 것을 알고 있음에도 대항한 것은 ‘우리는 알고 있다! 우리가 부당한 대우를 받는 다는 것을!’을 보여주기 위함이었지. 사실 그들도 당장 편안한 사회가 올 것을 바란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제와 우리는 그들이 없었으면 지금만큼의 민주적 성장이 없었을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이 또한 또 다른 시대의 젊음으로써 중요하게 여겨야할 것이겠지요.

 

 제가 이 작품을 통해 해설하려 했던 것이 젊음의 충격은 옳고 기성세대는 못됐다가 아닙니다. 아시다시피 지금 일간베스트라는 사이트를 중심으로 ‘상처받은 기성세대의 변명’을 그저 옳은 것으로 인식하고, 주장하는 젊음들이 많다는 것을 우려해서입니다. 기성세대란 기성세대 나름대로 현실직시와 경험을 가진 사람들로써 사회의 매우 중요한 구성원이긴 합니다만, 그 중에서 떳떳하지 못하고 자신들의 과오를 숨기려 드는 ‘비겁한 기성세대’에 의해 젊음과 기성세대 간의 비율이 무너져 가고 있음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일간베스트의 세대 비율을 분석한 결과, 10,20대가 주류일 것이란 예상을 깨고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의 비율이 반반 정도로 분석 되었습니다. 이는 기성세대 반에 의해 젊은 세대 반이 현혹되었다는 뜻인데, 이것을 사회 전체의 모습으로 비춘다면 정말 무서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물론 아직 젊은 세대의 반 이상이 정의 사회를 추구하고 있다고 믿지만, 이미 몇몇 단체에 의해 변절된 젊은 세대에 대한 보고가 있는 것에 연민과 함께 대한민국에 대한 걱정이 듭니다.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에서 ‘민’자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아직 젊음의 충격은 살아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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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응이 괜찮으면 정기적으로 저만의 해설의 올릴려고 합니다 비록 자퇴한 고등학생(?)이지만 저또한 저만의 철학과 꿈이 있기때문에


한 번씩 끄적여 보려합니다. 댓글로 좋은 생각 있으시면 그 중에 좋은 아이디어는 수용할 생각입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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